고린도전서 4:1-2

1 이처럼 여러분은 마땅히 우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관리자로 생각해야 합니다.
2 맡은 사람에게 더없이 요구되는 것은 충성입니다. (쉬운성경)

1 So look at Apollos and me as mere servants of Christ who have been put in charge of explaining God's mysteries.
2 Now, a person who is put in charge as a manager must be faithful. (New Living Translation)

1 Let a man regard us in this manner, as servants of Christ, and stewards of the mysteries of God.
2 In this case, moreover, it is required of stewards that one be found trustworthy. (NASB, NKJV)

오늘 읽은 말씀 중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 말 성경에는 이 말씀의 배경이 빠져 있습니다. New Living Translation에 보면 “So look at Apollos and me as mere servants of Christ who have been put in charge of explaining God's mysteries”라고 나와 있습니다. “아볼로와 나를 단순히 그리스도의 서번트로 봐 주십시오” 이런 뜻이지요? 아볼로는 바울과 경쟁관계에 있었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원치 않게 어떤 사람과 경쟁관계에 놓일 때가 있습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어떻게 하든지 경쟁자를 이겨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아볼로는 잘 생겼습니다. 학벌이 좋아요. 바울이 국내파라면, 아볼로는 해외 유학파였습니다. 세계 최대의 학문의 도시인 알렉산드리아에서 공부했습니다. 아볼로는 웅변술에 능했습니다. 그리고 성경도 잘 알았습니다. 정말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해서 바울을 위협했던 사람입니다. 오죽하면 고린도교회 안에 바울 파가 있었고, 아볼로 파가 있었겠습니까? 그외 두 파가 더 있었지요? 베드로 파가 있었고, 그리스도 파가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12).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바울이 자기와 경쟁 관계에 있었던 아볼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이런 점을 주의해서 봐야 합니다. 바울은 나나 아볼로나 모두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servant (일꾼 혹은 사역자)’는 주인으로부터 명령 받은 일을 잘 하면 됩니다. ‘일꾼’끼리 경쟁 관계를 만들고, 서로 시기하고, 서로 모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바울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 그리고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고린도전서 3:6)

지금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나와 아볼로를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봐 주십시오. 누가 훌륭하고, 누가 잘하고, 못하고 하면서 우리 두 사람을 비교하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는 각자가 맡은 일을 충실하게 하면 각자가 그리스도께로부터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임명 받으시는 분들은 2,000년 전에 바울이 가졌던 심정을 이해하고,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서번트’라고 하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서번트끼리 경쟁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서로 협력해서 주님의 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어느 뛰어난 사람이 혼자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심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물을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둘이 서로 협력할 때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 지금 회사나 연구소에서도 혼자 하는 일은 거의 없고 ‘team project’가 대부분입니다. 지금은 서로 협력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두 번째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관리자라는 말씀입니다. New Living Translation에 보니까 이 말씀이 “We have been put in charge of explaining God's mysteries”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을 설명하는 책임을 맡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뜻이지요? 같은 뜻이지만, NASB나 NKJV 성경은 조금 다른 용어들을 사용했습니다. “We are stewards of the mysteries of God”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들입니다” 이런 뜻이지요?

‘청지기’라는 말은 ‘steward’라는 말인데, 지금은 이 말을 많이 쓰지 않습니다. 배나 비행기의 승무원들을 말할 때 지금도 ‘steward’라고 합니다. 여자 승무원들을 ‘stewardess’라고 합니다. 그 외에는 많이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부자집에 ‘집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금 한국 뉴스에 보면 이명박 대통령의 ‘집사’ 역할을 했던 ‘김백준’이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김백준’이란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의 재산을 모두 관리했던 사람입니다.

지금 바울이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을 관리하는 ‘steward’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첫째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steward’는 하나님의 경륜을 꿰뚫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steward’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무엇이고, 그 구원의 계획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모든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교회에서 목사다, 장로다, 권사다, 집사다, 가족장이다, 간사다, 팀장이다, 임원이다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섬기는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역사상 유명한 재상들을 보면 모두 시대의 경륜을 알고 국가를 경영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steward’는 하나님의 경륜을 알고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경륜을 알려면, 성경 읽어야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오직 이 길 밖에 없습니다. 성경 읽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교회의 ‘steward’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교회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을 모르니까 자기 마음대로 할 수 밖에 없지 않나요? 그런 사람들이 교회를 힘들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하셨던 말씀도 그런 말씀입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사람이다.” (마태복음 16:23) 우리는 ‘하나님의 일 (God’s point of view)’ ‘하나님의 경륜 (God’s mysterious plan)’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의 일 (a human point of view)’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good steward’가 될 수 있겠습니까?

둘째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steward’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경륜’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We have been put in charge of explaining God's mysteries”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steward’는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는 것 아세요? “Turn away from evil and do good. Search for peace, and work to maintain it. The eyes of the Lord watch over those who do right, and his ears are open to their prayers. But the Lord turns his face against those who do evil. Now, who will want to harm you if you are eager to do good? But even if you suffer for doing what is right, God will reward you for it. So don't worry or be afraid of their threats. Instead, you must worship Christ as Lord of your life. And if someone asks about your Christian hope, always be ready to explain it. But do this in a gentle and respectful way.” (베드로전서 3:11-16) “악에서 돌아서서 선을 행하십시오. 평화를 추구하고, 평화를 유지하도록 하십시오. 주님의 눈은 옳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살피시고, 그들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하지만, 주님은 악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얼굴을 돌리십니다. 당신이 열심히 선을 행하려고 한다면, 누가 당신을 해치려고 하겠습니까? 설령 옳은 일을 하다가 고난을 받는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모두 갚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겁주는 것을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리스도를 당신의 삶의 주로 삼고 예배하십시오. 그리고 누가 당신이 크리스천으로서 가지고 있는 희망에 대하여 묻는다면 항상 부드럽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답해 줄 수 있도록 준비하십시오.” 하나님의 경륜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이런 사람아니겠습니까?

이런 말씀의 연장선에서, 저는 우리 교회의 네 번째 비전에 대하여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교회의 네 번째 비전은 “조국과 세계를 섬길 인재를 배출한다”입니다. ‘인재(人才)’는 말 그대로 ‘재능이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재’라고 할 때는 단순히 재능 있는 사람, 학문적으로 뛰어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우리 교회가 말하지 않아도 주변에 차고 넘칩니다.

제가 ‘인재’를 생각했을 때, 제 마음 속에 있는 사람이 성경에 나오는 ‘요셉’이었습니다. 제가 ‘요셉’을 중요하게 보는 이유가 있습니다. 요셉은 주어진 일에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옛말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사람을 돕는다’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항상 최선을 다하는 요셉을 하나님께서 도와 주셨습니다. 성경적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세상은 이런 사람을 원합니다. 주인이 볼 때만 일 하는 척하고 눈가림으로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누구도 원하지 않습니다. 이런 말씀들이 모두 성경에 나오는 말씀들입니다. 골로새서 3:22에 나오는 말씀이지요? 요셉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요셉을 주인이 눈 여겨 봅니다. 주인이 좋아합니다. 성경에 이렇게 나옵니다. “이 아이는 뭔가 특별함이 있는 아이다. 이 아이가 믿는 하나님께서 이 아이와 함께 하시는구나!” (창세기 39:3)

주인의 눈에 들어서 잘 나가던 요셉에게 어느 날 갑자기 고난이 닥쳤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하나님은 감옥에 갇힌 요셉을 형통하게 해 주셨습니다 (창세기 39:21, 23). 하나님께서 요셉이 무슨 일을 하든지 성공하게 만드셨습니다 (창세기 39:23). 여러분, 이게 말이 됩니까?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서 언제 나올지 기약이 없는 사람에게 이런 말이 어울리는 말입니까? 하지만, 요셉은 감옥생활을 발판으로 해서 이집트의 바로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요셉은 바로가 꾼 꿈을 해석해 줍니다. 바로는 단번에 요셉을 마음에 들어 합니다. 요셉을 이집트의 총리 자리에 앉힙니다. 그리고, 이집트를 경영(經營)하게 합니다. 이 말은 요셉이 천하를 경영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단순히 요셉이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정말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요셉이 자기를 이집트로 보낸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요셉이 처음부터 자신을 이집트로 보낸 하나님의 경륜을 모두 깨닫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요셉의 믿음이 점점 성숙해져 가면서 인간적인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해석했던 것입니다. 만일 요셉이 인간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삶을 해석했더라면 아마도 절망 속에 빠졌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나같이 불쌍한 사람은 없다고 세상을 원망하는 사람이 되었을 지 모릅니다. 다행하게도 요셉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자신을 삶의 의미를 생각하는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형님들의 악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창세기 50:20) 성경 창세기에 요셉에 대한 말씀이 30장에서부터 50장까지 모두 21장이 나옵니다. 그 많은 말씀 중에 가장 빛나는 말씀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우리 교회가 말하는 ‘인재’입니다.

또 한 사람 소개할 사람이 있습니다. 일본의 우치무라 간조 (內村鑑三, 1861-1930) 목사입니다. 우치무라 간조는 삽보로 대학 (The Sapporo Agricultural College, now Hokkaido University) 출신입니다. 그 때 삽보로 대학에는 윌리암 클라크 (William Clark, 1867-1879, 미국) 교수가 있었습니다. 윌리암 클라크 교수는 Amhurst College를 나와서 모교에서 15년간 교수로 있다가 UMass Amhurst에서 교수로 있었습니다. 삽보로 대학에서 윌리암 클라크 교수를 초빙했습니다. 클라크 교수는 초빙을 수락하는 조건으로 방과 후에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윌리암 클라크 교수는 “Boys be ambitious (젊은이여, 야망을 가져라)!”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장본인입니다. 우치무라 간조는 이 클라크 교수의 영향을 받아서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우치무라 간조는 1885년에 윌리암 클라크 교수의 모교인 Amhurst College로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옵니다. Amhurst College를 졸업한 우치무라 간조는 하트포드 신학교 (Hartford Theological Seminary)에 입학하지만, 금방 4개월만에 그만 두고, 1888년에 28살의 나이에 일본으로 돌아옵니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그가 Amhurst College 재학 시절에 자신의 삶에 대한 뜻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우치무라 간조 목사의 묘비에 “I for Japan; Japan for the World; The World for Christ; And all for God. (나는 일본을 위해, 일본은 세계를 위해, 세계는 그리스도를 위해,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을 위해)” 이렇게 새겨 있다고 합니다. 얼핏 보면 “야, 그 말 멋지다!” 이렇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단순히 멋진 말이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사람과 관련하여 자랑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여러분의 것입니다.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상이나, 생명이나 죽음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21-23)

마치 Jim Elliot (1927-1956)이 Wheaton College 재학 시절 일기책에 “He is no fool who gives what he cannot keep to gain what he cannot lose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하여 어차피 가질 수 없는 것을 버리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다)” 이렇게 써 놓았듯이, 우치무라 간조 목사님 역시 Amhurst College 재학 시절에 자신의 삶에 대한 비전을 이렇게 밝힌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이 결심대로 살았습니다. 수많은 청년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제자들을 양성했습니다. 그는 일본을 성경 위에 올려 놓으려고 했습니다. 그가 성경 강해를 할 때는 300-400명의 청년들이 몰려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강해가 끝난 후에도 사람들은 움직일 줄을 몰랐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도 우치무라 간조 목사님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모두 한국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인재들이었습니다.

요셉은 17세의 어린 나이에 이집트로 팔려 왔습니다. 우치무라 간조 목사님은 대학시절에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어떤 삶을 살지를 결정했습니다. 짐 엘리엇 역시 대학 시절에 자신의 삶을 무엇을 위해 헌신할 것인지를 결심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목사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습니다. 가슴을 펴라고요. 당장 눈 앞에 닥친 일만 보지 말라고요. 가슴을 펴고, 심호흡을 하고, 내 가슴에 그리스도를 품고, 교회를 품고, 조국과 세계를 품으라고요. 큰 뜻을 품고 기도하고, 큰 뜻을 품고 성경을 펴고, 큰 뜻을 품고 공부하라고요. 눈 앞에 닥친 일들을 좇아가기에 급급한 인생을 살지 말고, 큰 뜻을 품고 ‘Purpose Driven Life (목적이 이끄는 삶)’를 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