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8:1-8

18:1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 예수님께서 언제나 기도하고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2 “어떤 마을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을 무시하는 재판관이 있었다. 3 그 마을에 과부가 한 명 있었다. 그는 재판관을 찾아가서 말하였다. ‘내 원수를 갚아 주십시오. 4 그 재판관은 한동안, 그의 간청을 들어 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후에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지만, 5 이 과부가 나를 귀찮게 하니 그의 간청을 들어 주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6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의 간청을 듣지 않으시고 오랫동안 미루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속히 그의 백성들에게 정의를 베푸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 이 세상에서 이 믿음을 발견할 수 있겠느냐?(쉬운성경) 1 One day Jesus told his disciples a story to show that they should always pray and never give up. 2 “There was a judge in a certain city,” he said, “who neither feared God nor cared about people. 3 A widow of that city came to him repeatedly, saying, ‘Give me justice in this dispute with my enemy.’ 4 The judge ignored her for a while, but finally he said to himself, ‘I don’t fear God or care about people, 5 but this woman is driving me crazy. I’m going to see that she gets justice, because she is wearing me out with her constant requests!’” 6 Then the Lord said, “Learn a lesson from this unjust judge. 7 Even he rendered a just decision in the end. So don’t you think God will surely give justice to his chosen people who cry out to him day and night? Will he keep putting them off? 8 I tell you, he will grant justice to them quickly! But when the Son of Man[a] returns, how many will he find on the earth who have faith?”(NewLivingTranslation)

2023년의 한해를 건너기 위한 열두개의 징검돌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열두개의 징검돌을 밟으며 우리는 한해의 강을 건너가야 합니다. ‘열둘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12지파( 49:28) 엘렘의 12개의 샘물( 15:27) 대제사장 흉배에 붙인 12개의 보석( 28:21) 언약궤를 매고 요단강을 건너며 기념비로 세운 12개의 ( 4:8) 예수님의 열두제자( 10:2) 만물을 회복하기 위한 일년 열두달 새롭게 맺히는 새로운 열매( 22:2) 이외에도 열둘라는 숫자가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데, ‘열둘이라는 숫자는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완전한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합니다.

 

요한 계시록 22 1절로 2절을 보면, 1 천사는 내게 생명수가 흐르는 강을 보여 주었습니다. 수정같이 맑은 강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 나와 2 ‘ 성의 넓은 거리 한가운데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양쪽에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일년에 열두번, 달마다 새로운 열매를 맺고 있었습니다. 잎은 모든 사람들을 치료하는 사용되었습니다.’

 

케임브리지교회 모든 교우들에게 펼쳐질 2023 열두달이 불안과 두려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좌로부터 흐르는 생명수를 통해서 믿음의 기갈(飢渴) 해결받고, 기도의 호흡을 되살리게 되는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에는 많은 이들이 아픔과 슬픔, 정신적 우울함과 미래의 대한 불안함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하나님과 보좌로 흘러나오는 생명수가 그분의 통치아래 있기를 사모하는 성도들에게 새로운 열매를 맺게 해주실것이라 약속하십니다. 또한 생명나무에 있는 잎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치료하는 약재료로 사용될 것을 말씀합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사용해서 하늘의 뜻을 사람들에게 자주 가르치셨습니다. 본문의 비유에 나타난 불의한 재판관은 인간의 본성으로 인해 악해진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관을 비유로 말씀하시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을 무시하는 재판관이라고 소개합니다. 이는 고아와 과부, 소외된 자들의 억울함을 신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성품과는 대조가 됩니다. 1차적으로는 당시 유대인을 군림하는 다신론적 신관을 가졌던 불의한 관리들을 지칭하신 것으로 보여지는데, AD 1세기는 인본주의, 혼합주의, 다신론이 성행했었습니다. 두번째 인물은 끈질기에 요청하는 과부입니다. 과부는 고대사회에서 보호 받을 수 없는 신분인데, 이 과부가 자신이 권리를 침해 당해서 보호해 달라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한해를 살아가면서 기도하고 싶지 않을때도 있을 것입니다. 삶에서 힘든일을 만날때도 있겠지요. 그때마다 과부의 끈질긴 간정처럼 끈질긴 기도로 하나님을 찾는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유진피터슨은 메세지 성경에서 본문의 1절을 예수께서 그들에게 끈질기게 기도하고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려고 이야기를 들려주셨다라고 썼습니다.

 

본문을 묵상하며 불의한 시대에 맞서는 끈질긴 기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불의한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아가는 일은 힘겹고 어렵습니다. 손해를 보게 되는 일도 있을테고,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떠한 환경에도 희망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예수님의 비유는 2천년 전의 말씀이지만 오늘날 이 시대를 꿰뚫은 깊은 통찰(洞察, Insight)을 담고 있습니다. 다신론 신관으로 로마의 힘을 의지하던 2천년 전이나 탈기독교, 탈교회의 오늘날 시대나 비슷합니다. 지난 2천년 동안 기독교가 서방국가를 중심으로 부흥의 시기였다면, 이제 기독교는 공적영역에서 밀려나 주변화되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믿음도 개인적 영역으로 제한되는 시대이며. 기독교의 본질인 믿음은 다윈주의 사회속에서 믿음의 배타성으로 인해 복음전파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기독교 교육을 하는 것조차 공적영역에서는 어려운 형국이 되었습니다. 세상이 기독교를 평가하는 것이 다 옳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제껏 기독교의 선교방식이나 전도의 태도가 부족했던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누가는 19장에서도 기도자의 태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대조하고 있는데, 세리의 기도나 바라새인의 기도는 둘다 거룩한 기도처럼 보여집니다. 세리도 바리새인도 둘다 거룩함을 상징하는 성전에서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셨습니다. 세리는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인식하는 반면에 바리새인의 관심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행위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분별해야 하는 것은 내가 추구하는 거룩함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거룩함이 겸손함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특별히 다원주의 시대속에서 복음을 접하지 못한 사람의 구원의 문제를 고민하는 성도들은 끈질긴 기도를 통해서 믿음의 태도를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1.     기도는 진실한 고백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우리의 감정에 정직하게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마음 속에는 원한이 들끓고 있는데, 하나님 앞에서 그렇지 않은 척 행동하는 것은 부질 없는 일일 뿐 아니라 해로운 일입니다. 억울한 일로 인해 과부는 반복적으로 재판관을 찾아갔습니다. 과부에게 억울한 일인데, 오히려 포기하지 않고 기도할때 하나님께서 위로하고 격려하시는 분임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미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 분명하게 계시 되었는데, 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요?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기도를 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지속적으로 기도하다 보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깊어집니다. 하나님 앞에서 속감정을 숨겨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마음에 용암처럼 들끓고 있는 분노를 하나님 앞에 쏟아 놓는 것은 가장 확실한 치유이며 회복인 것입니다.  

 

개역개정 성경으로 보면 원한을 풀어 달라는 말이 4번이나 반복이 됩니다.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진실한 기도를 하다 보면, 원수를 향해 타오르던 불이 꺼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과부의 끈질긴 기도를 통해서 그녀에게 있던 억울함을 하나님께서는 풀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은 정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거대한 계획 속에서 온 우주를 다스리시며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니 자녀들의 억울한 기도를 들으시고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한해를 살면서 억울한 일을 겪게 될때에 자기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면 마음의 치유하심을 주실 것입니다.  

 

2.     기도는 무감각해진 우리의 마음을 깨웁니다.

 

기도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끈질긴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자녀들의 기도에 마음을 바꾸시기도 합니다. 불임으로 애통하던 한나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의 영적인 감각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주시는 특별한 은혜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신다는 것입니다. 불의한 재판관에게 끈질기게 간청하는 과부는 기도하며 낙심하지 않았다는데 초점이 있습니다.

 

오늘날 물질주의와 다원주의의 거센 파도는 우리의 믿음을 위협합니다. 물질은 믿음을 사용하는 것이지 의지할 대상이 아닙니다. 물질을 의지하게 되면 기도의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교회는 돈이 많은 사람도,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는 사람도, 세상에서 힘이 있는 사람도 기도하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곳이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사람이 깨어나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건강해 집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기도로 한해를 보내기를 원합니다.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의 밤낮 기도하는 제목들이 응답되는 한해가 되기를 원합니다. 밧모섬에서 요한이 바라본 새하늘과 새땅의 모습은 에덴동산의 회복이자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분명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인생을 자동차에 비유한다면 기도는 자동차 핸들를 잡는 것과 같습니다. 운전을 하는 사람이 핸들에서 손을 놓고 졸게 되면 사고가 납니다. 목적지를 향해 도착할때까지 핸들을 잡고, 이리 저리 조정하며 방향을 잡아 가는 것입니다. 푯대를 향한 믿음의 여정에서 두려운 일을 만나고, 생각지 못한 상황들을 만나게 된다해도 그때마다 기도의 핸들을 놓치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여정에 동행하시며 인도하시는 주님이 함께 계심을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길을 안전하게 인도하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믿음의 여정에 함께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5 이 과부가 나를 귀찮게 하니 그의 간청을 들어 주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6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의 간청을 듣지 않으시고 오랫동안 미루시겠느냐?

 

오스왈트 챔버스(Oswald Chambers, 1874-1917) 주님은 나의 최고봉에서 기도의 반복은 하나님과 흥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기쁨에 고집이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기도를 반복하다 보면 믿음의 근육이 붙습니다. 기도는 당장의 일시적 문제를 해결하는 아니라 시대의 불확실성을 받아 들이는 훈련입니다. 사람들은 당장의 명확한 해답을 듣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과학적인 결과들로 자신의 인생을 보장받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기도를 반복하다 보면, 하나님의 애끓는 마음을 깨닫게 됩니다. 생명의 말씀과 다시 연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관심하신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해 무감각한 마음에 회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창세기 32 24-25 보면 야곱은 홀로 천사와 씨름을 합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 뼈가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야곱은 끈질긴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도 소돔성의 심판을 위해 찾아온 천사에게 끈질긴 간청을 했지요. 아브라함은 소돔성 멸망 직전에 영혼의 구원을 위해 끈질기게 기도하였습니다. 소돔성 심판을 들은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서서’ 중보기도를 하였습니다( 18:22). 아브라함은 6번이나 거듭 요청하며, 의인 10명만 있다면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롯이 구원받은 것도 아브라함의 끈기 있는 기도의 열매였습니다( 19:29) 야곱은 끈질긴 기도를 통해 자기중심적 죄를 끊어내고 하나님의 얼굴을 경험했습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홀로 남아 씨름하며 지난 세월들을 회상하며 했을 것입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형의 발꿈치를 붙들고 출생했습니다. 배고픈 형에게 팥죽 그릇으로 형의 장자권을 쟁취했고, 눈이 안보이는 아버지를 속이기 위해 염소 새끼의 가죽으로 에서인 척을 했으며,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을 가서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안에서 살았지요. 20 동안 고향을 떠나서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의 자기중심적인 기질을 훈련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가 이제 고향 땅에 돌아오는데 에서가 400인들을 거느리고 만나러 온다는 소식에 자신의 인간적인 수단을 총동원해서 떼로 나누고 떼를 치면 떼는 피하려고 했습니다. 여전히 자기중심적 기질이 드러납니다.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가족마저 먼저 보내고 이제 야곱 홀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때 야곱은 천사와 씨름하며 그가 의지하던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쳐내시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환도뼈가 부서지는 고통속에서 천사와 씨름했던 곳을 야곱은 그곳의 이름을 ‘브니엘’ ‘하나님의 얼굴’이라 하였습니다. 그가 밤새워 씨름한 그분은 하나님이었습니다. 야곱은 그곳에서 새로운 이름 이스라엘을 얻게 됩니다.

 

케임브리지 교회가 오랜시간 기도하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일들을 감당할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이곳에 함께 있지 않는다고 해도 함께 드린 기도는 여전히 교회에 남아 있습니다. 지속적인 기도가 교회를 유지하고 세워가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얼굴 보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은 지나가도,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드린 기도는 반드시 응답받게 됩니다.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개인의 인생의 미래를 설계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시대가 다가 올수록 성령님을 믿고 그분의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현재에 기도의 답을 얻지 못할 때에도 그분께 맡기며 쉬지 않고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끈질긴 기도는 기도할 힘이 나지 않을때, 기도대로 살지 못할때에도 기도하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부족한 모습을 붙들고 날마다 씨름하는 것입니다.

 

외국에 와서 살면서 저에게는 통장잔고나 좋은 집이 저를 만족시켜 준것이 아니라 작은 방안의 기도의 자리가 저를 변화시켜주고 만족시켜주었습니다. 삶의 도제목을 안고 작은방 한켠 에서 기도하던 시간들은 시간이 흘러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골방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온전히 하나님만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간절한 기도의 시간은 하나님 앞에서 기도의 응답의 여부와 관계없이 가장 겸손 밖에 없던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눈은 우리가 생각하는 작은 , 보잘것 없는일이라도 그분에게는 크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지극히 작은 자가 하나님과 함께 사도들 보다 큰일을 행하게 하는 힘입니다. 세상 보다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기도의 기둥은 믿음 겸손입니다.

 

기도는 ‘믿음’ 위에 세워집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도하는 일 지치고 기도할 이유를 찾지 못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믿음의 경주를 할수 있습니다. 믿음은 자기를 찾는 이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과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 11:6) 믿음이 사라지면 상황을 극복할 있는 하나님의 능력도 위로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믿음은 경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경험입니다. 직접 경기를 뛰는 선수들에게는 안에 땀과 눈물이 있습니다. 때로는 경기 안에서 실수를 하기도 하고, 부상을 당할 위험한 순간에 놓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직접 경기를 뛰면서 얻게 되는 경험들 속에서 믿음의 흔적들이 남는 것입니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속히 그의 백성들에게 정의를 베푸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 이 세상에서 이 믿음을 발견할 수 있겠느냐?

 

예수님은 차례나 제자들에게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되어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9:22). 본문에도 그러나 인자가 , 세상에서 믿음을 발견할 있겠느냐?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 풍조에 휩쓸려 믿음의 길을 포기하게 되리라는 예측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간 종살이를 통해 희망을 잃어버린 순간에도 하나님의 전적인 손으로 애굽에서 구원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시기에서도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보스턴 지역에 하나님은 케임브리지 교회를 세우시고,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시대적 도전 앞에서 기도하는 백성들을 세심하게 돌보시며 길을 내시며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겸손함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기도를 그분의 큰 계획 안에서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어떤 기도는 간구한 그대로 응답해 주시고, 어떤 기도는 간구한 것을 거절하심으로 응답하십니다. 우리의 눈에 거절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큰 계획 안에서는 그것도 응답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큰 계획 안에 있으면 거절된 기도일지라도 축복이 됩니다. 겸손한 기도는 기도의 과정을 통해 우리의 마음이 정화되고 주님을 닮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자가 올때라는 기도의 안경을 쓰시기 바랍니다. 안경은 인지하지 못할때에도 쓰고 있으면 안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믿음과 겸손의 안경을 쓰고 살아가면, 낙심되고 두려운 상황속에서 약속하신 성령님이 도와주십니다. 성령님은 믿음과 겸손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의 기도를 도우십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약속의 안경을 끼면, 성령께서는 두려움을 이기게 해주십니다. 성령의 감동과 감화는 예수께서 승천하실때 믿는 성도들에게 주신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끝나지 않는 전염병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들, 지지과 기근, 예측할수 없는 기후의 변화들, 총성없는 아우성 소리가 가득 넘쳐나는 세상에 살아가지만,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현실적인 문제들 속에서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쉬지말고 기도하는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교회가 여러분의 삶의 길에 기도와 말씀의 등불을 켜고 함께 걷겠습니다. 믿음의 여정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한해도 진실함과 성실함으로 하나님께 쓰임받는 귀한 성도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찬송가 369장 가사를 함께 읽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1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 없는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2시험 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이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말고 기도드려 아뢰세

  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볼 수 있을까 우리 약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아뢸까

 

3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진 자 누군가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 드리세

  세상 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