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33-43

38 예수님께서는 몹시 아픈 마음으로 무덤에 가셨습니다. 그 무덤은 입구를 커다란 돌로 막은 굴이었습니다. 39 예수님께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나사로의 여동생 마르다가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주님, 오빠가 죽어 무덤에 있은 지, 이미 사 일이나 되어 냄새가 심하게 납니다.” 40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고 내가 너에게 말하지 않았느냐?” 41 그래서 사람들이 입구에서 돌을 옮겨 놓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지금까지 제 말을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42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제 말을 들으시는 줄을 제가 압니다. 그러나 저는 주위에 있는 이 사람들을 위하여, 그들이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음을 믿게 하기 위하여 이 말을 한 것입니다.” 43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신 후, 큰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쉬운성경)

38 Jesus was still angry as he arrived at the tomb, a cave with a stone rolled across its entrance. 39 "Roll the stone aside," Jesus told them. But Martha, the dead man's sister, protested, "Lord, he has been dead for four days. The smell will be terrible." 40 Jesus responded, "Didn't I tell you that you would see God's glory if you believe?" 41 So they rolled the stone aside. Then Jesus looked up to heaven and said, "Father, thank you for hearing me. 42 You always hear me, but I said it out loud for the sake of all these people standing here, so that they will believe you sent me." 43 Then Jesus shouted, "Lazarus, come out!" (New Living Translation)

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날은 시원한 환경 속에서 예배를 드리면 좋은데, 지난 주에 에어컨 작동 안 하는 것이 있어서 고쳤습니다. 오늘은 본당이 비교적 시원한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오늘은 신약성경의 핵심 말씀 시리즈 열 번째 시간으로 ‘믿음’에 대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목사님들의 설교를 통해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이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많이 들어서 잘 아는 말 같은데, 무엇을 믿는 것인지, 믿음의 대상은 누구인지, 믿음의 결과는 무엇인지, 믿음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습니다. 

우선 성경에 나오는 믿음에 대한 말씀을 한번 보실까요? 히브리서 11:6 말씀인데요. “믿음이 없이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그가 계시다는 것과 그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믿어야 합니다”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And it is impossible to please God without faith. Anyone who wants to come to him must believe that God exists and that he rewards those who sincerely seek him.” 이 말씀 속에 믿음에 대하여 꼭 알아야 할 것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우리의 느낌이나 감정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 우리의 생각이나 느낌이나 감정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한번 보세요. “할 수 있으면,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십시오.” “‘할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제가 믿습니다! 제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십시오.” (마가복음 9:22-24) 이 아버지에게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습니다. 자기 아들에게 악한 영이 들어가서 시도 때도 없이 넘어지는 것입니다. 이 아버지는 “저러다가 내 아들이 물 속에 빠지고 불 속에 넘어지면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한 나머지 예수님께 와서 자기 아들을 고쳐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아버지에게 하신 말씀을 보세요.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Anything is possible if a person believes).” 여기서 ‘믿는 사람’이란 무엇을 믿는 사람을 말할까요? 한번 답을 찾아보세요. ①자기 아들의 병이 나을 줄로 믿는 사람 ②무엇을 믿는 사람인지 분명하지 않다. ③이 아버지에게 아들의 병이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이 부족한 것을 지적한 말이다. ④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사람을 말한다.

언젠가 제가 ‘believe in’이라는 말의 의미를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영어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I believe in God”이라고 하거든요? Merriam-Webster 사전에 보면 ‘believe in’에 세가지 의미가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1) To have faith or confidence in the existence of God (하나님이 계시다고 확신하는 것) (2) To have trust in the goodness or value of God (하나님의 선하심을 확신하는 것) (3) To have trust in the ability of God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것) 어떻습니까? 히브리서 11:6에 나오는 말씀과 동일하지 않습니까?

재미있는 것은 미국 화폐에 “In God we trust”라고 작은 글씨로 씌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중에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돈)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마태복음 6:24)”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 나오는 ‘재물’이라는 말이 희랍어 원문에는 ‘μαμμωνας (맘모나스)’라고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맘몬’입니다. 영어는 ‘mammon(매먼)’이고요. 예수님은 이 ‘맘모나스’를 의인화시켜서(to personalize) 돈이 사람을 지배하면 그 사람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미국을 세운 믿음의 선조들은 돈에 경고문을 써넣은 것입니다. 돈을 신뢰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라고요. 미국과 같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돈에 그런 경고문을 써넣은 것이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둘째로, 히브리서 11:6 말씀은 하나님을 진지하게 찾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고 합니다. “He rewards those who sincerely seek him”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진실하게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자기를 알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만나주시고, 그 사람과 ‘인격적인 관계(personal relationship)’를 맺는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구약 시대에서부터 하나님께서 해 오신 약속입니다. 보세요. “너희가 온전한 마음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날 것이다(And you will seek Me and find Me, when you search for Me with all your heart).” (예레미야 29:13)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But from there you will seek the LORD your God, and you will find [Him] if you search for Him with all your heart and all your soul).” (신명기 4:29) 두 말씀 모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에 빠져 절망 속에 빠져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두시고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동시에 이 말씀은 우리가 지금 어떤 상황에 있든지 상관없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언제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속한 모든 교우들이, 그리고 특별히 청년들이 하나님을 찾고 만나는 일에 온 마음을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청년의 정욕(youthful lusts)’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디모데후서 2:22). 여러분, 다윗이 쓴 시편 말씀을 한번 들어 보세요.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자들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Blessed are the people whose God is the LORD).” (시편 144:15)

이런 믿음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실까요? 예루살렘 가까운 곳에 ‘베다니’라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이곳에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가 살고 있었습니다. 마리아에 대해서는 특별한 소개의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주님의 발을 씻어주었던 사람이라는 바로 마리아였다고 합니다. 마르다는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방문하시던 예수님 일행을 자기 집에 모셔 대접을 했습니다(누가복음 10:38-42). 그리고, 나사로에 대해서는 ‘주께서 사랑하는 사람(Lord’s dear friend, 요한복음 11:3)’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사랑했고, 예수님은 이 세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사로가 매우 위독하다는 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만사를 제쳐 두고 베다니로 달려가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그런데, 요한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와 마리아, 그리고 오빠 나사로를 사랑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말을 듣고도, 지금 계신 곳에서 이틀을 더 지내셨습니다.” (요한복음 11:5-6) 요한이 이렇게 기록한 것을 보면 그 때 제자들도 왜 예수님께서 베다니로 달려가지 않는지 이상하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나사로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도 이틀이나 지난 후에 베다니로 가셨습니다.

베다니에 가 보니 나사로는 이미 죽은 지 나흘이 된 때였습니다. 오빠를 잃은 마르다와 마리아를 위로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슬픔에 싸여 우는 사람들을 보면서 “격한 감정이 들어 몹시 마음 아파하셨고(요한복음 11:33)”,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Jesus wept)(요한복음 11:35)”고 그의 복음서에 기록했습니다. Amplified Bible에 보면 이 말씀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He was deeply moved in spirit [to the point of anger at the sorrow caused by death] and was troubled(그는 [죽음으로 인한 슬픔에 대해 분노할 만큼] 심령이 깊이 감동되어 근심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나사로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하는 것을 보고 분노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궁금한 것은 예수님께서 왜 슬퍼하셨고, 왜 분노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슬퍼하셨습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연약함 중에서 가장 큰 연약함은 죽음입니다.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저는 설교 준비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인용합니다. 인용할 때는 꼭 그 사람이 언제 나서 언제 죽었는지 년도를 찾아서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몇 주 전에 소개했던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같은 천재 화가는 1853에 나서 1890년 죽었습니다. 37살의 나이에 죽었습니다. 그가 그림을 그렸던 기간은 10년에 불과합니다. 참 아깝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런 연약함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런 인간의 연약함을 공감하시면서 슬퍼하신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인간의 무지(無知)를 슬퍼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요한복음 11:25) 그리고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Anyone who believes in me will live, even after dying(누구든지 나를 믿는 사람은 죽은 후에도 살 것이다).” 셋째로, 예수님은 말씀을 쉽게 잊어버리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며 슬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고 내가 네게 말하지 않았느냐(Didn't I tell you that you would see God's glory if you believe)?” (요한복음 11:40) 

마르다는 예수님이 언젠가 말씀해 주신 이 말씀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오빠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퀴즈를 해 볼까요? 예수님께서 “If you believe(네가 믿으면)”라고 하셨는데, 무엇을 믿으라는 말인가요? ①하나님의 영광을 볼 줄로 믿으라는 말이다. ②무엇을 믿으라는 말인지 분명하지 않다. ③하나님의 영광을 불신하지 말라는 말이다. ④ “나를 믿으면(if you believe in me)”이라는 말이다. 이 중 몇 번이 정답인가요?

Amplified Bible에 보면 이 말씀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Did I not say to you that if you believe [in Me], you will see the glory of God [the expression of His excellence]?” ‘glory of God’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탁월하심에 대한 표현’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탁월하심’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탁월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행하시는 최선의 것들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맞습니까? 성 어거스틴(St. Augustine, 354-430)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Faith is to believe what you do not see; The reward of this faith is to see what you believe(믿음은 당신이 보지 못하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런 믿음에 주어지는 보상은 당신이 믿는 것을 보는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해 주신 일 중에 가장 탁월하신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 말씀을 한번 보십시오. “그러나 누구든지 그분을 영접하는 사람들, 그분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But to all who did receive him, who believed in his name, he gave the right to become children of God).” (요한복음 1:12, English Standard Version)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주신 것입니다. ‘right’라는 말 대신 ‘privilege(특권)’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일이 얼마나 놀랍고 흥분된 일이길래 요한은 이런 ‘특권’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했을까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실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까? 바울은 로마서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의 상속자들(co-heirs with Christ)’이 된 것입니다.” (로마서 8:17) 예수님을 믿기 전 ‘죄인’이었던 우리의 신분이 ‘하나님의 상속자’로 신분이 격상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로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요즘에 ‘최애(最愛, bias)’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최애 영화’ ‘최애 책’ ‘최애 노래’ ‘최애 음식’ ‘최애 친구’라는 말을 씁니다. 요한복음 11:40절,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이 말씀을 여러분의 ‘최애 말씀’으로 한번 삼아 보시겠습니까? 생각했던 대로 일이 잘 안될 때도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힘을 내시시기 바랍니다.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나사로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도 금방 베다니로 달려가지 않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예수님의 기도 속에 들어 있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음을 믿게 하기 위하여(so that they will believe you sent me)” (요한복음 11:42) 그래서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는 말씀을 증명하시려고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기를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실 때도 우리가 완전히 절망하도록, 우리가 죽기를 기다리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절망은 그냥 절망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탁월하심이 드러나는 자리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