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1:1-4

1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을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하나가 와서 말했습니다.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준 것처럼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십시오.” 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3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4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의 죄도 용서하여 주소서. 그리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쉬운성경)

1 One day Jesus was praying in a certain place. When he finished, one of his disciples said to him, "Lord, teach us to pray, just as John taught his disciples." 2 He said to them, "When you pray, say: "'Father, hallowed be your name, your kingdom come. 3 Give us each day our daily bread. 4 Forgive us our sins, for we also forgive everyone who sins against us.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NIV)

우리는 지금 사순절을 지내면서 몇 주에 걸쳐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성경에 있는 기도에 대한 말씀 중에 가장 충격적인 말씀은 로마서 8:26 말씀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도와 주십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성령께서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간절함으로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를 하십니다(In the same way, the Spirit helps us in our weakness. We do not know what we ought to pray for, but the Spirit himself intercedes for us with groans that words cannot express).”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지 모른다고 합니다. 여기에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기도라는 것이 원래 내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인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니까 무엇을 위해 기도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이기심을 가지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한다고 하면서 모두 자기 좋을대로, 자기에게 유리할대로 기도합니다. 이런 기도는 필연적으로 기도의 본질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안 나오는 것보다는 교회에 와서 졸더라도 교회에 나오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정말 그런지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세요.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거든요? 하나님께 예배 드린다고 하면서 예배 중에 졸아요. 그래도 하나님께 괜찮을까요? 전 아무리 생각해 봐도 괜찮지 않을 것 같습니다. 기도는 어떻습니까? 비록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몰라도, 비록 좀 이기적으로 기도하더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말에 동의하십니까? 어떻게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세요.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데, 그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지 않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열심히 기도했지만, 사실은 기도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올바로 기도하는 법을 배워서 올바른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세례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었다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우리 선생님이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고 자랑을 한 것 같습니다. 샘이 많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우리도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기도해라”하고 하시면서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주기도문(The Lord’s Prayer)’입니다. 이 기도가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기도문’을 생각할 때 이 기도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라는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이 ‘주기도문’ 속에 제자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배어 있습니다. ‘주기도문’ 속에 자기 제자들이 하나님 앞에 견고한 믿음의 사람들로 세워지기를 소망하는 예수님의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주기도문’은 예수님께서 평소에 하시던 기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셨을 때나 혹은 한적한 곳에서 홀로 기도하셨을 때나, 심지어 그의 생애 마지막 날 저녁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을 때, 이 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하고 있던 기도를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받고 바로 예수님께서 “그러면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조금도 망설임이 없이 예수님의 입에서 기도가 줄줄 나왔습니다. 평상시에 이런 식으로 기도를 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또 하나, 예수님은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는데, 사람들은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고 기도할 때마다 그냥 ‘주기도문’을 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셨으니까 이렇게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런 뜻이 아니라, “Pray in this way(이같이 기도하라)” “Pray like this(이렇게 기도하라)” “In this manner, pray(이 같은 방식으로 기도하라)” “After this manner, pray(이같은 방식을 따라서 기도하라)” 이런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올바른 기도의 형식과 내용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기도할 때마다 이것과 똑같이 따라서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르쳐 주는 형식과 내용을 잘 보고 너희도 이런 식으로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가 어떤 기도인지 궁금하시지요?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예수님의 ‘주기도문’ 속에 우리의 삶의 모든 문제들이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형식과 내용을 따라서 기도하면, 우리의 삶의 모든 문제들을 빼놓지 않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주기도문’을 잘 보고 기도를 배우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기도문’은 기도의 ‘본(example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먼저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소서(Father, hallowed be your name).” (2절) ‘주기도문’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가 제일 먼저 나옵니다. 아이들이 아빠에게 “아빠, 아빠가 세상에서 최고예요!” 이런 말을 하면 아빠는 기분이 좋습니다. 아이들은 그런 식으로 기도를 하는데, 어른들은 어떤 식으로 기도를 해야 하나요? 성경에서 한번 찾아 볼까요? “하나님 같으신 분은 없습니다.” (사무엘상 2:2, 시편 113:5, 예레미야 10:6, 미가 7:18) “세상에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시편 35:10, 71:19, 이사야 40:18, 46:5) 여러분, 이런 찬양 가사를 아시지요? “당신과 같은 분은 없습니다/ 그 누구도 당신처럼 내 마음을 만져줄 수 없어요/ 나는 오랜 시간 영원한 것을 찾아다녔죠/ 그리고 찾아냈어요. 당신과 같은 분은 없다는 것을요(And I can search for all eternity long. And find, there is none like You).” 하나님께서 이 찬양을 얼마나 좋아하시겠습니까? 기도할 때 제일 먼저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를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소통을 위해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나라가 속히 임하기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2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기도는 우리가 잘 하지 않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선지자들이 꿈꾸던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선지자들의 꿈을 같이 꾸는 것입니다. 앨버트 헤이 말로테(Albert Hay Malotte, 1895-1964, 미국)가 작곡한 ‘주기도문’이라는 찬양은 모든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름 거룩하사 주님 나라 임하시고 뜻이 이루어지이다(Our father who art in heaven, hallowed be Thy name, Thy Kingdom come, Thy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마음을 열고 하나님을 향해 이 기도를 올려 보십시오. 

예수님은 자기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기도를 하나님을 찬양하는 다음에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서 속히 임하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사야도 그렇고, 하박국 선지자도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사야 11:9, 하박국 2:14) 어떻게 두 선지자가 똑 같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었을까요? 이사야는 하박국 선지자보다 100년 정도 앞선 선지자니까 하박국 선지자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선지자들이 제시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전을 품고, 또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서 이 기도를 빼놓치 말고 해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제일 먼저합니다. 그런데 이 기도는 기도 순서에서 세 번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이 ‘주기도문’ 속에 이기적인 욕심으로 기도하지 말라는 장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날마다(everyday)’ 혹은 ‘일용할(daily)’이라는 말입니다. 구약 잠언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거머리에게 두 딸이 있는데, 그들은 만족을 모르고 ‘더 주세요, 더 주세요’ 한다.”(잠언 30:15) 이 말씀은 매우 풍자적인 말씀입니다. 결코 만족을 모르는 인간의 욕심과 욕망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일용할 양식(daily bread)’으로 만족하라는 교육을 40년 간이나 시켰습니다. 하나님은 그날 자기 식구들이 먹을 만큼만 ‘만나’를 모으라고 하셨습니다. 더 많이 모아도 쓸모 없을 테니 꼭 그날 필요한 만큼만 모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만나’를 모았습니다. 내일에 대한 불안감에서 필요 이상으로 만나를 모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모아들인 ‘만나’는 벌레가 생기고, 썩고, 냄새가 나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는 여전히 ‘일용할 양식’에 불안을 느끼면서 돈과 물질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넷째로, 용서에 대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냥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4절)”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게 합니다.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사람들은 먼저 나와 관계된 사람들을 용서해야 용서를 구할 자격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적용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같이 서로를 용서하십시오.”(에베소서 4:32) 

하나님의 용서가 값싼 것이 아닙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Voltaire, 1694-1778, 프랑스)는 “용서는 하나님의 버릇이다”라는 말로 그 당시 교회를 비판했습니다. 잘못을 저지르고 하나님께 용서를 빌면 용서해 주신다는 그 당시의 풍조와 교회의 설교를 비판한 것으로 보입니다. 나를 용서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아는 사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용서의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사람이 하나님께 용서를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 기도를 당장에 여러분의 삶에 적용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시험에 빠지지 않기를 위해서 기도하라(And pray lead us not into temptation)”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 저녁에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여라.”(Pray that you will not give in to temptation, 누가복음 22:40) 예수님께서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이 시험의 문제가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잘못 시험에 빠지면  크리스천으로서 큰 상처를 입을 뿐만 아니라 자칫 우리 인생이 파멸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또 다른 이유는 우리에게 시험을 이길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시험받는 자들도 도와 주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직접 고난당하고 시험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2:18) 이 말씀이 Christian Standard Bible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For since he himself has suffered when he was tempted, he is able to help those who are tempted.” 예수님은 시험 받는 사람들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압니다.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은(히브리서 4:15), 시험 받는 사람들을 도와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신다(고린도전서 10:13)”고 하셨습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처럼 위로가 되는 말씀이 없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 ‘피할 길(the way of escape)’이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에게 이 ‘피할 길’이 보입니다. 기도가 그런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 믿음생활을 아름답게 장식해 주는 액세서리가 아닙니다. 이 말씀을 한번 보세요. “Prayer is the vital breath of the Christian; not the thing that makes him alive, but the evidence that he is alive(기도는 크리스천의 생명의 호흡입니다. 크리스천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크리스천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오스왈드 체임버스 목사님의 말입니다. 이번 사순절 새벽기도가 올바른 기도에 눈을 뜨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