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3:1-10

1 내 아들아, 내 가르침을 잊지 말고, 내 명령들을 네 마음에 소중히 간직하여라.
2 그렇게 하면, 너는 오래 살고, 성공하게 될 것이다.
3 너는 성실과 사랑을 절대 버리지 말고, 그것을 네 목에 걸고, 네 마음 판에 잘 새겨라.
4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칭찬을 받을 것이다.
5 네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절대로 네 슬기를 의지하지 마라.
6 너는 네 모든 길에서 그분을 인정하여라. 그러면 그분이 너의 길을 형통하게 만들어 주실 것이다.
7 스스로 지혜로운 체하지 말고, 여호와를 경외하고 악한 일은 피하여라.
8 그것이 네 몸을 치료하고, 네 뼈들을 윤택하게 해 줄 것이다.
9 네 재물과 네 수확물의 첫 열매를 드려 여호와를 공경하여라.
10 그러면 네 창고들이 차고 넘치게 될 것이며, 네 포도주통들이 포도주로 가득 찰 것이다. (쉬운성경)

오늘은 어버이 주일과 졸업 예배를 같이 드리는 주일입니다. 유명한 한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 풀이하면, “나무는 잠잠이 있으려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려고 하나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라는 뜻입니다. 한대(漢代)의 학자였던 한영(韓嬰)이라는 사람이 한시외전 (韓詩外傳)이라는 시경 (詩經) 해설서를 썼는데, 그 책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혹시 여러분, 송강 정철이 쓴 훈민가 (訓民歌)를 알고 계십니까? “어버이 사라신 제 셤길일란 다하여라. 디나간 후면 애닮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 뿐인가 하노라.” 부모에게 자식의 도리를 잘 하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시들입니다.

성경에도 부모에 대한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십계명 중 다섯 번째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입니다. 에베소서 6:2-3에는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 중에 이 계명을 잘 지키면 이런 저런 축복을 받으리라고 나와 있는 첫 계명이 바로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계명입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해서 부모님 생각 많이 하십시오.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지만, 전화도 한 통 넣고, 편지도 한 통 쓰십시오. 이미 부모님이 돌아가신 분들이라도 오늘을 있게 하신 그분들의 수고와 사랑을, 그리고 그분들의 기도를 기억하십시오.

영국의 시인 루드야드 키플링(Rudyard Kipling, 1865-1936)이 「오 나의 어머니(O Mother of Mine)」라는 시를 썼습니다. “내가 높은 산에 목이 매달린다고 해도 나는 압니다. 누구의 사랑이 나에게 흘러올지를. 오 나의 어머니! 내가 깊은 바다에 빠진다고 해도 나는 압니다. 누구의 눈물이 나에게 흘러올지를. 오 나의 어머니! 내 영혼과 몸이 저주를 받는다고 해도 나는 압니다. 누구의 기도가 나를 구원할지를, 오 나의 어머니!”

그렇습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눈물과 기도 덕분으로 오늘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키플링은 그의 시에 “Dedication to The Light That Failed (꺼진 불에게 바치는 시)”라는 부제(副題)를 붙였습니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그런 존재 아닙니까? 자신의 것을 모두 자식에게 내어 주고 자신은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꺼진 불과 같은 존재 아닙니까? 키플링은 그런 이 땅의 어머니들에게 한편의 시를 바쳐서 위로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의 소원은 한 가지입니다. 자식이 잘 되는 것입니다. 자식이 건강하게, 아무 탈 없이, 공부 잘 하고, 잘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런 부모님의 소박한 소원을 한 차원 높여서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잘 사는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예전의 사람들은 잘 되는 것을 ‘입신양명(立身揚名)’한다고 했습니다. 효경(孝經)에 나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고전에 나오는 말들을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입신양명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봐야 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오늘 읽은 잠언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잠언은 Proverbs입니다. 흔히 쓰는 말로는 속담이나 격언 혹은 금언입니다. 성경의 잠언 속에는 일상생활 속에서 얻은 지혜로운 말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에 교훈이 되는 말씀들입니다.

오늘 말씀은 “내 아들아(My son)” 하면서, 마치 자기 아들에게 들려 주는 교훈의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잠언을 쓴 솔로몬은 아주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인근 각처에서, 심지어 다른 나라에서까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큰 지혜와 슬기로운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헤아릴 수 없는 넓은 마음을 주셨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동방의 그 어떤 사람의 지혜보다 컸으며, 이집트의 모든 백성의 지혜를 합한 것보다도 더 컸습니다. 솔로몬은 이 땅의 어느 누구보다도 지혜로웠습니다. 예스라 사람 에단보다도, 마홀의 아들 헤만과 갈골과 다르다보다도, 더 지혜로웠습니다. 솔로몬의 명성은 모든 나라에 널리 퍼졌습니다. 솔로몬 왕은 평생 동안, 지혜로운 가르침을 삼천 가지나 말했으며, 천 다섯 편이나 되는 노래를 지었습니다. 그는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돌담에서 자라는 우슬초에 이르기까지 온갖 식물과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해서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모든 민족들이 솔로몬 왕의 지혜를 들으려고 몰려왔습니다. 그들은 솔로몬의 지혜를 듣도록 세상의 모든 왕들이 보낸 사람들이었습니다 (열왕기상 4:29-34).”

이런 솔로몬이었지만 말년에는 본이 되는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지나친 명예심으로 대대적인 토목 공사를 일으켜서 백성들의 삶을 힘들게 했습니다. 이방 나라의 여자들과 정략적인 결혼을 했습니다. 우상숭배에 물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했습니다. 부귀영화에 탐닉했습니다. 이렇게 인생을 살았던 솔로몬은 하나님 없이 살았던 자신의 삶이 모두 헛되다는 것을 깨닫고 전도서를 썼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잠언 역시 그가 말년에 크게 깨달음을 얻고 쓴 것이 많습니다.

오늘 읽은 잠언 3장의 말씀도 그렇습니다.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다음 세대에게 크게 두 가지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성실입니다. 개역 성경에는 진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NIV 성경에는 faithfulness라고 나와 있습니다. 아무도 “왜 우리는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까?” 하고 묻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다 착하게, 정직하게, 성실하게 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살다가 보면 그게 마음처럼 잘 되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6장에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서든지 사람들을 대할 때, 누구를 대하든지 성실하게 주님을 대하듯이 하라고 합니다. 눈가림으로 대하지 말고 성실하게 대하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나가서 그런 태도로 사람들을 대한다면 어디서든지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영어로 편지를 쓸 때는 꼭 끝에 “Sincerely yours”라고 쓰고 그 밑에 자기 이름을 쓰고 싸인을 합니다. “sincere”라는 말이 라틴어 “sincerus”에서 온 말인데, 원래 이 말은 “양초를 먹이지 않았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에는 대리석이 많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대리석이라도 흠집이 있으면 제 값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리석을 파는 사람들이 흠집을 감추기 위해서 양초를 먹여 진짜인 것처럼 속여 팔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대리석은 양초를 먹이지 않은 순수한 대리석입니다” 라고 말할 때 sincerus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 세상에 나가서 양초를 먹이지 않는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는, 사랑입니다. 개역 성경에는 “인자”라고 나와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love”라고도 나와 있고, “mercy”라고도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요한은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처럼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니 우리 역시 서로를 사랑해야만 합니다 (요한일서 4:11)”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저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갖는 것이 사랑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자꾸 사라져 가는 시대입니다. 오늘 졸업하는 여러분, 잘 알아 두세요. 사람에 대한 사랑과 관심, 이것을 잃어 버리면 여러분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있으나마나 한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무슨 법을 하나 만들어도 항상 그 밑바닥에 사람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깔려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하나 바꾸어도 그 밑바탕에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관심이 깔려 있어야 합니다. 특히 약한 사람, 불편한 사람,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무력(無力)한 사람들 편에 서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성경 속에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 사무엘상 21장에 나오는 제사장 아히멜렉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히멜렉에 대한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못해 충격적입니다. 아히멜렉은 다윗과 동시대 사람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추격을 받고 도망 중이었습니다. 상황이 어찌나 급했던지 수행하는 부하들도 없었고, 손에 무기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아무 것도 먹지 못해서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이런 다윗이 한 밤중에 아히멜렉를 찾아 갑니다. 다윗을 알아 본 아히멜렉은 깜짝 놀라면서 “아니, 이 밤중에 웬 일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다윗은 왕의 특명이 있어서 이렇게 부하도 없이 급히 길을 떠나게 되었다고 둘러댑니다. 그러면서 뭐라도 먹을 것이 있으면 좀 달라고 합니다. 그 때 당황한 아히멜렉이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제 손에 장군에게 줄 떡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에서 물려낸 거룩한 떡은 있습니다” 하면서 거룩한 떡을 다윗에게 내 줍니다. 이 일이 나중에 사울에게 알려져서 아히멜렉은 죽습니다. 거룩한 떡은 제사장 외에는 먹을 수 없는 떡입니다. 다윗은 그 떡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아히멜렉은 그 떡을 다윗에게 줘서 먹게 했습니다.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 아히멜렉은 수 만가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결론에 도달합니다.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이 분명하다. 지금 이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다. 내가 떡을 주지 않으면 이 사람은 죽을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한 아히멜렉은 다윗에게 거룩한 떡을 내 줍니다. 이렇게 해서 다윗은 떡을 먹고 기운을 차립니다. 다윗이 떠날 때 아히멜렉은 자기가 보관하고 있던 칼 한 자루를 줍니다. 그 칼은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빼앗은 칼이었습니다. 다윗은 아히멜렉 덕분에 목숨을 구했지만, 아히멜렉은 이 일 때문에 사울의 손에 죽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아히멜렉의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히멜렉 이야기를 하시면서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다 (마가복음 2:27)”고 하셨습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과 애정은 율법의 어떤 규정보다도 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잘 알았던 아히멜렉 덕분에 다윗은 목숨을 구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평생 아히멜렉과 같은 마음을 품고 사십시오. 오늘 성경 말씀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NLT 성경에 이 말씀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Tie them around your neck as a reminder. Write them deep within your heart. Then you will find favor with both God and people, and you will earn a good reputation.”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성경에도 입신양명에 대한 말씀이 있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출세해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입신양명이 아니라, 성실과 사랑을 가지고 삶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높여 주시는 입신양명입니다.

Erwin Lutzer란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Those who have failed miserably are often the first to see God’s formula for success (처참하게 실패를 경험한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성공에 대한 공식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자기의 formula를 가지고는 실패 했잖아요? 이제는 눈을 하나님의 formula로 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성공에 대한 하나님의 formula는 전혀 다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딛고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자기 목적을 성취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인자와 진리를, love와 faithfulness를 목에 매고 잊어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마음에 깊이 새기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나 사람에 대한 배려와 따뜻한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짓말 하거나, 사람을 속이지 않고, 눈가림으로 하지 않습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이 진실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공에 대한 하나님의 formula입니다.

마지막으로 솔로몬은 모든 일에 있어서 먼저 하나님을 인정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새로운 교훈이 아니라, 하나님의 formula를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에 눈을 팔지 말하는 것입니다. 그 뒤에 나오는 말씀을 보십시오.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He shall direct your ways., NLT).” “And he will make your paths straight.” (NIV) 우리가 우리 자신의 formula를 따라 가지 않고, 하나님의 formula를 따라서 살면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길을 지도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는 길을 순탄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제가 “졸업 (graduation)”이라는 말을 Webster 사전에서 찾아 봤더니 “to pass from one stage of experience to a usually higher one” 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보다 높은 단계로 가기 위해 한 계단을 올라 선 것입니다. 이제 성실과 사랑을 reminder로 목에 걸고, 가슴에 깊이 새기고, 세상으로 나가십시오. 여러분 때문에 세상이 더 밝아지고, 아름다워지는 삶을 사십시오.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베드로전서 3:14 말씀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But even if you should suffer for what is right, you are blessed. Do not fear what they fear; do not be frightened (때로는 옳은 일을 함으로 고난을 받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순간에 여러분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겁내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