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4:7-11

7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마음을 깨끗이 하고 침착 하십시오. 그리고 정신을 차려 기도하십시오.
8 무엇보다도 서로를 깊이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다른 사람의 허물과 죄를 덮어줍니다.
9 불평하지 말고 서로 대접하십시오.
10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모두에게 성령의 선물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또한 각자에게 특별한 다른 선물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물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착한 종처럼 남을 돕는 일에 사용하십시오.
11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봉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남을 도우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분에게 영광과 능력이 영원히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아멘.

7 The end of the world is coming soon. Therefore, be earnest and disciplined in your prayers.
8 Most important of all, continue to show deep love for each other, for love covers a multitude of sins.
9 Cheerfully share your home with those who need a meal or a place to stay.
10 God has given each of you a gift from his great variety of spiritual gifts. Use them well to serve one another.
11 Do you have the gift of speaking? Then speak as though God himself were speaking through you. Do you have the gift of helping others? Do it with all the strength and energy that God supplies. Then everything you do will bring glory to God through Jesus Christ. All glory and power to him forever and ever! Amen.

베드로전서와 후서를 읽을 때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이 편지를 읽는 사람들이 ‘디아스포라 크리스천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로마의 박해를 피해 지중해 연안에 살던 유대인 크리스천들입니다. 제가 터키 성지 순례를 하면서 그들의 예배 장소를 가 보았습니다. 전면은 평범한 동굴로 되어 있는데, 뒤에 산을 끼고 있습니다. 안내하는 사람이 뒤에 산을 끼고 있는 이유는 혹시라도 급습을 당할 때 산으로 피신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디아스포라 크리스천들’의 하루 하루는 불안과 위기의 연속이었습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을지 알 수 없고,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런 ‘디아스포라 크리스천들’에게 베드로는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 오고 있다 (7절)”고 위로의 말을 전했습니다. 이 말은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워 오고 있다는 말입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은 ‘심판의 주님’으로 오십니다. 잘한 사람은 상을 주고, 잘못한 사람은 벌을 주는 심판의 주님으로 오십니다. 지금의 이 상황을 해결하실 분은 다시 오실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이 위기의 상황을 모두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성경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시 오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는 말씀이 너무 소극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아니면, “그게 무슨 해결책이야?”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말씀으로 들리지는 않습니까? 이 문제에 대하여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 모든 사람이 보기에 선한 일을 하십시오. 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여러분이 직접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로마서 12:17-21) 베드로도 그렇고, 바울도 그렇고, 말하는 것이 똑 같습니다. 악한 세력에 네가 직접 대항해서 원수를 갚으려고 하지 말고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 크리스천의 삶의 방식으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크리스천은 악을 악으로 대항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크리스천은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사람들입니다. 크리스천은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피우는 사람들입니다 (로마서 12: 20). 나를 억울하게 만들고, 나를 부당하게 취급하는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으로 대해서 그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잘하고 잘못한 일에 대한 판단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십니다. 조금만 부당한 일을 당하면 욱하는 심정으로 “어디 두고 보자” 이렇게 앙심을 품는 것은 크리스천의 삶의 방식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크리스천의 삶의 방식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 “마음을 깨끗이 하고 침착 하십시오. 그리고 정신을 차려 기도하십시오. 무엇보다도 서로를 깊이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다른 사람의 허물과 죄를 덮어줍니다. 불평하지 말고 서로 대접하십시오.” (7-9절)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The end of the world is coming soon. Therefore, be earnest and disciplined in your prayers.” Be earnest라는 말은 정직하고 깨끗하라는 말이지요? Be disciplined라는 말은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성경에는 침착 하라는 뜻으로 나와 있습니다. 평소에 마음과 행동이 잘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경거망동하게 쉽습니다. 쉽게 흥분하기 쉽습니다. 앞 뒤를 가리지 않고 경솔하게 행동하기 쉽습니다.

베드로는 마음을 깨끗하게 가지고, 마음과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훈련이 기도를 통해서 온다고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나를 비춰보는 거울과 같습니다. 이 거울에 나를 비춰보면 나의 현재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내 마음의 숨은 생각과 감춰진 동기(動機)가 모두 드러납니다. 영어 단어에 ‘assets’라는 단어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 말로 ‘자산’이라는 말입니다. 당장에 현금화 할 수 있고, 당장에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자산을 ‘assets’라고 합니다. 기도는 우리 크리스천들이 가지고 있는 ‘assets’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가지고 있지 않은 ‘자산’입니다.

한번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어저께 한국 뉴스를 봤더니, 20대, 30대 청년들이 영정 사진을 찍는 것이 유행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현실이 각박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일자리가 없습니다. 경쟁이 치열합니다. 여기서 살아 남기가 힘에 버겁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나의 모습을 영정 사진으로 찍어 놓고, “너 그 때 힘들었지? 그런데 후회하지 않을 만큼 그 때 최선을 다 했니?” 생의 마지막에 가서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도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지금의 나를 영정 사진으로 찍어 놓는 것이 20, 30대 청년들에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합니다. 일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일 자리 하나 나면 수 십 명, 수 백 명씩 경쟁자가 몰립니다. 이것이 지금의 각박한 현실입니다. 그런데, 나에게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assets’가 하나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정직하고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고, 나의 마음과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assets’가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 얼마나 큰 인생의 자산입니까? 왜 우리에게 주어진 이 ‘assets’를 포기하는 것입니까? 왜 이 ‘assets’를 활용하지 않습니까?

이제 오늘 설교의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모두에게 성령의 선물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또한 각자에게 특별한 다른 선물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물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착한 종처럼 남을 돕는 일에 사용하십시오.” (10절)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성령의 선물을 주셨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각각 자기만의 ‘특별한 (unique)’ 선물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선물을 남을 돕는 일에 사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지금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상황이 그려집니까? ‘디아스포라 크리스천들’의 생활이 다 같지 않습니다. 터키 정부에서 거주할 수 있는 집을 준 것이 아닙니다. 지금 한국은 예멘에서 온 난민들 (refugees) 처리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 간단하지 않습니다. 지금 국제 사회는 한국이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한편 생각해 보면, 우리 나라가 난민을 받을 만큼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는 나라가 되었다는 뿌듯함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난민을 받게 되면 계속해서 난민들이 들어오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아도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마당에 설상가상으로 경제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난민들에게는 살 곳을 마련해 줘야 하고 일자리를 줘야 합니다. 이런 많은 문제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한국이 난민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터키의 본도 (Pontus), 갈라디아 (Galatia), 갑바도기아 (Cappadocia), 아시아 (Asia), 비두니아(Bithynia)에 살던 ‘디아스포라 크리스천들’은 터키에서 난민으로 받아들인 그래서 난민의 지위를 얻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아무도 그들을 돌보아 주지 않습니다. 자기들끼리 서로 돌보아야 하고 서로 덮어줘야 하고, 사랑을 베풀어야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은 서로가 먹여야 합니다. 베드로가 한 말을 들어 보세요. “무엇보다도 서로를 깊이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다른 사람의 허물과 죄를 덮어줍니다. 불평하지 말고 서로 대접하십시오 (Most important of all, continue to show deep love for each other, for love covers a multitude of sins. Cheerfully share your home with those who need a meal or a place to stay).” (8-9절)

은사 사용에 대한 말씀은 이런 상황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크리스천에게 주어진 은사는 매우 다양합니다. 오늘 말씀에 잘 나와 있지 않지만, New Living Translation에는 그 말씀이 잘 나와 있습니다. “God has given each of you a gift from his great variety of spiritual gifts. Use them well to serve one another.” (10절) ‘from his great variety of spiritual gifts (하나님의 매우 다양한 영적 은사 중에서)’라고 나와 있습니다. 성경에 성령의 은사가 몇 개나 나오느냐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많은 은사가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나와 있지 않은 은사도 많이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몇 개라고 제한할 수 없을 정도로 성령의 은사는 매우 다양합니다.

오늘 말씀에도 나와 있지만, ‘the gift of helping others (남을 돕는 은사)’가 있습니다. 로마서 12:7에는 ‘섬기는 은사 (gift of serving others)’로 나와 있습니다. 저는 교회 안에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섬기는 은사’가 은사 중의 은사입니다. 최고의 은사입니다. 우리 주님도 섬기는 은사가 있으신 분이었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능 (talents)’과 혼동하면 안 됩니다. 물론 ‘spiritual gifts’와 ‘talents’가 전혀 관계가 없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신학적으로 더 많이 연구가 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하지만, ‘재능’은 넌 크리스천들에게도 주어진 것입니다. 이 재능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피아노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있는데, 열심이 재능을 개발해서 세계적인 피아노 연주자가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고소현이라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있습니다. 지금은 12살이 되었겠네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극찬했고, 줄리아드에서 정경화와 한 스승 밑에서 라이벌로 있었던 핀커스 주커만 (Pinchas Zukerman, 1948-현재, 이스라엘)이 극찬한 아이입니다. 서울에서 고소현과 협연을 한 주커만은 고소현의 재능을 설명할 수 없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가사이한 재능이라고 했습니다. 소현이와 같은 아이는 그냥 놔 둬야 한다고, 그냥 그 아이를 보고 즐거워하면 된다고 할 정도로 극찬을 받은 아이입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재능을 잘 개발하면 세계적인 연주자가 됩니다.

하지만, ‘성령의 은사’는 ‘재능’과 다릅니다.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용하는 목적이 다릅니다. 은사 사용의 목적은 “Use them well to serve one another”라고 했습니다. 자기 개인이 아니라 자기가 받은 은사를 사용해서 다른 사람을 섬기고, 공동체를 섬기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크리스천들이 ‘성령의 은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기가 받은 은사가 무엇인지 발견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단순히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크리스천으로서 얼마나 가치 있고, 풍성한 삶을 살아가느냐 하는 중요한 문제가 내가 받은 성령의 은사를 발견하고 그 은사를 사용하는 일과 밀접하게 연관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봉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남을 도우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11절) 이 말씀은 구체적으로 자기가 받은 은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예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라고 합니다. 이런 은사를 받은 사람이 누구일까요? 얼른 생각나는 사람이 목사입니다. 목사의 직무 가운데 하나가 설교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목사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이 은사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이 은사를 사용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라고 합니다. 이 말은 “Speak as though God himself were speaking through you”라는 뜻입니다. 마치 하나님 자신이 너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 같이 말씀을 전하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이 목소리를 특별하게 하거나, 거드름을 피거나, 하나님 말씀을 빙자해서 사람들은 manipulate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만, 예전에 어떤 교역자가 하나님 말씀을 빙자해서 “하나님께서 너 하고 결혼하라고 말씀하셨다”라고 말해서 발칵 뒤집어진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진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실하게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자기 자신은 말씀을 전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봉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남을 도와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기 힘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남을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Do it with all the strength and energy that God supplies (남을 돕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힘과 에너지를 가지고 하십시오).” (11절) 모든 교우들이 이 말씀을 들어야 하지만, 특별히 남을 섬기는 직책을 가진 사람들이 이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각 부서들의 회장을 선출하는 일이 참 어렵습니다. 서로 회장을 하려고 하는 것도 좋지 않지만, 서로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공동체를 어렵게 하는 일입니다. 모두들 공부하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회장에 선출되면 시간적으로 손해를 많이 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기 힘으로 섬기고 봉사한다고 생각하면 내 힘과 에너지를 딴 곳에 쓰게 되니까 손해를 본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힘이 아니라 하니님이 주시는 힘으로 봉사한다고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습니까? 섬기는 직책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봉사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과 지혜를 부지런히 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절대로 섬기는 중에 손해 감정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크리스천의 섬김의 원리입니다. 그런데, 이 원리를 이해하고 따르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크리스천의 삶의 방식은 우리가 처한 환경이나 상황에 구애 받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이 방식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1세기에 살았던 ‘디아스포라 크리스천들’이나,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나, 모두 이 방식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