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2025 | 종려주일
머릿돌이 되었도다 (The Cornerstone)
유민용 목사
시편 118:1~2, 19~29
1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분은 선하시고, 그분의 인자하심은 영원하도다. 2 이스라엘 백성들아, “주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하시다.” 하고 외쳐라… …19 그러므로 나를 위해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 다오. 내가 그 문으로 들어가서 주님께 감사드리리라. 20 이 문은 주님의 문이니, 의인들이 다 그리로 들어가리라. 21 주께서 나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고 내게 구원의 손길을 베풀어 주셨으니, 내가 소리 높여 주님께 감사드리리라. 22 집 짓는 건축자들이 내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도다. 23 이것은 주께서 행하신 일이니, 우리가 보기에 참으로 놀랍기만 하여라. 24 이 날은 주께서 구별하여 정하신 날이니, 이 날에 우리가 다 같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25 주여, 간구하오니 우리를 구원해 주소서. 주여, 간구하오니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 주소서. 26 ○ 복 되도다, 주의 이름으로 나오는 자들이여! 주의 성전에서 우리가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27 주님은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니, 너희는 손과 손에 나뭇가지를 들고 축제의 행렬을 벌여, 다 함께 제단의 뿔로 나아가자! 28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주님께 감사를 드리렵니다. 진실로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주님을 높이 기리렵니다. 29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분은 선하시고, 그분의 인자하심은 영원하도다. (쉬운말 성경)
1 Give thanks to the Lord, for he is good!
His faithful love endures forever.
2 Let all Israel repeat:
“His faithful love endures forever.”......
19 Open for me the gates where the righteous enter,
and I will go in and thank the Lord.
20 These gates lead to the presence of the Lord,
and the godly enter there.
21 I thank you for answering my prayer
and giving me victory!
22 The stone that the builders rejected
has now become the cornerstone.
23 This is the Lord’s doing,
and it is wonderful to see.
24 This is the day the Lord has made.
We will rejoice and be glad in it.
25 Please, Lord, please save us.
Please, Lord, please give us success.
26 Bless the on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We bless you from the house of the Lord.
27 The Lord is God, shining upon us.
Take the sacrifice and bind it with cords on the altar.
28 You are my God, and I will praise you!
You are my God, and I will exalt you!
29 Give thanks to the Lord, for he is good!
His faithful love endures forever.(New Living Translation)
본 시편은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참 좋아했던 말씀입니다. 루터는 시편 118편을 가장 사랑하는 시편이라고 설교에 자주 인용하곤 했습니다. 특히나 ‘건축자들이 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도다’라는 말씀에서 힘과 용기를 얻었을 것입니다. 그가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은총(Sola Gratia)을 선택했을때 그의 인생은 로마 교황청에 의해 버림 받는 돌이 되었습니다. 1521년 4월 18일 보름스(Worms) 의회 앞에서 카톨릭의 문밖으로 나가야 하는 결정을 받아 들여야 했습니다.
루터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나는 여기 서 있습니다. 나는 달리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루터는 자신의 생각과 방법이 옳다고 여긴 것이 아니라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렸습니다. 그가 지은 찬송시를 듣고 있으면, 승리의 함성이 들려오는 듯 합니다.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 밖에 없도다 힘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갈보리산 언덕 위,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돌은 결국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 머릿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심없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옳은 길을 걸어야 합니다. 때때로 보잘 것 없이 느껴질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으로 찾아와 주셔서 우리의 삶을 세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1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분은 선하시고, 그분의 인자하심은 영원하도다. 2 이스라엘 백성들아, “주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하시다.” 하고 외쳐라…19 그러므로 나를 위해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 다오. 내가 그 문으로 들어가서 주님께 감사드리리라. 20 이 문은 주님의 문이니, 의인들이 다 그리로 들어가리라.
유대인들은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을 오르며 할렐시편를 불렀습니다. 이 할렐 시편에는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내용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시편 118편은 제 1할렐 시편(시편 113~118편)의 마지막 노래입니다. 시인은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 달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그 문으로 들어가 감사를 노래합니다. 시인은 억압이 아니라 자유함을 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노래합니다. 그리고 ‘의인들이 다 그리로 들어가리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 시편 안에는 그리스도가 겪으신 고난과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양의 문이라 하셨습니다(요 10:9) 종려주일 왕의 입성이 곧 ‘생명의 문’을 여는 것이었지만 갈보리는 십자가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1장에서 자신을 가르켜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라고 시편 118편을 인용하십니다. 21:42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성경에서 이런 말씀을 읽지 못하였소? ‘집 짓는 이가 버린 돌이 이제는 모퉁이를 받치는 머릿돌이 되었다. 주께서 이루신 이 일, 우리 눈에 너무나 놀라워라.’ 머릿돌이 되었다라는 뜻은 부활의 개념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교회의 머릿돌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며 예수의 말씀 위에 삶을 세워갑니다. 모든 것의 중심에 예수께서 계심을 믿을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십니다.
초대교회가 선교적 교회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면, 스데반 집사의 순교 이후 밀려온 박해로 인해서였습니다. 예루살렘에 머물던 성도들은 박해를 피해 유다와 사마리아로 흩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 흩어짐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섭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버려진 것 같은 상황에 떠 밀린 인생속에서도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요셉은 그의 형들에게 의해 버림받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애굽의 총리로 세우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모세는 히브리 동족을 구하기 위해 이집트 사람을 죽인 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광야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훈련시키셨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로 사람들에게 심한 조롱을 받았지만 하나님은 고난 가운데서도 예레미야를 붙드셨고, 그의 입술에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고난 속에서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믿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 길을 걷는 것입니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었다’는 말씀은 놀라운 은혜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삶의 어떤 순간에는 버려진 돌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바울도 예수를 믿은 이후, 유대인들에게는 배신자로, 기독교인들에게는 낯설고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시고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다양한 현실 속에서, 우리의 이해와 판단을 내려놓게 하심으로 그 공간 안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보게 하십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로는 인생의 닫혀진 문, 절망의 문, 관계의 깨어짐의 문 앞에 서게 되지만 그때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해야 할 때입니다. 성도가 겪게 되는 외적인 고난은 하나님의 은혜을 경험하는 기회가 됩니다. 바울의 사역의 핵심에는 고난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인생의 고난은 성도다움을 드러내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하지 않는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생애를 보면 형 에서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빼앗아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갈때입니다. 그는 익숙한 어머니의 품을 떠나서 불안과 두려움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벧엘에서 잠을 자는데 하늘문이 열리고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봅니다. 창세기 28장입니다.
“28:13 주께서 그 사닥다리 위에 서서, 야곱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고, 너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다. 네가 지금 누워 있는 이 땅을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다.
28:14 네 후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져, 동서남북 어디로든 네 후손이 퍼져나갈 것이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와 네 후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다.
28:15 나는 늘 너와 함께할 것이다. 네가 어디를 가든 내가 너를 지켜줄 것이고,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내가 네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 전에는 내가 절대로 네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익숙한 삶을 떠나 고독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삶에 처절한 고독이 없었다면 만날 수 없는 하나님의 대한 경험입니다. 잠을 깬 야곱은 열린문을 경험하고 두려워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면 기뻐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그것은 자기세계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경의로움을 경험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28:16 야곱이 잠에서 깨어나 말했다. “주께서 바로 이곳에 계시는데도, 나는 그것을 몰랐구나.”
28:17 야곱은 두려워하며 말했다. “이곳은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바로 여기가 하나님의 집이 아닌가? 이곳이 바로 하늘로 가는 문이로구나!”
오늘 우리는 성찬식을 갖습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성찬은, 평범한 일상이 주 안에서 거룩해졌음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 감사를 회복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거룩함에 참여하여 세상속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매번 성찬을 통해 죽음과 부활 사이에 있는 예수를 기억했습니다. 우리도 이 시간 예수님의 죽음과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며 성찬에 임하시길 바랍니다. 성찬은 부활의 소망이 우리 안에서 살아나도록 돕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매일 마주하는 뉴스만 보아도, 세상은 성과중심의 구조 속에서 사람을 상품화하며, 가치가 떨어졌다고 판단되면 버려져야 할 존재로 여깁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그랬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날에 많은 사람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호산나를 외치던 사람들이 그것도 며칠후에 빌라도 법정에서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요구합니다.
사람들은 예수가 정치적 구원자로서 강력하게 나타나기를 원했지만, 주님은 침묵하시며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세상의 능력과 권세를 발휘하는 구원자로 기대했으나, 예수께서는 세상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구속의 뜻에 따라 죽음을 선택하셨고, 그 길은 온 인류를 위한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우리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삶이 힘들어질수록, 세상은 쉽게 관계를 끊어내고, 안전이 보장된 길만을 따라갑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믿음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절대 쉬운 길이 아니지만 외롭고 고단한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십자가 부활의 생명을 발견하게 하실것입니다. 이 믿음이야말로 성도의 삶을 붙들어 주는 힘이 됩니다. 믿음과 현실 사이, 죽음과 부활 사이에 하나님의 신비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제 이 문을 통과한 성도는 자기 욕망을 따르던 삶에서 거룩한 성전을 지어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종려주일은 슬픔을 안고 나아가는 기쁨입니다. 존재가 흔들리는 불안 속에서도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23 이것은 주께서 행하신 일이니, 우리가 보기에 참으로 놀랍기만 하여라. 23절은 예수를 통해 새로운 질서를 시작하신 것은 사람에 의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되어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24 이 날은 주께서 구별하여 정하신 날이니, 이 날에 우리가 다 같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25 주여, 간구하오니 우리를 구원해 주소서. 주여, 간구하오니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 주소서.
26 복 되도다, 주의 이름으로 나오는 자들이여! 주의 성전에서 우리가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27 주님은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니, 너희는 손과 손에 나뭇가지를 들고 축제의 행렬을 벌여, 다 함께 제단의 뿔로 나아가자!
28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주님께 감사를 드리렵니다. 진실로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주님을 높이 기리렵니다.
29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분은 선하시고, 그분의 인자하심은 영원하도다.
마음이 무거운 소식들이 참 많습니다. 끊임없는 사건과 사고의 소식과 분쟁과 갈등의 이야기들, 거기에 인생의 짐까지 더해져 마음이 멈춘듯 어렵기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바꿔 주시고, 온갖 죄와 사망을 사랑으로 이기셨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주의 날 예배를 통해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확신하며 믿음의 흔들림과 내적 갈등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문으로 들어가, 감사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오늘 이 예배의 자리가 하늘로 열린 문을 경험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다시 살아나는 자리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께서 빛을 완전히 잃어 버리는 고난 주간을 보내게 됩니다. 삶의 목적도 의미도 잃어버린채 살 소망 조차 없는 것 같은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 어둠을 뚫고 빛으로 오신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이제 믿는이들이 바라보는 인생의 문제는 돌파 할수 없는 벽이 아니라 새로운 문을 여시는 은혜가 될 것입니다. 절망 가운데 희망을 잃지 않고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마태복음 7:7)고 약속하셨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에게 구원의 문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려 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쳤지만 그 외침은 어느새 분노와 의심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십자가 죽음의 자리로 향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자리도 기대와 실망, 사랑과 미움이 반복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여 나의 삶의 십자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 아픔과 고난의 시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앞에서 소망이 되는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활의 아침에는 더 큰 기쁨과 소망이 넘치시면 좋겠습니다. 부활의 믿음으로 간구하실때, 주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은혜의 문을 활짝 여실 것입니다. 그 문은 이미 열려져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을 기념하는 성찬을 함께 나누게 됩니다. 더 깊이 그 은혜를 느끼며 성찬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한주도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마음 속 깊은 곳까지 느껴 보시고, 말씀을 따라 가는 삶에 축복이 넘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