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13-16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다시 짠맛을 가질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게 되어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도시는 숨겨질 수 없다.
15 등불을 됫박 안에 두지 않고 등잔대 위에 놓는다. 그래야 등불이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빛을 비추게 될 것이다.
16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들에게 비춰라. 그래서 사람들이 너희의 선한 행동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13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 But what good is salt if it has lost its flavor? Can you make it salty again? It will be thrown out and trampled underfoot as worthless.
14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 like a city on a hilltop that cannot be hidden.
15 No one lights a lamp and then puts it under a basket. Instead, a lamp is placed on a stand, where it gives light to everyone in the house.
16 In the same way, let your good deeds shine out for all to see, so that everyone will praise your heavenly Father.

오늘은 어버이 주일과 졸업예배를 함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오늘 졸업하는 교우들은 제일 먼저 하나님께 감사 드리고, 두 번째는 부모님께 감사 드려야 할 것입니다. 보스턴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타주에서 왔거나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입니다. 여러분들을 타 주에, 혹은 외국에 보내 놓고 부모님들이 얼마나 노심초사하면서 맘 고생 많으셨겠습니까? 또 여러분들이 건강하게 학업을 마치도록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셨겠습니까?

‘어머님의 은혜’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 노래 가사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윤춘병 작사, 박재훈 작곡으로 되어 있는데, 모두 감리교 목사님들 입니다. 윤춘병 목사님 (1918-2010)은 교회 역사학자로 존경 받는 목사님 이고요. 몇 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박재훈 목사님 (1922-현재)은 캐나다에 계시는 목사님 인데, 최근까지도 왕성하게 작곡 활동을 하시고 계시고요. 동요 작곡자로 많이 알려진 목사님 입니다. “송알송알 싸리 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이렇게 시작되는 ‘구슬비”, “송이 송이 눈꽃 송이 하얀 꽃송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꽃송이” 이렇게 시작되는 ‘눈꽃송이’, 이런 동요를 지으신 목사님 입니다. ‘어머님 은혜’는 이런 가사로 시작합니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키우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보다도 높은 것 같애 (1절) 넓고 넓은 바다라고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넓은 게 또 하나 있지/ 사람되라 이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바다 그보다도 넓은 것 같애 (2절) 산이라도 바다라도 따를 수 없는/ 어머님의 큰 사랑 거룩한 사랑/ 날마다 주님 앞에 감사 드리자/ 사랑의 어머님을 주신 은혜를 (3절)”

부모님의 은혜는 하늘보다 높고, 바다 보다도 넓습니다. 저도 어머님 살아 계실 때는 저를 위해서 어머님께서 늘 기도하시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고마운 줄 몰랐습니다. 엄마니까, 엄마는 당연히 자식들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으로만 알았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니까 새삼 어머니의 사랑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 엄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립니다. 뭔가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씀을 한 시간이나 넘게 하셨다고 합니다. 비록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씀이었다고 해도 그 자리에 없었던 것이 아쉽습니다.

자식들에 대한 부모님의 소망은 한가지입니다. 고생 안 하고 잘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부모님들의 소망을 더 거룩한 소망으로 승화 시켜야 합니다. 올바른 인생의 목적을 설정하고, 나만 잘 되겠다는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그런 삶을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삶은 목적이 이끄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미리 우리의 삶의 목적을 정하고 그 목적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근대 철학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1561년-1626년)은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이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첫째로, 거미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거미가 거미줄을 치는 것을 보면 감탄이 저절로 나옵니다. 어떻게 그렇게 조형미가 있고, 균형미가 있는 거미줄을 치는지 참 신기합니다. 거미줄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날아가던 새나 곤충들이 날아가다가 거미줄에 걸립니다. 그러면 거미는 숨어 있다가 쏜살같이 달려가서 새나 곤충을 꼼짝 못하게 거미줄로 옭아매서 잡아 먹습니다. 거미와 같은 사람이란, 거미처럼 비상한 지능과 재주가 있지만 그것을 이용해서 남을 유인하고, 음모를 꾸미고, 해치고, 빼앗는 사람을 말합니다.

둘째로, 베이컨은 개미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개미는 부지런함을 상징하는 곤충입니다. 성경에도 "게으른 사람은 개미가 하는 것을 잘 보고 지혜를 얻어라. 개미는 지도자도, 장교도, 통치자도 없지만, 여름에는 먹이를 준비하고, 추수 때에는 그 음식을 모은다 (잠언 6:6-8)"는 말씀이 있습니다. 개미가 열심히 일하여 양식을 모읍니다. 마찬가지로, 개미와 같은 사람은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여 자신의 필요를 채우지만 다른 사람의 필요에는 관심이 없는 이기적인 사람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베이컨은 ‘꿀벌’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꿀벌은 열심히 일하여 꿀을 모아서 자기만 먹고 살 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에게 꿀을 줍니다. 꽃에서 꿀을 따지만, 꽃에게도 유익을 줘서 열매를 맺도록 도와줍니다. 인간에게도 꿀을 선물합니다. 꿀벌과 같은 사람은 열심히 일해서 자기만 복되게 살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거미 같은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개미 같은 이기적인 사람들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꿀벌과 같은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도 잘 되고, 모든 사람이 잘 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그런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들에게 비춰라. 그래서 사람들이 너희의 선한 행동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16절) New Living Translation 영어 성경에 이 말씀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In the same way, let your good deeds shine out for all to see (이와 마찬가지로, 너희의 착한 행동이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비춰서 볼 수 있도록 하라).”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크리스천들이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good deeds (착한 행동)’를 다른 사람들이 보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목적도, 우리가 크리스천으로 사는 목적도 따지고 보면 ‘good deeds’를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good deeds’라는 것이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원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타고 난 인간성이 변화되어야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간성이 먼저 변화되기 위해서요. 그래서 우리가 ‘good deeds’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요.

바로 이 점이 우리 기독교가 ‘인본주의 (humanism)’와 다른 점입니다. ‘humanism’은 인간의 능력과인간성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상 체계를 말합니다. 자연히 ‘인본주의’는 인간의 가능성에 큰 가치를 부여 하게 되고, 인간의 자율성과 자아 실현, 자유 의지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데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본성이 악한 인간은 본성이 변화 되기 전에는 ‘good deeds’를 할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는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게 됩니다. 이것을 ‘신본주의 (theocentricism)’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가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인간의 본성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변화 되지 않으면 ‘good deeds’을 행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의 악하고 이기적인 본성이 변화 되어야 비로소 ‘good deeds’를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good deeds’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모든 사람들에게 ‘good deeds’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고, 자기 제자들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세상에 들어가서 행해야 하는 ‘good deeds’는 마치 소금과 같은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13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금의 역할은 음식을 신선하게 썩지 않도록 보존하는 것입니다. 식품을 소금에 절여 두면 오랫동안 두고 먹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바닷물의 염도가 몇 %인지 아십니까? 평균 3.5%인데, 바닷물은 썩지 않습니다. 생리 식염수 (Saline solution)의 염도는 몇 %인지 아십니까? 0.9%입니다. 사람의 혈액 속에 들어 있는 염도에 맞춘 것입니다. 이 정도의 염도만 유지되면 실온에 둬도 썩지 않습니다.

또한,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내는 역할을 합니다. 적당한 소금이 들어간 음식은 맛이 있습니다. 음식은 간을 잘 맞춰야 한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음식은 싱거우면 맛이 없습니다. 물론 음식이 짜면 먹기도 어렵고, 건강에도 좋지 않습니다.

6년 전에 내셔널 지오그래픽 (National Geographic) 진귀한 사진이 실렸는데요. 아마존 정글에서 나비 (Dryas iulia butterflies)가 거북이 눈에 앉아 있는 사진입니다. 처음엔 그냥 이 사진이 신기하게만 보였는데, 알고 봤더니, 나비가 거북이 눈에 앉아서 거북이 눈물을 빨아 먹는 것입니다. 나비들이 꽃에서는 소금을 섭취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거북이 눈물에 들어 있는 소금기를 빨아 먹는 것입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본능적인 지혜입니다. 소금은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는 말씀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은 자기 제자들이 세상에 들어가서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상을 신선하게 유지하고 보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생의 의미와 기쁨을 알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소금이 짠 맛을 잃어버리면 이런 역할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소금의 질 (quality)을 잘 유지해야 그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 세상에서 크리스천의 ‘quality’를 잘 유지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크리스천의 ‘quality’를 잘 유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맛을 잃은 소금이 되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소금이 되어 버립니다.

그 다음으로, 예수님은 자기 제자들을 가리켜 “너희는 이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도시는 숨겨질 수 없다 (14절)”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 때문인지 모르지만, 선조(先祖)들은 교회를 지을 때 언덕 위에다 지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어디서든지 잘 볼 수 있도록 그런 자리에 교회를 지었습니다.

예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등불을 됫박 안에 두지 않고 등잔대 위에 놓는다. 그래야 등불이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빛을 비추게 될 것이다.” (15절) 됫박 안에 등불을 넣어 두면 주변을 밝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등불도 조만간 꺼지고 맙니다. 그러나, 등불을 등잔 위에 올려 놓으면 주변을 환하게 밝힐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 크리스천들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어두운 바다에 방향을 잡아 주는 등대처럼,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세상에 생명의 빛을 밝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변이 환하면 등불을 밝혀도 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변이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세상을 밝힐 수 있습니다.

올해는 어느 학교에 누가 와서 졸업식 연설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2년 전에 영화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Steven Spielberg, 1946-현재)가 하버드에 와서 졸업식 연설을 했습니다. 꽤 긴 연설이었는데요. 기억에 남아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랑, 지원, 용기, 직관, 이 모든 것들은 영웅인 여러분의 화살통에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영웅에게는 한 가지가 더 필요합니다. 무찌를 악당이 필요하죠. 여러분은 운이 좋습니다. 이 세계엔 괴물들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인종차별, 동성애 혐오, 민족 간의 증오, 계급 간의 증오, 정치적 증오, 종교적 증오가 있지요. 이것들은 여러분들이 무찔러야 할 악당들입니다.” 이 세상에는 악당들이 많다고요. 그래서 이 시대는 그들을 무찌를 영웅들의 출현을 기다린다고요. 그의 연설 속에 위트가 있고, 번쩍이는 시대에 대한 통찰력이 있지 않습니까?

이제 졸업생 여러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부디 여러분들은 세상에 꼭 필요한 ‘꿀벌’과 같은 사람들이 되십시오. 어디를 가든지, 또 무슨 일을 하든지,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가십시오. 하지만, ‘거미’같은 사람들이 되지 마십시오. ‘개미’같은 사람들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열심히 일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 ‘꿀벌’같은 사람들이 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들의 부모님들이 자식에 대해 가지고 있는 한가지 소원입니다.

스필버그의 연설처럼, 졸업하는 여러분들은 행운아들입니다. 세상 어디를 가든지, 세상은 거짓, 위선, 불법, 이기주의, 차별의식 등으로 오염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을 뒤집어서 말하면, 이 세상에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그만큼 많다는 것입니다. 힘든 시대에 태어났다고 원망하지 말고, 오히려 할 일 많은 세상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십시오.

여러분은 결코 아무 생각 없이, 아무 목적 없이 살아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소금 같은 사람으로 살고, 빛과 같은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소금은 짠 맛을 유지해야 하고, 빛은 계속해서 주변을 밝혀야 합니다. 여러분은 언제 어디서나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크리스천의 정체성 (identity)을 유지해야 합니다. 소금이 ‘quality’를 유지하고 짠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 소금이 녹아야 합니다. 녹아서 자신이 없어져야 합니다.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여러분 자신을 태워야 합니다. 자신이 녹아 없어지지 않으면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없고, 자신이 타서 없어지지 않으면 빛을 낼 수가 없습니다. 제발 어렵게 학위를 받았으니, 이 학위가 나의 성공을 보장해 주는 발판이 되리라는 세상적인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여러분이 소금으로, 빛으로 섬겨야 할 자리를 찾아 낮은 곳으로 내려 가십시오. 마음 속에 성공에 대한 유혹이 들어 올 때는 주님의 이 말씀을 생각하십시오. “누구든지 너희 중에서 첫째가 되려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인자는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다.” (마가복음 10:45)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지, 이 교회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 때는 이곳 케임브리지 교회를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이 학창 시절을 보냈던 이 교회, 여기서 믿음의 친구들을 만났고, 여기서 여러분의 꿈과 장래의 희망을 가지고 밤을 새워 얘기를 나누었던 여러분의 교회를 생각하십시오. 여기서 성경을 펴 놓고, 간사님들과 팀원들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토론하고, 생각을 나누었던 이 교회를 생각하십시오. 주일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우리의 믿음을 키워 나갔던 아름다운 예배와 찬양이 있는 이 교회를 생각하십시오. 이 교회는 늘 그 때마다 여러분 곁에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