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1편

1 내가 눈을 들어 산들을 바라봅니다. 나의 도움이 어디에서 옵니까? 2 나의 도움은 여호와로부터 옵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신 그분으로부터 옵니다. 3 여호와께서 여러분의 발이 미끄러지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을 지켜 주시는 그분은 졸지 않으십니다. 4 정말로 이스라엘을 지켜 주시는 그분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습니다. 5 여호와는 여러분을 지켜 주십니다. 여호와는 여러분의 오른편에 있는 그늘이십니다. 6 낮에 태양이 여러분을 해하지 못하며, 밤에 달이 여러분을 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7 여호와는 여러분을 모든 재앙으로부터 지켜 주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생명을 보호하십니다. 8 여호와는 여러분을 어디서나 지키십니다. 지금부터 영원토록 지키십니다. (쉬운성경)

1 [A song for pilgrims ascending to Jerusalem.] I look up to the mountains - does my help come from there? 2 My help comes from the Lord, who made heaven and earth! 3 He will not let you stumble; the one who watches over you will not slumber. 4 Indeed, he who watches over Israel never slumbers or sleeps. 5 The Lord himself watches over you! The Lord stands beside you as your protective shade. 6 The sun will not harm you by day, nor the moon at night. 7 The Lord keeps you from all harm and watches over your life. 8 The Lord keeps watch over you as you come and go, both now and forever. (New Living Translation)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어려운 시간이 당분간 계속될 것 같습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한국의 상황이 상당히 좋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 총선도 잘 끝났고요. 그래도 다시 재발하는 일 없이 이 상황이 잘 마무리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있는 매사추세츠 주는 미국에서도 확진자 수가 상위 다섯 개 주에 드는 주입니다. 인접한 뉴욕이 가장 상황이 안 좋고요. 인접한 코네티컷 주도 상황이 많이 안 좋습니다. 로칼 뉴스 중에 염두에 둬야 할 소식이 있는데요. 확진자 수가 많은 10개 타운을 발표했는데요. 지금 우리가 외출을 자제하고 있습니다만, 조심해야 할 뉴스라고 생각합니다. 1위가 Chelsea, 2위 Brockton, 3위 Randolph, 4위 Williamstown, 5위 Lawrence, 6위 Everett, 7위 Longmeadow, 8위 Braintree, 9위 Revere, 10위 Norwood입니다. 우리 FKCC 교우 여러분들, 무사하게 이 사태를 잘 이겨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가장 피해를 많이 본 나라들이 미국과 유럽에 있는 나라들입니다.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영국 같은 나라들입니다. 각 나라마다 이 사태를 극복하려는 처절한 노력들을 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앙겔라 메르켈 (Angela Merkel) 독일 총리가 아시아 유럽 정상회의 (ASEM, The Asia-Europe Meeting)에서 우리가 서로 연대하여 현재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하면서 한자로 ‘위기’라는 말을 설명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위기’를 한자로 ‘危機’라고 쓰거든요? ‘危’ 자는 위태하다는 뜻이고, ‘機’자는 어떤 일의 ‘실마리’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위기’라는 말에 위험과 기회가 같이 공존하고 있다는 뜻이 있습니다. ‘위’자는 영어로 하면 ‘danger’이고 ‘기’자는 ‘opportunity’입니다. 지금의 상황을 잘 대처해 나간다면, 이것이 우리 모두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진정이 되면 리더십 문제가 크게 대두될 것이라고 합니다. 같은 상황을 맞이했지만 현명하고 지혜롭게 위기를 잘 대처해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리더십과 사태를 가볍게 보고 방관하다가 나중에 가서 겉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지는 무책임한 리더십이 구별될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상황은 분명히 모든 사람들에게 ‘위기’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상황이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줍니다. 저는 우리 FKCC 교우 여러분들에게 이번 사태가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냥 막연하게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지금의 상황이 나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믿고 뭔가 계획을 세우고 시도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위기는 그냥 위기일 뿐 절대로 기회가 되지 않습니다. ‘위기’라는 말을 길게 설명하지 않았습니다만, ‘위(危)’자는 사람이 높은 낭떠러지 끝에 앉아 있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기(機)’자는 방아쇠 뭉치를 글자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총알이 발사되고, 화살이 발사됩니다. 화살이 발사되어 어떻게 되었는지 그 마음 단계가 매우 궁금하지 않습니까? 벼랑 끝에 매달린 사람이 화살을 발사했습니다. 이것이 이 사람에게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읽은 시편 121편은 우리에게 친숙한 시편입니다. 저자는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 시편의 용도는 ‘A song for pilgrims ascending to Jerusalem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순례자들이 부르는 노래)’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러 가면서 이 노래를 부르며 갔습니다. 그 광경이 머리에 그려지시나요? 순례자들이 집을 떠난 예루살렘까지 먼 길을 갑니다. 어깨에 제물로 드릴 어린양을 메고 갑니다. 가면서 이 시편 121편을 노래로 부르는 것입니다. “내가 눈을 들어 산들을 바라봅니다. 나의 도움이 어디에서 옵니까? 나의 도움은 여호와로부터 옵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신 그분에게서 옵니다.” 길을 가다가 다른 순례자들을 만납니다. 그러면 또 같이 이 노래를 부르면서 예루살렘까지 순례의 길을 갑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예배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배의 본질(本質)은 연약한 인간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그 분의 뜻이 무엇인지 묻고, 그리고 그 분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의 본질입니다. 연약한 인간이 그 생명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 (St. Augustine, B. C. 354-430)은 그가 쓴 ‘고백록 (Confesssion)’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위해 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 평안하지 않습니다 (You have made us for yourself, O Lord, and our heart is restless until it finds its rest in you).” 어거스틴은 이 고백 속에서 예배란 하나님을 찾는 인간의 본능적인 행위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약한 존재입니다. 강한 것 같지만, 인간은 모두 연약합니다. 지금 코로나바이러스가 이 사실을 우리에게 확인 시켜주고 있습니다. 불안하고 답답합니다. 학교도 그렇고, 취직도 그렇고, 비지니스는 말할 것도 없고요. 정상적인 활동들이 모두 중단되고 평소에 하던 활동이 제한되었습니다. 친한 친구들을 전처럼 만날 수도 없습니다. 여행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되던 일들이 틀리는 경우가 생깁니다. 윌리엄스타운 (Williamstown) 같은 곳은 매사추세츠 서쪽 끝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입니다.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시골 마을에 감염자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처음에는 당황합니다. 기사를 찾아 봤더니 그곳에 양로원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거기서 집단적으로 감염자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21세기에 이렇게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달한 미국에서, 또 유럽의 선진국에서 오히려 사망자가 더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 시편 말씀이 우리에게 새롭게 들리지 않습니까?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Where does my help come from)?” 저는 목사로서 이런 상황을 주시하면서 이번 사태로 말미암아 사람들 마음 속에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는 마음들이 더 많이 생겼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런 사태를 맞이하면서 사람들 마음 속에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회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준 선물입니다.

시편 121편을 쓴 사미스트는 “내가 눈을 들어 산들을 바라봅니다. 나의 도움이 어디에서 옵니까?” 이렇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눈을 들어 산을 본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이상하게도 사람들에게 산을 숭배하는 문화나 전통이 있습니다. 인종을 초월해서요. 한국의 삼각산(三角山)이란 산이 있습니다. 그곳에 수많은 예배처들이 있습니다. 기독교적인 것들도 있고, 불교적인 것도 있고, 온갖 잡신을 섬기는 예배 장소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예외가 아닙니다. 요한복음 4장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으나, 유대인들은 예배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예루살렘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말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이여, 나를 믿으시오. 이 산에서도 아니고, 예루살렘에서도 아닌, 당신네들이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올 것이오.” (요한복음 4:21) 이 사마리아 여자가 말하는 산은 사마리아 땅에 있는 ‘그리심산 (Gerizim Mount)’이라고 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산’에 예배 장소를 만들고 거기서 예배를 드리도록 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도 ‘시온산 (Zion Mount)’이 있고, ‘성전산 (Temple Mount)’이 있고, ‘감람산 (Ol-ive Mount)’이 있습니다. ‘시온산’에 다윗성이 있어서 사람들이 그 산을 신성시합니다. ‘성전산’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쳤던 ‘모리아산 (Moria Mount)’과 같은 산이라고 하는데요. 이 산에 예루살렘 성전이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시편 121편을 쓴 사미스트는 나의 도움이 산에서 온다는 사실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좀 더 폭넓게 해석한다면, 이 사미스트는 심지어 성전이 있는 ‘성전산’에서 나의 도움이 온다는 사실도 부정하고, 나의 도움은 오직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선언합니다. 그의 이 선언이 참 경이롭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어느 장소에 계시는 하나님으로 제한하지 않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 불가능한 것이 없으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이 하나님을 ‘엘 샤다이 (El Shaddai)’라고 불렀습니다. 시편 121편을 쓴 사미스트는 ‘엘 샤다이’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어느 한 곳에 계시는 하나님으로 제한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을 예루살렘 성전으로 국한하는 것을 거부하시면서 “이 산에서도 아니고, 예루살렘에서도 아닌, 사람들이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올 것이오 (요한복음 4:21, 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제가 이제 중요한 질문을 하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배 장소를 부정하셨고, 사미스트도 예배 장소를 부정하면서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로 온다고 선언했습니다. 예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들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도움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속에 그 어느 것도 개입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장소, 시간, 또는 환경, 이런 것들이 개입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하시고,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도움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어떤 도움을 주시는지 한번 보실까요? 첫째로, 하나님은 우리 발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십니다 (3절). 하나님은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우리를 지켜 주신다고 했습니다. 둘째로, 그 하나님은 낮에는 해가, 밤에는 달이 우리를 해치지 못하도록 지켜 주십니다 (6절). ‘낮의 해’라는 말은 한낮의 뜨거운 더위를 말합니다. ‘밤의 달’이라는 말은 밤의 추위를 말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유목민들에게는 더위와 추위가 생명과 관계될 만큼 큰 걱정거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재앙으로부터 우리의 생명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7절). 

이 세가지 하나님의 도움에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세가지는 모두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들입니다. 아무 대책 없이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한 낮의 더위와 밤중의 추위를 내가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재앙도 나의 힘으로 막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것이 ‘환난 (tribulation)’이고, ‘재앙 (harm)’이고 ‘재난 (disasters)’이고, ‘위험 (dangers)’입니다. 

여러분, 지금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이렇게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우리가 조심한다고 코로나바이러스의 공격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조심한다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부터 감염되지 않도록 우리를 보호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이 하나님을 모르고 우상숭배에 빠져 사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설교했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온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님이십니다. 그는 사람이 만든 신전에 계시지 않습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고 계십니다 (God made the world and everything in it. Since he is Lord of heaven and earth, he doesn't live in man-made temples, He himself gives life and breath to everything, and he satisfies every need, 사도행전 17:24-25)

여러분! 지금 ‘하나님의 도움 (help from)’은 우리가 알든지 모르든지, 마치 우리가 자연스럽게 코로 숨을 쉬듯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지금 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우리의 마땅한 반응은 감사입니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감사의 마음을 회복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