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12-23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우리가 전파하는데, 여러분 중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어찌된 일입니까?
13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14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우리가 전파한 복음도 헛되며 여러분의 믿음도 헛될 것입니다.
15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그분에 대해 증언했으니, 하나님에 대해 거짓 증언한 사람들로 판명될 것입니다.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16 참으로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다시 살아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17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믿음은 공허한 것이 될 뿐더러 여러분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18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도 멸망했을 것입니다.
19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하는 것이 이 세상 삶에 그친다면, 우리는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불쌍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21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해 온 것처럼 죽은 자들의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해 옵니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23 하지만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께서 먼저요,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12 But tell me this- since we preach that Christ rose from the dead, why are some of you saying there will be no resurrection of the dead?
13 For if there is no resurrection of the dead, then Christ has not been raised either.
14 And if Christ has not been raised, then all our preaching is useless, and your faith is useless.
15 And we apostles would all be lying about God- for we have said that God raised Christ from the grave. But that can't be true if there is no resurrection of the dead.
16 And if there is no resurrection of the dead, then Christ has not been raised.
17 And if Christ has not been raised, then your faith is useless and you are still guilty of your sins.
18 In that case, all who have died believing in Christ are lost!
19 And if our hope in Christ is only for this life, we are more to be pitied than anyone in the world.
20 But in fact, Christ has been raised from the dead. He is the first of a great harvest of all who have died.
21 So you see, just as death came into the world through a man, now the resurrection from the dead has begun through another man.
22 Just as everyone dies because we all belong to Adam, everyone who belongs to Christ will be given new life.
23 But there is an order to this resurrection: Christ was raised as the first of the harvest; then all who belong to Christ will be raised when he comes back.

오늘 말씀 제목은 ‘부활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고 다시 부활하셔서 우리의 '주님'이 되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 사실을 믿지만, 넌 크리스천들은 이 사실을 믿지 않겠지요?

며칠 전에 재미 있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인도의 간디가 기독교에 대해서 자기 견해를 밝힌 편지가 발견이 되었는데, 그 편지가 5만 불에 팔렸다고 합니다. 이 편지는 간디가 1926년에 미국에 사는 밀턴 뉴베리 프란츠 (Milton Newberry Frantz)라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인데, 프란츠라는 사람이 먼저 간디에게 자신이 쓴 책을 읽어 달라는 요청을 했는데, 이번에 경매에 나온 편지는 간디가 이 책을 읽고 난 후 기독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것이라고 합니다. 간디는 이 편지를 타자기로 쳐서 마지막에 서명을 했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나는 당신이 전한 교리를 따를 수는 없을 것 같다. 기독교인들은 보이지 않는 (신의) 실체의 최고 현현(顯現)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믿겠지만,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 말을 진실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나는 예수가 인류의 위대한 스승 가운데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종교적 통합은 공통된 교리를 기계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교리를 서로 존중함으로써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I have not been able to move beyond the belief that Jesus was one of the great teachers of mankind. Religious unity is to be had not by a mechanical subscription to a common creed but by all re-specting the creed of each)."

글쎄요. 간디라고 하면 워낙 인류 역사에 위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이니까 함부로 평가하기를 조심스럽지만, 그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 들이기 어렵다는 그의 견해를 읽으면서, 보통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 조금은 안타깝습니다. 간디가 한 때 기독교에 대하여 상당히 관심이 었었던 것은 사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가 크리스천이 되지 못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주변의 크리스천들의 삶을 보면서 실망한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는 전도라는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제 타문화권에 들어가서 선교하는 시대는 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우리 크리스천 각자 각자가 충실한 크리스천으로 사는 것이 가장 훌륭한 전도방식입니다.

오늘 읽은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에 대한 장으로 유명합니다. 부활에 대한 일반인들의 생각은 말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바울이 아테네에 가서 설교하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거기서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설교했습니다. 설교를 마친 다음 사람들의 반응이 성경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부활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 내용에 관해 나중에 더 듣고 싶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When they heard Paul speak about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some laughed in contempt, but others said, ‘We want to hear more about this later’).” (사도행전 17:32) ‘contempt’라는 말이 경멸, 멸시라는 뜻이 잖아요? 그리고 나중에 들어 보겠다는 말도 사실은 별 큰 관심은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에게도 부활은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말이 안 된다는 말은 우리 상식 이나, 지식, 경험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부활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기 때문에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바울이 로마서 1:4에 쓴 내용도 그렇지 않습니까?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기쁜 소식입니다. 세상에서의 삶으로 말한다면 그는 다윗의 가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하지만 그는 성령의 능력으로 죽은 사람들 중에 살아 나심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증명되었습니다 (The Good News is about his Son. In his earthly life he was born into King David's family line, and he was shown to be the Son of God when he was raised from the dead by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He is Jesus Christ our Lord).”

예수님의 부활은 성령의 능력, 곧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어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죽하면 예수님의 제자들 조차 믿지 않으려고 했겠습니까? 누가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최초로 전했던 여자들의 말을 들은 제자들의 반응을 이렇게 그의 복음서에 기록했습니다. “But the story sounded like nonsense to the men, so they didn't believe it (하지만 그 이야기가 제자들에게는 넌센스같이 들렸기 때문에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24:11)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fact였습니다. 부활이 fact였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증거는 많이 있습니다. 첫째로, 이미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성경에 기록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에 큰 크레딧을 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 같은 사람이 예수님의 부활을 말할 때마다 사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대로 (just as the Scriptures said)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3)

둘째로, 제가 보기에 이것이 가장 큰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제자들의 삶을 변화 시켰습니다. 처음에는 제자들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 저기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모두 부활 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파하는 사도들이 된 것입니다. 사도들은 가는 곳마다 설교를 했는데, 설교의 중심 메시지가 예수님의 부활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바울 같은 사람은 완전히 예수님의 부활을 전파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 전에 바울은 유대교의 독실한 신자였잖아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유대교 신자로서 바울은 성공이 보장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자신이 가지고 있던 특권을 다 버렸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요.

그리고, 한가지 더 부활의 증거를 댄다면, 예수님의 제자들만 부활하신 에수님을 경험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이 사실에 대하여 이렇게 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 에게 나타나시고, 그후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시고, 그후에 한번에 오백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그 사람들 중에는 이미 죽은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5-6) 즉 예수님의 부활은 몇 몇 사람들의 주관적인 경험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하여 잠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 하나님의 계획이 오늘 말씀 20-23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해 온 것처럼 죽은 자들의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해 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께서 먼저요,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 께서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이 말씀을 자세하게 설명하려고 하면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핵심 적인 것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첫 열 매’라는 말씀을 잘 봐야 합니다. 영 어로는 ‘firstfruits’라고 합니다. 좀 이상하지요? 항상 복수 형태로 씁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맨 처음 익은 (열린) 열매를 ‘firstfruits’라고 해서 하나님께 드립니다. 모든 ‘처 음 것들’는 귀합니다. 이것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자식도 장자는 맨 처음 난 것이니까 하나님께 드립니다. 곡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말씀이 저에게는 하나도 걸림돌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이런 말씀에서 진한 감동을 받습니다. 나의 삶에서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인간의 본분 (本分)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에 예수님 이전에 아무도 부활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입니다. ‘첫 열매’는 귀한 것이니까 하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을 받으셨습니다. 자 그런데, 22-23절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께서 먼저요,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에 그 뒤를 이어서 ‘부활의 열매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저와 여러분을 ‘부활의 열매’로 삼으시려고, 예수님을 부활의 ‘첫 열매’로 삼으신 것입니다.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부활의 ‘첫 열매’로 받으시고, 그 뒤를 이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부활의 열매들’로 받으시는 것입니다. 한번 여러분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그 광경을 머리 속에 그려 보십시오.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 께서 맨 앞에 서 계십니다. 그 뒤로 수많은 사람들이 서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거두어 드리신 ‘부활의 열매들’입니다. 그 사람들 중에 저와 여러분도 서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이해가 되시나요?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의 '첫 열매'로 삼으시고, 저와 여러분을 '부활의 열매들'로 거두 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활에 대한 계획 속에 오늘 우리가 들어 있습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저와 여러분을 ‘부활의 열매’로 삼으시려고, 예수님을 부활의 ‘첫 열매’로 삼으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