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7:7-11

7“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그러면 발견할 것이다. 두드려라, 그러면 문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8 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받을 것이다. 찾는 사람은 찾을 것이다. 그리고 두드리는 사람에게는 문이 열릴 것이다.
9 아들이 빵을 달라고 하는데, 너희 중에서 누가 돌을 주겠느냐?
10 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누가 뱀을 주겠느냐?
11 비록 너희가 나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7 "Keep on asking, and you will receive what you ask for. Keep on seeking, and you will find. Keep on knocking, and the door will be opened to you.
8 For everyone who asks, receives. Everyone who seeks, finds. And to everyone who knocks, the door will be opened.
9 "You parents - if your children ask for a loaf of bread, do you give them a stone instead?
10 Or if they ask for a fish, do you give them a snake? Of course not!
11 So if you sinful people know how to give good gifts to your children, how much more will your heavenly Father give good gifts to those who ask him.

그동안 여러 번에 걸쳐 기도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설교했습니다. 오늘은 기도 시리즈 마지막 설교입니다. 다음 주일에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또 그 다음 주일은 부활주일이니까 부활 신앙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기도에 대한 이런 저런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기도에 대한 책들도 얼마나 많이 나와 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기독교는 기도에 대한 오랜 전통과 역사와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전에 살았던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모두 기도에 대한 말씀을 듣고 기도를 실천하면서 살았습니다. 사무엘상 3장을 읽어 보면, 그 당시의 제사장은 엘리 (Eli)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웠습니다. 엘리에게 어린 남자 아이 하나가 있었는데, 그 부모가 키워 달라고 맡긴 아이였습니다. 그 부모가 나이가 많도록 아이가 없었는데, 그 어머니 한나가 “만일 저에게 아이들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하고 서원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머니 한나의 기도로 낳은 아이가 사무엘입니다. 남편과 의논한 한나는 서원 했던 대로 겨우 젖을 뗀 어린 사무엘을 엘리 제사장에게 맡겼습니다. 어느 날 밤에 잠을 자는데, 하나님께서 어린 사무엘을 불렀습니다. 사무엘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하고 대답하고 엘리 제사장에게 달려갔습니다. “선생님, 저를 부르셨습니까?” 그런데 엘리는 ‘아니, 난 너를 부르지 않았다. 가서 자거라” 하면서 돌려 보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일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그 때서야 엘리는 하나님께서 이 아이 사무엘을 부르신 것을 알았습니다.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무엘아, 다시 너를 부르는 소리가 나면 ‘여호와여, 말씀하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제가 듣겠습니다’라고 말하여라.” 성경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사무엘은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직접 말씀하신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Samuel did not yet know the LORD because he had never had a message from the LORD before).” (사무엘상 3:7)

이렇게 해서 사무엘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고, 엘리 제사장이 죽고, 사무엘의 시대가 열립니다. 사무엘이 백성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는 일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만약 내가 기도를 멈춘다면, 그것은 여호와께 죄를 짓는 일이 될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무엇이 좋고 옳은 것인가를 가르치겠습니다 (As for me, I will certainly not sin against the LORD by ending my prayers for you. And I will continue to teach you what is good and right).” (사무엘상 12:23)

이 말씀은 우리에게 기도에 대한 많은 영감 (inspiration)을 줍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소통입니다. 하나님과 기도를 통해 꾸준히 소통하는 사람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꾸준하게 자신의 삶 속에서 기도를 실천하는 사람은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할 줄 알게 됩니다. 간혹 기도 많이 한다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상식에서 벗어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사이비 기도꾼들입니다. 제대로 하나님과 소통하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배운 사람들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 소통합니다. 그래서 옳고 그른 것이 어떤 것인지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운 사람 역시 잘못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 말씀이 디모데후서 3:16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모든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셔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진리를 가르쳐 주며, 삶 가운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게 해 줍니다. 또한 그 잘못을 바르게 잡아 주고 의롭게 사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자로 준비하게 되고, 모든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게 됩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그러면 발견할 것이다. 두드려라, 그러면 문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기도를 열심히, 포기하지 말고 하라는 말씀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이 말씀 속에 그런 뜻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말씀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난 이제 잠자러 가요!” “God is great, God is good!” 이렇게 기도합니다. 비록 이런 기도라고 할지라도 그렇게 기도함으로써 어릴 때부터 기도가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이라는 컨셉을 갖게 하는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기도를 계속할 수가 없잖아요? 어른이 되면 당연히 기도하는 내용도 달라져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무엇을 구하라고 하신 것일까요? 무엇을 찾으라고 하셨을까요? 문을 두드린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너희가 나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11절) 하나님께서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면 주신하고 하신 ‘좋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 말씀이 NLT 성경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So if you sinful people know how to give good gifts to your children, how much more will your heavenly Father give good gifts to those who ask him.” 직역하면, “너희 죄인들도 어떻게 하면 너희 자녀들에게 ‘good gifts’를 줄까 하고 생각하는데, 너희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더욱 구하는 사람들에게 ‘good gifts’를 주시지 않겠느냐” 이런 뜻입니다.

누가복음 11:13에 보면 거기에 오늘 말씀과 똑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는 ‘good gifts’라는 말 대신 ‘the Holy Spirit (성령)’이라는 나옵니다. “How much more will your heavenly Father give the Holy Spirit to those who ask him"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생각할 때, “구하고, 찾고, 문을 두르리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을 찾으라는 말씀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이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정말 보잘 것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은 우리보다 훨씬 더 영성이 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 능력을 체험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고, 그분과 같이 죽는 것입니다 (I want to know Christ and experience the mighty power that raised him from the dead. I want to suffer with him, sharing in his death).” (빌립보서 3:10) 그리스도를 알고 싶다고 말하잖아요? 이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도 여전히 그리스도를 알고 싶다고 말하잖아요?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고 싶고, 그리스도를 알고 싶은 열망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 열망이 없는 사람들은 이 열망을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누가 물어 봅니다. “요즘에 무엇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까?” 이렇게 물어 보면 “에, 하나님을 더 알고 싶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알고 싶다고 대답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싶은 실천적인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구하라 (Ask)”는 말씀이 바로 하나님을 알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뜻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하나님을 열심히 찾아야 합니다. 중고등학교 때 소풍 가면 ‘보물찾기’를 합니다. 선생님들이 보물을 숨깁니다. 그런데, 너무 깊이 숨겨 놓으면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선생님들이 다니면서 “돌멩이 밑을 잘 봐라!”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마라!” 학생들이 너무 엉뚱한 곳을 뒤지고 다니면 “야, 그런데는 없어!” 하면서 힌트를 줍니다. 하나님은 너무 깊이 숨어 계시기 때문에 찾을 수 없는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을 잘 읽어 보면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에게 발견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문제는 우리 마음이 정말 하나님을 찾기를 원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시편 42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이듯이 오 하나님이시여, 내 영혼이 주를 찾아 헤매입니다.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애타게 그리워합니다 (As the deer pants for streams of water, so my soul pants for you, O God. My soul thirsts for God, for the living God).” (1-2절) ‘pants’라는 말은 명사형으로 쓰면 ‘팬츠 (빤쓰)’라는 뜻으로 사용 되지만, 동사형으로 쓰면 ‘(목이 마르거나 숨이 가빠서) 헐떡인다’ ‘갈망한다’는 뜻입니다. 목이 마른 사슴이 물을 먹지 못해 헐떡이는 것처럼, 하나님을 그렇게 애타고 절박한 마음으로 찾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은 애써 찾는 사람들에게 발견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씀을 한번 들어 보세요. “너희를 위해 세운 나의 계획은 너희에게 재앙이 아닌 희망이 넘치는 미래를 주는 것이다. 너희가 내 이름을 부르고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의 기도를 들어 주겠다. 너희가 온전한 마음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날 것이다. 내가 너희를 만나 주겠다. 나 여호와의 말이다.” (예레미야 29:11-14) “Then you will call upon me and come and pray to me, and I will listen to you. You will seek me and find me when you seek me with all your heart. I will be found by you." 하나님은 ‘with all your heart (전심으로)’ 찾는 사람들에게 ‘to be found’ 발견되시는 하나님입니다.

방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방황을 합니까? 그 마음 속에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emptiness)’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의 여자는 왜 아무도 물을 뜨러 오지 않는 12시에 왔을까요? 누구든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왜 그 사마리아 여자는 그 물을 자기에게 달라고 간청했을까요(요한복음 4:15)?” 그 마음 속에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emptiness (공허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 사마리아 여자이 마음 속에 있었던 ‘공허함’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저는 그 ‘공허함’의 정체가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 (a thirst for God)’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맥스 루카도 (Max Lucado)가 예수님의 ‘주기도문’에 대하여 쓴 책 제목이 ‘A Thirst for God’입니다. 이 목마름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까지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 ‘목마름’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의 속 깊은 곳에 이 ‘목마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목마름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이 목마름을 채울 수 없습니다. 어거스틴 (St. Augustine, 354-430)이 그의 ‘고백록 (Confession)’에서 하는 말이 바로 이 말입니다. “Thou hast made us for thyself, O Lord, and our heart is restless until it finds its rest in thee (오 주님, 주님은 주님 자신을 위해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우리 마음이 주님 안에서 안식을 발견할 때까지 우리 마음엔 안식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문이 열린다고 했습니다. “구하라”라는 말씀이 우리 입으로 하나님께 기도한다 혹은 요청한다, 하나님과 소통한다는 뜻이 있고, “찾는다”는 말 속에 마음이 가장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데 setting되어 있다는 의미가 있다면, 문을 두드린다는 말은 우리가 보여야 하는 행동에 대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천의 삶이 결국은 행동으로 완성이 된다는 것은 더 강조해서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입으로 진리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입으로 사랑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진리와 사랑이 그 사람의 삶에서 행동으로 증명되지 않는다면 그 진리와 사랑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지난 금요일에, 사순절의 의미에 대하여 말씀 드리면서, 사순절은 예수님께 우리의 마음을 집중하는 40일 간의 특별한 기간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교회는 예수님께 마음을 집중하기 위해서 세 가지 일을 해 왔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 세 가지는, ‘기도 (Prayer)’와 ‘금식 (Fasting)’과 ‘자선 (Almsgiving)’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기도도 알겠고, 금식도 알겠는데, 자선은 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기도와 금식을 통해서 예수님께 마음을 집중했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이 남을 돕고 자기 것을 나누어 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순절에 해야 하는 일 가운데 ‘자선’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자선’은 단순히 불쌍한 사람을 돕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깊이 알기 위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을 두드린다는 말은 일종의 ‘메타포 (metaphore)’입니다. 문을 두드려야 문을 열어 주는 것처럼, 구하고 찾는 일에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행동으로 이어져야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추구하는 일도 지속적으로 문이 열린다는 희망을 가지고 해야 하는 일입니다. 잠긴 문이 열릴 때까지 문을 두드려야 하는 일입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젊은 사자도 힘이 없고 배가 고플 때가 있지만, 여호와를 찾는 자들은 갖가지 좋은 것들을 모두 얻게 됩니다.” (시편 34:10) 또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가까이하실 것입니다.” (야고보서 4:8)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끝으로, 말씀 드릴 것이 있습니다. 기도에 대한 말씀을 아무리 많이 듣고, 기도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갖는다고 해도 그 지식이 여러분의 삶을 변화 시키는 ‘life changing knowledge (삶을 변화 시키는 지식)’이 되려면, 실제로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그 지식이 모두 죽은 지식이 됩니다. 히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자들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시편 144:15)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사람은 아무 것도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삼는 것보다 더 귀하고 가치 있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기도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삼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