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10-18


10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인데도 이 일들을 이해하지 못하느냐?
11 내가 너에게 진리를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우리가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가 증언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12 내가 너희에게 이 세상의 일들에 대해 말했는데도 너희는 나를 믿지 않는데, 내가 너희에게 하늘의 일들을 말한다면, 너희가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사람이 아무도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높이 들었던 것처럼 인자도 들려야 한다.
15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이다.
16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여 독생자를 주셨다. 이는 누구든지 그의 아들을 믿는 사람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
17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이 아니라, 자기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을 보내신 것이다.
18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사람은 유죄 판결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그를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0 Jesus replied, "You are a respected Jewish teacher, and yet you don't understand these things?
11 I assure you, we tell you what we know and have seen, and yet you won't believe our testimony.
12 But if you don't believe me when I tell you about earthly things, how can you possibly believe if I tell you about heavenly things?
13 No one has ever gone to heaven and returned. But the Son of Man has come down from heaven.
14 And as Moses lifted up the bronze snake on a pole in the wilderness, so the Son of Man must be lifted up,
15 so that everyone who believes in him will have eternal life.
16 "For God loved the world so much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so that everyone who believes in him wi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17 God sent his Son into the world not to judge the world, but to save the world through him.
18 "There is no judgment against anyone who believes in him. But anyone who does not believe in him has already been judged for not believing in God's one and only Son.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높이 들었던 것처럼 인자도 들려야 한다.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이다.” (14-15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이야기는 구약성경 민수기 21장에 나와 있습니다. 광야생활에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데스 (Kadesh)’에 도착했습니다. 드디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기회가 왔지만, 에돔 (Edom)이라는 나라가 길을 내 주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에돔하고 싸우지 말고 길을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지칠 대로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원망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와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 거요? 여기에는 빵도 없고, 물도 없소. 이 형편 없는 음식은 이제 지긋지긋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독사를 보내 물게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모세를 원망하며 불평하던 사람들이 모세에게 와서 제발 이 뱀들을 없애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모세는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구리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매달아라. 뱀에 물린 사람은 그것을 쳐다보면 살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급히 구리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았습니다. 뱀에 물려 죽어가던 사람들이 장대에 매달린 구리뱀을 쳐다 보고 살아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의 진리에 대하여 말씀하신다가 니고데모가 잘 알아들지 못하자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높이 들었던 것처럼 인자도 들려야 한다.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이다.” 광야에서 뱀에 물려 죽어가던 사람들이 장대에 매단 구리뱀을 처다보면 다 살아났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내가 십자가에 매달릴 때가 올 텐데, 누구든지 나를 쳐다 보는 사람은 다 구원을 얻는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쳐다 본다’는 말은 일종의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소망을 둔다’ 혹은 ‘믿는다’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여 독생자를 주셨다. 이는 누구든지 그의 아들을 믿는 사람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 (16절) 이 요한복음 3:16 말씀이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잠깐 묵상해 볼까요? 첫째로,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세상은 죄가 관영한 세상이었습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 떠난 세상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이 막힌 세상이었습니다. 예언자의 소리가 끊어진 지 이미 오래된 세상이었습니다. 이런 세상을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셨습니다.

둘째로, 그런데 하나님은 죄를 싫어 하시는 정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 30:18, 시편 98:9).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시면서도 동시에 죄를 싫어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딜레마에 빠지셨습니다. 하나님의 두 가지 속성이 충돌한 것입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생각하신 것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세례 요한 같은 사람은 이 하나님의 의도를 간파하고 예수님을 가리켜 “보십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요한복음 1:29, 36)” 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우리에게 보낸 것은 우리의 죄를 그가 모두 짊어지고 십자가 위에서 죽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도대체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는 우리가 생각하는 법을 어겼다든지, 윤리적인 잘못을 저질렀다든지 하는 의미에서의 죄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죄를 말합니다. 그것이 무슨 죄일까요?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하는 성향입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혼자 충분히 살 수 있다는 교만한 생각을 말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죄입니다. 모든 인간은 이런 죄의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학자들은 이 죄를 ‘원죄 (the original Sin)’라고 합니다. 우리도 예수님 믿기 전에 모두 그런 죄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은 아니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지!” 비록 말한 대로 온전히 살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셋째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도대로 세상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지고 십자가 위에 달리셨습니다. 우리의 죄가 모두 십자가 위의 예수님께 전가 (imputation)된 것입니다. 잘 들으세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 우리 모두는 예수님과 같이 죽은 것입니다. 맞습니까?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부활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죄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말씀대로 죄인인 우리가 죽는 대신 예수님께서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죄 값을 예수님께서 모두 치르셨습니다.

넷째로,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니까 우리는 구원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값싼 구원’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맞습니까?

모세가 구리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매달았습니다. 그런다고 뱀에 물린 사람들이 모두 살아났습니까? 아니잖아요? 장대에 매달린 구리뱀을 쳐다 보는 사람들이 살아났습니다. 끝내 쳐다 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쳐다 보는 사람들이 구원을 얻습니다. 누구나 다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쳐다 보는 사람이, 이 말은 예수님이 정말 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습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강조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1:12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누구에게나 구원의 길이 열려 있지만, 누구나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이 아니라, 자기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을 보내신 것이다.” (17절) “God sent his Son into the world not to judge the world, but to save the world through him.” (New Living Translation)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요한이 그렇게 말했잖아요?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 화목 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처럼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니 우리 역시 서로를 사랑해야만 합니다.” (요한일서 4:10-11) 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말로만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사랑은 진실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행함으로써 그 사랑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요한일서 3:18)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진실하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행함 (actions)’으로 사랑을 증명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말로만 사랑하지 않으시고, 직접 행함으로 보이셨습니다. 그 아들을 우리를 위해 화목제물로, ransom으로 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지, 영감 (inspiration)을 얻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