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1:9-18

9 만일 가난하거든 하나님께서 자기를 영적인 부자로 만드신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십시오.
10 만일 부하거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영적인 부족함을 보여 주신 것을 자랑하십시오. 그것은 부자도 들에 핀 꽃과 같이 결국 죽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11 해가 떠올라 점점 더 뜨거워지면,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집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시들게 되어 있습니다. 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재물을 돌보다가 결국 죽고 말 것입니다.
12 시험을 받은 후, 더 강건해졌다면 복 있는 자입니다. 자신의 믿음을 증명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13 시험을 받을 때에 “하나님이 나를 시험하고 있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않으시며, 사람을 시험 하지도 않으십니다.
14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신의 악한 욕심에 이끌려 유혹을 받기 때문입니다.
15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점점 자라 죽음을 가져옵니다.
16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17 모든 선한 행위와 완전한 선물들은 빛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위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림자처럼 변하는 일이 없으십니다.
18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창조하신 것 중에서 우리로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9 Believers who are poor have something to boast about, for God has honored them.
10 And those who are rich should boast that God has humbled them. They will fade away like a little flower in the field.
11 The hot sun rises and the grass withers; the little flower droops and falls, and its beauty fades away. In the same way, the rich will fade away with all of their achievements.
12 God blesses those who patiently endure testing and temptation. Afterward they will receive the crown of life that God has promised to those who love him.
13 And remember, when you are being tempted, do not say, "God is tempting me." God is never tempted to do wrong①, and he never tempts anyone else. / ①Or God should not be put to a test by evil people
14 Temptation comes from our own desires, which entice us and drag us away.
15 These desires give birth to sinful actions. And when sin is allowed to grow, it gives birth to death.
16 So don't be misled, my dear brothers and sisters.
17 Whatever is good and perfect comes down to us from God our Father, who created all the lights in the heavens. He never changes or casts a shifting shadow.
1:18 He chose to give birth to us by giving us his true word. And we, out of all creation, became his prized possession.

 

오늘은 야고보서 강해설교 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유혹’의 문제를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유혹(誘惑)”은 ‘temptation’입니다. 우리 성경에는 ‘시험’으로 나와 있습니다만, 새로 번역된 성경에는 ‘유혹’으로 나와 있습니다.

유혹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성경 말씀은 마태복음 4장에 나와 있는 세 가지 유혹입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으로부터 세 가지 유혹을 받으신 말씀입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천사가 너를 안전하게 받쳐 줄 것이다!” “나에게 경배하면 천하만국을 너에게 주겠다!” 돌로 떡을 만들라는 유혹은 먹고 사는 경제 문제를 해결하라는 유혹입니다. 네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너는 당장에 민족의 영웅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높은 성전 꼭대기에서 안전하게 뛰어내리라는 유혹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대중의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유혹입니다. 나에게 경배하라는 유혹은 하나님의 자리에 사탄을 올려 놓으라는 가치의 문제입니다. 내가 누구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 나의 힘이 누구로부터 나오는지, 이것을 보이라는 유혹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믿음이 성장하고 자라서 성숙한 믿음을 갖게 되면, 이런 유혹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니잖아요?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도 사탄으로부터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내가 유혹을 받을 때, 놀랄 필요 없습니다. 당황할 필요 없습니다. 큰일 났다고 호들갑을 떨 필요도 없습니다. 문제는 내가 어떻게 이 유혹을 이기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의 주’입니다. 히브리서 12:2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 말을 어떤 성경에는 ‘the author of faith (믿음의 창시자, NIV)’했습니다. 어떤 번역 성경에는 ‘the champion of faith (믿음의 챔피언, NLT)’라고 했고, 또 어떤 성경에는 ‘the finisher of faith (믿음의 종결자, NKJV)’라고 했습니다.

모두 예수님을 믿음의 본을 보여주신 분으로, 믿음이 무엇인지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시는 분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어떻게 유혹을 이기셨는지 성경을 잘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사탄의 유혹을 이기신 그 방법대로 하면 우리도 사탄의 유혹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의 유혹에 대처하셨습니다. 나에게는 사탄의 유혹을 이길 힘이 없으니, 내 생각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처하라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영화 ‘막달라 마리아: 부활의 증인’을 보았습니다. 한번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영화에서 가룟 유다가 등장합니다. 가룟 유다는 그가 처음 예수님의 제자가 될 때부터 유혹을 받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뭔가 큰 일이 벌어지고, 예수님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이 오고, 기적이 일어나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면, 먼저 간 여동생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궁지로 몰아넣으면 예수님께서 뭔가 큰 힘을 보여 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배반합니다. 군인들이 와서 예수님을 체포합니다. 그래도 기대했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때서야 가룟 유다는 자기가 한 일이 잘못되었다는 죄책감에 목을 매고 자살을 합니다. 모든 제자들이 자기들이 기대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 때 막달라 마리아가 했던 말이 압권입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요구하신 일이야. 우리는 그분의 결정에 따라야 해. 우리가 지금의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면 그것은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는 일이기 때문이야!”

사탄의 유혹에 나의 생각대로 대처하려고 하는 사람은 예외 없이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고 맙니다. 나의 생각대로 해서 사탄의 유혹을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의 유혹에 대처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이 말씀은 신명기 8:3에 나오는 말씀이지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마라.” 이 말씀은 신명기 6:16에 나오는 말씀이지요? “주 너의 하나님만 경배하고 그를 섬기라!” 이 말씀은 신명기 6:13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시편 107편은 누가 썼는지 저자가 밝혀지지 않은 시편입니다. 쉬운성경에는 ‘많은 위험으로부터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이 시편의 내용은 “여호와께 감사하십시오. 그분은 선하시며, 그분의 사랑은 영원하십니다 (1절)” 이 한 말씀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죽 읽어가면 20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는 그의 말씀을 보내어 우리를 치유하시고, 우리를 파멸에서 구원하셨습니다 (He sent His word and healed them. And delivered [them] from their destructions).” 이 파멸이 사탄의 유혹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발 한번 잘못 디뎌서 삐끗하면 내 인생이 그대로 파멸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을 보내 주신다고 합니다. 정말 이 말씀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어린 아이의 마음은 그 위에 아무 것도 기록되지 않은 ‘백지’와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그 백지에 최초로 기록을 남긴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찍혔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를 파멸에서 구원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기도로 사탄의 유혹에 대처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한적한 곳’을 찾아서 기도하셨다는 말씀이 여러 번 나옵니다. 도대체 예수님은 무슨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셨을까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신기하게도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다는 말씀 앞과 뒤를 읽어보면, 모두 예수님께서 심각한 문제들 직면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은 후에 예수님의 대중적인 인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습니다. 흥분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자고 했습니다. 정치인들에게 대중의 인기는 마약과 같아서 끊을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한번 정치 발을 들여 놓은 사람은 발을 뺄 수 없다고 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람도 그랬습니다. 여기서 안식년을 보낼 때 아주 겸손한 사람이었고 같이 기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으로 귀국해서 어쩌다가 정치에 발을 들여 놓았고,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가 보스턴을 방문했습니다. 아주 딴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알던 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눈빛부터 달랐고,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는 말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선거자금 위반으로 걸려서 국회의원직을 상실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의 인기가 치솟았습니다. 어떻게 이것을 뿌리칠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마음 속에 “넌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하면 돼! 너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다 알아서 할거야! 이런 기회가 다시 찾아오지 않을 거야!”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것은 사탄의 유혹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잃어버리도록 사탄의 달콤한 유혹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유혹을 어떻게 물리쳤습니까? 예수님은 사람들을 떠나 조용한 산으로 가서 홀로 하나님을 대면하셨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기도하면서 자신의 사명을 다시 한번 점검했을 것입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의 뜻에 충실하고 있는지 자신의 사역을 점검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만일 예수님께서 그 유혹의 시간에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으셨다면, 만일 그 때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대면하지 않으셨다면, 만일 그 때 예수님께서 자신의 사역을 점검하지 않으셨다면,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셨을 것입니다. 만일 그랬더라면,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 그 때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요구대로 왕이 되셨더라면, 만일 그 때 예수님께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셨더라면, 저와 여러분은 여전히 죄인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주’이십니다.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이 내 생각이 되고, 그 말씀이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남긴 말씀이 바로 기도로 사탄의 유혹을 이기라는 말씀입니다. “Watch and pray so that you will not fall into temptation. The spirit is willing, but the body is weak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라. 너희 마음은 원하지만 몸은 약하구나)!" (마태복음 26:41) 예수님께서 대적자들에게 잡히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는 경로는 다양합니다. 리차드 포스터 (Richard Foster, 1942- )가 ‘돈, 섹스, 권력 (Money, Sex & Power)’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이 1985년에 나왔습니다. 이 책에 ‘The Challenge of the Disciplined Life’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듯이, 이 책은 크리스천이 어떻게 돈과 섹스와 권력에 빠지지 않고 긍정적으로 잘 사용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다룬 책입니다. 이 책에서 리차드 포스터가 말하듯이, 자칫하면 크리스천들이 돈과 섹스와 권력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그 중에서도 돈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돈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것처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 (돈)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마태복음 6:24)”고 하셨습니다. 씨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실 때도 세상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말씀을 가로막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말씀의 씨앗이 가시덤불에 떨어진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22). 돈의 유혹에 빠진 사람은 절대로 믿음이 자랄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돈에 대한 경고의 말씀 중에 ‘돈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악의 뿌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10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For the love of money is the root of all kinds of evil. And some people, craving money, have wandered from the true faith and pierced themselves with many sorrows (왜냐하면,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종류의 악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어떤 사람들은 참된 믿음의 진리에서 떠나 방황하기도 하고, 많은 걱정으로 자기 자신들을 찌르기도 합니다).”

여러분 주변에 돈 때문에 불행해진 사람들이 있습니까? 차라리 그 사람에게 돈이 없었더라면 행복했을 사람들이 있습니까? 돈 때문에 가정이 불행하게 된 사람들이 여러분 주변에 있습니까?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사탄의 유혹이 돈을 통해서 쉽게 우리에게 접근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많은 대로 돈의 유혹이 있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돈에 대한 사탄의 유혹이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아니, 야고보서는 디아스포라 크리스천들에게 쓴 편지인데, 디아스포라 크리스천들이 해외에 흩어져 살면서 모두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텐데, 웬 돈에 대한 유혹을 경계하라는 편지를 썼을까?”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돈에 대한 유혹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쉽게 돈을 벌려고 하는 유혹이 따라옵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문서를 위조하기도 하고, 사기를 치기도 합니다. 돈에 대한 유혹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이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저도 지난 주간에 누구와 얘기를 하다가 하마터면 돈에 대한 유혹에 빠질 뻔했습니다. 아니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보이는 것입니다. 다행하게도 하나님의 은혜로 돈에 대한 유혹에서 벗어났습니다. 절대로 우리는 돈 때문에 행복해지고, 돈 때문에 불행해지는 돈이 나를 지배하는 그런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내가 돈을 지배해야지, 돈이 나를 지배하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야고보가 이에 대하여 쓴 편지를 읽어 볼까요? “만일 가난하거든 하나님께서 자기를 영적인 부자로 만드신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십시오. 만일 부하거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영적인 부족함을 보여 주신 것을 자랑하십시오. 그것은 부자도 들에 핀 꽃과 같이 결국 죽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9-10절) 이 말씀이 이해가 되시나요? 경제적으로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사모하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3). 야고보서에는 이 말씀이 ‘영적인 부자’라는 말로 나와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기가 가진 것을 의지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들은 들에 핀 꽃과 같이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없어질 것을 의지하지 말고, 자신이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인 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 하라고 합니다. 자신이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라는 말입니다. 말씀이 재미있지 않습니까? 가난한 사람은 자기가 영적으로 부유한 사람인 것을 자랑하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은 자기가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인 것을 자랑하라고 합니다.

제가 대학교에 다닐 때 읽었던 루엘 하우 (Reuel Lanphier Howe, 1905-1985, 미국)의 말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God made people to be loved and things to be used, and our sin is that we love things and use people (하나님은 사람은 사랑하고 물건은 사용하도록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죄는 우리가 물건은 사랑하고 사람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 Reuel Howe “Man’s Need and God’s Action” ‘물건 (things)’이라는 말에 ‘돈’도 포함됩니다. Reuel Howe처럼 Richard Foster도 ‘Money, Sex & Money’라는 책에서 똑 같은 말을 합니다. 사람은 사용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입니다. 반대로, 돈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사용의 대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