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6:15-16, 19

15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온 세상으로 가거라.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여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심판을 받을 것이다.......19 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마치시고, 하늘로 들려 가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쉬운성경)

15 He said to them, "Go into all the world and preach the good news to all creation. 16 Whoever believes and is baptized will be saved, but whoever does not believe will be condemned........19 After the Lord Jesus had spoken to them, he was taken up into heaven and he sat at the right hand of God. (New International Version)

한자 사자성어에 ‘신신당부(申申當付)’라는 말이 있습니다. “거듭하여 간곡히 당부하다”라는 뜻입니다. 영어에 ‘entreat’라는 말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구약성경 신명기를 영어로 ‘Deuteronomy’라고 합니다. ‘deutero-‘라는 말은 ‘두 번째(second)’라는 뜻입니다. ‘-nomy’라는 말은 ‘법(law)’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출애굽 1세대들은 광야에서 모두 죽고 그들의 자녀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갑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출애굽 2세대들에게 그들의 부모들에게 했던 출애굽기와 민수기 말씀을 다시 한번 가르친 것이 ‘신명기’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신명기’를 한자로 쓸 때 ‘申命記’라고 쓰거든요? ‘申’자는 ‘신신당부’할 때의 ‘신’자와 같습니다. 모세는 출애굽 2세대들에게 제발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가나안 땅의 풍요로운 삶에 빠져서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말고 꼭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신신당부한 책이 바로 ‘신명기’입니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그의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All authority has been given to me in Heaven and in the earth; in the manner in which my Father has sent me, I am sending you(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마태복음 28:18, Aramaic Bible in Plain English) 예수님은 이 마지막 말씀을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all authority(모든 권위)’를 가지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그렇게 ‘신신당부’했는데도 출애굽 2세대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의 농경문화의 풍요로움에 빠져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부모님이 아무리 ‘신신당부’해도 부모님의 당부를 깜빡 잊어버리고 지키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 말을 꼭 지켜 달라고 ‘신신당부’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이 주신 모든 권위를 가지고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 명령을 우리는 ‘The Great Commission(지상명령)’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우리가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어떤 상황에 있든지, 반드시 수행해야 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지상명령’의 의미를 잘 알았기에 제자 디모데에게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디모데후서 4:2) 이 말씀을 Amplified Bible은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Preach the word [as an official messenger]; be ready when the time is right and even when it is not [keep your sense of urgency, whether the opportunity seems favorable or unfavorable, whether convenient or inconvenient, whether welcome or unwelcome] 말씀을 전하기에 좋은 때든지 아니든지, 항상 말씀을 전해야 하는 긴급함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상황이 우리에 좋게 돌아갈 때가 있고, 좋지 않게 돌아갈 때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편리한 상황이 있고 불편한 상황이 있습니다. 우리가 환영받을 때가 있고 환영받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핑계대지 말고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전파의 긴급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년에 로마의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감옥에 갇히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상황에서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지상명령’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가 감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비록 내가 감옥에 있으나, 오히려 사람들은 더욱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어떤 사람들은 나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도 있고, 나를 돕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전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전하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바로 그리스도가 전파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이것 때문에 기뻐하며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입니다.” (빌립보서 1:14-15, 18)

여러분,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이라는 탐 크루즈(Tom Cruise)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를 보셨지요? 지금 6편까지 나왔고요. 8편까지 이미 예고가 된 영화입니다. 1편은 1996년 5월에 상영되었습니다. 탐 크루즈가 CIA 본부에 들어가서 컴퓨터를 해킹해서 동유럽에서 활동하는 첩보원들(NOC)의 명단을 빼낸다는 영화입니다. 주인공 이단 헌트(Ethan Hunt)는 이 명단을 가지고 무기 밀매상 맥스(Max)와 연계되어 있는 CIA 내의 내부 첩자 코드명 ‘욥’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주인공 이단은 그 당시로서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CIA 비밀 정보를 다루는 방으로 침투해 들어갑니다. CIA에 들어가서 정보를 빼낸다는 것은 말 그대로 ‘Mission impossible(불가능한 임무)’입니다. 하지만 주인공 이단 헌트는 이 불가능한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합니다. 1편의 드라마틱한 장면을 몇 개 보여 드리겠습니다. 

철통 같은 보안시설이 되어 있는 CIA 본부에서 정보를 빼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불가능한임무를 수행합니다. 그러다가 실패라도 하는 날에는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런데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지상명령’은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권세’를 가지고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지상명령’은 예수님의 입을 빌려 하나님께서 직접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정보 하나를 빼내기 위해서 목숨을 거는데, 하나님의 명령을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수행해야 하겠습니까?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Go and make disciples of all the nations①/①Or all peoples (마태복음 28:19)”고 명령하셨습니다. ‘모든 민족’이라는 말이 희랍어 원문에는 ‘πάντα τα ἔθνη’라고 되어 있습니다. ‘ἔθνη’라는 말은 영어의 ‘ethnicity’입니다. ‘ethnic group’이라고 하면 같은 문화와 언어, 역사, 종교를 공유하는 그룹을 말합니다. 2022년 현재 세계에는 193개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 안에 수천개의 ‘ethnic group’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들을 나의 제자로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가서 교회를 세우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서 이 사람들은 나의 제자로 만들라고, 나의 말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전에는 미국이나 캐나다, 유럽의 기독교 선교 단체들이 제자를 삼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수행하기 위해서 기독교가 전파되지 않은 타문화권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17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까지 수많은 선교사들이 선교지로 나갔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1859-1916, 미국 장로교 선교사)나 아펜젤러(Henry Appenzeller, 1858-1902, 미국 감리교 선교사) 같은 선교사들이 들어온 덕분에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들기 위해 노방 전도를 하고, 교회를 짓고, 학교를 짓고, 병원을 건설했습니다. 

그러다가 1900년대 후반에 ‘하나님의 선교(The Mission of God)’라는 선교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라틴어로 ‘미시오 데이(Missio Dei)’라고 합니다. 선교의 주체가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낼 때부터 이미 ‘하나님의 선교’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개념이 나오면서부터 선교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선교는 단순히 타문화권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파하는 일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으로 우리를 내보내시는 모든 삶의 현장이 선교의 현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선교에 대한 이해가 우리의 삶의 전 영역으로 확장된 것입니다. 

이렇게 선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하면서부터 ‘섬김(service)’이라는 개념이 선교의 핵심 개념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는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이 우리 시대의 새로운 선교 개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오신 것처럼, 선교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섬김’의 삶을 통하여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저는 마가복음 16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Go into all the world and preach the good news to all creation(너희는 세상으로 들어가서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마가복음 16:15) 마가복음에는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말씀대신 “세상 속으로 들어가라(Go into all the world)”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제가 10여년 전에 이 말씀을 보스턴 다운 타운에 있는 구세군 본부에 갔다가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보스턴에 한국 구세군 사관이 한 분 발령을 받아서 오셨습니다. 그 분을 만나야 할 일이 있어서 1층 로비에서 그분을 기다리면서 여기 저기를 둘러보다가 한 쪽 벽에 영어로 쓰여 있는 이 말씀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지상명령’이라고 하면 주로 마태복음에 나오는 말씀을 생각하게 되는데, 마가복음으로 읽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대한 말씀은 저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go into’라는 말이 마음에 크게 와 닿았습니다. 안으로 깊이 침투해 들어간다는 뜻이잖아요? 그런데, 단순히 들어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그곳이 학교 강의실이 될 수도 있고, 그곳이 일터가 될 수도 있고, 손님을 맞이하고, 손님과 인사하고 대화하는 비즈니스 현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 그 자리가 가족이 함께 식사하고, 서로 대화하는 자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 자리가 친구들과 함께 카페에서 만나 수다를 떠는 자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자리에 목적을 가지고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지상명령’ 속에 나오는 “Go into all the world(세상 속으로 들어가라)”는 말씀 속에 들어 있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세상 속으로 들어갈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누는 목적을 가지고 들어가야 합니다. 각자의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서 크리스천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선한 영향력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 하듯이 열심히 일하십시오(Work willingly at whatever you do, as though you were working for the Lord rather than for people).” (골로새서 3:23) 얼핏 보면 이 말씀이 소극적인 말처럼 들리지만 이 말씀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말씀이 없습니다.

최근 들어 크리스천의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누가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참 시대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이 우리 시대에 가장 적절한 선교의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영향력’이라는 말을 직접 쓰시지는 않았지만, 이미 제자들의 ‘선한 영향력’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한번 보세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고 세상의 빛이다......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3-14, 16)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상에 들어가서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는 말씀 아닙니까?

2,000년 전에, 지금의 시리아에 있는 안디옥 교회에서 ‘크리스천’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자기들끼리 ‘크리스천’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크리스천’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 신자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정말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구나!”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여러분, 좀 과격하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1세기에 복음을 전했던 사람들은 ‘pestilent fellows (사도행전 24:5, KJV)’라고 욕을 먹었습니다. 전도자들을 무서운 전염병인 ‘페스트를 퍼뜨리는 놈들’이라고 욕을 한 것입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새들백교회의 담임 목사인 빌 하이벨스(Bill Hybels) 목사가 쓴 ‘Becoming a Contagious Christian(1996, Mark Mittelberg와 공저)’이라는 책 제목이 생각납니다. 1세기의 전도자들은 ‘Contagious Christians’였습니다. 이들과 접촉하는 사람들은 전염병에 감염되듯이 모두 복음의 영향을 받았던 것입니다.

또 하나, 1세기의 전도자들은 그들 스스로를 가리켜 ‘예수님의 향기(the aroma of Christ, 고린도후서 2:15)’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그들 몸에서 ‘예수님의 냄새’가 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에 여러분에게 소개했던 Travis Scott의 말이 생각납니다. “You will never influence the world by trying to be like it(세상을 닮으려고 함으로써 결코 세상에 영향력을 끼칠 수 없을 것이다).”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려고 하는 사람은 크리스천으로서 자기 정체성(identity)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침투해 들어가서 기독교의 복음을 전파한다는 것은, 우리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크리스천으로서 섬김의 삶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서 사람들을 전염시키는 ‘Contagious Christian’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정체성이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에서 ‘예수님의 냄새’가 나야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의 몸에서 예수님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크리스천다운(Christian-like)’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 시대에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