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2:9-10

9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이며 왕의 제사장입니다. 또 거룩한 나라이며, 하나님께서 홀로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알게 하시려고, 여러분을 어두움 가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셨습니다. 10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전에는 은혜를 몰랐지만, 지금은 은혜를 받고 누리고 있습니다.

9 But you are not like that, for you are a chosen people. You are royal priests①, a holy nation, God's very own possession. As a result, you can show others the goodness of God, for he called you out of the darkness into his wonderful light. / ①Greek a royal priesthood 10 "Once you had no identity as a people; now you are God's people. Once you received no mercy; now you have received God's mercy."① / ①Hos 1.6, 9; 2.23 (New Living Translation)

2020년 새해 두 번째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여전히 우리 마음 속에는 기대하고 설레는 마음과 아직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共存)하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몇 주 동안 “새해에는 이렇게 믿자”라는 시리즈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지난 주, 새해 첫 주에는 ‘새로운 피조물’에 대한 설교를 했습니다. 오늘은 ‘크리스천 아이덴티티’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베드로가 신앙의 박해를 피해 지중해 연안으로 피신해 사는 ‘디아스포라 크리스천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 시기는 일반적으로 A.D. 63-64년경, 네로 (Nero) 황제 때라고 보고 있습니다. 로마에 화재가 난 것은 A.D. 64년 일이지요? 네로는 화재의 책임을 크리스천들에게 돌렸습니다. 하지만, 학자들에 따라서는 베드로전서를 쓴 연대를 20-30년 더 늦게, 기독교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있었던 도미티안 (Domitian, A.D. 92-96) 황제 때나, 트라얀 (Trajan, A.D. 98-117) 황제 때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이며 왕의 제사장입니다. 또 거룩한 나라이며, 하나님께서 홀로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입니다.” (9절) 크리스천들에게 아주 익숙한 말씀입니다. 개역성경에 나오는 구절이 더 익숙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But you are not like that, for you are a chosen people. You are royal priests, a holy nation, God's very own possession).....” ‘but you are not like that (그러나 여러분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구절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 말씀 전에 믿음을 잘 지키지 않고,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크리스천으로서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말씀이 있었음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 말씀을 좋아하면서도 이 말씀의 의미를 잘 모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나오게 된 배경을 잘 모릅니다. 몇 가지 이 말씀에 대한 중요한 사실들을 짚어 보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하나님의 백성들의 정체성 (identity)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베드로전서 2장에 처음으로 기록된 말씀이 아닙니다. 이미 구약 출애굽기 19:4-6에 이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이 말씀의 방점은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이 말씀에 있습니다. 모세가 자기 백성들에게 이 말씀을 전했을 때는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시기 바로 직전이었습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법’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함무라비 법전 (Code of Hammurabi)’이 있습니다. ‘함무라비’는 제 6대 바빌로니아 제국의 왕입니다. ‘함무라비 법전’이 만들어 진 것이 B.C. 1754년입니다. 우리나라 역사로 하면 고조선 때입니다. 높이 2.25m의 돌 비석에 ‘쐐기문자 (cuneiform)’로 쓰여 있고, 그 내용은 주로 ‘계약 (contracts)’에 대한 것이라고 합니다. ‘함무라비 법전’과 비교하면, ‘십계명’은 제정 연대가 그보다 2-300년 앞서 있을 뿐만 아니라 내용으로 보더라도 훨씬 발전된 내용들이 들어 있습니다. ‘십계명’ 자체만 보면 간단한 법처럼 보이지만, 여기서 파생된 시행 규칙까지 더하면 실로 엄청나게 발전된 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온 세상에서 자기들만 유일하게 하나님의 법, 율법을 가진 민족이라는 자만심에 빠져 살았습니다. 하지만, 법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자체로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바로 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법을 줄 터인데, 이 법을 잘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잘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일과 하나님의 백성들의 정체성과는 아무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바로 출애굽기에 나오는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디아스포라 크리스천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실천하면서 살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이 되고, 귀한 제사장의 직분을 가진 사람들이 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들이 되고, 하나님께서 소유하신 사람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은 우리가 이런 사람들이 되는 데에 조건이 붙어 있다는 사실을 쉽게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 조건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비즈니스 현장에서, 연구실에서, 실험실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어렵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시지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면 거짓말 해서는 안 되고, 남을 속여서도 안 되고, 정직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면 결국 손해를 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손해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너무 인생을 짧게 보는 사람입니다. 크리스천들은 인생을 길게 보는 사람들 아닌가요? 우리의 삶이 지금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삶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아닌가요? 이런 사람들은 절대로 작은 유익을 얻기 위해서 양심을 팔 수 없고, 작은 이익을 얻기 위해서 정직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지금의 삶이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많은 것을 손해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보상 (rewards)’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그가 계시다는 것과 그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믿어야 합니다 (And it is impossible to please God without faith. Anyone who wants to come to him must believe that God exists and that he rewards those who sincerely seek him).” (히브리서 11:6)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 하나님의 뜻대로 실천하면서 사는 사람은 당장에는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손해는 하나님께서 갚아 주시는 ‘보상 (rewards)’에 비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닙니다.

또,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크리스천의 ‘정체성 (identity)’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정체성’이라는 말이 영어로 ‘identity’라는 말이잖아요? 이 말에서 ‘신분증 (identification)’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미국에서 ‘신분증’은 ‘운전면허증’을 말합니다. ID 보여 달라고 하면 ‘운전면허증’을 보여 주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손해 본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ID가 없는 크리스천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살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들 (God’s chosen people)’이라는 ID가 생깁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보니까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때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들 (royal priests)’이라는 ID가 생깁니다.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는 말씀의 방점은 ‘제사장’이라는 말에 찍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왕 같은’이라는 말에 찍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제사장’이라는 말에 찍혀 있습니다. 제사장은 제사장인데 그 제사장의 직분이 너무 고귀하기 때문에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사장 (priests)’이라는 말은 라틴어 ‘폰티펙스 (Pontifex)’라는 말에서 왔습니다. 영어로는 ‘브리지 빌더 (bridge builder)’라는 뜻입니다. 우리말로 ‘다리를 놓는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우리의 삶이 선하게 살게 됩니다. 절대로 악하게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살면 삶이 아름다워집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호감 (favor)을 줍니다. 자연히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갖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사람들은 나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된다’는 성경 말씀의 뜻입니다.
 
그 다음, ‘거룩한 나라’라는 말이 나옵니다. ‘거룩한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를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다스리시는 ‘거룩한 나라 (a holy nation)’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생각만이라도 해 보세요. 내가 나의 삶의 주인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나를 지배하고 통치하는 사람이 됩니다. 왜 우리가 이런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지 그것이 안타깝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살면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가 됩니다. New Living Translation에는 “You are God's very own possession”이라고 했습니다. NIV 성경에는 “You are a people belonging to God”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살면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삶의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은 내가 나의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나라는 존재를 얼마나 믿을 수 있습니까?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불안한 존재입니까? 그리고, 얼마나 실수투성이입니까? 나의 삶을 내가 알아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불안합니까? ‘결정장애’라는 것이 있습니다. 무슨 일을 쉽게 결정하지 못합니다. 어느 레스토랑을 갈지, 무엇을 먹어야 할지, 간단한 것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증세를 ‘결정장애’라고 합니다. 간단한 일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우리가 우리의 삶의 중요한 문제들을 우리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하여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끔찍한 일입니다. 다윗은 탁월한 ‘사미스트 (psalmist)’였습니다. 그는 그가 쓴 시편에서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살 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실 때 아무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시편 23:1).

베드로가 쓴 편지에 나오는 오늘 본문 말씀은 편안하게, 좋은 환경 속에서, 걱정 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준 것이 아닙니다. 매일 매일의 삶이 불안하고, 내일을 기약할 수 없고,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준 말씀입니다. 그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손해를 감수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애썼습니다. 그들은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손해를 감수하고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거룩한 나라로, 하나님의 소유된 사람들로 살려고 애썼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로마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정복했습니다.

2020년 새해를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까? 특히 크리스천으로서 우리는 어떤 마음음을 가지고 한 해를 살아야 하겠습니까? 크리스천으로서 ‘정체성 (identity)’를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손해를 좀 보더라도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손해를 본다”는 말은 근거 없는 ‘신화(神話, myth)’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그 말은 근거 없는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보여 주십시오. 여러분 정체성을 통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한 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본회퍼 (Bonhoeffer, 1906-1945, 독일)가 쓴 ‘주님의 선하신 능력에 싸여 (Von guten Mächten)’ 이 노래를 같이 부르겠습니다. 이 시는 감옥에 갇혀 있던 본회퍼가 사랑하는 애인 마리아에게 보낸 편지 마지막에 들어 있던 시입니다. 아마도 이 편지가 그녀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였을 것입니다. 이 시에 Siegfried Fietz라는 사람이 곡을 붙였습니다. 한 해를 시작하는 우리에게 많은 용기와 위로와 격려를 주는 노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