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4:36-37

36 믿는 사람 중에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도들은 그 사람을 바나바라고 불렀습니다. 바나바란 이름의 뜻은 '격려하는 사람'입니다. 바나바는 키프로스에서 태어난 레위 지파 사람입니다.

37 요셉이 자기의 밭을 팔아 그 돈을 사도들의 발 앞에 갖다 놓았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바나바는,

1. 별명이 위로자입니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사도행전 4:36)

별명(別名, nickname)에 대하여
신앙인으로 좋은 별명을 갖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열심히 그렇게 살았기에 얻은 별명도 있고, 그렇게 살라고 지어준 별명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시몬은 성질이 급하고 과격하여 변덕을 부릴까 봐서 예수님은 그에게 베드로 (바위)라는 별명을 지어 주십니다. 천년 억겁에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교회의 초석이 되라고 말입니다. 야곱은 얍복강 가에서 천사와 씨름하다가 하나님께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별명을 얻습니다. 사람 발목 잡던 사람이 이젠 하나님께 붙잡혀 살라고, 하나님과 씨름하라고, 사람에서 하나님으로 삶의 방향을 전환하라고, 그런 별명을 주신 것입니다.

바나바의 원래 이름은 요셉인데, 레위 족속이니까 제사장 가문입니다. 성전에서 제사장으로 혹은 찬양대로 섬기던 족속이죠. 그의 출생지는 키프러스 (Cyprus) 섬입니다. 현재는 터키가 섬의 북쪽 절반을 점령하여 분단된 국가가 되었습니다.

사도들이 그에게 바나바 (Barnabas)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습니다. (Barnabas, which means "one who encourages others") 영어 성경에는 남을 격려하는 사람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위로자도 좋지만 격려자가 더 좋은 번역입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복된 별명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런 복된 별명을 얻으시길 축원합니다.

 

2. 헌신적인 사람입니다.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사도행전 4: 37)

바나바는 하나님을 위해서, 교회공동체를 위해서 재물이 아깝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신앙의 기초를 세우는데 헌신의 모범을 보인 인물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주님의 말씀에 비추어보면, 우리는 모두 재물을 헌납하는데 많이 망설이게 됩니다. (마태복음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오늘날 가장 큰 우상 하나님을 섬기는데 가장 큰 장애물은 재물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과 교회를 위하여 자기의 전 재산인 밭을 아깝게 여기지 않고 팔아서 교회 사도들의 앞에 가져왔습니다.

 

3. 사람을 아끼고 일군을 세우는 사람입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사도행전 9:26-27)

회심하기 전 청년 사울은 교회에게 공포와 기피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아주 무서운 박해자요 폭력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회심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하니까 모두 마음 속으로 접근 금지라는 방어벽을 치고 두려워하고 믿지를 못하고 꺼려했습니다. 그때 바나바는 예루살렘교회의 제자들에게 그를 대변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남의 대변자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도 아주 악한 과거가 있는 사람을 “변화되었으니 이제 그 사람을 믿으십시오. 함께 합시다” 라고 사귐을 권면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사울의 회심을 진심으로 믿었고, 그의 진심을 제자들에게 소개함으로 사도 바울을 교회의 일원이 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의 가장 위대한 사역을 감당한 사도로 쓰임 받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고 일군을 길러 내야 합니다. 특별히 조만식 장로님 같은 분은 자기의 제자에게 꾸중을 듣고도 오히려 담임목사의 말에 순종하여 예배가 끝날 때까지 서서 예배를 드림으로 겸손한 섬김의 귀감이 되셨습니다. 오산학교 제자인 젊은 담임목사가 예배시간에 좀 늦었기로서니 연로하신 장로님에게 “그 자리에 서서 예배 드리시오” 라고 했다면, 그 목사는 교회에서 쫓겨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젊은 목사가 건방지게, 그것도 제자가 스승에게 함부로 말을 했다고 말입니다.

 

4. 화해자입니다.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사도행전 15:37-38)

마가라는 요한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가 서로 심히 다투었다고 39절에 기록되었습니다. 마가라는 요한은 밤빌리아에서 힘들다고 사역을 팽개치고 돌아갔습니다. 그런 사람은 일꾼으로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 바울과, 다시 한번 기회를 주자는 바나바가 다투다가 결국 바울은 실라를 택하여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가고, 바나바는 마가라는 요한을 데리고 키프로스로 갑니다. 칼같은 성격의 소유자인 바울의 눈에 마가라는 요한은 복음 사역의 동역자로서 낙제였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젊은 나이의 마가에게 실수를 감싸주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결국 바울은 디모데후서 4:11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바울도 종당에는 마가가 자기 일에 유익한 동역자임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것은 바나바의 관용의 마음과 넓은 마음이 일군을 세우고 악화된 관계를 회복시키는 화해자의 삶을 살게 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이 가시는 곳마다 분열과 갈등이 잠잠해지고, 화해하고, 화목하고, 평화로운 교회가 되시기를 간절하게 소망합니다.

이왕에 주님을 섬길 것이면, 이왕에 주님께 충성할 것이면, 바나바처럼 섬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