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1-12

1 그 때에 아구스도 황제가 내린 칙령에 따라 온 나라가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습니다. 2 이것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 행한 첫 번째 호적 등록이었습니다. 3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호적을 등록하러 고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4 요셉도 다윗 가문의 자손이었으므로 갈릴리 나사렛을 떠나 유대 지방에 있는 다윗의 마을로 갔습니다. 이 마을은 베들레헴이라고 불렸습니다. 5 그는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을 등록하러 갔습니다. 마리아는 그 때에 임신 중이었습니다. 6 이들이 베들레헴에 있는 동안 아기를 낳을 때가 되었습니다. 7 마리아는 마구간에서 첫아들을 낳아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혀 두었습니다. 그것은 여관에 이들이 들어갈 빈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8 그 근처 들판에서 목자들이 밤에 양 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9 주님의 천사가 갑자기 이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주님의 영광이 그들을 둘러 비추자, 이들은 몹시 두려워하였습니다. 10 천사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두려워 마라. 보아라. 모든 백성을 위한 큰 기쁨의 소식을 가지고 왔다. 11 오늘 다윗의 마을에 너희를 위하여 구세주께서 태어나셨다.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12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볼 것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증거이다. (쉬운성경)

1 At that time the Roman emperor, Augustus, decreed that a census should be taken throughout the Roman Empire. 2 (This was the first census taken when Quirinius was governor of Syria) 3 All returned to their own ancestral towns to register for this census. 4 And because Joseph was a descendant of King David, he had to go to Bethlehem in Judea, David's ancient home. He traveled there from the village of Nazareth in Galilee. 5 He took with him Mary, his fiancee, who was now obviously pregnant. 6 And while they were there, the time came for her baby to be born. 7 She gave birth to her first child, a son. She wrapped him snugly in strips of cloth and laid him in a manger, because there was no lodging available for them. 8 That night there were shepherds staying in the fields nearby, guarding their flocks of sheep. 9 Suddenly, an angel of the Lord appeared among them, and the radiance of the Lord's glory surrounded them. They were terrified, 10 but the angel reassured them. "Don't be afraid!" he said. "I bring you good news that will bring great joy to all people. 11 The Savior—yes, the Messiah, the Lord—has been born today in Bethlehem, the city of David! 12 And you will recognize him by this sign: You will find a baby wrapped snugly in strips of cloth, lying in a manger." (New Living Translation)

마태복음 2장에 나오는 ‘동방박사 이야기’와 누가복음 2장에 나오는 ‘목자들의 이야기’를 가리켜 ‘The First Christmas Story(첫 번 크리스마스 이야기)’라고 합니다. 가장 오래되고, 믿을만한 크리스마스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누가는 시리아 ‘안디옥(Antioch)’에 살던 그리스 사람으로 역사가로서 소양(素養)을 갖춘 사람이었고, 직업은 의사였다고 합니다. 누가가 살던 안디옥에 크리스천 디아스포라 교회가 생겼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박해를 피해 지중해 연안으로 크리스천들이 피신함으로써 생긴 교회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안디옥 교회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들렸습니다. 안디옥 교회에 이방인들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예루살렘 교회는 아직 이방인들에 대한 입장도 정해진 것이 없었고, 이방인 선교에 대한 준비도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당황한 예루살렘 교회는 급히 ‘바나바(Barnabas)’라는 사람을 보내서 안디옥 교회의 실태를 조사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바나바’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사도행전 11:24). 이 말은 바나바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안디옥 교회의 이방인 선교에 대한 긍정적인 보고서를 예루살렘 교회로 보낸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에 계속 머물면서 사울이라는 사람을 데려와 함께 일년 동안 교인들을 가르쳤습니다. 덕분에 안디옥 교회에서 이방인 선교가 더욱 활발하게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어쩌면 이 때 안디옥에 살던 누가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지 않았을까요? 

누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는 그 때부터 예수님에 대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때 예수님에 대한 상당한 자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누가는 그 때 이미 자기처럼 예수님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들이 여러 명이 있었다고 그의 복음서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데오빌로(most excellent Theophilus)’라는 최고위직 그리스 관리에게 헌정(獻呈, dedication)하는 형식으로 예수님의 일대기(一代記, biography)를 기록했습니다. 누가는 자기가 모은 자료들을 ‘순서대로(in consecutive order, 누가복음 1:3)’ 배열하여 읽는 사람이 예수님의 생애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누가복음’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역사가 답게 누가는 예수님이 탄생하실 무렵의 세계 정세를 상세하게 기록합니다. “그 때에 아구스도 황제가 내린 칙령에 따라온 나라가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 행한 첫 번째 호적 등록이었습니다.” 여러분, 성탄절 이야기는 누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생생한 역사적인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나오는 ‘아구스도 황제’는 세계사에 나오는 로마제국의 1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Augustus, B.C. 63-A.D. 14)입니다.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의 양아들로 ‘안토니우스(Marcus Antonius)’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을 이기고 권력을 잡은 장악한 사람입니다. 황제가 되기 전 그의 이름은 ‘옥타비아누스(Octavianus)’였습니다. 로마의 원로원에서 그에게 ‘아우구스투스(The Exalted)’라는 이름을 줬다고 합니다. 그는 유능한 정치가였습니다. 그가 통치했던 시대를 ‘Pax Romana(로마의 평화)’라고 합니다. 

‘아구스투스’ 황제는 로마가 다스리는 지역을 몇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인구조사를 하라는 칙령(Creed)을 내렸습니다. 그 때 ‘구레뇨(Quirinius)’라는 사람이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지역은 구레뇨가 호적 등록을 관장하게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나 ‘구레뇨’는 모두 실존 인물들입니다. 통치자들은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고 세금을 징수하기 위한 자료를 만들기 위해 인구 조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B.C. 4년경의 역사적인 상황을 설명한 누가는, 이제 갈릴리의 나사렛에 살고 있던 마리아와 요셉, 두 사람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누가는 그때 상황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요셉은 다윗 가문의 자손이었으므로 갈릴리 나사렛을 떠나 유대 지방에 있는 다윗의 마을로 갔습니다. 이 마을은 베들레헴이라고 불렸습니다(So Joseph also went up from the town of Nazareth in Galilee to Judea, to Bethlehem the town of David).” (4절, NIV) 이 말씀을 잘 보십시오. 누가는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올라갔다(went up)’고 기록했습니다. 베들레헴은 나사렛보다 지대가 높습니다. 고도 차이가 430m정도 나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쓴 것입니다.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는 약 90마일(145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요단강 줄기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예루살렘에서 다시 남서쪽으로 5마일 정도 가야 합니다. 약 일주일은 걸어야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출산 날이 임박한 마리아에게 그 길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인구 수가 500명 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입니다. 그런데 호적 등록일 마감 직전에 갑자기 사람들이 몰리는 바람에 여관에 빈 방이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요셉과 마리아는 마구간에서 자야 했습니다. 바로 그 날 밤에 예수님이 태어나셨습니다. 아기를 누일 자리가 없어서 포대기에 싸서 ‘구유(manger)’에 뉘었습니다. 그 밤에 손님들이 찾아옵니다. 그들은 베들레헴 근처에서 한 밤중에 양을 치던 목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늘로부터 천사들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두려워 마라. 모든 백성을 위한 큰 기쁨의 소식을 가지고 왔다. 오늘 다윗의 마을에 너희를 위하여 구세주께서 태어나셨다.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볼 것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증거이다.” (누가복음 2:10-12) 목자들은 ‘다윗의 마을(the city of David)’이라는 말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 태어난 아이를 찾다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발견했습니다. 모든 것이 천사가 말해 준 그대로인 것을 목격(目擊)한 목자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갔습니다.

버나드 앤더슨(Bernhard W. Anderson, 1916-2007)이라는 구약성서 학자가 있습니다. 구약학의 대가(大家)입니다. 프린스톤 신학교와 드류 신학교에서 가르쳤고, 보스턴 신학교에서도 가르쳤습니다. 대표작은 ‘Understanding The Old Testament(구약성서 이해)’라는 책입니다. 신학교에서 교과서로 사용하는 책입니다. 이분이 책을 많이 썼는데요. 주로 일반 신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을 많이 썼습니다. 그런 점에서 많은 공헌을 한 분입니다. 이분이 쓴 책 중에 ‘The Unfolding Drama of the Bible(펼쳐지는 성경의 드라마, 1956)’이라는 작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구약과 신약을 한편의 드라마로 구성하여 독자들이 구약과 신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쉽게 이해하도록 쓰여진 책입니다. 

요즘 K-팝, K-드라마가 인기입니다. 외국인들이 K-드라마에 열광합니다. 어떤 외국인들은 K-팝이나 K-드라마를 보다가 한국말을 익힐 정도입니다. 스탠퍼드대 대학에서 한국 문학과 영화, 대중문화를 가르치는 다프나 주르(Dafna Zur)라는 사람은 K-드라마의 인기 비결을 “예측성과 독창성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뻔한 이야기이지만 여기에 독창성이 가미된다는 것입니다. "뛰어난 영상미와 한국의 문화와 예절, 전통이 가미되고, 주인공들의 유모어와 한국식 반전(reversal)이 들어간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구원의 드라마는 어떨까요? 이 하나님의 드라마가 얼마나 완벽한 지 한번 보시겠습니까? 먼저 우리는 구약성경 미가 5:2에 나오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 말씀을 확인해야 합니다. 미가(Micah)는 기원전 735-700년에 남왕국 유다에서 활동하던 예언자입니다. 이사야와 동시대 사람입니다. 미가가 예언한 메시아의 탄생에 대한 말씀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다.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But you, O Bethlehem Ephrathah, are only a small village among all the people of Judah. Yet a ruler of Israel will come from you, one whose origins are in the distant past).” (미가 5:2) 

마리아와 약혼한 요셉은 유다 지파의 다윗 가문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마리아는 나사렛에 살던 신실한 믿음을 가진 여자라는 것밖에 따로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고대 경전을 연구하는 한 학자는 마리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리아는 성전, 제사장, 부자가 모인 종교적 중심지 예루살렘과 멀리 떨어진, 나사렛의 평범한 소작농의 딸이었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마리아는 어머니와 마을의 여자들과 함께 일을 하고, 옷감을 짜며 음식을 하고, 땔감을 모으고, 마을 우물에서 물을 긷고, 들판에서 일을 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도왔을 것이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지만 요셉과 마리아는 호적 등록 마감 시간에 쫓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해산할 날이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베들레헴으로 가야 했습니다. 왜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하필이면 그 때 칙령을 내렸을까요? 조금만 늦게 ‘칙령’을 내렸더라면 요셉은 만삭인 마리아를 데리고 베들레헴에 갈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랬더라면 마리아는 예수님을 베들레헴이 아니라 나사렛에서 낳았을 것입니다. 만에 하나 요셉이 만삭인 마리아를 데리고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다행히 빈 방이 있었더라면 예수님을 말구유에 누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만일 요셉이 다윗의 가문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호적 등록을 위해 베들레헴이 아니라 다른 마을로 가야했을 것입니다. 만일 그랬더라면 베들레헴에서 메시아가 탄생한다는 미가의 예언은 공수표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정교하게 미가의 예언과 목자들이 들었던 천사의 말이 맞아 떨어집니다. 정말 이것이 우연히 일어난 일이었을까요? 

700년 전에 있었던 미가의 예언이 예수님의 탄생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미가의 예언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사야의 예언도 이루어졌습니다. 보세요.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Therefore the Lord himself will give you a sign: The virgin will be with child and will give birth to a son, and will call him Immanuel).” (이사야 7:14)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읽으면서 ‘virgin(처녀)’라는 말에 주목합니다. 학자들 중에도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virgin’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마(almah)’라는 말을 ‘젊은 여자(young wom-an)’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역사를 보면 교회는 꾸준하게 ‘알마’라는 말을 ‘virgin’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리스어로 번역할 때도 ‘처녀’라는 뜻을 가진 ‘파세노스(παρθένος)’라는 말로 번역했습니다. 여러분, 이사야의 예언 속에 나오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라는 말은 ‘징조(sign)’입니다. 징조는 신기하고 놀라운 일, 말도 안 되는 일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보여주는 ‘징조’였습니다. 미가의 예언이 이루어진 사실에 대해서는 누가가 잘 기록했고, 이사야의 예언이 이루어진 사실에 대해서는 마태가 그의 복음서에 잘 기록했습니다(마태복음 1:23). 

여러분, 미가가 예언했고, 이사야가 예언했던 예언이 예수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말씀에 세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큰 그림으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메시아의 기원이 ‘in the distant past(아주 먼 과거)’ ‘from the days of eternity(영원의 날부터, NASB, ABPE, HCSB)’인 것처럼,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서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사용하시고, 시리아 총독 ‘구레뇨’를 사용하셨습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 그들은 대단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서는 하나님께서 필요할 때 잠깐 사용하신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하여 우리의 구원에 대하여 흔들리지 않는 확신(確信)을 갖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700년 전에 있었던 예언이 예수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예언이 이루어진 과정을 꼼꼼하게 확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히브리서에 있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구원은 매우 위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아간다면 그것은 책망을 받을 행동입니다. 구원에 대해서 처음 말씀하신 분이 바로 주님이시며, 또한 그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이것이 진실이라고 우리에게 증명해 주었습니다(So what makes us think we can escape if we ignore this great salvation that was first announced by the Lord Jesus himself and then delivered to us by those who heard him speak).” (히브리서 2:3) 

셋째로,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이사야 49:16) “나는 너를 이름으로도 안다. 너는 나에게 은혜를 입었다(I know you by name, and I look favorably on you).” (출애굽기 33:12) “독수리가 날개로 새끼들을 실어 나르듯 내가 너희를 업어서 데리고 왔다.” (출애굽기 19:4)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We are God’s masterpiece).” (에베소서 2:10) ‘masterpiece’는 대가들이 그의 혼을 불어넣어 만든 명작들을 말합니다. ‘에밀레종’에 얽힌 전설이 있습니다. 신라(新羅)의 경덕왕은 선대(先代) 왕을 기리는 ‘신종(神鐘)’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기술자들은 여러 번을 실패한 끝에 한 어머니가 시주한 아이를 쇳물에 녹여 마침내 천상(天上)의 소리를 내는 ‘신종’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죄로 물든 우리를 ‘다시 창조하기 위해(에베소서 210)’ 그 아들을 ‘화목제물’로 드리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위한 구원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놀라운 반전(反轉)이 있습니다.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우리의 주님이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완벽한 드라마’를 연출하셨습니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드라마는 탄탄한 스토리와 그 구성(plot)에 있어서 한치의 빈틈이 없습니다. 드라마의 ‘클라이맥스’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τετέλεσται, 요한복음 19:30)” 하고 외치실 때,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두폭으로 ‘찢어지는(마태복음 27:51, 마가복음 15:38, 누가복음 23:45)’ 장면입니다. 우리 앞에 막혀 있던 ‘새로운 생명의 길(a new and life-giving way, 히브리서 10:20)’이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