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4:15-18

15 이 모든 일은 다 여러분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르러 감사가 넘치게 되고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점점 낡아지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17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가벼운 환난은 장차 우리가 받게 될 영원하고 한량없이 큰 영광을 가져다 줍니다. 18 우리는 보이는 것들에 시선을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에 시선을 고정합니다. 이는 보이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쉬운성경)

15 All of this is for your benefit. And as God’s grace reaches more and more people, there will be great thanksgiving, and God will receive more and more glory. 16 That is why we never give up. Though our bodies are dying, our spirits are① being renewed every day. / ①Greek our inner being is 17 For our present troubles are small and won’t last very long. Yet they produce for us a glory that vastly outweighs them and will last forever! 18 So we don’t look at the troubles we can see now; rather, we fix our gaze on things that cannot be seen. For the things we see now will soon be gone, but the things we cannot see will last forever. (New Living Translation)

1941년 10월 29일, 당시 영국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 (Winston Churchill, 1874-1965)이 모교인 해로우학교(Harrow School)에서 연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처칠은 가까스로 연설 시간에 맞춰서 도착했습니다. 단상에 올라 간 처칠은 모자를 벗고 한참이나 학생들을 말없이 바라보았습니다. 학생들은 처칠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처칠은 조산아로 태어나 말을 더듬었습니다. 공부에 뛰어나지 못했던 처칠은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 (Royal Military College, Sandhurst)에 입학했습니다. 그 후 정계에 진출하여 하원의원이 되어 통상장관, 재무장관, 해군장관을 거친 후 영국의 수상이 되었습니다. 그런 처칠이 모교를 방문하여 연설을 하게 되었으니 모두들 감동적인 연설을 기대했습니다. 처칠이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주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포기하시 마세요.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간에 좋은 뜻으로나 영예로운 확신을 가지고 포기하는 것 말고는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강압적인 힘이나 또는 적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절대로 굴복하지 마세요 (This is the lesson: Never give in, never give in, never, never, never, never-in nothing, great or small, large or petty-never give in except to convictions of honour and good sense. Never yield to force; never yield to the apparently overwhelming might of the enemy).” 이 말을 하고 처칠은 벗었던 모자를 집어 쓰고 퇴장했습니다. 졸업생들의 박수 갈채가 한참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처칠은 1940-1945년까지, 그리고 1951-1955년까지 두 차례 영국 수상을 지냅니다. 제 2차세계대전이 1939년에 일어났잖아요? 1940년 처칠은 영국 의회에서 이런 연설을 했습니다. “내가 바칠 수 있는 것은 피와 수고와 눈물과 땀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가장 호된 시련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랜 기간 동안 고난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I have nothing to offer but blood, toil, tears, and sweat. We have before us an ordeal of the most grievous kind. We have before us many, many long months of struggle and of suffering).” 이 연설은 지금까지 명 연설로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처칠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처칠의 연설에 “Never give in (포기하지 마세요)”이라는 말이 나오고, 오늘 읽은 고린도후서 4장 본문 말씀에도 “That is why we never give up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16절)”이라는 말씀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제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처칠이 무슨 생각으로 “Never give in”이라는 말을 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어린 학생들에게 한번 뜻을 세웠으면 어떤 시련이 와도 포기하지 말고 뜻을 이루어 나가라는 뜻으로 그 말을 했을까요? 아니면, 지금 전쟁 중인데, 연합군이 세력이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합심해서 싸우고 있으니, 너희들도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불의한 세력에 지지 말고 싸워야 한다고 역설한 것일까요? 아마도 처칠은 그런 뜻으로 연설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은 무슨 뜻으로 “바로 이것이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편지를 썼을까요? 바울의 의도를 알기 위해서 먼저 15절에 나오는 “이 모든 일은 여러분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All of this is for your benefit)”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이 모든 일’이 무슨 일인지 알려면 오늘 본문 말씀 앞에 나오는 말씀을 읽어봐야 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들이 받는 고난의 삶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사방에서 압박을 받아도 눌리지 않으며, 난처한 일에 빠져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핍박을 당해도 버림을 받지 아니하고, 매를 맞아 넘어져도 망하지 않습니다.” (8-9절)

여러분, 지금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을 잘 읽어야 합니다. 지금 바울은 자신의 고난의 삶에 대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전도자들이 이런 고난을 받고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해서 그들이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자신이 받고 있는 고난의 삶에 대한 의미를 해석하고 있습니다.

몇 주 전 설교에서 빅터 프랭클 (Victor E. Frankl, 1905-1997, 오스트리아)이 쓴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에 대하여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빅터 프랭클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In some ways suffering ceases to be suffering at the moment it finds a meaning such as the meaning of a sacrifice (고난이 의미 있는 고난으로 다가올 때, 예를 들면 고난이 희생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발견될 때는, 고난이 멈추는 때가 있습니다).” 프랭클의 이 말이 오늘 말씀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영국의 프로 축구 프리미어 리그 ‘토트넘 (Tottenham)’에 손흥민이라는 한국 선수가 있습니다. 지금 손흥민이 하도 잘하니까 언론들이 “손흥민은 가장 저 평가된 선수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손흥민 선수가 잘 하지만 그렇게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손흥민은 감독 말을 잘 듣습니다. 그리고 성실합니다. 사고를 치지 않고, 스캔달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오히려 손흥민을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저 평가된 두 그룹이 있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들과 청년부 간사들입니다. 청년 시절에 주일학교 교사로 성실하게 봉사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교사들이 수고 많이 하는 줄은 알지만 그렇다고 교사들을 주목하지는 않습니다. 교사들처럼 청년부 간사들도 교회 안에서 저 평가된 사람들입니다. 간사직이 얼마나 중요하고 간사들이 얼마나 수고를 많이 하느냐고 하고 말하면 다들 그렇다고 수긍합니다. 하지만 금방 잊어버리고 간사들의 수고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청년부 간사로 섬기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청년들에게 성경 말씀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상담도 해야 하고, 때로 팀원들 중에 연주회가 있거나 축하할 일이 있으면 챙겨줘야 하고, 팀원들에게 마음을 써야 하고 시간을 내야 합니다.

이 외에도 교회 안에 수고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성가대원들도 그렇고, 오케스트라 대원들도 그렇고요. 목회부, 미디어부원들도 수고를 많이 합니다. 힘들게 일을 하다 보면 당장 하는 일을 그만 두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지금 자기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하고 있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해석을 해 보면 큰 도움이 됩니다. 사도 바울과 전도자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왜 내가 이런 고난을 받아야 하지? 다른 사람들처럼 가정으로 돌아가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데, 왜 내가 이런 고난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하지?” 실제로 성경에 보면 이런 생각을 하다가 다 집어치우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자기가 지금 처해 있는 힘든 상황만 보면 해결책이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이 상황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해석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해석을 할 때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중요합니다. 이 가치관에 의해서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해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성경적인 가치관 (the biblical values)’ 혹은 ‘크리스천 가치관 (the Christian values)’이 마음 중심에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누가 ‘크리스천의 가치관’ 리스트를 만든 것이 있어서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1. Show love (사랑을 보여라) 2. Find joy in the chaos (혼란 속에서 기쁨을 찾으라) 3. Seek peace (평화를 추구하라) 4. Be patient (인내하라) 5. Be kind (친절하라) 6. Be good (사람들을 선하게 대하라) 7. Be faithful (성실하라) 8. Be gentle (온유하라) 9. Have self-control (절제하라) 10. Be thankful (감사하라) 11. Be humble (겸손하라) 12. Serve others (다른 사람들을 섬기라) 이 리스트가 새롭게 보이나요? 제 눈에는 전혀 새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1번-9번까지는 갈라디아서 5:22-23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이고요. 10번-12번은 여기에 제가 3개를 더 추가한 것입니다. 크리스천이라면 이런 가치들이 마음의 중심에 자리잡아야 합니다. 이 가치관을 가지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해석해야 합니다. 

청년 시절은 ‘formation period (형성기)’입니다. 원래 이 말은 피아제 (Jean Piaget, 1896-1980)의 ‘인지 발달의 4단계 (Four Stages Of Cognitive Development)’에 나오는 말입니다. 피아제는 ‘Formal Operational Stage (형식적 조작기)’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이 단계는 11살부터 청년 시기까지를 말합니다. 이 단계에서 추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고, 가설을 세우고 논리적인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고, 체계적인 사고가 가능한 시기입니다. 저는 이 시기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형성되는 시기라고 보거든요? 그래서 이 시기가 중요합니다.

간사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교사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간사들은 한 사람이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교사들도 마찬가지고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에 있는 사람들을 간사들이 옆에서 도와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일 아닙니까? 비록 우리가 하는 일이 저 평가될 수 있지만, 이 일이 어렵고 힘들 때는 스스로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 일인지, 크리스천의 가치관을 가지고 해석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절대로 이 일을 그만 둘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바울이 지금 똑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받을 때는 어렵고 힘이 듭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해석하면서 고난을 이기는 힘을 얻었습니다. 그 말씀이 15-16절 말씀 아닙니까?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얻고 있다.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받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이 일을 포기할 수 없다” 이런 말씀 아닙니까?

여러분, 이 말씀을 한번 보십시오. 17-18절 말씀입니다. “For our present troubles are small and won’t last very long. Yet they produce for us a glory that vastly outweighs them and will last forever! So we don’t look at the troubles we can see now; rather, we fix our gaze on things that cannot be seen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는 그리 오래 가지 않는 작은 문제입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문제들이 영광스러운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 영광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이기고도 남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바라보지 않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영광스러운 일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습니다).”

상황은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전도자들이 받는 고난의 현장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받고 있는 고난을 크리스천의 관점을 가지고 해석해 보면 그 고난을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보세요. 지금 내가 당하는 환난이 장차 우리가 받을 ‘영원한 영광’과 비교하면 ‘가벼운 환난 (small troubles)’이라고 하고, ‘잠깐 당하는 고난’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영원한 영광’이란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를 말하는 것입니다.

윈스턴 처칠은 “Never give in!” 이 한마디 연설로 어린 학생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고, 그가 즐겨 사용하던 V자 승리 사인 하나로 2차 대전 때 위축된 국민들의 마음에 희망을 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난 중에도 우리는 이 일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스스로 용기를 내고 성도들을 격려했습니다. 그의 이 말은 단순히 편지를 받아 읽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이 고난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수행하는 과정 속에서 받는 고난이기 때문에, 내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 일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 답답하고 어려운 시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불안한 마음과 미래에 대한 걱정들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학생들 대로, 이곳에서 생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또 그들 대로 걱정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여러분이 당하고 있는 문제에 시선을 두지 마십시오. 지금 여러분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크리스천의 가치관을 가지고 해석해 보십시오. 그 속에 들어 있는 의미를 찾도록 하십시오. 그 의미가 크면 클수록 여러분이 가진 문제들이 ‘별 것 아닌’ ‘가벼운’ ‘잠깐 겪는’ ‘넉넉히 참고 이겨 나갈 수 있는’ 것들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