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1-9

1 데오빌로 각하, 제가 먼저 쓴 책에서 저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과 가르치신 말씀을 비롯하여, 2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의 힘으로 교훈을 내리신 후에 하늘로 올라가신 날까지, 예수님과 관련된 내용을 다 기록했습니다. 3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받으신 후, 사도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셨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기가 살아 계시다는 것을 증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십 일 동안이나 이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으며,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4 어느 날,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다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선물을 기다려라. 이 약속의 내용은 내가 전에 말했고, 너희도 들은 것이다. 5 약속의 내용은 이것이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얼마 안 있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6 사도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실 때가 지금입니까?” 7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때와 시기는 오직 아버지의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니, 너희가 알 일이 아니다. 8 다만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그리고 땅 끝까지 가서 내 증인이 될 것이다.” 9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신 뒤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가 올라가시는 모습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습니다. (쉬운성경)

 

1 In my first book I told you, Theophilus, about everything Jesus began to do and teach  2 until the day he was taken up to heaven after giving his chosen apostles further instructions through the Holy Spirit. 3 During the forty days after his crucifixion, he appeared to the apostles from time to time, and he proved to them in many ways that he was actually alive. And he talked to them about the Kingdom of God. 4 Once when he was eating with them, he commanded them, "Do not leave Jerusalem until the Father sends you the gift he promised, as I told you before. 5 John baptized with water, but in just a few days you will be baptized with the Holy Spirit." 6 So when the apostles were with Jesus, they kept asking him, "Lord, has the time come for you to free Israel and restore our kingdom?" 7 He replied, "The Father alone has the authority to set those dates and times, and they are not for you to know. 8 But you will receive power when the Holy Spirit comes upon you. And you will be my witnesses, telling people about me everywhere-in Jerusalem, throughout Judea, in Samaria, and to the ends of the earth." 9 After saying this, he was taken up into a cloud while they were watching, and they could no longer see him.(New Living Translation)

사도행전은 누가복음과 함께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헌정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누가는 2부작으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썼는데, 누가복음이 전편이고, 사도행전이 후편입니다. ‘데오빌로’는 우리 말로 ‘각하(The Most Excellent)’라는 말을 붙여야 하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데오빌로’는 이름으로 보아 누가와 친분이 있는 헬라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데오빌로’는 고귀한 신분의 사람이었고, 예수님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누가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이 땅에 계시면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데오빌로’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예수님은 여러가지 방법으로(many infallible proofs) 제자들에게 자기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고 합니다(3절).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셨다고 합니다(3절).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적인 사역(public ministry)을 하실 때도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겨자씨의 비유, 누룩의 비유, 그물의 비유,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 밭에 숨겨진 보물의 비유, 진주의 비유, 달란트의 비유, 열 처녀의 비유 등 수많은 비유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무게가 달랐을 것입니다. 듣는 제자들에게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더 깊이 마음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제가 어떤 글에서 영어의 talk와 speak가 어떻게 다른가 하는 글을 읽었습니다. 우리 말로는 모두 ‘말하다’로 번역하는데, 그 글에 보니까 talk는 사적인 자리에서 대화한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speak는 공적인 자리에서 말한다는 의미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NIV 성경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He appeared to them over a period of forty days and spoke about the kingdom of God.”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신 뒤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가 올라가시는 모습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습니다(9절)” 이런 말씀으로 끝이 납니다. 여러분, 교회의 절기 중에 ‘Ascension Sunday(승천주일)’가 있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오늘이 바로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주일입니다. 지난 13일(목요일)이 ‘승천일’이었고요. 일반적으로 개신교회에서는 ‘승천주일’을 잘 지키지 않습니다. 카톨릭 교회에서는 이 주일을 ‘예수 승천 대축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독일을 비롯한 많은 유럽의 국가들이 ‘예수 승천일’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북유럽의 국가들은 대부분 ‘예수 승천일’을 공휴일로 지키고 있다고 하는데요. 스웨덴에서는 ‘예수 승천일’이 되면 이른 새벽 3-4시경에 동네 숲을 산책하면서 새의 지저귐을 듣는것이 오랫동안 지켜온 풍습이라고 합니다. 이 새벽 산책을 스웨덴 말로 ‘욕우따(Gökotta)’라고 부른다고 하는데요. 제가 사전을 찾아 봤더니 이렇게 나와 있더라고요. ‘the act of getting up early specifically to go outside and listen to birdsong(밖에 나가 새가 노래하는 것을 듣기 위해서 이른 새벽에 일어나는 행위)’ 이 때가 되면 벌써 백야(白夜)의 시작으로 이미 하늘이 밝아진다고 하는데요. 스웨덴 사람들은 이 때 동서 방향에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면 좋은 소식이 온다고 하고, 남북방향에서 새소리가 들려오면 안 좋은 소식이 온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니 저도 공식적으로 ‘승천주일’에 대하여 설교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에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이렇게 예수님의 승천에 대한 고백이 나옵니다. 사도신경에 이 고백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예수님의 승천을 우리 믿음생활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이 갖는 중요한 의미는, 이미 사도신경에 나와 있듯이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본래 앉으셨던 자리에 앉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I have been given all authority in heaven and on earth).”(마태복음 28:18) “아버지께서 심판하는 모든 권한을 아들에게 맡기셨다(My father has given the Son absolute authority to judge).”(요한복음 5:22, 27) “썩어 없어지는 음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원히 있어서 영생을 주는 음식을 위해 일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그 음식을 줄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가 이런 일을 행하는 것을 허락하셨다(For God the Father has given me the seal of his approval).”(요한복음 6:27) 

 

참 엄청난 말씀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왜 꼭 예수님을 믿어야 하지요?” “왜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지요?” 이런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은 우리가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지 설득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대신 이렇게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너희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나를 믿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내가 이런 일을 하도록 권한을 주셨기 때문이다(He has given me the seal of his approval).” 

 

지금 제가 드리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어마어마한 권위를 가진 자리에 앉으셨다는 것입니다. 원래 그 자리가 예수님께서 앉으셨던 자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자리에 앉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중세기에 건축한 오래 된 교회를 방문해 보면 천정 위 반구형의 돔에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그리스도의 모습을 ‘판토크라토르(Pantokrator)’라고 하는데요. ‘전능하신 주’라는 뜻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은 모습은 아주 서민적인 모습이어서 우리에게 친근감을 줍니다. 오죽하면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먹보(a glutton)’라고 비난하고, ‘술꾼(a drunkard)’이라고 비난했을까요(마태복음 11:19, 우리말 성경)? 이런 예수님의 인간적인 모습에 우리는 친근감을 느낍니다. 그런데요. 세상을 다스리는 ‘전능하신 주님’으로 하나님의 우편에 좌정하신 그리스도 앞에서 우리는 깊은 경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전능하신 주님이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이 말보다 더 안심이 되고 위로가 되는 말씀이 있을까요?

 

여러분, 이 말씀을 한번 보십시오. “하늘은 주님은 것, 땅도 주님의 것, 세계와 그 안에 가득한 모든 것이 모두 주님께서 기초를 놓으신 것입니다. 자폰산과 아마누스산을 주님이 창조하셨으니, 다볼산과 헤르몬산이 주님의 이름을 크게 찬양합니다. 주님의 팔에 능력이 있으며 주님의 손에는 힘이 있으며, 주님의 오른손은 높이 들렸습니다. 정의와 공정이 주님의 보좌를 받들고, 사랑과 신실이 주님을 시중들며 앞장서 갑니다.” (시편 89:11-14, 새번역)

 

이 시편을 쓴 사람은 ‘에스라 사람 에단(Ethan the Ezrahite)’이라는 사람입니다. 에단은지혜가 많고, 시와 음악에 재능이 많았던 다윗 시대의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에단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기초(foundation)를 놓으신 분이 바로 주님이시라고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정의와 공정과 사랑과 신실하심(faithfulness)을 찬양합니다. 자폰산과 아마누스산과 다볼산과 헤르몬산은 이방나라에 있는 산들입니다. 이런 산들도 모두 주님이 창조하신 산들이기 때문에 주님께는 성(聖)과 세속(世俗)이 없다고 합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백성들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바로 이 말씀 속에 예수님의 승천의 의미가 숨겨져 있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은 온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정의와 공정과 사랑과 신실함으로 다스리고 계십니다. 하지만, 당장 우리의 현실을 보면 주님의 다스리심이 잘 안 보일 수도 있습니다. 불의가 판을 치고 있는 것 같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세상은 주님의 통치하심 속에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역사관입니다. 이 역사관을 잘 이해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서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을 생각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불의한 일에 가담할 수가 있겠습니까? 주님의 통치하심에 우리가 참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골로새서에 있는 말씀을 하나 보겠습니다. “그의 능력으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과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과 모든 권세와 지위, 주권, 능력이 생겨났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또 그리스도를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것이 생기기 전에 이미 계셨으며, 이 세상 모든 만물이 그분에 의해 유지되고 있습니다.”(골로새서 1:16-17)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주님이 세상을 유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이 Amplified Bible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In Him all things hold together. [His is the controlling, cohesive force of the universe.]” 주님이 이 세상을 붙들고 계십니다. 주님 때문에 이 세상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주님이 세상을 붙들지 않으시면 이 세상은 벌써 산산조각이 났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주님은 세상을 붙들고 계십니다. 그래서 세상이 유지되고 있고 저와 여러분의 삶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승천하신 이유입니다.

 

지금 매주 수요일마다 히브리서 말씀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 마지막 13장을공부합니다. 히브리서 말씀은 깊이 읽으면 읽을수록 그 말씀의 깊이와 저자의 말씀에 대한 뛰어난 상상력(想像力)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보세요. “지금까지 우리가 말한 것의 요점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대제사장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지극히 거룩한 곳인 성소에서 섬기고 계십니다. 그 곳은 사람이 세운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거룩한 장막이요, 참 성막입니다. 모든 대제사장은 하나님께 예물과 제사를 드리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대제사장도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드려야 했습니다.” (히브리서 8:1-3) 히브리서 저자가 가장 힘써서 말하고 있는 것이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대제사장직’입니다. ‘대제사장’은 유대교의 제사 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대제사장’은 일년에 한번씩 회중을 위한 제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백성들을 위해 속죄 제사를 드렸습니다. 히브리서 저자의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무슨 일을 하시는가?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참 성막에 들어가서 우리를 위해 무엇인가 하나님께 드리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Therefore it is necessary that this One also have something to offer. NKJV).”

 

엄청난 말씀입니다. 지금 히브리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의 그림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는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하늘에 있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the true tabernacle which the Lord erected, and not man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참 성막)’에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뭔가 제물을 드리고 계신다고 합니다. 그 제물이 무엇일까요? 바울은 그 제물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분은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로마서 8:34) 예수님은 지금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의 제물을 계속 하나님께 드리고 계시다고 합니다. 주님의 중보기도 덕분에 이 세상이 유지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주님의 사역에 동참해서 의와 공정과 사랑과 신실하심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중보기도에 참여하여 주님과 함께 세상을 붙드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주님이 이 중보기도를 중단하지 않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코로나 시대가 이제 끝이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도에서는 하루에 30만명 이상의 감염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갠지스 강에 수 백구의 시체가 떠다닌다는 뉴스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 미국 같은 나라는 백신을 구하지 못하는 가난한 나라들을 도와주지 않을까요? 사람의 생명을 놓고도 정치적인 유불리를 따지고 있나요? 그러면서 미국이 인권을 말할 수 있고, 정의를 말할 수 있을까요? 정의와 공정과 사랑과 신실한 세상을 위해서 중보기도 하시는 주님의 기도가 어서 속히 이루어지도록, 우리도 주님의 일에 참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승천주일’에 주님이 주시는 메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