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6:28-33

28 내가 아버지를 떠나 세상에 왔으니, 이제 세상을 떠나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간다.” 29 그 때,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이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비유적인 말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30 우리가 이제서야 주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무도 주님께 묻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으로써 우리는 주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믿습니다.” 31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이제 너희가 믿느냐? 32 그러나 잘 들어라. 너희가 뿔뿔이 흩어질 때가 다가오고 있으며, 이미 그 때가 되었다. 너희는 저마다 자기 집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버려 둘 것이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33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너희가 고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담대하여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 (쉬운성경)

28 Yes, I came from the Father into the world, and now I will leave the world and return to the Father." 29 Then his disciples said, "At last you are speaking plainly and not figuratively. 30 Now we understand that you know everything, and there's no need to question you. From this we believe that you came from God." 31 Jesus asked, "Do you finally believe? 32 But the time is coming—indeed it's here now—when you will be scattered, each one going his own way, leaving me alone. Yet I am not alone because the Father is with me. 33 I have told you all this so that you may have peace in me. Here on earth you will have many trials and sorrows. But take heart, because I have overcome the world." (New Living Translation) 

여러분,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이 말은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David Riesman, 1909-2002)이 쓴 ‘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 1950)’이라는 책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 책의 부제(subtitle)가 ‘A Study of the Changing American Character(변화하는 미국인의 성격에 대한 연구)’입니다. 리스먼은 이 책에서 미국인의 성격이 ‘전통지향형(tradition directed type)’에서 ‘내부지향형(inner directed type)’으로, 그리고 ‘외부지향형(other directed type)’으로 발전되어 나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외부지향적 성격은 또래집단이나 친구집단의 영향에 따라 행동하는 성격입니다. 이런 성격이 형성되는데 매스 미디어가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내면적인 고립감 때문에 힘들어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한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는 ‘외부지향형’ 성격 유형을 ‘고독한 군중’이라는 이름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그가 이 책을 쓴 것이 1950년입니다. 그 때는 미국인의 성격이 ‘전통지향적’인 성격에서 ‘내부지향적’인 성격으로 옮겨가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는 예언자적인 안목으로 장차 미국인들의 성격이 ‘외부지향적’인 성격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한 것입니다. 

리스먼의 이 책이 얼마나 유명한지, 뉴욕 타임즈에서 문학, 인문, 사회, 과학, 예술 분야를 총망라해서 ‘죽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책 100권’을 선정했는데, 이 100권 중에 ‘고독한 군중’이 선정되었습니다. 정말 시대를 초월한 명저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본회퍼의 ‘The Cost of Discipleship(제자직의 대가, 1937), 또 몇 주 전에 소개한 하비 콕스의 ‘세속도시(The Secular City, 1965)’ 같은 책들은 시대를 앞서 발간된 명저들입니다. 리스먼의 책도 그렇습니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은 리스먼의 책이 나온 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대인들의 삶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말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새학기가 시작되면서 보스턴에 새로운 학생들이 모여오고 있습니다. 팬데믹 이전만은 못하지만, 보스턴 시내에 나가보면 거리에 새로운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모두들 꿈을 가지고 보스턴을 찾아온 사람들입니다. 저는 1986년에 캘리포니아 클레아몬트에서 석사를 마치고 보스턴 대학 박사과정에 들어왔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차를 가지고 가족들과 함께 대륙횡단을 해서 왔습니다. 오면서 그랜드 캐년도 구경하고, 나이아가라 폭포도 구경을 했지만, 보스턴 생활에 대한 불안감 때문인지 재미가 없었습니다. 95번에서 90번 매스 파이크를 타고 보스턴으로 들어오는데, 어찌나 마음이 불안했던지요. 보스턴에 거의 다와 갈 무렵에 맥도날드 휴게소에 들러 보스턴 쪽을 바라보면서 커피를 마셨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저의 경우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아이들이 있어서 그나마 보스턴 생활을 잘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보스턴에 공부하기 위해서 혼자 오는 학생들을 보면 한편으로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짠하기도 합니다. 기숙사에 가도 반겨주는 가족이 없으니 얼마나 허전하겠습니까? 그러다가 학교 생활에 문제가 생기고, 몸이 아프거나 하면 얼마나 집 생각이 많이 나고, 부모님 생각이 나겠습니까? 그러니, 혼자 지내는 보스턴 생활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겠습니까? 문제는 우리가 이 외로움을 어떻게 이길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성경 말씀에서 눈에 띄는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I am not alone)!”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상황에서 이 말씀을 하셨을까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 때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곧 위험한 상황이 닥쳐오고 자기 제자들이 자기를 혼자 남겨 놓고 모두 떠날 것을 알고 있던 때였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하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다!” 이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상황에서도) 내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Because my Father is with me).” (32절)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다윗이 쓴 시편 23편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다윗이 이 시편을 쓸 때 그는 최악의 상황 속에 있었습니다. 그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고 있었습니다. ‘나의 원수들(my enemies)’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그는 적으로부터 둘러싸여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는 두렵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주께서 (이런 상황 속에서도)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for you are with me)(시편 23:4)”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제 너희가 (나를) 믿느냐(Do you believe in Me, 31절)?”라고 물으셨습니다. 여러분,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그를 떠나고, 그의 생명이 위협을 당하고 있는 그 때에도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고 선언하시는 분, 그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으로 예수님을 그 상황을 견뎌냈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들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믿는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 있을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요한복음 14:16), 그 약속이 대로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통하여 그를 믿는 사람들과 함께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의 독특한 존재 방식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한다’는 말은 우리가 예수님과 나누는 ‘교제의 삶(the life of fellowship)’을 말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예수님과 충분한 교제를 나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여러분의 삶이 어떻게 변화될까요? ‘풍성한 열매(the abundant fruits)’를 맺습니다. 이 말은 삶의 목적과 삶의 의미가 충만한 삶을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교제를 통하여 제자들이 그의 곁을 떠나고 홀로 남게 되는 극한의 외로움과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예수님과의 교제의 삶을 통하여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데이비드 리스먼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일 외부(타인) 지향적인 사람들이 자신들이 얼마나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지, 또 그들 자신의 생각이나 생활 자체가 다른 사람들의 삶만큼이나 흥미롭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들은 바닷물을 마심으로써 목마름을 해소하려는 것보다 더 심한 동료 집단 속에서의 고독을 해소하려고 애쓰지 않게 되고, 그들 자신의 감정이나 열망에 집중하게 되리라고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If the other–directed people should discover how much needless work they do, discover that their own thoughts, and their own lives are quite as interesting as other people’s, that, indeed, they no more assuage their loneliness in a crowd of peers than one can assuage one’s thirst by drinking sea water, then we might expect them to become more attentive to their own feelings and aspirations).” 리스먼은 대중의 언어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면 ‘군중 속의 고독’을 극복할 수 있다고, 고독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 것입니다. 

극한 상황 속에서도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고 선언하신 예수님은, 다시 “이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Here on earth you will have many trials and sorrows. But take heart, because I have overcome the world)”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나오는 ‘세상’은 그리스어로 ‘κόσμος(kosmos)’입니다. 요한복음 3:16에 나오는 ‘세상’도 ‘κόσμος’입니다. ‘κόσμος’라는 말은 ‘order(질서)’ ‘an orderly harmonious systematic universe’를 의미합니다. 우주나 자연이나 인간의 삶에 있어서의 ‘조화로운 질서’를 말합니다. 이 조화로운 세상에서 왜 우리는 환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게 될까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본래의 질서가 깨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을 이겼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깨진 세상을 회복하셨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요한계시록 21:4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에는 더 이상 눈물도, 죽음도, 슬픔도, 울음도, 아픔도 없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1980년 1월 22일 아침, 저는 제 아내와 함께 결혼 앨범을 꺼내 사진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제가 졸업한 감리교 신학대학의 학장으로 계시는 윤성범 학장님이 돌아가셨다는 전화였습니다. 제 결혼 주례를 서 주신 분이어서 방금 전에 결혼 사진을 보면서 그분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저희 부부는 한참 동안 멍하게 있었습니다. 며칠 후에 그분의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그분의 제자이신 교수님 한 분이 성경 말씀을 읽었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린도전서 15:51-52, 55-58)

겨울이어서 강당 안이 싸늘했습니다. 그 때 저는 강당에 울려 퍼지는 성경 말씀이 생생하게 귀에 들어오는 특별한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제 가슴에 들어와서 콕콕 박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 크리스천들은 더 이상 죽음의 권세에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죽음을 조롱하고, 죽음을 이기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그 말씀이, 그렇게 잘 이해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말씀을 한번 보실까요? “O death, where is your victory? O death, where is your sting? For sin is the sting that results in death, and the law gives sin its power. But thank God! He gives us victory over sin and death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New Living Translation)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 밖의 세상의 모든 문제들을 이기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니, 죽음을 해결하신 분이 더 이상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 고린도전서 15장 말씀이 주는 메시지는,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신 것처럼, 그를 믿는 사람들도 세상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긴다’는 말은 ‘victory’가 아니라 ‘overcome’입니다. ‘극복하다’라는 뜻입니다. 세상을 살아갈 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잖아요? “이 세상에서 너희가 많은 환난을 당할 것이나 용기를 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Here on earth you will have many trials and sorrows. But take heart, because I have overcome the world).” (33절)

예수님을 믿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이 아무 문제가 없게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문제들을 ‘극복하도록(to overcome)’ 도와주십니다. 로버트 로저스(Robert Rogers)라는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My faith didn't remove the pain, but it got me through the pain. Trusting God did not diminish the anguish, but it enabled me to endure and overcome it(나의 믿음은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겪게 한다. 하나님께 대한 신뢰는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견디게 하고 극복하도록 도와준다).”

보스턴에 꿈을 가지고 찾아오신 분들, 순탄하게 보스턴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여러분 앞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 지 알 수 없습니다. 때로는 학교 교수님과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공부하는 과정을 따라가기가 힘에 버거울 수도 있고, 때로는 경제적인 문제나 건강상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때로는 혼자 지내는 생활이 힘들 수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이겨내겠습니까? 

다윗은 우리 모두가 모델로 삼을 만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훌륭한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에게 문제가 없었을까요? 아닙니다. 다윗에게도 우리처럼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니, 그는 우리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문제들을 겪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그 문제들을 해결했을까요? 그가 쓴 시편 16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않으리로다(I have set the LORD always before me. Because he is at my right hand, I will not be shaken).” (8절) 여러분, 다윗이 항상 그의 앞에 모셨던 분! 다윗이 그가 내 오른쪽에 계신다고 했던 분, 그래서 내가 흔들리지 않는다고 고백했던 그분이 누구일까요?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의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고난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용기를 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