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1:7-11

7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그의 보혈로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로 죄사함도 받았습니다. 8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지혜와 지식으로 9 우리에게 한 가지 비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뜻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10 때가 되면, 하나님은 그 계획을 분명히 이루실 것입니다. 땅과 하늘에 있는 모든 것의 으뜸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될 것입니다. 11 모든 것을 그의 뜻대로 이루시는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에 이미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예정해 놓으셨습니다. (쉬운성경)

7 He is so rich in kindness and grace that he purchased our freedom with the blood of his Son and forgave our sins. 8 He has showered his kindness on us, along with all wisdom and understanding. 9 God has now revealed to us his mysterious plan regarding Christ, a plan to fulfill his own good pleasure. 10 And this is the plan: At the right time he will bring everything together under the authority of Christ—everything in heaven and on earth. 11 Furthermore, because we are united with Christ, we have received an inheritance from God, for he chose us in advance, and he makes everything work out according to his plan. (New Living Translation)

오늘 에베소서 본문 말씀을 들으면서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에베소서는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게 쓴 편지입니다. 이 편지는 A.D. 62년경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있을 때 쓴 편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로마에서 대 화재가 일어난 것이 A.D. 64년이니까요. 크리스천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일어나기 2년 전에 쓴 편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모두 5절인데요. 첫째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말미암아 자유함을 얻었다는 것(7절), 둘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한 가지 비밀을 가르쳐 주셨다는 것(8절), 셋째로, 그 비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9절), 넷째로, 그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10절), 다섯째로,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오래 전에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것(11절)입니다. 문맥상으로 볼 때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우리(we)’라는 말은 바울과 동시대를 살던 크리스천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히브리서 4장 말씀을 읽다가 놀라운 말씀을 발견했습니다. “와, 이런 말씀이라니!” 하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은 이렇습니다. “Since those who first heard this good news failed to enter because they disobeyed God, God's rest is there for people to enter.......God's promise of entering his rest still stands, so we ought to tremble with fear that some of you might fail to experience it(구원의 소식을 처음 들었던 그 사람들은 불순종했기 때문에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안식처에 들어가 안식을 누릴 사람들이 남아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그러므로 모두 조심하여 우리 중에서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4:6, 1)

처음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들이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말이 아닙니까? 만일 처음에 하나님의 약속을 들었던 사람들이 모두 순종해서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들어갔더라면 오늘 우리에게 안식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해석하고 이렇게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오늘 읽은 에베소서 말씀에 적용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울은 2,000년 전에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신 구원의 계획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위해 그들을 도구도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람들이 자신들이 구원받은 사실에만 집중했지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에 집중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은 제가 2주 전에 소개했던 톰 라이트(N.T. Wright)의 말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에 집중하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참여하지 못한 덕분에 오늘 우리에게 그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이 말이 어려울 수도 있고,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하나님의 신비한 계획(God’s mysterious plan)’이라는 말을 쓰고 있지 않습니까? 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대하여 흥미가 있으신 분들은 로마서 11:13-27 말씀을 읽어 보시면 저의 오늘 설교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옳게 분별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2,000년 전에 자기와 동시대 크리스천들에게 이 말을 했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을 외면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참여하지 않은 덕분에 오늘 우리에게 이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부르심에 대하여 우리는 믿음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주어진 이 기회가 다른 사람들에게 넘어가고 말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런 때에 살고 있습니다. 위기감을 느껴야 합니다. 시대적이 사명을 온 몸으로 느껴야 합니다. 바울은 “At the right time he will bring everything together under the authority of Christ(정하신 때가 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권위 아래 모이게 할 것입니다, 10절)”라고 했습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때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the right time’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대적인 사명’을 느끼는 사람은 모두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로, 우리는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새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성경이 제시하는 길을 따라야 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로마서 12:2 말씀을 보십시오. “Don't copy the behavior and customs of this world, but let God transform you into a new person by changing the way you think. Then you will learn to know God's will for you, which is good and pleasing and perfect(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는 말은 ‘by changing the way you think(생각하는 방식을 바꿈으로)’라는 말입니다. ‘새 사람(a new person)’은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을 바꾼 사람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꼭 새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까?”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새 사람’의 상대적인 말은 ‘옛 사람’입니다. ‘옛 사람’이 사는 방식은 ‘세상의 일(earthly things, NIV, 빌립보서 3:19NIV)’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옛 사람’에게는 ‘하늘의 일(heavenly things)’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옛 사람’은 하나님과 소통할 수 없습니다. ‘땅의 일’ 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하늘의 일’을 생각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둘째로, ‘새 사람’이 되는 것은 우리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니고데모라는 유대의 랍비에게 하신 말씀을 알고 계십니까? “So don't be surprised when I say, `You must be born again.” (요한복음 3:7) ‘거듭나다(born again)’라는 말이 희랍어 원문에 ‘γεννηθῆναι ἄνωθεν (gennēthēnai anōthen)’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γεννηθῆναι’이란 말은 ‘to be born(태어나다)’이라는 뜻이고, ‘ἄνωθεν’이란 말은 ‘again(다시)’ ‘from above(위로부터)’ 혹은 ‘from God’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위로부터’라는 말은 사람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는 뜻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고 ‘ἄνωθεν’을 ‘다시’라는 뜻으로만 알았던 니고데모는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느냐?”고 예수님께 반문했습니다.

그러므로, ‘새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성경이 제시하는 길을 따라야 합니다.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사람이 됩니다. 더 이상 전과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새로운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7-18, 현대어 성경) 이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말씀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if anyone is in Christ)’라는 말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새 사람’은 ‘패러다임(paradigm)’이 바뀐 사람입니다. 이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그 어떤 사람도 세상의 관점으로 알지 않겠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세상의 관점으로 알았으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So we have stopped evaluating others from a human point of view. At one time we thought of Christ merely from a human point of view. How differently we know him now).” (고린도후서 5:16) 이 말씀에서 ‘a human point of view(인간적인 관점)’라는 말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요즘엔 ‘패러다임’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패러다임’이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어 ‘παράδειγμα(paradeigma)’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토마스 새뮤얼 쿤(Thomas Samuel Kuhn, 1922-1996)이라는 과학자가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과학 혁명의 구조, 1962)’라는 책을 썼는데, 그가 그 책에서 처음으로 ‘paradigm shift’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이 책을 쓸 당시 쿤은 UC Berkeley의 교수로 있었습니다. 쿤은 그 전에 하버드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프린스톤에서 가르쳤고, 마지막으로 MIT에서 가르쳤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철학자 리차드 로티(Richard Rorty, 1931-2007)는 ‘과학 혁명의 구조’에 대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가장 많이 읽혔고 가장 영향력이 있는 영문 철학서라고 평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타임(TIME)’에서는 이 책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100권의 도서 중 하나로 선정했습니다. 그만큼 ‘과학 혁명의 구조’라는 책이 20세기 후반 지성계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고 하겠습니다.

쿤은 탁월한 학문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하버드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박사 학위 논문을 쓰고 있을 때, 당시 하버드대 총장이던 제임스 코넌트(James Conant)는 인문계 학생들에게 과학에 대한 소양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학부에 과학사(The History of Science) 과목을 열기로 했습니다. 그는 촉망받는 인재로 주목받고 있던 쿤에게 과학사 강의를 맡겼습니다. 그 때가 1948년, 그의 나이 26살 때였습니다. 이후 쿤은 1956년까지 8년 동안 하버드에서 조교수 자격으로 과학사를 강의합니다. 그 때의 강의 경험을 바탕으로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과학 혁명의 구조)’를 썼습니다. 쿤은 과학의 발전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전환에 의해 혁명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변화를 ‘과학혁명’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쿤 덕분에 ‘패러다임’ 혹은 ‘패러다임 쉬프트’라는 말이 일상적인 용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패러다임’이라는 말을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화면을 한번 보십시오. ‘패러다임’은 사물을 보는 방식, 관점, 혹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해석과 판단의 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패러다임 쉬프트’는 이 관점과 틀이 바뀐 것입니다. 다시 이 화면을 한번 보십시오. 병아리가 막 알을 깨고 나온 그림입니다. 껍질 속에 갇혀 있던 병아리는 사방이 깜깜해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껍질 속에 갇혀 있던 병아리는 세상은 캄캄하고 답답한 것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는 자기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패러다임 쉬프트’입니다. 또 이 사진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작은 어항에 금붕어 네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먹이가 생기면 서로 먹으려고 싸워야 하고, 좁은 공간에서 서로 부딪치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어느 날, 금붕어 한 마리가 자기가 살고 있던 어항을 박차고 뛰어올랐습니다. 자기 앞에 놓여 있는 큰 어항에 들어가 살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내서 뛰어오른 것입니다. 큰 어항에 무사히 뛰어들 수 있다면 이 금붕어는 자유로운 넓은 세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뛰어올랐다가 바닥에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따르는 위험을 무릅쓰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바울은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에 더 이상 그 어떤 사람도 ‘세상적인 관점(a human point of view)’을 가지고 보지 않는다고했습니다. 그에게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보는 관점의 변화, ‘패러다임 쉬프트’가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통적인 용어로는 ‘회심(conversion)’입니다. 청년들에게는 ‘회심’이라는 말보다 ‘패러다임 쉬프트’라는 말이 훨씬 마음에 와 닿습니다. ‘패러다임 쉬프트’ 이후 바울의 삶이 어떠했는지 한번 보십시오. 그는 회심 후에 아라비아 사막에서 3년을 보냈습니다(갈라디아 1:18). 그리고 자기 고향으로 내려가 은둔생활을 했습니다(사도행전 9:30). 그 기간 그는 유대인들로부터 외면당했고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사도행전 9:23). 제자들에게 외면당했고,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 외면당했습니다(사도행전 9:26). 금붕어가 죽을 각오를 하고 앞에 보이는 어항으로 뛰어오른 것처럼 ‘패러다임 쉬프트’를 원하는 사람은 이런 고통의 시간들을 무릅쓸 각오를 해야 합니다.

믿음 생활을 하면서도 ‘패러다임 쉬프트’을 경험하지 못하고 예전에 가지고 있던 ‘패러다임’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여리고의 삭개오가 자기가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나머지 절반도 누구의 것을 강제로 빼앗은 것이 생각나면 네 배로 갚아주겠다고 했습니다(누가복음 19:8). 삭개오에게 ‘패러다임 쉬프트’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의 돈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가난한 사람들을 보는 그의 관점이 바뀌었습니다. 전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의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자기의 것을 나누어야 할 대상으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Matthew Fox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The system is not working. That is how a paradigm shift begins: the established way of seeing the world no longer functions(기존의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 그것이 패러다임 쉬프트가 시작되는 방식이다. 곧 기존의 세상을 보는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새 사람’에게는 사명이 주어집니다. 이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자신과 화목하게 하고 또한 우리에게 화목의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일하는 대사입니다(And God has given us this task of reconciling people to him. So we are Christ’s ambassadors).” (고린도후서 5:17, 20) 실로 엄청난 말씀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아무 생각 없이, 나와 상관이 없는 말씀으로 이 말씀을 읽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시대적인 사명’을 느껴야 합니다.

“너희의 직분은 세상에 나가 화목의 메시지를 너희들의 삶을 통해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에게, 그리고 우리 교회에 주어진 ‘시대적인 사명’입니다. 이 ‘시대적인 사명’이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지게 되었습니까? 이 사명의 말씀을 외면하고 실천하지 않았던 사람들 덕분에 이 사명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이 변화되어 ‘새 사람(a new person)’이 되어야 합니다. ‘새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대사로 세상에 내보내 메시지를 선포하게 하십니다. 마이크를 입에 대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서 큰 소리로 외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화해한 저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하고 우리의 변화된 삶을 통해 화해의 메시지를 세상에 드러내 보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