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3:11-14

11 이런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은, 여러분도 알고 있다시피 벌써 잠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었을 때보다 더 가까워졌습니다. 12 밤이 거의 다 지나 낮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13 낮에 활동하는 사람처럼 단정히 행동합시다. 난잡한 유흥을 즐기지 말고, 술 취하지 마십시오. 성적으로 문란하거나 퇴폐적인 생활을 버리십시오. 다투지 말고 질투하지 마십시오. 14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십시오. 죄의 본성이 바라는 정욕을 만족시키는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쉬운성경)

11 This is all the more urgent, for you know how late it is; time is running out. Wake up, for our salvation is nearer now than when we first believed. 12 The night is almost gone; the day of salvation will soon be here. So remove your dark deeds like dirty clothes, and put on the shining armor of right liv-ing. 13 Because we belong to the day, we must live decent lives for all to see. Don't participate in the darkness of wild parties and drunkenness, or in sexual promiscuity and immoral living, or in quarreling and jealousy. 14 Instead, clothe yourself with the presence of the Lord Jesus Christ. And don't let your-self think about ways to indulge your evil desires. (New Living Translation)

지금은 2021년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시간입니다. 우리 앞에는 2022년 새해가 다가와 있습니다. 팬데믹을 3년째 맞이하는 이 시간, 목사인 나에게는 교우들에게 무슨 설교를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 제일 힘든 일이었습니다. 모두가 함께 고통의 시간을 겪었습니다. 모두가 처음 겪는 일에 낯설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에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없기 때문에,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더욱 암담한 것은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다시 규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몇 명 이상 모일 수 없습니다. 가게도 문은 열지만 손님들이 뚝 끊어졌을 것입니다. 중국은 얼마 전까지 코로나바이러스를 완전 퇴치했다고 선언하더니, 지금 난리가 났습니다. ‘시안(西安)’이라는 도시는 인구 1,300만명이 넘는 대도시인데, 지금 완전 봉쇄령(封鎖令)이 내렸습니다. 내년 2월에 베이징에서 열릴 동계 올림픽에 악영향을 줄까 봐, 시안 주민들을 일체 집에서 나올 수 없도록 시 전체를 봉쇄한 것입니다. 한 가구 당 한 명만 이틀에 한 번씩 생필품 구입을 위해 마켓에 갈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시에 있는 3,574개 학교가 문을 닫아 200만 명의 학생들이 온라인 수업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발표된 내용을 보면 누적 확진자 수가 250명을 넘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발표를 믿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도시를 봉쇄할 정도면 그 도시 안은 이미 생지옥이 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남의 일이 아니라, 언제 우리에게 닥칠 지 알 수 없어 불안하기만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매사추세츠 주에도 지난 월요일에 확진자 수가 13,791명이었습니다. 다행히 사망자 수는 25명 정도입니다. 도대체 이 코비드 바이러스 사태가 언제까지 계속될 지, 앞으로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전문가들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팬데믹 시대’에 대한 고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가 이 ‘팬데믹 시대’를 어떤 눈으로 봐야 하고,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교회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벌써 이 문제가 여러분의 고민거리가 되고, 함께 토론하는 주제가 되고, 하나님께 묻는 기도 제목이 되었어야 합니다. 다들 그렇게 하고 계신가요?

저는 ‘팬데믹 시대’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많이 있지만, 우리가 이 송구영신예배에 생각해야 할 것은, 그동안 우리가 어떤 식으로 예배를 드려왔는지에 대한 반성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바리새인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율법의 한 조항이라도 어기지 않고 지키려고 애를 썼던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항상 감시자(監視者)의 눈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주시(注視)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들의 감시의 눈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허기진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밥을 먹었습니다. 그 때 바리새인들이 이것을 보고 예수님께 와서 율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정결예식’을 어기고 있다고 거칠게 항의했습니다(마태복음 15:2).

참 대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이 ‘바리새인들’의 열심 하나만은 인정을 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의(義)가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새파 사람보다 휠씬 낫지 않으면,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마태복음 5:20) 하지만, 그들의 열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눈에는 이 ‘바리새인들’이 형식적인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 ‘위선자(僞善者, hypocrites)들로 보였습니다. 겉에서 봤을 때는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그 속에 올바른 정신과 내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바리새인들’의 형식적인 믿음을 비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에는 그들의 위선적인 모습이 보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믿음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실천하려고 하는 열심과 노력이 있습니까? 주일마다 교회를 출석하는 여러분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저는 그 말씀을 읽을 때마다 늘 마음에 걸리는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빌립보서 2:21-22에 있는 말씀입니다. “All the others care only for themselves and not for what matters to Jesus Christ. But you know how Timothy has proved himself(다른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만 생각하고 예수님의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여러분에게 보내려고 하는) 디모데가 어떤 사람인지 여러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이 말씀이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솔직히 우리가 예수님의 일에 얼마나 관심이 있습니까? 이 성경 말씀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한번 우리가 그동안 어떤 믿음생활을 했는지 우리 자신들을 반성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이 형식화되었을 때, 나라가 망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시리아로, 바빌로니아로 잡혀갔습니다. 성전 물건들을 약탈당했고, 성전은 이방인들의 손에 파괴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비판하신 대로 종교 지도자들의 믿음이 형식적인 믿음이 되었을 때, 또 성전에서 드려지는 제사가 제 구실을 못했을 때, 성전은 다시 로마 군인들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그 때가 서기 70년입니다. 지금 성전은 파괴되어 없어지고, 그 자리에 이슬람의 ‘황금 돔 사원(The Dome of the Rock)’이 들어섰습니다. 성전은 서쪽 벽만 겨우 남아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벽을 ‘통곡의 벽(Wailing Wall)’이라고 부릅니다.

저 역시 ‘팬데믹 시간’을 보내면서 목사로서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지난 2년 동안 얼굴을 한 번도 못 본 교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난 성탄절에 유아 세례를 줄 때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들이 그동안 많이 자란 것입니다. 주일학교 교사들도 같은 말을 합니다. 아이들이 안 본 사이에 엄청 많이 자랐다고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습니까?

‘팬데믹 시간’을 보내면서 정상적인 크리스천이라면 과거에 우리가 했던 믿음생활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온 식구들이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고, 끝나면 친교 시간이 있고, 청년부 모임 시간이 있고, 금요일에는 다같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하고, 찬양하고, 간사님들이 인도하는 성경공부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서로 토론하고 했던 시간들이, 그 때는 몰랐지만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이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이렇게 일부는 대면예배에 나오고, 일부는 집에서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지금의 현실에 대하여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잘 깨닫지 못했지만, 그동안 우리는 참 복된 믿음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때는 우리에게 감사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축복들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동안의 우리의 믿음 생활에 대하여 반성할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뜨거운 열정들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열정들이 다 사라졌는데도 우리는 주일이 되면 습관적으로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배에 대한 진한 감동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성가대가 찬양을 부르면 “오늘 참 잘하는데?”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이어져도 그 말씀에서 은혜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님은 설교 시간이 되면 늘 그런 말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 않았습니까? 내가 주일 예배에 참석했다는 만족감은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 예배가 내 삶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그랬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기억하고 계시나요? “Your worship is a farce, for you teach man-made ideas as commands from God(너희는 사람이 만든 생각을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니 너희가 드리는 예배가 코미디가 아니고 무엇이냐).” (마가복음 7:7, 이사야 29:13에서 인용) 예수님께서 너희 예배가 잘못되었다고, 너희 예배가 죽어 있다고, 너희 예배가 형식화되어 있다고 뼈아프게 지적하시기 전까지,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그렇게 믿음 생활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이 ‘팬데믹 시간’을 통해서 우리의 회개를 원하고 계십니다. 형식적인 회개가 아니라 철저한 회개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동안 형식적이고 죽어 있는 믿음생활을 해 왔던 우리의 지난 삶을 철저하게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말씀을 한번 보세요. “Here there is no Greek or Jew, circumcised or uncircumcised, barbarian, Scythian, slave or free, but Christ is all, and is in all.” (골로새서 3:11) 무슨 말인가요? 그리스인도, 유대인도, 할례를 받은 사람도 받지 않은 사람도, 야만인도, 스키타이 사람도, 노예도, 자유인도, 구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때는 그런 구별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선민 사상을 가지고 자기들과 이방인들을 구별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자기들이 최고의 문화 민족이라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은 그런 것이 뭐가 중요하냐는 것입니다. 모든 것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전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 어떤 상황에서나 그리스도만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맞습니까? 예수님은 여러분의 삶에서도 모든 것이 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전부(everything)’가 되고 있습니까?

‘You Are My All in All’이라는 노래를 다 아시지요? 1991년에 나온 노래인데요. Dennis Jerni-gan이 부른 노래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노래입니다.

You are my strength when I am weak (내가 약할 때 주님은 나의 힘이예요)

You are the treasure that I seek (주님은 내가 찾는 보물이예요)

You are my all in all (주님은 나의 전부예요)

Seeking You as a precious jewel (귀중한 보석처럼 주님을 찾고 있어요)

Lord, to give up I'd be a fool (주님을 찾는 일을 포기한다면 저는 정말 바보가 되고 말거예요)

You are my all in all (주님은 나의 전부이니까요)

Jesus, Lamb of God worthy is your name (예수, 하나님의 어린양 그 이름이 합당해요)

Jesus, Lamb of God worthy is your name (예수, 하나님의 어린양 그 이름이 합당해요)

어느 새 우리는, 주님은 나의 모든 것이라는 고백을 잊어버렸습니다. 이 고백을 잊어버린 채 우리는 교회를 드나들고 예배를 드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이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는 여러분, 여러분 중에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다닐 때, 아니면 대학에 다닐 때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이 계신가요? 그 때 여러분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었던 주님을 향한 고백은 어디로 갔습니까? 누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이 시대를 탓해야 할까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가슴이 식어가고, 나는 형식적인 크리스천이 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모든 것이 아니라 나의 많은 것들 중에 하나가 되어 버렸습니다. 노래 가사는 내가 주님을 찾는 일을 포기한다면 나는 어리석은 사람일 것이라고 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을 찾기를 중단해버린 바보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읽은 로마서 13장의 말씀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여러분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압니다.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의 구원이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더 가까워졌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11-12절)

우리가 겪고 있는 ‘팬데믹 시간’ 속에 주님의 의도(意圖)가 들어 있습니다. 이것이 ‘팬데믹 시간’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팬데믹 시간’에 대한 주님의 의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 주님의 의도를 제대로 깨닫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가혹한 말로 들리겠지만, 우리가 주님의 의도를 깨닫고 주님께 돌아올 때까지 ‘팬데믹의 시간’이 계속되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저 역시 하나님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지금의 우리의 믿음생활을 철저하게 회개하고,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으라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셨으면 우리에게 ‘팬데믹 시간’을 주셨겠습니까? “This is all the more urgent, for you know how late it is; time is running out.” (11절) 그냥은 되지 않으니까 하나님은 ‘팬데믹 시간’을 통해 우리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시면서 회개하도록,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말씀하고 계십니다. 정말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는 정말 새로워져야 합니다. 주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어둠의 옷을 벗고 주님이 입으라고 하시는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오늘 제가 못다한 설교를 이번 주 새해 설교에서 계속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