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1:23-26

23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준 것은 주님께 받은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배반당하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24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나를 기억하면서 이것을 행하여라.” 25 똑같은 방법으로 식사 후에 잔을 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면서 이것을 행하여라.” 26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으심을 전하십시오. (쉬운성경)

23 For I pass on to you what I received from the Lord himself. On the night when he was betrayed, the Lord Jesus took some bread 24 and gave thanks to God for it. Then he broke it in pieces and said, “This is my body, which is given for you①. Do this to remember me.” / ①Other manuscripts read which is broken for you. 25 In the same way, he took the cup of wine after supper, saying, "This cup is the new covenant between God and his people--an agreement confirmed with my blood. Do this to remember me as often as you drink it." 26 For every time you eat this bread and drink this cup, you are announcing the Lord's death until he comes again. (New Living Translation)

오늘 말씀은 성만찬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만찬에 대한 말씀이 공관복음서(the Synoptic Gospels)에 나와 있습니다. 마태복음 26장에, 마가복음 14장에, 누가복음 22장에 성만찬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요한복음에는 13장에 충분히 성만찬에 대한 말씀으로 추정할 수 있는 말씀이 나옵니다. 공관복음서 중에 제일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기 이전에, 서기 65-70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학자에 따라서는 이보다 훨씬 이전에 기록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할 때 에베소에서 기록한 것으로 그 시기를 대략 서기 55년경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오늘 읽은 고린도전서 11장에 기록된 성만찬에 대한 말씀이 가장 원형(original)에 가까운 말씀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 고린도전서 본문 말씀을 읽어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빵과 포도주를 나누면서 하셨던 말씀의 분위기를 더욱 실감 있게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오늘 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은 주님으로부터 들은 것입니다(For I pass on to you what I received from the Lord himself) (23절)” 이렇게 시작합니다. 바울이 이 말씀을 어디서, 어떤 경로를 통해 들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주님에게 들었다고 합니다. 바울은 부활에 대한 말씀을 할 때도 “내가 받은 가장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했습니다(I passed on to you what was most important and what had also been passed on to me) (고린도전서 15:3)”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복음이 막 전파되고 있을 무렵, 1세기 초에 입에서 입으로 복음의 핵심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사도들과 전도자들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학자들은 이것을 ‘케리그마(kerygma)’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저녁 식사를 나누셨던 그날, 다락방의 식탁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바울은 그 때 있었던 일들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배반당하시던 날 밤에(on the night when he was betrayed)’ 이 말씀을 읽을 때 ‘그 날 밤’에 대한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여러분, 아시지요? 예수님은 그 날 밤에 사랑하는 제자로부터 배반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을 제거해야 되겠다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음모(conspiracy)가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음모는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을 체포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제공함으로써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예수님은 그들의 음모를 알고 있었고, 유다가 그 일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유다는 마지막 만찬을 먹는 그 자리에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빵을 찢어 나누어 주시면서 “너희들 중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 내가 이 빵을 접시에 찍어 주는 자가 나를 배반할 사람이다(요한복음 13:26)” 라고 하시면서 빵을 접시에 담긴 소스에 찍어 유다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유다에게 “네가 하려는 일을 빨리 하여라(요한복음 13:27)!”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엄청난 말씀을 그리 심각하게 듣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자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유다를 붙잡고 말렸더라면 예수님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날 밤에 있었던 일들은 모두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 속에서 진행된 일들이었습니다. 사람이 말리고 변경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그 날 밤에 있었던 일들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배반당하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나를 기억하면서 이것을 행하여라.” (고린도전서 11:23-24) 똑같은 방법으로 예수님은 식사 후에 잔을 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면서 이것을 행하여라.” (25절) 이 때는 이미 유다가 밖으로 나간 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그 날 저녁에 나눈 만찬은 유대인들의 유월절 저녁 식사였습니다. 같은 시간에 다른 유대인들의 집에서도 모두 유월절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유월절 만찬은 대략 이런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포도주 첫 잔을 따르고 축복문을 읽습니다. 그리고, 손을 씻는 예식이 있고, 식구들은 쓴 나물을 소금물에 찍어 먹습니다. 만찬 인도자는 대개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마짜(matzah)’라는 납작한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빵 세 개를 포개서 가운데를 자른 후, 접시에 올려 놓습니다. 이 때 만찬에 참석한 제일 나이가 어린 자녀가 유월절에 얽힌 네 개의 질문을 합니다. 예를 들면, “왜 이 밤에는 ‘마짜’를 먹어요?”“왜 이 밤에는 쓴 나물을 먹어야 해요?” 이런 질문들입니다. 그러면 인도자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 줍니다. 그리고 두 번째 포도주 잔을 마십니다. 다음은, ‘마짜’를 먹기 위한 축복문을 읽습니다. 아마도 이 때 예수님은 ‘마짜’를 찢어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나를 기억하면서 이것을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쓴 나물을 마짜 사이에 넣어 ‘할렐 샌드위치’를 만들어 ‘하로셋’이라는 달콤한 소스에 찍어 먹습니다. 바로 이 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마짜’를 소스에 찍어 유다에게 준 때가 아닌가 합니다. 그 다음에, 유월절 식사의 메인 디쉬가 나옵니다. 양고기를 먹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포도주 잔이 나옵니다. 바로 이 때 예수님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면서 이것을 행하여라(25절)” 하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지붕으로 올라가 ‘할렐송’인 시편 113-118편, 136편을 불렀습니다. 각 집마다 지붕에 올라가 ‘할렐송’을 부르는 그 시간은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고 합니다. ‘할렐송’을 마치고 마지막 포도주 잔을 마시면 유월절 만찬이 끝나게 되는데 그 때가 대략 밤 12시쯤 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 만나요!” 하면서 헤어진다고 합니다.

여러분, 유월절 만찬에서 예수님은 ‘마짜’를 찢어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앞으로 나를 기억하면서 이것을 행하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저녁에 가정마다 유월절 만찬이 있었고, 인도자가 ‘마짜’를 찢어 식구들에게 나누어 주었지만, 아무도 예수님처럼 말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유월절 만찬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모두 네 잔의 포도주가 나왔지만 어느 가정에서도 예수님처럼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면서 이것을 행하여라” 이렇게 말하면서 포도주를 마신 가정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전통적으로, 관습적으로 행하던 유월절 만찬은 내가 앞으로 너희를 위해 행할 일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 그림이 무슨 그림인지 아십니까?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 이탈리아)가 그린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입니다. 이 그림은 다빈치가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Santa Maria delle Grazie)’ 성당에 있는 수도원 식당 벽면에, 1495-1498년까지, 3년에 걸쳐 그린 그림입니다. 가로 8.8m, 세로 4.6.m로 상당히 큰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 것이다(요한복음 13:21)”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의 다양한 반응을 그린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그림이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훼손되었습니다. 여러 번 복구 작업을 했던 것이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켰습니다. 그러던 중 일본의 NHK 방송에서 첨단 컴퓨터 기법을 동원하여 이 그림을 복원했습니다. 막상 그림을 복원해 보니 전에 알 수 없었던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습니다. 우선 이 그림에 나온 제자들을 보면 베드로는 예수님 옆에 있던 요한에게 누가 예수님을 배반한 사람인지 물어보라고 합니다. 다빈치는 베드로가 손에 칼을 쥐고 뒤로 감추고 있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식탁 위에 놓인 빵들은 유태인들이 식탁에 올리는 ‘마짜’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먹는 보통 빵들입니다. 그리고 식탁에 양고기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대신 접시에 물고기가 놓여 있습니다. 다빈치는 왜 전통적인 유대인들의 식탁을 그리지 않았을까요? 

다빈치가 유대인들의 ‘마짜’ 대신 보통 빵을 그린 것은, 이 그림을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 죽으셨다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유월절 식사 때만 이 의미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나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을 기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양고기 대신 물고기를 접시에 그려 놓은 것은, 더욱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양고기는 유대인들의 유월절 만찬에 나오는 메인 디쉬입니다. 어떤 사람은 물고기를 희랍어로 ‘익투스’라고 하는데, ‘익투스’라는 말은 ‘이에수스, 크리스토스, 테오 휘오스, 소테르(하나님의 아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의 첫 글자만 따면 ‘익투스(물고기)’라는 말이 된다고 합니다. 실제로 초대 교회에서 물고기로 예수님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던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박해를 받을 때 크리스천들은 물고기 형상을 만들어 서로 은밀하게 보여줌으로써 서로 자기가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밝혔다고 합니다. 이런 전통을 따라 다빈치가 창의적으로 양고기 대신 물고기를 그렸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그리면서 전통적인 유대인들의 식탁을 그리는 대신 보통 식탁을 그림으로써 유대교의 색채를 제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성만찬에 나누는 빵에 대해 이런 해석을 했습니다. “우리가 나누어 먹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의 빵을 서로 나누어 먹는 것은 우리가 여럿이지만 모두 하나의 몸인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16-17)

거의 2년이 되도록 인류는 코로나바이러스로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정상적인 삶이 제한을 받고, 활동이 중단되었습니다. 학생들은 온라인 수업을 받아야 했습니다. 비즈니스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경제적으로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런 고통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계속 변이(variant)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런 중에, 인류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인류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공동의 운명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네 문제, 내 문제가 따로 없습니다. 내 문제는 너의 문제가 되고, 너의 문제는 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인류는 값비싼 희생을 치르면서 이 교훈을 깨달은 것입니다. 인도에서 발생한 ‘델타변이(Delta Variant)’가 미국에서도 발견되고, 영국에서도 발견되고, 우리나라에서도 발견되고, 그렇게 폐쇄적으로 나라의 국경을 봉쇄하고 있는 북한에서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코로나바이러스로 말미암아 나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을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하겠습니까? 성만찬에 참여하여 함께 그리스도의 몸인 빵을 나누어 먹음으로써 하나로 연결된 사람들은 아니지만, 나와 연결된 사람들을 증오하기 보다 긍휼의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사람들이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나의 형제들이 되도록, 나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새로운 언약에 들어올 수 있도록, 크리스천의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울은 오늘 말씀을 이렇게 마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으심을 전하십시오.” (26절) 바울은 성만찬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에 이 메시지가 주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지난 2년 가까이 코로나바이러스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고, 힘들어하고, 무기력한 사람들을 보면서 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구원의 메시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희망을 가지려고 해도 희망을 주는 메시지가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려고 해도 소망을 주는 메시지가 없습니다. 모두가 무기력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이런 때에 교회가 세상에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해야 하는데, 교회 마저도 무기력하게 침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사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우리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교회의 사명을 다시 인식해야 합니다. 과거 코로나바이러스를 몰랐을 때는 편안하게 믿음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힘든 시기에 우리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시고, 교회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책임은 더 커지고, 교회의 사명은 더 막중해졌습니다. 하지만, 한번 생각을 바꿔보십시오. 가장 힘든 시기에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 가장 힘든 시기에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는 하나님, 그 은혜가 참 크고 감사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