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7/2022 | 부활절 메시지
눈을 주님께 돌려(III) (Turn Your Eyes Upon Jesus)
김태환 목사
요한복음 12:20-26
20 유월절에 예배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에 온 사람들 중에 그리스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21 이 사람들이 갈릴리 벳새다 출신인 빌립에게 와서 요청했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 22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였고, 안드레와 빌립은 다시 예수님께 그 말을 전했습니다.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24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법이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지만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히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를 섬기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서 높이실 것이다.” (쉬운성경)
20 Some Greeks who had come to Jerusalem for the Passover celebration 21 paid a visit to Philip, who was from Bethsaida in Galilee. They said, "Sir, we want to meet Jesus." 22 Philip told Andrew about it, and they went together to ask Jesus. 23 Jesus replied, "Now the time has come for the Son of Man to enter into his glory. 24 I tell you the truth, unless a kernel of wheat is planted in the soil and dies, it remains alone. But its death will produce many new kernels?a plentiful harvest of new lives. 25 Those who love their life in this world will lose it. Those who care nothing for their life in this world will keep it for eternity. 26 Anyone who wants to be my disciple must follow me, because my servants must be where I am. And the Father will honor anyone who serves me. (New Living Translation)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절을 영어로 ‘이스터(Easter)’라고 합니다. 그리고, 부활을 ‘레저렉션(resurrection)’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다시 일어나셨다(re+surge)’는 뜻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은 크리스천의 삶을 지탱하는 토대(foundation)와 같습니다. 이 말은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는 크리스천의 삶은 마치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아서 언제, 어떤 인생의 위기를 만나 무너질지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상에 확장되던 중요한 시기에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바울을 가리켜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나의 이름을 전하도록 선택된 나의 도구이다(사도행전 9: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그는 하나님의 도구(instrument)로써 그의 인생을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전파한 복음도 헛되며 여러분의 믿음도 헛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불쌍한 사람들일 것입니다(We are more to be pitied than anyone in the world).” (고린도전서 15:14, 19) 이 말씀이 맞습니까?
부활에 대하여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Our Lord has written the promise of resurrection, not in the books alone, but in every leaf in springtime.”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봄이 되면 죽었던 가지에 물이 오르고 파란 잎이 돋아나는 자연 속에서도 느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또 톰 라이트(N. T. Wright, 1948-present)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The message of Easter is that God's new world has been unveiled in Jesus Christ and that you're now invited to belong to it(부활절의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구상하신 새로운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났고, 당신은 그 새로운 세상의 일원이 되도록 초청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우리 앞에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맞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몰랐을 때 우리는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활에 대한 믿음을 가진 후에는 전혀 새로운 관점으로 우리 인생을 보게 되었습니다.
또 본회퍼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는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나기 4개월 전에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가 갇혀 있던 수용소에 연합군이 들어오기 불과 며칠 전에 교수형에 처해진 것입니다. 본회퍼의 전기(傳記)를 읽어보면 그의 사형을 집행했던 간수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을 본 일이 없다.” 본회퍼는 교수형을 받기 위해 끌려 나가면서 같이 갇혀 있던 동료를 붙들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Good-bye. It is the end, but for me, beginning of life(안녕히 계세요. 이것으로 끝입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생명의 시작입니다)!” 그의 묘비에는 “디트리히 본회퍼–그의 형제들 가운데 서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Dietrich Bonhoeffer, a witness of Jesus Christ among his brethren)”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많은 시간을 고민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부활절 설교가 공식적으로 저의 마지막 부활절 설교가 되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성경 본문을 선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 설교 내용을 구상합니다. 제가 오늘 선정한 본문 말씀은 요한복음 12:20-26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 부활에 대한 메시지가 가장 잘 나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좋아하면서도 막상 이 말씀이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면 여러분의 삶은 진작 변화되었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이스라엘의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인 ‘유월절(The Passover)’입니다. 이때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입니다. 이스라엘 내국인들과 해외에 나가 있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그리고 이 축제를 구경하러 온 외국인들로 예루살렘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볐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그리스’ 사람들도 유월절 축제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리스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이 아니라, 순수한 그리스 사람들(Greeks)같아 보입니다. 말씀의 정황상 그렇게 보입니다. 이 사람들이 예수님께 직접 질문하지 않고 제자들을 통해서 질문하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 그리스 사람들이 예수님께 가지고 온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오늘 성경 말씀을 아무리 찾아봐도 이들의 질문에 대한 말씀은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추정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한번 보세요.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고 전합니다.” (고린도전서 1:22-23) 이 말씀 속에 ‘유대인’ ‘그리스인’ 그리고 ‘크리스천들’ 이렇게 세 부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한다고 합니다. ‘표적(表迹)’은 ‘miraculous signs’이라고 번역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복음서에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표적을 보여 달라고 말하는 말씀들이 많이 나옵니다. 당신이 표적을 보여주면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인들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데요.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는다고 합니다. 이 ‘지혜’라는 말을 영어로 ‘wisdom’이라고 번역할 수 있겠지만, 그리스 말로는 ‘소피아(Sophia)’입니다. 우리가 ‘철학’을 ‘philosophy’라고 하잖아요?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철학자들’을 ‘philosopher’라고 하잖아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이 일찍부터 지혜를 사랑했기 때문에 철학자들이 모두 그리스에서 나오지 않았습니까? 유명한 소크라테스(470-399B.C.), 플라톤(428-348B.C.), 아리스토텔레스(384-322B.C.), 피타고라스(570-495B.C.) 등이 모두 그리스 사람들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맞습니다. 사도 바울이 아테네 선교를 가서 가장 놀랐던 것이 아네테 시민들이 날마다 광장에 모여 토론을 벌이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때 바울이 만난 사람들 중에 ‘Epicurean and Stoic philosophers(에피큐리안들과 스토익 철학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때 이미 상당한 수준의 철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인간의 삶을 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인생의 즐거움이란 무엇인가?” “참된 행복은 무엇인가?” “마음의 평안은 어디서,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이런 주제들을 가지고 토론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눈에 비친 아테네 사람들은 “새로운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말하거나 듣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었습니다(All the Athenians seemed to spend all their time discussing the latest ideas).” (사도행전 17:21)
예수님을 만나러 온 그리스 사람들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새로운 지식이나 새로운 사상을 배우기 위해 온 사람들이 틀림없습니다. 그들은 유대나라에 지혜로운 랍비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유월절 명절도 구경할 겸 예루살렘을 찾아왔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의도를 알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법이다(I tell you the truth, unless a kernel of wheat is planted in the soil and dies, it remains alone. But its death will produce many new kernels—a plentiful harvest of new lives).” (24절)
예수님께서 그리스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내가 너희들에게 해 줄 말은 이 말 밖에 없다. 너희들은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라고 들었는데, 내가 해 준 말 속에 너희들이 찾는 지혜가 모두 들어 있다!” 이런 뜻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I tell you the truth)” 이렇게 말씀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꼭 생각나는 일이 있습니다. 제가 무슨 경연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았습니다. 그 때 부상(副賞)으로 책을 받았는데, 그 책 제목이 “The Seed Must Die(씨는 죽어야 한다)”였습니다. 그 책의 내용은 한국의 손양원(1902-1950)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목사님 중 한 분이신데요. 손양원 목사님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랑을 실천하신 분입니다. 그 목사님은 정말 한 알의 밀알처럼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진 분입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의 별명이 ‘사랑의 원자탄’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자기 아들을 죽인 사람을 어떻게 양아들로 받아들일 수가 있겠습니까? 제가 확인한 바로는 그 양아들이 목사가 되어서 지금 L.A.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를 인터뷰한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제가 최근에 ‘니콜라스 윈턴(Nicholas Winton, 1909-2015, 영국)’을 주인공으로 한 감동적인 영상을 보았습니다. 체코를 점령한 나치는 그곳에 살고 있는 수많은 유태인들을 난민 수용소에 가두었습니다. 아이들까지 갇힌 난민 수용소의 실상은 비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이 광경을 목격한 당시 29살의 은행원이었던 ‘니콜라스 윈턴’은 아이들을 구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목숨을 내놓고 사비를 들여 아이들을 영국으로 빼돌려 입양을 시킵니다. 나치 장교에게 뇌물을 주고 이 일을 성사시켜 총 8번에 걸쳐 아이들을 기차에 실어 영국으로 보냅니다. 이렇게 빼돌린 아이들이 무려 669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한번, 막 세계 제2차 대전이 시작되면서 250명의 아이들을 싣고 가던 기차가 멈추게 되고, 안타깝게도 그 아이들은 모두 행방불명이 되어 생사를 모르게 됩니다. ‘니콜라스 윈턴’은 이 일에 죄책감을 느껴 그 후 50년 동안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고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락을 정리하던 그의 아내가 오래 묵은 그의 수첩을 발견합니다. 거기에는 빼곡하게 그가 빼돌려 목숨을 구해 준 669명의 아이들의 이름과 사진이 들어 있었습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그의 아내는 방송국에 제보를 합니다. 그래서 ‘니콜라스 윈턴’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눈물과 감동 없이는 볼 수 없는 영상입니다. (동영상 링크 https://youtu.be/idzS-K1LrPc)
놀라운 것은, 그가 구출한 669명의 아이들이 6,000여명의 아이들로 불어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그 말씀 아닙니까?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법이다.”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져 죽었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여러분과 저도 그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들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을 읽어 보십시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지만,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히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25-26절) 예수님을 찾아왔던 그리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들이 아테네 광장에서 날마다 토론을 일삼던 말씀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 그리스 사람들이 고국으로 돌아가 어떻게,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없지만, 몹시 궁금합니다.
철학은 아무리 그 내용이 심오하다고 할지라도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사람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저는 성경을 읽고 삶이 변화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철학책을 읽고 삶이 변화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철학은 사람이 만든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보세요. 여러분, 바울은 철학에 대하여 이렇게 경계했습니다. “헛된 말과 거짓 철학에 속아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그것들은 모두 사람의 생각에서 비롯되었으며 아무 가치도 없습니다. 결코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므로 멀리하시기 바랍니다(Don't let anyone capture you with empty philosophies and high-sounding nonsense that come from human thinking and from the spiritual powers of this world, rather than from Christ).” (골로새서 2:8) 기독교의 복음과 비교해 보면 철학은 그야말로 인간의 생각에서 나온 ‘empty philosophies and high-sounding nonsense’입니다. 바울이 정확하게 지적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만이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나를 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은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입니다. 성경은 그 자리를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the place of honor at God's right hand)’이라고 했습니다. 본회퍼도, 손양원 목사님도, 니콜라스 윈턴도 모두 예수님을 따라 한 알의 밀알 땅에 떨어져 죽는 삶을 살았고, 지금 예수님과 함께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모두 희생과 헌신을 거부하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특별한 생각 없이 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그런 삶을 살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 아닙니다. 다시 톰 라이트의 말이 생각납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구상하신 새로운 세상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새로운 세상의 일원이 되도록 초청을 받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세상에 초청받은 사람들은 누구나 예수님처럼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