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0:29-31, 누가복음 13:1-5, 로마서 8:28

"29 참새 두 마리가 동전 한 개 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가 아니고서는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질 수 없다. 30 심지어 너희 머리카락의 수까지도 하나님은 아신다. 31 그러므로 두려워 마라. 너희는 참새 여러 마리보다 훨씬 더 귀하다.” (마태복음 10:29-31)

29 What is the price of two sparrows - one copper coin? But not a single sparrow can fall to the ground without your Father knowing it. 30 And the very hairs on your head are all numbered. 31 So don't be afraid; you are more valuable to God than a whole flock of sparrows. (New Living Translation)

"1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죽여 그 피가 저희의 드릴 희생 제물과 뒤범벅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2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런 고난을 당했다고 해서 다른 갈릴리 사람들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3 그렇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망할 것이다. 4 또 실로암 탑이 무너져 죽은 열 여덟 명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악한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5 그렇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망할 것이다.” (누가복음 13:1-5)

1 About this time Jesus was informed that Pilate had murdered some people from Galilee as they were offering sacrifices at the Temple. 2 "Do you think those Galileans were worse sinners than all the other people from Galilee?" Jesus asked. "Is that why they suffered? 3 Not at all! And you will perish, too, unless you repent of your sins and turn to God. 4 And what about the eighteen people who died when the tower in Siloam fell on them? Were they the worst sinners in Jerusalem? 5 No, and I tell you again that unless you repent, you will perish, too." (New Living Translation)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즉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부름을 입은 사람들의 선을 위하여 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로마서 8:28)

For God knew his people in advance, and he chose them to become like his Son, so that his Son would be the firstborn among many brothers and sisters. (New Living Translation)

오늘은 일년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주일입니다.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시작해서 코로나바이러스로 마치는 해가 되었습니다. 몇 몇 회사에서 백신이 나왔고 접종을 시작했다는 뉴스가 들리는 가운데 미국도 그렇고, 유럽도 그렇고, 한국도 감염자들이 폭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 변이(變異)가 나왔다고 해서 걱정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변이된 코로나바이러스는 원래 코로나바이러스보다 전파력이 훨씬 강하다고 합니다.

지금 현재 세계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로 사망한 사람이 1,800,000명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1918년 스페인 독감 때도 전세계적으로 감염자가 나왔습니다. 감기에 걸린 듯한 증상을 보이다가 폐렴으로 발전하는가 싶더니 환자의 피부에서 산소가 빠져나가면서 검은 빛으로 변해 죽어가는 병이었다고 합니다. 그 때 사망자 수가 50,000,000명이었습니다. 사망자 수를 단순히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1918년과 2020년은 전혀 다른 세상이니까요. 지금은 의학적인 지식의 수준이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도 발달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코로나바이러스로 1,800,000명이 죽었습니다. 이 숫자는 병원에서 확인된 사망자만 카운트한 것입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검사도 받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을 것을 감안하면 이번 코로나바이러스로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봐야 합니다. 

팬데믹 초기에는 조심스럽게 성찰의 말들이 나오는 것 같더니만, 지금은 팬데믹 기간이 길어져서 그런지 더 이상 성찰의 말들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 크리스천들이 꼭 들어야 세 개의 성경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로 나눌 말씀은 마태복음 10:29-31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셨을 때 제자들은 상당한 박해를 받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새 한 마리가 죽고 사는 일에도 하나님께서 관계하신다. 그런데, 너희들은 참새보다 훨씬 더 귀한 존재들인데, 너희들이 받고 있는 박해를 하나님께서 모르시겠느냐?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여기서 참새는 아무 것도 아닌 하찮은 생명을 말합니다.

“God is in control”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서 통제(統制)하고 계시며, 하나님의 통제를 벗어나서 일어나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빛도 만들고 어둠도 만든다. 나는 평화를 가져오기도 하고 재앙을 일으키기도 한다. 나 여호와가 이 모든 것을 한다(I form the light and create darkness, I bring prosperity and create disaster; I, the LORD, do all these things).”(이사야 45:7) 우리가 고난 속에 하나님의 뜻이 들어있다고 믿고 고난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를 찾는 이유는 내가 지금 받고 있는 고난이 하나님의 통제 속에서 일어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세계가 고통을 받고 있는 팬데믹은 어떻게 봐야 합니까? 이 팬데믹을 보는 크리스천의 시각은 어떤 것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팬데믹에 하나님께서 관계하고 계실까?” 이렇게 질문하면서 서로 의견들이 분분합니다. 팬데믹에 하나님께서 관계하고 계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많은 사망자들이 나오는지 이유를 설명해야 합니다. 팬데믹으로 사망한 사람이 몇 명이라고 객관적으로 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그 사망자 속에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 있고, 나의 친구가 있을 때는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요. 이미 사망자 수가 1,800,000명에 육박하는 이 엄청난 일에 하나님께서 관계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관계하시는 하나님께서 수많은 사망자가 나오는 엄청난 일에 당연히 하나님께서 관계하고 계십니다. 다만 우리가 그 하나님의 뜻을 속 시원하게 말할 수 없어서 답답할 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깊은 뜻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유함은 참으로 깊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은 헤아릴 수 없으며, 그분의 길은 아무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로마서 11:33)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 마치 깊고 깊은 심해(深海)와 같아서 얼마나 깊은지 바닥을 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생각할 말씀은 누가복음 13:1-5입니다. 실로암에 있는 탑이 무너지는 바람에 18명이 깔려 죽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 일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죽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마치 이번 팬데믹으로 죽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선하게 살지 않았던 사람들일까요? 아니면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조심성이 없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불행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렇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죽음을 도구로 사용해서 우리에게 교훈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들의 죽음을 이용하실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이게 말이 되거든요? 여러분은 누구의 장례식에 참석해서 내 삶을 반성해 본 적이 없습니까? 그 사람의 죽음을 계기로 해서 좀더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죽음을 사용하셔서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계시는 것 아닙니까?

사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성경에 그런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알려주기 위해서 이집트 사람들의 장자들이 죽게도 하셨습니다. 바로의 특수 군대가 모두 홍해 바다에 빠져 죽게도 하셨습니다. 모압, 에돔, 아말렉과의 전쟁에서는 군사력이 절대적으로 열세했던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하심으로써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다는 교훈을 주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선택이 인간의 행위에 의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에서의 삶을 이용하시기도 하셨습니다(로마서 9:11-13). 하나님은 첫째 아들 에서를 버리고 둘째 아들 야곱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족보를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지 전부터 그런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고 하지 않습니까?(창세기 25:23, 로마서 9:12).

여러분,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는 걸 아세요? “모압은 나의 목욕통이다. 에돔 땅 위에 내가 신발을 던질 것이며, 블레셋에 대해 내가 큰 소리로 승리를 외친다.” (시편 60:8, 108:9)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But Moab, my washbasin, will become my servant, and I will wipe my feet on Edom and shout in triumph over Philistia.” 여러분, 모압 에돔, 블레셋은 엄연히 주권을 가진 나라들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서 이 나라들을 목욕통으로, 신발장으로, 늘 전쟁에서 지는 역을 맡은 나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번 팬데믹으로 죽은 1,800,000명에 이르는 사망자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참 아픕니다. 여러분들도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그 속에 우리의 사랑하는 부모님이 있을 수도 있고, 사랑하는 형제들, 친구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들의 죽음이 전혀 가치 없는 죽음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벌써 하나님께서 그들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엄숙한 교훈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게 하셨고, 삶에 대한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이 설교문을 작성하면서 예수님께서 생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셨을 때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면서 우셨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누가복음 13:34에 나오는 말씀인데요. 그 때 예수님께서 우신 이유는 이제 조금 있으면 멸망할 예루살렘이 그것을 모르고 회개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전히 예루살렘은 교만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이 안타까워서 우셨습니다. 저는 그 예수님의 눈물 속에 예루살렘의 멸망과 함께 희생될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안타까워하셨던 마음이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지금 하나님께서 이번 코로나바이러스로 희생된 사람들을 생각하시면서 2,000년 전에 예수님의 흘리셨던 눈물을 흘리고 계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자기 아들을 내 주신 분입니다. 성경은 그 아들을 ‘begotten Son’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외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자기 아들을 희생해서라도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자기 외아들을 내 주신 하나님의 아픔과 눈물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말씀에서 자기 외아들을 우리를 위해 내 주신 하나님에 대하여 이렇게 썼습니다. “자기 아들까지도 아끼지 않고 우리 모두를 위해 내어 주신 분께서 그 아들과 함께 우리에게 모든 것을 은혜로 주지 않으시겠습니까?”(로마서 8:31)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그만큼 소중한 존재들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자기 아들까지 희생하시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더 이상 못하실 일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눌 말씀은 로마서 8:28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合力)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계하고 계십니다. 빛도, 어둠도, 재앙도 모두 하나님께서 관계하시는 일들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자녀들에게 교훈을 주시기 위해서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분입니다. 저는 이것이 팬데믹을 보는 성경적인 시각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놀라운 것은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서로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에는 이 설교를 하고 있는 저도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팬데믹이 이 세상을 나쁜 쪽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간다는 것입니다.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서 팬데믹이 끝나서 예전으로 돌아갔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세계 제1차 대전을 겪고, 2차 대전을 겪으면서 인류의 역사에 커다란 전환점이 생겼습니다.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인류는 엄청난 가치와 의식의 변화를 경험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팬데믹도 우리의 삶을 그렇게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팬데믹과 같은 엄청난 재난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변화입니다. 이 변화는 하나님께서 팬데믹을 통해서 하시는 일입니다. 

Fran Bunn이라는 분이 이런 글을 썼습니다. 제목은 “God can bring blessings out of COVID-19 pandemic(하나님은 코비드19 팬데믹을 통해서 우리를 축복하실 수 있다)”입니다. 한번 들어 보세요. “COVID-19 is a bad thing, but there are good gifts that God can bring even from this. As I think about my own life, and maybe this is true for you, through COVID-19, I have been reminded that I do not control my life. COVID-19 has shown me that I am utterly and completely dependent on the living God. If I think I am in control of things, that is merely a pleasant illusion.” 어떻습니까? 나의 삶을 내가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통제하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쉽게 일어나지 않는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팬데믹을 통해서 교회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C. S. Lewis가 많은 책을 썼습니다만, 제일 힘들게 쓴 책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The Screwtape Letters, 1942)’라고 합니다. 그만큼 그 책을 공을 들여 썼다는 말입니다. 그 책은 고참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신참 악마 ‘웜우드(Wormwood)’를 교육한 책입니다. 어떻게 교회를 파멸시키고 크리스천들의 믿음을 파멸시킬 수 있는지 ‘노하우’를 전수해 주는 내용의 책입니다. ‘웜우드’가 관리하던 한 사람이 최근에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스크루테이프’는 매우 화가 났지만 이렇게 말합니다. “아직 절망할 필요는 없다. 현재 교회는 우리의 가장 큰 협력자 중 하나니까.” 루이스가 보고 있던 교회는 교회 안에 진실한 믿음을 추구하는 사람이 없고, 참된 회개가 없고, 형식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겸손을 가장한 위선자들이 넘쳐나는 교회였습니다. 교회가 본질을 추구하지 않고 큰 건물, 많은 교인 수, 엄청난 교회 예산, 이런 것들에 마음을 쓰고 있는 한 교회는 이미 악마의 협력자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팬데믹을 겪고 있으서도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갈 때를 기다리는 목사나 교인들이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들에게 ‘a pleasant illusion’이 될 것입니다. 이제 그런 것을 자랑하던 때는 어쩌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팬데믹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지금 교회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가고 계십니다. (교회에 대한 설교는 2021년 1월 3일 새해 주일 설교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