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113-128

[싸멕] 

113 나는 마음이 간사한 사람들을 싫어합니다. 나는 주의 법을 사랑합니다. 114 주는 나의 피난처이시며 방패이십니다. 나는 나의 소망을 주의 말씀에 두었습니다. 115 악을 행하는 자들이여, 내게서 떠나십시오. 내가 나의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려 합니다. 116 여호와의 약속에 따라 나를 살려 주시면 내가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소망들이 깨어지지 않게 해 주소서. 117 나를 붙들어 올려 주시면 내가 구출될 것입니다. 내가 항상 주의 법령들을 존중할 것입니다. 118 주는 주의 법령들로부터 떠나 있는 모든 자들을 거절하십니다. 이는 그들의 거짓됨이 헛되기 때문입니다. 119 주는 땅의 모든 악한 자들을 쓰레기같이 버리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의 법규들을 사랑합니다. 120 내가 주를 두려워하여 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주의 법도를 공경하고 두려워합니다. 

[아인]

121 나는 지금까지 의롭고 정의로운 일을 해 왔습니다. 나를 나의 압제자들에게 넘기지 마소서. 122 주의 종의 행복을 보장해 주소서. 교만한 자들이 나를 괴롭히지 않게 해 주소서. 123 나의 눈이 주의 구원을 찾다가 쇠약해졌습니다. 주의 의로운 약속을 찾다가 흐리게 되었습니다. 124 주의 변함 없는 사랑으로 주의 종을 다루어 주소서. 내게 주의 법령들을 가르쳐 주소서. 125 나는 주의 종입니다. 내게 분별력을 주소서. 그러면 내가 주의 법규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126 여호와여, 주께서 일하실 때입니다. 주의 법이 깨어지고 있습니다. 127 내가 주의 명령들을 사랑합니다. 순금보다 더 사랑합니다. 128 내가 주의 모든 교훈들을 옳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잘못된 모든 길들을 미워합니다. (쉬운성경)

[Samekh] 

113 I hate those with divided loyalties, but I love your instructions. 114 You are my refuge and my shield; your word is my source of hope. 115 Get out of my life, you evil-minded people, for I intend to obey the commands of my God. 116 Lord, sustain me as you promised, that I may live! Do not let my hope be crushed. 117 Sustain me, and I will be rescued; then I will meditate continually on your decrees. 118 But you have rejected all who stray from your decrees. They are only fooling themselves. 119 You skim off the wicked of the earth like scum; no wonder I love to obey your laws! 120 I tremble in fear of you; I stand in awe of your regulations.

[Ayin] 

121 Don’t leave me to the mercy of my enemies, for I have done what is just and right. 122 Please guarantee a blessing for me. Don’t let the arrogant oppress me! 123 My eyes strain to see your rescue, to see the truth of your promise fulfilled. 124 I am your servant; deal with me in unfailing love, and teach me your decrees. 125 Give discernment to me, your servant; then I will understand your laws. 126 Lord, it is time for you to act, for these evil people have violated your instructions. 127 Truly, I love your commands more than gold, even the finest gold. 128 Each of your commandments is right. That is why I hate every false way. (New Living Translation)

오늘 본문 말씀은 히브리어 열 다섯 번째 자음 [싸멕(Samekh)]과 열 여섯 번째 자음 [아인(Ayin)], 모두 16절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진지한 고백들을 나누고 있습니다. “나는 주의 법을 사랑합니다.” (113절) “나는 나의 소망을 주의 말씀에 두었습니다.” (114절) “나는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려 합니다.” (115절) “내가 항상 주의 법령들을 존중할 것입니다.” (117절) “내가 주의 법규들을 사랑합니다.” (119절) “나는 주의 법도를 공경하고 두려워합니다.” (120절) “나는 주의 모든 교훈들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128절)

여러분들은 이런 말씀들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혹시 그의 말들이 형식적이고 위선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까? 아니면, 저자의 삶이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까?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모두 옳다고 믿기 때문에 자기는 '모든 잘못된 길(every false way)’을 미워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력(理解力)이 있는 사람은 금방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견고하게 나의 가치관으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요. 맞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고 믿고 그 말씀을 따라 살면 잘못될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좁은 길’과 ‘넓은 길’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7:13-14). ‘좁은 길’은 인생의 올바른 길을 말하는데, 이 길은 걷기가 힘들고 외롭습니다. ‘좁은 길’을 걷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좁은 길’ 대신 ‘넓은 길’로 가기를 좋아합니다. 너도 나도 그 길로 가니까 안심이 되지만. 그 길은 ‘잘못된 길(false way)’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상하게도 인생의 잘못된 길은 대부분 ‘넓은 길’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넓은 길’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합니다. 저자는 자기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옳은 길인 것을 알기 때문에 모든 ‘잘못된 길’을 미워한다고 합니다. 이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넓은 길’의 유혹을 뿌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이라는 미국의 사상가(思想家)가 있습니다. 그는 매사추세츠 보스턴에서 태어나서 콩코드(Concord)에서 살다가 콩코드에서 죽었습니다. 그는 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는 성공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건강한 아이를 낳든, 작은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떠나는 것. 당신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단 한사람이라도 조금 더 쉽게 숨쉴 수 있었음을 아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To leave the world a bit better whether by a healthy child, a garden patch, or a redeemed social condition; to know even one life has breathed easier because you lived. This is to have succeeded).” 이보다 쉽게,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나의 삶을 반성하게 하는 글이 또 있을까요? 에머슨은 목사였습니다. 그의 글은 쉬워서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그의 글에는 깊이가 있었고,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그의 사상의 밑바닥에는 성경 말씀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읽으면서 가장 저의 가슴에 와 닿았던 말씀은 “주는 땅의 모든 악한 자들을 쓰레기같이 버리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의 법규들을 사랑합니다(119절)” 이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한번 다른 번역성경으로 읽어보겠습니다. “You skim off the wicked of the earth like scum; no wonder I love to obey your laws!” (New Living Translation) “As far as you are concerned, evil people are garbage, and so I follow your rules.” (Contemporary English Version) “You remove all the wicked on earth as if they were dross; therefore, I love Your decrees.” (Holman Christian Standard Bible) “You have removed all the wicked of the earth like dross [for they have no value]; therefore, I love Your testimonies.” (Amplified Bible) 이 말씀에 ‘scum(찌꺼기, 쓰레기)’ ‘garbage(쓰레기)’ ‘dross(쇠똥, 아무 쓸 데 없는 것)’란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이 땅의 악한 사람들을 눈여겨보시고 악한 사람들을 쓰레기처럼,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것으로 여기시고 remove(제거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악한 사람들을 그냥 넘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믿음생활을 하다가 시험(試驗, temptation)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많은 시험들이 있지만 그 중에 가장 큰 시험은 “왜 악한 사람들이 성공하고 잘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나는 믿음으로 살려고 이렇게 애를 쓰는데도 내가 하는 일은 잘 안되는데, 왜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 저 사람들은 잘 되느냐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시험에 빠진 적이 있습니까? 혹시 오늘 예배드리는 분들 중에 이런 시험 때문에 힘들어 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그런 분들이 계시면 오늘 119절 말씀을 통해서 큰 위로를 받으시고, 속히 시험에서 빠져나오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볼 때는 악한 사람들이 잘 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 사람들을 ‘scum’처럼, ‘garbage’처럼, ‘dross’처럼 여기시고 제거해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로,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目的)에 어긋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해도 그 일을 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形象)대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창조의 목적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 창조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말씀을 한번 보세요. “우리를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새 사람으로 변화시켜 착한 일을 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이미 오래 전부터 선한 일을 계획해 놓으셨습니다. 우리의 삶이 선하게 되도록 그렇게 계획해 놓으셨습니다.” (에베소서 2:10)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For we are God's masterpiece. He has created us anew in Christ Jesus, so we can do the good things he planned for us long ago.”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하여 가지고 계시는 창조의 목적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착하고 선한 삶을 살아서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부디 이 말씀을 가볍게 듣지 않기를 바랍니다. ‘악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아무 쓸모 없는 쓰레기 같은 사람으로 취급하시고 제거해 버리십니다.

둘째로, 악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거절(拒絶)한 사람들입니다. 악한 사람들은 그들 속에 있는 죄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이 가려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서 그를 믿게 하시고,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 말이 “He has created us anew in Christ Jesus”라는 말씀의 뜻입니다. 악한 사람들은 이 기회를 스스로 거절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쓰레기’처럼 버리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무섭지 않습니까? 무섭지만 아직 우리의 삶을 고칠 기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회가 언제까지 남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편 119편의 저자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의 법규들을 사랑합니다(No wonder I love to obey your laws)!” (119절 하반절) 그는 조금도 의심 없이, 당연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이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지키는 것이 악한 사람이 되지 않는 삶의 비결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본문 말씀을 묵상하다가 특별히 주목한 말씀이 있습니다. 121절에 나오는 “나는 지금까지 의롭고 정의로운 일을 해 왔습니다(I have done what is just and right)(121절)” 이 말씀입니다. 우리도 똑 같은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나만큼만 정직하게 살라고 해!” “그 사람은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야!” “나는 양심에 걸리는 일이 없어!” 맞는 말 같지만 틀린 말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 되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고 보기 싫은 것은 보지 않게 됩니다. 소위 ‘블라인드 스팟(blind spot)’이 생기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깜짝 놀란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고린도전서 4:4에 있는 말씀인데요. “나는 양심에 걸리는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흠이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나를 판단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My conscience is clear, but that doesn't prove I'm right. It is the Lord himself who will examine me and decide).” 정말 놀라운 말씀 아닙니까? 인간의 죄된 본성(本性)을 이 말씀처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말씀이 또 있을까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외에는 세상 어디에서도 이런 글을 읽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 시편 저자가 “나는 지금까지 의롭고 정의로운 일을 해 왔습니다” 이렇게 주장하고 있는 말씀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어려운 문제이지만, 저는 바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오시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한계(限界, limit)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알고, 나 자신을 아는 지식이 엄청나게 확장(擴張, expansion)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예수님이 오시기 전, 율법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비유적으로 말하면 얼굴에 베일(veil)을 쓰고 사물을 보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것이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한계였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이 오신 이후, 복음의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베일을 벗고 사물을 보는 것과 같아서 훨씬 더 분명하게 사물을 구별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3:13-16에 나오는 유명한 바울의 ‘베일의 비유(The Parable of the veil)’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편 저자가 갇혀 있었던 한계에 갇혀서는 안 됩니다. 내가 나 자신을 판단하는 기준(standard)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판단하는 기준은 온전히 우리 주님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자칫하면 우리가 쓰레기 같은 가치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내 자신이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면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기준에 맞춰서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매번 그 기준에 맞지 않기 때문에 실망스럽고, 힘들고, 짜증이 나기 때문에 오래 지속할 수가 없습니다. 민들레 때문에 짜증이 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정원의 잔디를 잘 가꿔 놓아도 어디선가 민들레 씨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서 잔디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민들레를 뽑고 또 뽑아도 끝이 없습니다. 이 사람이 친구에게 “이 놈의 민들레 때문에 잔디를 가꿀 수가 없어!” 하고 짜증을 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친구가 하는 말이 “민들레를 뽑으려고 하지 말고 민들레를 사랑해 봐!” 이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민들레를 싫어하는 마음이 거짓말처럼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맞습니까? 민들레를 잡초라고 생각하고 잔디를 망친다고 생각하면 짜증이 나지만, 민들레를 사랑하면, 민들레가 피우는 노란 꽃까지 사랑스러워집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그렇지 않을까요?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 든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의 기준이다”라고 생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에 기쁨과 감사가 주어집니다. 

시편 저자의 말을 한번 들어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주의 법규들을 사랑합니다.” (119절) “그러므로 나는 주의 법도를 공경하고 두려워합니다.” (120절) “내가 주의 모든 교훈들을 옳다고 생각합니다.” (128절) “내가 주의 명령들을 사랑합니다. 순금보다 더 사랑합니다(Truly, I love your commands more than gold, even the finest gold).” (127절) 이 말씀 속에 우리 인생을 쓰레기 같이 살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이 들어 있습니다.

지난 주 수요일 ‘오늘의 양식’에서 시편 8편 말씀을 읽었습니다. 4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성경공부의 배경이 있는 사람들은 ‘인자’라는 말을 보면 금방 “인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에 나오는 ‘인자’는 앞에 나오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왜 나 한 사람을 주목하시고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지, 이 시편을 쓴 다윗은 감격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나에게 그렇게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계실까요? 우리가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살면 안 되니까, 우리가 악한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이 쓰레기 같이 버리시는 사람들이 되면 안 되니까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깨닫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