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1:1-4

1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을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하나가 와서 말했습니다.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준 것처럼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십시오.”
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3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4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의 죄도 용서하여 주소서. 그리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1 Once Jesus was in a certain place praying. As he finished, one of his disciples came to him and said, "Lord, teach us to pray, just as John taught his disciples."
2 Jesus said, "This is how you should pray. "Father, may your name be kept holy. May your Kingdom come soon.
3 Give us each day the food we need①, / ①Or Give us each day our food for the day; or Give us each day our food for tomorrow
4 and forgive us our sins, as we forgive those who sin against us. And don't let us yield to temptation①." / ①Or And keep us from being tested

지금은 사순절 기간입니다. 지금까지 ‘영적인 훈련’에 대하여 2차례 설교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한 번, 기도에 대하여 한 번 설교했습니다. 오늘 기도에 대하여 한 번 더 설교하고, 다음 주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한 번 더 설교하려고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럼 이렇게 기도해라” 하면서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이 유명한 ‘주기도문 (The Lord’s Prayer)’입니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주기도문’은 마태복음에 나오는 기도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주기도문’은 좀 더 짧은 기도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This is how you should pray”라고 말씀하시면서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조금도 망설임이 없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예수님의 입에서 이 기도문이 나왔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기도문이 예수님의 입에서 그렇게 술술 나온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평상시에 이렇게 기도하신 것이 분명하다!” 이런 생각을 하면 ‘주기도문’이 더 감동적으로 마음에 다가옵니다.

기도에 대한 이런 저런 좋은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가르치셨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에는 ‘아버지여’ 이렇게 하나님을 부르면서 기도하라고 하셨지만, 마태복음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Our Father in heaven, 마태복음 6:9)’ 이렇게 하나님을 부르라고 나와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기 전에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친구 (야고보서 2:23, 이사야 41:8, 역대하 20:7)’라고 칭찬했던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주 (Lord)’라고 불렀습니다. 모세 역시 하나님을 친구처럼 친하게 대했던 사람이지만 (출애굽기 33:11), 모세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고 ‘주’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고, 제자들에게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첫째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름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딸인 것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이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가 전에는 (예수 믿기 전에는) 본질적으로 진노의 자식들이었습니다 (We all formerly were by nature children of wrath).” (에베소서 2:3)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후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성경에는 이 말씀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You received God's Spirit when He adopted you as his own children. Now we call him, ‘Abba, Father.’” (로마서 8:15) ‘아바’는 아람어로 ‘아빠’라는 뜻입니다. 아이들이 아버지를 부는 말입니다. 비록 ‘아바’라는 말이 ‘주기도문’에 나오진 않지만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바(마가복음 14:36)’라고 부르신 것으로 보아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셨을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름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성경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이며 또한 그리스도와 공동의 상속자입니다 (And since we are his children, we are his heirs. In fact, together with Christ we are heirs of God's glory).” (로마서 8:17)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시는 축복이 정말 엄청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동일한 상속을 받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상상이 가시나요? 간혹 드라마에서 보면 그 집 아이들과 양자로 들어온 아이가 차별을 받습니다. 법적으로는 아들이지만, 친 아들은 아니기 때문에 무의적으로 그른 차별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양자로 들어온 우리와 본래 아들이신 예수님과 조금도 차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양자로 들어 온 우리가 받는 상속이 똑 같습니다. 그래서 NIV 성경에는 이 말씀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If we are children, then we are heirs-heirs of God and co-heirs with Christ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들입니다. 그리스도와 똑 같은 권리를 갖는 상속자들입니다.”

아무리 기도에 대한 지식이 많고, 어느 정도 기도의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가르치신 이유를 모르면 기도의 깊은 강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찬송가 302장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이 찬송가 가사를 보십시오.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저 큰 바다보다 깊다/왜 너 인생은 언제나 거기서 저 큰 바다 물결 보고 그 밑 모르는 깊은 바다 속을 한번 헤아려 안 보나/많은 사람이 얕은 물 가에서 저 큰 바다 물결보고 찰싹 거리는 작은 파도 보고 마음 약하여 못 가네/자 곧 가거라 이제 곧 가거라 저 큰 은혜 바다 향해 자 곧 네 노를 저어 깊은 데로 가라 망망한 바다로.”

참 좋은 가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은 강에 비유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깊은 강을 경험하지 못하고 항상 얕은 물가에 서 있습니다. 깊은 은혜의 강으로 들어갈 생각을 못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찬송가 가사를 보면서, 기도생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도의 세계는 밑을 알 수 없는 깊은 강과 같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도의 깊은 강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늘 얕은 물가에서 찰싹 거리는 작은 파도를 보면서 걱정하고 불안해 합니다. 기도의 깊은 강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This is how you should pray. Our father in heaven......” 이렇게 기도를 시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고 따라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름으로써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인격적인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벌써 오래 전입니다만, 제가 중국에서 단기선교를 마치고 대원들과 함께 중국의 재래시장을 구경했습니다. 신기한 것들이 많이 있었고, 먹을 것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왔는지 ‘꽃제비들’이 나타나서 저를 보고 “큰아버지, 큰아버지, 돈 좀 주세요!” 그러면서 따라옵니다. 전혀 모르는 아이들 저를 보고 ‘큰아버지’라고 부르니까 어색하고 불편합니다. “나 알아? 내가 왜 너의 큰아버지야?”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나와 전혀 관계가 없는 아이들이 갑자기 어디서 나타나서 나를 ‘큰아버지’라고 부르니까 어색하고 불편했습니다. 그러다가 단속반이 눈에 띄면 순식간에 어디론가 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관계를 설정할 수 있는 길을 이렇게 제시합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이라고 말하는 사람 모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만이 하늘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마태복음 7:21)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베풀지 않았습니까?’ 그 때, 내가 분명하게 그들에게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모른다. 악한 일을 행하는 자들아, 나에게서 썩 물러나라.’” (마태복음 7:22-23) 예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일들을 버젓이 행하면서 어떻게 ‘주님, 주님’ 이렇게 부를 수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난 너희들을 모른다. 불법을 행한 자들아!”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없습니다.

왜 우리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기도를 시작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기도의 깊은 강으로 들어갈 수 있고, 그래야 나머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보세요. 왜 우리가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니까 그렇게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분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억지로 부를 수야 있겠지만 어색합니다.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마치 한번도 본적이 없는 ‘꽃제비들’이 저를 ‘큰아버지’라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과 관계가 설정되지 않았고,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는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 안 되는 것입니까? 원칙적으로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 안 됩니다. 교회에 나온 지 오래 되었어도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 안 됩니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바꾸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각들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일들을 작은 일부터 시작하면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 말을 가볍게 듣지 마십시오.

지난 주에 빌립보서 4장 말씀을 가지고 기도에 대한 설교를 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너희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 말씀을 아직도 기억하고 계시지요? 그때 꼭 하고 싶었는데, 못한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그 뒤에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형제 여러분, 선함을 추구하며 가치가 있는 것들에 마음을 쏟기 바랍니다. 참되고, 고상하고, 옳고, 순결하며, 아름답고, 존경할 만한 것들을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이 나에게서 배운 것과 받은 것들을 행동으로 옮기십시오. 그러면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4:8-9)

이런 생각을 해 보셨습니까? 바울은 왜 기도에 대한 말씀 끝에 이 말씀을 기록했을까요? 바울은 기도자들이 이런 것들로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에 나오는 것들을 한번 보십시오. 모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것들입니다. 바울은 기도하는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이런 것들을 추구하고, 이런 것들을 실천하면서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설정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한번 보세요. “You can be sure of this. The LORD set apart the godly for himself. The LORD will answer when I call to him. Don't sin by letting anger control you. When you are on your beds, search your hearts and be silent (Interlude) Offer sacrifices in the right spirit, and trust the LORD.” (시편 4:3-4) 조용히 잠자리에 누워서 자기 자신을 반성해 보라고 하지 않습니까? 기도하는 사람이 이렇게 자기 자신을 성찰하지 않으면 기도의 응답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이 있어야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쓴 유명한 시편 15편에서도 같은 뜻을 읽을 수 있습니다. “Who may worship in your sanctuary, LORD? Who may enter your presence on your holy hill? Those who lead blameless lives and do what is right, speaking the truth from sincere hearts.” (시편 15:1-2)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예배드릴 자격이 있습니까? 누가 하나님의 임재 속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그의 삶이 올바른 사람, 진실한 마음으로 진리를 말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예배 드릴 자격이 있고,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갑니다.

꼭 읽어야 할 말씀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서 예물을 드릴 때, 네 형제가 너에게 나쁜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제단에 예물을 놓아 두고, 가서 먼저 네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후에 다시 와서 예물을 바쳐라.” (마태복음 5:23-24) 주변 사람들을 억울하게 하고,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께 찬송을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 찬송을 들으시겠습니까? “난 너를 모른다. 불법을 행하는 사람아!”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겠습니까? 먼저 그 사람과 화해를 해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렇게 기도할 자격이 주어집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한 단계 upgrade되고, 기도의 깊은 강을 경험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번 사순절 기간을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축복의 기간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것들을 끊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기도의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