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2019 | 부활주일 메시지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않았느냐? You would see God's glory if you believe.

요한복음 11:25-27, 40-44

주님이 부활하신 새벽입니다. 2,000년 전, 첫 번 부활절은 ‘very early on Sunday morning, just at sunrise (마가복음 16:2)’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it was still dark (20:1)’라고 했습니다. 지금보다 조금 이른 시간이었던 같습니다. 그날 새벽에 여자 몇 명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자들 손에는 예수님의 몸에 발라드릴 ‘향료 (burial spices)’가 들려 있었습니다. 여자들은 가면서 무덤 입구를 막은 커다란 돌을 누가 굴려줄까 하고 걱정하면서 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무덤에 가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은 옆으로 굴려져 있었습니다.

여자들은 어찌 된 일인가 하면서 무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얀 옷을 입은 한 젊은 사람이 오른쪽에 앉아 있었습니다. 순간 여자들은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 청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나사렛 예수님을 찾고 있지요? 그분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여기가 예수님을 모셨던 곳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가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라고 말하십시오.” (마가복음 16:2-7)

여자들은 너무 무서워서 무덤에서 나와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에는 마가복음과 조금 다르게 나와 있습니다.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어찌하여 살아 있는 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찾고 있느냐? 예수님은 여기 계시지 않고 다시 살아나셨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여자들은 급히 제자들에게 이 말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하지만, 여자들의 말을 들은 제자들은 “그런 허튼소리 하지 말라”고 하면서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But the story sounded like nonsense to the men, so they didn't believe it (여자들의 말은 제자들에게 넌센스같이 들려서 그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24:11)

혹시 제가 이런 질문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정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까?” 사이몬 그린리프 (Simon Greenleaf, 1783-1853)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하바드 법대를 세운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증거의 법칙에 대한 논문 (A Treatise on the Law of Evidence)’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법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걸작으로 알려진 책이라고 합니다. 현재 미국의 재판제도는 아직도 그린리프가 구성한 증거의 법칙에 의존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린리프 교수가 하바드 재직 중에 강의를 하다가 예수의 부활은 믿을 수 없는 신화에 불과하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무신론자 (atheist)였으니까 당연히 부활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말을 듣던 학생들 중에 세 명이 “교수님이 만든 ‘증거의 규칙’을 예수의 부활에 적용해 보면 어떤 결론이 나올까요?”라는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그린리프 교수는 그러면 자기가 세운 증거의 규칙을 가지고 부활에 대한 증거를 조사해 보겠다고 학생들과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무신론자였던 그는 그의 이론을 따라서 증거를 조사하면 쉽게 부활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의 기록을 깊이 파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는 예수가 실제로 무덤에서 살아 나갔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차고 넘친다는 사실에 당황하게 됩니다.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예수가 죽은 후에 벌어진 극적인 변화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의 삶과 행동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되었다는 사실이 그를 놀라게 했습니다. 어떻게 한 두 명도 아니고, 모든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을 주장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만든 ‘증거의 규칙’을 적용해서 예수의 부활은 사실이 아니라는 결론을 쉽게 얻을 수 있다고 믿었던 그는, 반대로, 예수의 부활이 사실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조사의 결과를 가지고 ‘전도자들의 증언 (The Tes¬timony of the Evangelists: The Gospels Examined by the Rules of Evidence)’을 출판했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부활을 사실이라고 믿게 되었는지, 그가 수집한 증거들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자신이 수집한 증거를 부정할 수 없어 결국 크리스천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그 책에 이렇게 썼습니다. “누구든지 편견을 갖지 않고, 법정에서 하는 것처럼 정직하게 증거를 검토한 사람이라면, 나와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입니다.” 사람마다 믿음을 갖게 되는 경로가 다양합니다. 여러분 중 혹 어떤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데 그린리프 교수 이야기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제가 지금 얘기하는 이것들이 무엇인지 한번 맞춰 보십시오. ‘The Wrong Tomb Theory’ ‘The Hallucination Theory’ ‘The Swoon Theory’ ‘The Drugged-Body Theory’ ‘The Stolen Body Theory’ ‘The Missing Body Theory’ ‘The Spiritual Resurrection Theory’ ‘The Twin Theory’ ‘The Soldier Fell Asleep Theory’ 이 모든 이론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부활을 반대하기 위해 만든 이론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론들을 가지고도 반박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제자들의 삶의 변화입니다. 앞에서 말한 그린리프 교수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부활을 입증하는 자료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 중에서도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예수님의 제자들의 삶이 전과 전혀 다른 삶으로 변화된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로마의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지킨 수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예수를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순교한 수많은 사람들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몇 년 전에 이 지역의 목사님들이 수련회를 하면서 함께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영화 제목이 ‘Risen (부활)’이었습니다. 2016년에 나온 영화인데, 아주 잘 만든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목사님들이 모두 박수를 쳤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클라비우스 (Clavius)라는 로마의 호민관 (tribune)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형을 집행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며칠 후 예루살렘에 예수님의 무덤이 비었고,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소문이 납니다. 이 호민관은 예수의 시체를 제자들이 훔쳐 간 것이 틀림 없다고 단정하고, 제자들이 숨어 있는 곳을 찾아 급습합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있는 예수님을 목격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 손과 옆구리를 보여 줍니다. 이 호민관은 믿어지지 않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그럴 리가 없다고 자기 눈을 의심합니다. 그 때 예수님이 홀연히 사라집니다.

제자들은 갈릴리로 가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갈릴리로 갑니다. 이 호민관 역시 자기 눈으로 본 엄청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하여 제자들과 멀찌감치 떨어져서 동행합니다. 그런 그를 제자들은 경계하지 않고, 먹을 것을 나누어 줍니다. 갈릴리로 가던 중에 호민관의 배신을 눈치채고 뒤 쫓아 온 자신의 부하에게 “저 사람들의 손에 세상의 운명이 달려 있다네”라고 말하면서 제자들을 해치지 말고 돌아가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가슴이 뭉클합니다.

드디어 제자들은 갈릴리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한 밤 중에 호민관과 예수님 사이에 짧은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호민관은 며칠 사이에 자신에게 생긴 궁금한 것들을 예수님께 묻습니다. “제가 최근 며칠 사이에 목격한 일들은 이제껏 들은 적도 없고 본 적도 없는 일들입니다. 제가 뭘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영원한 삶에 대해서, 평안에 대해서, 또 죽음이 없는 세상에 대해서 말입니다.”

예수님과 이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어느덧 날이 밝아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죽음의 권세를 이긴, 산 자와 죽은 자의 주인이라는 것을 온 세상에 전파하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집니다. 제자들은 성령의 능력을 받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이제 이 호민관도 자기의 길을 가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호민관이 혼자 주막에서 차를 한 잔 마십니다. 그리고, 찻 값으로 호민관 반지를 빼서 ‘탁’하고 책상에 내 놓습니다. 호민관의 반지를 본 주인이 깜짝 놀라면서 “호민관님, 정말 이걸 다 믿으시는 것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호민관이 이렇게 말합니다. “난 믿어. 이젠 어제와 같은 삶을 살 수 없지!” 이렇게 말하고 길을 떠납니다. 그 장면에서 소름이 돋습니다.

제가 이렇게 길게 말씀 드린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문이 퍼졌을 때, 이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사도들의 변화된 삶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되어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파했고, 사람들은 그들이 전파하는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도 똑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크리스천으로서 어떤 삶을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말을 듣고 복음을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말을 듣기 전에 먼저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은 잘 살고 계십니까? 제가 묻는 것은 여러분이 크리스천으로서 잘 살고 계시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크리스천의 삶에 특별한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고린도후서 5:7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For we live by faith not by sight (왜냐하면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보는 것으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말씀 속에 우리 크리스천의 삶의 방식이 나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분명히 성경에는 이렇게 나와 있는데, 크리스천들이 이 방식대로 살지 않습니다. 크리스천은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데 믿음으로 살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살고 있습니다. 예수 믿고 교회에 다닌다고 말하면서 세상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따라 살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 성경은 이렇게 나와 있는데, 많은 크리스천들이 세상을 본받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정 반대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부터 성경 말씀대로 살지 않는데, 누가 우리 말을 듣겠습니까? 교회가 세속화되어서 교회나 세상이나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누가 교회에 나오며, 누가 교회가 하는 말을 듣겠습니까?

오빠가 죽었다고 슬퍼하는 마르다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40절) 불행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읽으면서도 믿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무조건 될 줄로 믿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나는 빛도 만들고 어둠도 창조하였다. 나는 평화를 가져오기도 하고, 재앙을 일으키기도 한다. 나 여호와가 이 모든 것을 한다 (I create the light and make the darkness. I send good times and bad times. I, the Lord, am the one who does these things).” (이사야 45:7) 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나사로가 왜 죽었습니까? 나사로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이 빨리 베다니로 가셨더라면 나사로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일부러 시간 끌다가 나사로가 죽은 것 아닙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라.” (요한복음 11:25-26) 예수님은 이 말씀을 가르쳐 주시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발견한 가치들을 내 삶 속에서 실천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시려고 그런 것입니다. “We live by faith, not by sight”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살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말씀입니다. ‘I AM’이신 분, ‘스스로 계시는 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 크리스천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 오늘 우리 교회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은, 모두 믿음으로 살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사는 데서 오는 문제들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지 않으니까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믿음으로 살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사니까 세속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교회나 세상이나 비슷해서 구별이 안 됩니다. 부활신앙은 우리 믿음을 받치고 있는 기초 (foundation)입니다. 그런데, 이 기초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믿음으로 살지 않고 보이는 것을 따라 사는 사람이 부활을 믿겠습니까? 이 기초가 무너지니까 믿음도, 선교도, 설교도, 영원한 삶에 대한 확신도 모두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부터, 오늘 이 새벽에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리는 우리부터 눈에 보이는 대로 살지 않고 믿음으로 살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크리스천의 삶의 방식을 다음 세대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4/20/2019 | 사순절 새벽기도 40

빈 무덤 이야기

마가복음 15:42-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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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2019 | 사순절 새벽기도 39

새롭고 산 생명의 길이 열리다

마가복음 15: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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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2019 | 사순절 새벽기도 38

Extravagant Love

마가복음 1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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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2019 | 사순절 새벽기도 37

가장 큰 계명

마가복음 12:2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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