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0:25-31

25 거룩하신 분, 곧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겠느냐? 누구를 나와 견줄 수 있겠느냐?” 26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아라. 누가 이것들을 창조하였느냐? 그분께서 모든 별들을 하나씩 이끌어 내시며 각각 그 이름대로 부르신다. 그분은 매우 강하시고 능력이 많으셔서 그 이름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신다. 27 야곱 백성아, 너희가 어찌하여 불평하느냐? 이스라엘 백성아, 어찌하여 말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나의 어려움을 모르고 계신다. 내 하나님께서는 나의 간절한 부르짖음을 무시하신다”라고 하느냐? 28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여호와께서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며, 온 세계를 창조하신 분이다. 주께서는 지치지도 않으시고 피곤해하지도 않으신다. 아무도 주의 크신 지혜를 알지 못한다. 29 여호와께서 지친 사람에게 힘을 주시며, 약한 사람에게 능력을 넘치도록 주신다. 30 아이라도 지치고 피곤해하며 젊은이라도 넘어지고 쓰러지지만, 31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며, 독수리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듯 올라갈 수 있다. 그러한 사람은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쉬운성경)

25 “To whom will you compare me? Who is my equal?” asks the Holy One. 26 Look up into the heavens. Who created all the stars? He brings them out like an army, one after another, calling each by its name. Because of his great power and incomparable strength, not a single one is missing. 27 O Jacob, how can you say the Lord does not see your troubles? O Israel, how can you say God ignores your rights? 28 Have you never heard? Have you never understood? The Lord is the everlasting God, the Creator of all the earth. He never grows weak or weary. No one can measure the depths of his understanding. 29 He gives power to the weak and strength to the powerless. 30 Even youths will become weak and tired, and young men will fall in exhaustion. 31 But those who trust in the Lord will find new strength. They will soar high on wings like eagles. They will run and not grow weary. They will walk and not faint.

오늘은 어버이주일과 졸업예배를 같이 드리는 주일입니다. 이번에 우리교회 졸업생들이 모두 47명입니다. 대학을 졸업하는 학사가 19명, 석사가 15명, 박사가 13명입니다. 예전에는 졸업생들을 격려할 때 “형설의 공을 쌓았다”는 말을 했습니다. ‘형설의 공(螢雪之功)’이라는 말은 ‘반딧불’과 ‘눈’으로 책을 읽는 노력을 했다는 말입니다. 예전 가난했던 시절에는 촛불이나 석유 등을 마음대로 켤 수 없어서 밤에는 일찍 불을 끄고 잤습니다. 책을 읽고 싶어도 깜깜해서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환경에서도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은 여름에는 ‘반딧불이 (firefly)’를 잡아서 수건에 싸서 그 빛으로 책을 잃었고, 겨울에는 방문을 열고 ‘눈 빛’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반딧불이’ 한 마리가 3 룩스 (lux)의 빛을 낸다고 합니다. 책을 잃으려면 적어도 ‘반딧불이’를 150마리는 잡아야 한다고 하네요. 이렇게 공부해서 학교를 마치고 졸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형설의 공을 쌓았다’라고 격려해 주곤 했습니다.

오늘 졸업하는 여러분들은 당연한 말이지만, 먼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고, 부모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 혼자의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시인 루드야드 키플링 (Joseph Rudyard Kipling, 1865-1936)은 ‘나의 어머니 (Mother o’ Mine)’라는 시에서 어머니를 사랑과 눈물과 기도, 세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내가 어떤 극한 상황에 있어도 나에게 흘러 온다고 했고, 어머니의 눈물은 내가 깊은 바다에 빠져도 나에게 흘러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기도는 내 몸과 영이 저주를 받는다고 해도 나를 구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어머니를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God could not be everywhere , and therefore he made mothers (하나님은 어디나 계실 수 없기 때문에 어머니를 만드셨다).” 

부모에 대한 자식의 도리(道理)를 ‘효도(孝道)’라고 합니다. 여러분 한자로 ‘효’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세요? 나이 많아 노인이 되신 부모님을 자식이 밑에서 떠받치는 모양입니다. 공자는 효도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父母唯其疾之憂(부모유기질지우)”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부모는 그저 (자식이) 병들까 걱정할 따름이라네.” 많은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은 부모에게 무슨 좋은 것을 사 드리면 그것에 효도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자는 진정한 효도는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의미를 조금 더 확장해서 오늘 우리에게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부모님에게 해 드릴 수 있는 최고의 효도는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도록 우리가 훌륭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크리스천이시라면, 우리가 부모님에게 해 드릴 수 있는 최고의 효도는 우리가 훌륭한 크리스천으로 사는 것입니다.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것을 이웃과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고, 교만한 마음이 아니라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섬길 줄 알고, 어려움이 있어도 좌절하지 않고 믿음으로 이겨나가고,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 다른 사람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면, 그것이 부모에게 드리는 최고의 효도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 읽은 이사야 40장 본문 말씀을 보실까요?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로니아에서 포로생활 하던 당시의 삶의 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체성 (identity)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맞는가?”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우리가 포로생활을 하도록 내버려 두시는가?”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성전이 무너졌을까?” 이런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까지 ‘Covid-19’으로 죽은 사람이 277,061명입니다. 미국은 78,335이고요.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도록 내버려 두실까?”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일까?” 우리의 질문은 이렇게 계속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상황에서 예언자를 일으키십니다. 신학자들은 이 예언자를 ‘제 2 이사야’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하나님은 이 예언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겠느냐? 누구를 나와 비교할 수 있겠느냐?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아라. 누가 이것들을 창조하였느냐?” (25-26절) “‘왜 너희는 여호와께서는 나의 어려움을 모르고 계신다. 내 하나님께서는 나의 간절한 부르짖음을 무시하신다’라고 하느냐 (How can you say the Lord does not see your troubles? How can you say God ignores your rights)?” (27절) “아무도 주의 크신 지혜를 알지 못한다 (No one can measure the depths of his understanding).” (28절)

로버트 피어리 (Robert Edwin Peary, 1856-1920)라는 미국의 탐험가가 1909년에 개썰매를타고 북극점에 도착합니다. 피어리는 북극의 날씨를 측량하고 북극해의 깊이를 재고 싶었습니다. 30시간이나 두꺼운 얼음을 깨고 줄에 무거운 추를 달아내렸습니다. 북극해의 깊이는 생각보다 훨씬 깊었습니다. 피어리는 날마다 줄을 더 이어가면서 깊이를 쟀지만 줄은 바닥에 닿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기에 “북극해의 깊이는 이보다 더 깊었다”라는 식으로 기록했습니다. 훗날 첨단 장비로 재 보았더니 북극해의 깊이는 최고 4,087m나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 하나님의 지혜의 깊이는 아무도 측량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똑 같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How unsearchable and unfathomable is the depth of the riches of the wisdom of God!” (로마서 11:33) 하나님의 지혜는 깊은 바다와 같아서 바닥을 알 수 없어 측량을 할 수 없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제가 올해 졸업생들에게 일일이 축하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에 잠언 3:5-6 말씀을 썼습니다. “Trust in the Lord with all your heart; do not depend on your own understanding. Seek his will in all you do, and he will show you which path to take (네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신뢰해야 한다. 네 자신의 지혜를 의지해서는 안 된다. 네가 하는 모든 일 속에서 주님의 길을 찾도록 해라. 그리하면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할지 주님이 보여 주실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을 교만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Pride goes before destruction (교만은 멸망의 앞잡이다).” (잠언 16:18, 18:12) 교만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간성이 겸손한 성품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혼란하고, 미래가 불확실합니다. 나의 정체성이 흔들립니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오늘 우리가 느끼는 혼란을 겪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너희는 왜 하나님은 나의 어려움을 모르신다고, 하나님은 나의 간절한 부르짖음을 듣지 않으신다고 생각하느냐? 너희 중 아무도 나의 지혜가 얼마나 깊은지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지금 당장에는 알 수 없지만, 지금도 하나님은 계획하신 대로 일하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영화 ‘기생충’의 대사 중에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영화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기택 (송강호)은 가짜 재학 증명서를 들고 과외 알바를 하러 가는 기우 (최우식)를 보면서 대견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합니다. “아들아, 역시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아무리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렵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암울한 현실이라고 해도 하나님은 다 계획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쎄서 우리를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 이유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 매우 소중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모든 별들을 하나씩 이끌어 내시며 각각 그 이름대로 부르신다. 그분은 매우 강하시고 능력이 많으셔서 그 이름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신다 (26절)”고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별보다 훨씬 더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여러분을 잊으시는 일이 없습니다. 이 말씀을 한번 보십시오. “Behold, I have in-scribed you on the palms of My hands; Your walls are continually before Me.” (이사야 49:16) “내가 너를 손바닥에 새겼다”는 것은 나의 이름뿐만 아니라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Your walls are continually before Me”라는 말씀이 바로 이런 뜻입니다. ‘walls’는 무너진 성벽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너진 성벽은 정말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느헤미야 같은 사람은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으려고 귀국을 결심하지 않았습니까?

챨스 스펄전 (Charles Spurgeon, 1834-1892, 영국)은 ‘설교자의 왕자 (The Prince of Preachers)’라는 별명을 가진 유명한 목사입니다. 그는 매우 절망적인 청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독실한 청교도 신앙을 부모님으로부터 물려 받은 그는 존 번연 (John Bunyan, 1628-1688, 영국)이 쓴 ‘천로역정 (The Pilgrim's Progress)’을 100번도 넘게 읽었다고 합니다. 그는 구원의 확신을 얻기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고, 열심히 성경을 읽었지만 구원에 대한 해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가지려고 노력해 보았고, 자녀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특권이 있다고 생각도 해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절망적인 시간을 보내던 스펄전에게 하나님께서 정하신 결정적인 날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1850년 1월 6일, 그 날 아침에 눈이 너무 와서 모든 길이 막혔습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평소에 나가던 교회를 가지 못하고 집에서 가까운 작은 감리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예배당에는 이십 명이 채 못되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눈이 많이 와서 목사도 오지 않았습니다. 예배 시간이 되자 한 초라한 옷을 입은 사람이 강단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가 읽은 본문 말씀은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바라보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Look to me, and be saved, all the ends of the earth) (이사야 45:22)”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매우 간단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바라보는 일은 결코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고 자기 자신들만 바라봅니다.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지금 당장 바라보십시오. 어떤 이는 성령이 역사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럴 필요 없습니다. 지금 당장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여기까지 말하고 난 이 사람은 강당 바로 밑에 앉아 있던 스펄젼을 바라보았다. 그는 스펄젼을 향해, “당신이 이 성경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일생 동안 힘든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성경 말씀에 순종하면 당신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청년이여, 그리스도를 바라보시오! 지금 바라보시오!” 스펄젼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그리스도를 바라보았습니다. 스펄젼은 그 순간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순간 나의 가슴에 꽉 차 있던 구름이 걷히고, 내 영혼에 구원의 빛이 비치었다. 아! 나는 진실로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지고 왔던 죄의 무거운 짐이 나의 어깨 위에서 굴러 떨어지는 순간, 나는 존 번연이 넓은 대지 위에서 어린아이처럼 마음껏 환호성을 지르고 싶다고 외쳤던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여러분, 오늘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이 어떤 환경에서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말은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희망을 둔다는 말입니다. 나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말입니다. 2,500년 전에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절망적인 청년 시절을 보냈던 스펄전도 새 힘을 얻었고, 새로운 기회을 얻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목사로서 여러분의 앞날을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앞날이 평탄하기를 소망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앞날에 어떤 일이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때로는 어렵고 힘든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때로는 절망스러운 상황에 빠지기도 할 것입니다. 때로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당황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새 힘을 주십니다. 그러면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여러분의 가슴에 새겨 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며, 독수리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듯 올라갈 수 있다. 그러한 사람은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But those who trust in the Lord will find new strength. They will soar high on wings like eagles. They will run and not grow weary. They will walk and not faint).” (3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