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9:1-6

1 요셉이 이집트로 끌려갔습니다. 보디발이라는 이집트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파라오의 신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왕궁 경호대의 대장이기도 했습니다. 보디발이 요셉을 끌고 온 이스마엘 사람들에게서 요셉을 샀습니다.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요셉이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자기 주인인 이집트 사람 보디발의 집에서 살았습니다.
3 보디발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보디발은 여호와께서 요셉이 하는 일마다 성공하게 해 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4 그래서 보디발은 요셉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보디발은 요셉을 마음 놓고 믿을 수 있는 부하로 삼았습니다. 그는 요셉에게 집안 일과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5 그래서 요셉은 집안 일과 보디발이 가진 모든 것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요셉으로 인해 보디발의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보디발이 가진 모든 것, 집에 있는 것이나 들에 있는 모든 것에 복을 주셨습니다.
6 그리하여 보디발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요셉에게 맡겼습니다. 보디발은 자기가 먹는 음식 말고는 요셉이 하는 일에 참견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멋지고 잘생긴 사람이었습니다.

1 When Joseph was taken to Egypt by the Ishmaelite traders, he was purchased by Potiphar, an Egyptian officer. Potiphar was captain of the guard for Pharaoh, the king of Egypt.
2 The LORD was with Joseph, so he succeeded in everything he did as he served in the home of his Egyptian master.
3 Potiphar noticed this and realized that the LORD was with Joseph, giving him success in everything he did.
4 This pleased Potiphar, so he soon made Joseph his personal attendant. He put him in charge of his entire household and everything he owned.
5 From the day Joseph was put in charge of his master's household and property, the LORD began to bless Potiphar's household for Joseph's sake. All his household affairs ran smoothly, and his crops and livestock flourished.
6 So Potiphar gave Joseph complete administrative responsibility over everything he owned. With Joseph there, he didn't worry about a thing - except what kind of food to eat!  Joseph was a very handsome and well-built young man.

여러분, 구약성경에 나오는 ‘요셉’이라는 사람에 대하여 들어 보셨습니까? 영어로 ‘조셉 (Joseph)’이라고 하는데, 이 이름에 “May God add or increase (하나님께서 더해 주시기를)”라는 뜻이 있습니다. 아들 이름을 ‘요셉’ (Joseph)’이라고 지은 사람들은 아마도 자기 아들이 성경에 나오는 ‘요셉’ 같은 사람이 되라고,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축복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이름을 지었을 것입니다.

구약성경 창세기 (Genesis)에 ‘요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창세기 30장부터 50장까지, 무려 21장이 한 사람 ‘요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사람에 대해 기록한 분량이 많다고 해서 꼭 그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요셉’의 경우는 그에 대한 기록의 분량도 많고, 또 그만큼 중요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요셉’은 성장기를 매우 불행하게 보냈습니다. 위로 형이 열 명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에게 라헬 (Rachel)과 그 언니 레아 (Leah)라는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언니 레아는 남편 야곱 (Jacob)이 라헬을 더 사랑하는 것을 알고 아기라도 많이 낳아서 남편의 사랑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레아는 열 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한 라헬이 가만 있을 리가 없습니다. “저도 자식을 낳게 해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죽어 버릴 거예요 (창세기 30:1)” 하면서 남편을 졸랐습니다. 그러다가 어찌어찌 해서 라헬이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요셉’입니다. 야곱은 ‘요셉’을 끔찍하게 사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사게 되고, 급기야 이집트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요셉’은 은 20세겔 (shekels) (8 ounces에 해당, 140불 정도)에 팔렸다고 합니다 (창세기 37:28).

그 때 ‘요셉’의 나이가 열 일곱 살이었습니다. 열 일곱 살이면 지금으로 말하면 고등학생 정도 되었을 나이입니다. 아직도 부모의 사랑과 도움이 필요한 때인데, ‘요셉’은 이집트로 팔려 간 것입니다. ‘요셉 사건’으로 야곱의 집안은 풍비박산(風飛雹散)이 났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요셉’이 죽은 줄 알고 날마다 슬픔에 잠겨 살았습니다. 형들은 형들 대로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의 어머니 라헬 역시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죽었으니, 얼마나 상심이 컸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요셉’에게 맞춰진다는 것입니다. 궁금한 것은 어린 ‘요셉’이 이집트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노예로 팔려 왔으니 남들처럼 교육을 받을 기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문화가 다르고, 말이 다른 이집트에서 ‘요셉’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중에 나오는 사실이지만 이스라엘 사람들과 이집트 사람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 손짓 발짓을 하거나, 아니면 통역(通譯, interpreter)을 세워야 의사 소통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42:23). 그런데, 이상하게도 성경에는 노예로 팔려 온 ‘요셉’의 고생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그 때 ‘요셉’의 고생에 대하여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 성경에는 ‘요셉’의 고생에 대한 말씀이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의 주인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그가 모든 일에 형통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His master saw that the LORD was with Joseph, and the Lord gave him success in everything he did).” (창세기 39:2-3) ‘his master (그의 주인)’는 ‘보디발 (Potiphar)’이라는 이집트 사람을 말합니다. 보디발은 ‘an Egyptian officer, the captain of the guard for Pharaoh (이집트의 관리, 이집트 왕 바로의 경호실장)’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보디발이라는 사람이 괜히 바로의 경호실장이 아니구나! 보디발에게 사람 보는 눈이 있구나!” 또 하나는 “도대체 ‘요셉’의 이야기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고 어떻게 끝이 날 것인가?” 하는 기대감입니다.

요즘에 ‘소향’이라는 한국 가수의 노래를 많이 듣습니다. 특히 ‘소향’이 부른 노래들에 대한 외국 vocal coaches (노래 코치들)의 분석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소향’이 휘트니 휴스턴 (Whitney Elizabeth Houston, 1963-2012)이 부른 ‘I Have Nothing (나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을 불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문 보컬 코치들에게 소향의 ‘I Have Nothing’을 분석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보컬 코치들은 이 노래는 휘트니 휴스턴 말고는 부를 사람이 없는 노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노래가 어렵기도 하지만 휘트니 휴스턴 보다 더 잘 부를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노래를 터키의 ‘엠레 (Yücelen)’라는 보컬 코치가 분석을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와, 처음 시작이 잔잔하게 나가는 것이 매우 좋습니다. 완벽한 두성 (head voice)입니다. 마치 이제 곧 일어날 엄청난 일을 예고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 결정적인 파트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과연 소향이 그 부분을 휘트니 휴스턴 보다 더 잘 부를 수 있을까요?”

정말 그렇습니다. ‘요셉’이 이집트의 실력자 보디발의 집에 팔려 온 것은 앞으로 일어날 엄청난 일들의 서곡에 지나지 않습니다. 보디발은 사람 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최근에 자기 집에 팔려 온 히브리 노예 소년 ‘요셉’이라는 사람을 눈 여겨 보았습니다. “야, 요 녀석, 보통 녀석이 아니구나!” 보디발은 ‘요셉’에게 이 일 저 일을 시켜 봅니다. 집안 일도 시켜 보고, 농사 일도 시켜 보고, 가축을 돌보는 일도 시켜 봅니다. 그런데, ‘요셉’에게 시킨 일마다 다 잘 되는 것입니다. 보디발은 “히브리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들었는데, 요 녀석에게 그가 믿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이 분명하구나!” 이렇게 생각한 보디발은 ‘요셉’에게 그의 집안 일을 모두 맡겨버립니다. 오늘 읽은 성경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리하여 보디발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요셉’에게 맡겼습니다. 보디발은 자기가 먹는 음식 말고는 ‘요셉’이 하는 일에 참견하지 않았습니다.” (6절) 여러분, 도대체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히브리 노예 소년 ‘요셉’에게 그 엄청난 재산, 그의 집안 일을 완전히 맡겨 버리고 일체 참견하지 않는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그 때 ‘요셉’의 나이가 겨우 스무 살 안팎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잘 보십시오. 지금 성경은 ‘요셉’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엄청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요셉’ 이야기는 ‘요셉’이 이집트에 팔려 옴으로써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이 말은 뒤집어 말하면, ‘요셉’에게 이집트로 팔려 오는 불행한 일이 없었더라면 성경에 나오는 ‘요셉’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는 편안한 삶을 좋아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비록 그것이 편안한 삶이라고 할지라도)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든다면, 누가 그런 드라마를 보겠습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야기에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그루브 (groove)’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말로 번역하면 ‘홈’ 혹은 ‘골’이라는 뜻입니다. “그 음악에 그루브가 있다, 없다”이런 말들을 하거든요? 아무리 박자와 리듬을 잘 맞춰서 정확하게 연주해도 박자와 리듬에 변화를 주는 그루브가 없으면 재미 없고 지루한 음악이 되고 맙니다. 골프 클럽에도 ‘groove’가 있거든요? 골프 클럽 헤드에 길게 옆으로 패인 홈들이 있는데, 이 홈들을 ‘groove’라고 합니다. ‘groove’ 덕분에 공을 때리는 순간 마찰력이 생겨 그린 위에 멋지게 공을 세우거나 백스핀을 넣어서 공을 딸려오게 만드는 묘기를 연출할 수 있습니다.

‘요셉’의 삶은 ‘groove’가 많은 삶입니다. 고난과 우여곡절이 많은 삶입니다. 여기 저기 패인 ‘홈’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요셉’의 삶 속에 개입해 들어오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The Lord was with Joseph)”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니까 ‘요셉’의 삶 속에 난 그 수많은 ‘grooves’는 오히려 ‘요셉’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긍정적인 요소가 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이야기를 해 볼까요? 보스턴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여러분의 앞날에 어떤 일들이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힘든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여러분이 보스턴에 왔기 때문에 생기는 일들입니다. 보스턴에 오지 않았더라면 생기지 않았을 일들입니다. 하지만, ‘요셉’의 삶이 그렇듯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이야기를 쓰시는데 ‘groove’가 꼭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겪게 되는 ‘groove’ 속에 여러분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그분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이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내 삶 속에,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이 들어 있다고요?” 하고 놀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한번 보십시오. “For I know the plans I have for you. They are plans for good and not for disaster, to give you a hopeful future (너희를 위한 나의 계획을 알고 있다. 그 계획은 재앙이 아닌 희망이 넘치는 미래를 주는 좋은 계획이다).” (예레미야 29:11) 이 말씀에 나오는 ‘너희’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 (the people of God)’입니다. 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구입니까? 바울은 로마서 8:28에서 이 사람들은 ‘those who love God and are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for them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의 삶 속에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이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을 보스턴으로,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보스턴 생활에서 겪게 될 수많은 ‘grooves’는 여러분의 삶의 이야기를 드라마틱 하게 만들어 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일들이 될 것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해피 엔딩으로 끝이 납니다.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가 됩니다. ‘요셉’은 7년 기근 (famine)으로 고통을 받던 식량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합니다. 모든 나라들이 양식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이집트로 돈을 싸 들고 몰려 옵니다. ‘요셉’ 덕분에 엄청난 부가 이집트에 쌓이게 되었습니다. 이 돈을 관리하는 사람이 ‘요셉’이었습니다. ‘요셉’의 손을 거쳐 막대한 돈이 들어오고 양식이 나갔습니다.

‘요셉’ 이야기를 하면서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가 읽은 책 중에 찰스 스윈돌 (Charles R. Swindoll) 목사님이 쓴 ‘Joseph: A Man of Integrity and Forgiveness (순전한 믿음으로 꿈을 이룬 사람, 1998)’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감동을 받았던 책입니다. 스윈돌 목사님이 그 책 거의 끝부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요셉은 끝까지 요셉답게 살아야 했다. 그는 끝까지 그가 믿었던 하나님을 대면하면서 살았다. 식량을 분배하는 일은 공정하고 질서 있게 이루어졌다. 모든 돈은 합법적인 구좌에 입금 되었다. 아무런 뇌물도, 상납금도 없었다. 그는 해외에 비밀 구좌를 만들어 돈을 빼돌리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에게 은밀한 비자금이 없었다. ‘요셉’은 순전한 인격으로 맡은 일을 수행하였고, 이집트 사람, 가나안 사람, 히브리 사람, 기타 다른 민족들의 생존을 보장하였다. 그가 수년 전에 보디발의 집에서 일을 했을 때도, 그는 지금과 같은 성실함을 보여 주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의 신분과 역할은 크게 바뀌었지만, 그의 성품은 전혀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p. 243)

왜 우리에게 ‘요셉’ 같은 인물이 없습니까? 안타깝습니다. 그가 받은 학위를 발판으로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들은 많은데, 왜 ‘요셉’ 같은 큰 인물은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요셉’과 같은 인물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제는 우리 조국을 위해서 ‘요셉’ 같은 인물이 나타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여러분을 이곳 보스턴으로 오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겪게 될 ‘groove’를 탓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그 ‘grooves’은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grooves’를 주목하지 말고,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