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5:5-8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사람이 내 안에 있고 내가 그 안에 있으면, 그는 열매를 많이 맺는다. 그러나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6 누구든지 내 안에 있지 않으면, 그 사람은 꺾여서 말라 버리는 가지와 같다. 사람들이 그 마른 가지를 주워다 불에 던져 태워 버릴 것이다.
7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이루어질 것이다.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어 내 제자인 것을 나타내면 이것으로 내 아버지께서는 영광을 받으신다."

5 "Yes, I am the vine; you are the branches. Those who remain in me, and I in them, will produce much fruit. For apart from me you can do nothing.
6 Anyone who does not remain in me is thrown away like a useless branch and withers. Such branches are gathered into a pile to be burned.
7 But if you remain in me and my words remain in you, you may ask for anything you want, and it will be granted!
8 When you produce much fruit, you are my true disciples. This brings great glory to my Father."

지난 주는 비교적 선선한 날씨여서 가을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 듭니다. 보헤미언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 1875-1926)의 ‘가을날’이란 시가 생각납니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해 주소서,
이틀만 더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진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더 이상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맬 것입니다.

이해하기에 난해(難解)한 시가 아니어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릴케의 이 시를 좋아합니다. 한국의 김재혁 시인이 이 시에 대하여 이런 평을 했습니다. “시인은 여름의 완성에 이어 가을을 ‘진한 포도주의 단 맛’으로 완성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한다. 여름의 완성은 ‘이틀만 더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라는 표현 속에 들어 있다. 동유럽과 북유럽의 기후에 익숙한 시인에게 남프랑스 같은 남국의 햇살은 그 의미가 각별하다. 하루만 그 햇살 속에 있어 보아도 시인이 왜 ‘이틀만 더 남국의 날’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 시인은 언어의 포도원을 가꾸는 주인이다. 시인은 외적으로는 가을의 풍요로움을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스스로에게 시인으로서의 사명을 다독거리는 중이다. 남국의 햇살을 받아 자신의 언어가 무르익기를 바라는 것이다.”

오늘 읽은 요한복음 15장 말씀에 사람들은 ‘포도나무의 비유’라는 제목을 붙입니다. ‘비유(比喩)’라는 말은 그리스 말로 ‘파라볼레 (parabole)’라는 말입니다. ‘나란히 놓는다’는 뜻입니다. 자동차를 파킹할 때 ‘패러렐 파킹 (parallel parking)’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도로 턱과 ‘나란히’ 차를 파킹하는 것입니다. 운전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정말 어려운 고난도의 기술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마태가 그의 복음서에 “예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해 주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Jesus did not say anything to them without using a parable, 마태복음 13:34)”라고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은 ‘비유’의 천재였습니다. 이해하기 힘든 영적인 진리를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일들과 ‘나란히’ 놓음으로써 누구든지 쉽게 이해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요? 많은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어떻게 하면 열매를 맺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열매를 맺는다는 말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는 원리를 말씀하심으로써, 우리가 어떻게 하면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으로서 열매를 맺는다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포도나무가 어떻게 열매를 맺는지 그 원리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는 원리는 어렵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몇가지로 정리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정원사의 ‘돌봄 (care)’이 있어야 합니다. 정원사가 돌보지 않고 그냥 내버려둬도 열매를 맺을 수 있지만, 열매가 작고, 맛이 없고, 볼품이 없습니다. 정원사가 거름을 주고, 정원사가 부지런히 불필요한 가지를 잘라줘야 합니다.

요즘 메모리얼 드라이브를 운전하면 얼마나 경치가 좋은 지 모릅니다. 다운타운 쪽으로 드라이브 하면 찰스 강 폭이 넓어지면서 요트들이 떠 있는 것이 환상적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있을까요? 그리고 반대로, 메모리얼 드라이브에서 하바드 쪽으로 드라이브를 하면 양쪽의 아름드리 가로수들이 서로 맞닿아서 아치 모양을 만드는 멋진 풍경이 나옵니다. 그런 풍경이 더 길게 계속되지 않는 것이 아쉬울 정도입니다. 어떻게 이런 멋진 풍경을 만들 수 있을까요? 저절로 나무들이 자라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을까요? 아닙니다. 전문가들이 꾸준하게 불필요한 가지는 잘라주고 필요한 가지만 남겨 두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충분한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 받아야 합니다. 포도나무 가지들이 뿌리로부터 ‘수액 (sap)’을 공급 받아야 합니다. 물론 충분한 햇빛도 있어야 합니다. 이런 조건들이 갖추어 질 때 탐스러운 열매가 열립니다. 이런 조건이 갖추어 져도 금방 열매가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성급한 마음을 갖지 말고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릴케도 그런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해주소서. 이틀만 더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진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릴케가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하고 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과일을 무르익도록 명령하는 분이 계십니다. 이 말은 나무 스스로의 힘으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정원사의 ‘돌봄’이 있어야 하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여러 조건들이 충족(充足)되어야 그 때 비로소 열매가 열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해야 열매를 맺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는 원리와 우리가 열매를 맺는 원리를 나란히 놓고 우리 스스로 그 원리를 생각하고, 발견하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나오지 않지만,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비유 말씀을 하신 후에는 거의 예외 없이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Anyone with ears to hear should listen and understand, 마태복음 13: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포도나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냥 내버려 두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포도나무처럼 우리도 ‘돌봄’을 받아야 합니다. 전문가의 손으로 포도나무의 불필요한 가지들을 잘라주듯이, 우리의 삶에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제거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빌립보서 3장에 나오는 바울의 고백을 좋아합니다. “그 때는 이 모든 것이 내게 너무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그 모든 것이 아무 쓸모 없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나는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쓰레기처럼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이제 압니다. 이로써 나는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3:7-8)

미국이 자랑하는 사상가 중에 에머슨 (Ralph Waldo Emerson, 1803-1882, 미국, 보스턴)이 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추구했던 사상은 ‘초월주의 (transcendentalism)’라는 한마디로 말 할 수 있습니다. ‘초월주의’는 1830년대부터 1840년대에 본격화된 산업혁명과 근대국가로 발돋움하는 미국의 전환기에 나온 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과 인간 (nature and humanity) 속에 하나님의 신성 (divinity)이 드러나 있음으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머슨은 친구 데이비드 소로우 (Henry David Thoreau, 1817-1862, 미국)에게 콩코드 (Concord)에 있는 ‘월든 폰드 (Walden Pond)’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거기서 2년 동안 살면서 ‘삶의 단순성과 독립성, 자기 반성 (a life of simplicity, independence, and self-reflection)’을 실험하도록 했습니다. 소로우가 2년에 걸쳐 자연 속에서 얻은 경험들은 ‘월든 (Walden)’이라는 책으로 나와서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습니다.

에머슨의 사상에서뿐만 아니라 크리스천의 삶에 있어서도 ‘삶의 단순성 (a life of simplicity)’이라는 말은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은 ‘삶의 복잡성 (a life of com-plexity)’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필요 없는 것들을 다 제거하고, 정말 필요한 것들만 소유하게 되면 삶이 단순해 집니다. 삶이 단순해 지면, 집중력이 생깁니다. 그만큼 생산성이 높아집니다. 한두가지 꼭 필요한 일에 삶의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 (Martha)에게 주신 말씀도 ‘삶의 단순성’의 중요성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르다야! 너는 너무 많은 일 때문에 걱정하며 안절부절 하는구나. 정말 필요한 일은 오직 한 가지뿐이다 (Martha, you are worried and upset about many things, but only one thing is needed).” (누가복음 10:41-42) 열매 맺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포도나무의 불필요한 것들을 잘라주듯이, 우리의 삶이 보다 단순해 져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참 포도나무 되시는 예수님과 깊이 교제해야 합니다. 포도나무가 햇빛을 받고, 뿌리에서 양분을 빨라 올리듯이, 우리는 예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이 말씀을 한번 보십시오.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살아 계시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여러분의 삶이 사랑 안에서 강해지고, 또 깊게 뿌리내려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을 깨닫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한없고 넓으며, 얼마나 깊고도 높은지 진정으로 깨닫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Then Christ will make his home in your hearts as you trust in him. Your roots will grow down into God's love and keep you strong. And may you have the power to understand, as all God's people should, how wide, how long, how high, and how deep his love is).” (에베소서 3:17-18)

예수님은 열매 맺는 삶의 비결을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보십시오. “사람이 내 안에 있고 내가 그 안에 있으면, 그는 열매를 많이 맺는다. 그러나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이루어질 것이다 (Those who remain in me, and I in them, will produce much fruit. For apart from me you can do nothing.....But if you remain in me and my words remain in you, you may ask for anything you want, and it will be granted).” (5, 7절)

열매 맺는 삶은 우리에게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열매 맺는 삶이 옵션 (option)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옵션이 아니라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하는 필수 사항 (requirement)입니다. 공부할 때 옵션 과목이 있습니다. 이런 과목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됩니다. 하지만, 졸업을 하기 위해서 필수과목들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열매를 맺는 것은 필수 사항입니다. 보세요.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어 내 제자인 것을 나타내면 이것으로 내 아버지께서는 영광을 받으신다 (When you produce much fruit, you are my true disciples. This brings great glory to my Father).” (8절) 열매를 맺어도 많이 맺어야 합니다. 제자로서 열매를 맺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르신 것은 세상에 나가서 좋은 열매를 많이 맺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열매’는 ‘선한 일’ ‘착한 일’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참된 제자 (true or genuine disciples)’가 되기 원하는 사람은 이 말씀을 심각하게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합니까? 나의 전문 영역에서, 나의 일터에서, 직장에서, 비즈니스 현장에서,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어떤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까?” 이렇게 묻고 기도하십시오. 제발 열매 맺지 못하는 크리스천으로 평생을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 새벽 기도에서 누가복음 말씀을 읽고 있는데, 2:52 말씀이 감동적입니다. “Jesus grew in wisdom and in stature and in favor with God and all the people.” 열매 맺는 크리스천은 교회뿐만 아니라 세상에서도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