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5:1-8

1 <의롭다 함을 얻은 결과>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으므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함께하는 평강을 누리고 있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또 믿음으로 우리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며 즐거워합니다. 3 이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을 당하더라도 즐거워합니다. 그것은 환난이 인내를 낳고, 4 또 인내는 연단된 인품을 낳고, 연단된 인품은 소망을 낳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5 이 소망은 절대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시의 적절할 때에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7 의인을 위해 죽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간혹 선한 사람을 위해 죽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을런지는 모르겠습니다.8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것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쉬운성경)

1Therefore, since we have been made right in God’s sight by faith, we have peace with God because of what Jesus Christ our Lord has done for us. 2 Because of our faith, Christ has brought us into this place of undeserved privilege where we now stand, and we confidently and joyfully look forward to sharing God’s glory.3 We can rejoice, too, when we run into problems and trials, for we know that they help us develop endurance. 4 And endurance develops strength of character, and character strengthens our confident hope of salvation. 5 And this hope will not lead to disappointment. For we know how dearly God loves us, because he has given us the Holy Spirit to fill our hearts with his love.6 When we were utterly helpless, Christ came at just the right time and died for us sinners. 7 Now, most people would not be willing to die for an upright person, though someone might perhaps be willing to die for a person who is especially good. 8 But God showed his great love for us by sending Christ to die for us while we were still sinners.(New Living Translation)

사순절 두번째 주일입니다. 지난주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공동체에 대해서 나눴고 오늘의 주제는 평안입니다. 스톨의 색깔의 의미도 알려드리기로 했지요. 보라색은 강림절과 사순절에 사용하게 되는데, 사순절기의 보라색은 참회를 상징합니다. ‘편안함평안함는 그 뜻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평안함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줄수 없는 평안을 너희에게 주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매주일 고백하는 사도신경에는 예수님 외에 두사람의 이름이 나옵니다. 한 여자는 예수를 수태한 유대인 여인이고, 한 남자는 예수를 죽인 로마 관원입니다. 예수가 육신의 몸을 입기 위해서 소녀 마리아는 하나님과 평화를 이뤄야 했습니다. 자신의 편안함을 버리는 것이었죠. 처녀의 몸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임신하는 일은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신명기 법에 의하면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는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반면에 로마 관원이던 빌립보는 자신의 위치와 상황속에서 불편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스스로의 양심을 저버렸습니다. 사도신경은 “…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라고 분명히 적시하여, 마리아의 순종과 빌라도의 허물을 오는 세대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그 자리에서 자신과 예수의 십자가와는 무관하다면서 물로 손을 씻었다고 기록합니다.( 27:24) 그러나 사도신경은 지상에서 예수님의 생명의 시작을 마리아의 믿음으로 알리고 있으며, 예수께 십자가 사형 선고를 내린 사람으로 빌라도를 2천년에 걸쳐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로마제국이 황금기를 이르던 시대에 한 사건이 예수의 십자가 처형입니다. 이 십자가 처형은 당시 로마의 평화와는 다른 것입니다. 로마의 평화는 정치, 경제, 군사적 안정을 목표로 다른 나라들을 억누르는 것입니다. 로마의 평화는 약소 민족들 입장에서는 절망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한 예가 70년경에 디도 장군에 의해서 유대 예루살렘성이 함락되고 도시 전체가 초토화 된 것입니다. 당시 로마의 평화는 지배 문화가 정당화 되도록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힘과 권력으로 만든 평화이지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죽이려는 십자가에 달리시며 평안을 주셨습니다. 주가 주시는 평안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주신 평안함입니다. 로마의 평화와는 차원이 다른 것입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손해 보고 자아를 죽이며, 소란스런 세상에서 평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설교를 준비하는데 주일학교 때에 부르던 노래 가사가 생각이 났습니다. ‘세상은 평화 원하지만 전쟁의 소문 더 늘어간다. 이 모든 인간 고통 두려움 뿐 그 지겨움 끝없네. 그러나 주 여기 계시듯 우리가 아들 믿을 때에 그의 영으로 하나돼’ 2022224일 시작 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한해가 지나도록 팬대믹 보다 더 끔직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위협하는 세상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평화를 원하지만 세상에 그 평안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수고와 노동, 질병과 저주, 아픔과 고통은 아담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인해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고 말씀합니다.(5:21)

 

당시 로마에 있던 교회들에게 바울은 로마서 5장에서 죄의 결과와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풍성한 은혜를 대조 시킵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로마서 67장으로 가면 죄는 사람들을 종으로 만드는 아주 인격적이고 실제적인 세력이기 때문입니다. 죄는 왕과 같이 세상을 장악한 세력입니다. 즉 모든 인간이 죄의 종노릇하는 것이지요.

 

죄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안 짓고의 차원이 아니라 인간 안에  ‘본래부터 죄가 있는 것입니다. 마치 침몰하는 배 위에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살기 원해도 그 배는 결국 침몰하게 되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침몰하는 배에서 절망 속에 있는 당신을 살리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이 진리가 기독교의 출발입니다. 즉 성도의 삶은 구원으로 부터 시작됩니다. 더 이상 악한 권세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된 것입니다.(5:18)

 

이스라엘 백성들은 동물의 희생제사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평화를 위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흠이 없는 제물을 죽여 죄를 동물의 피에 전가해서 하나님께 화목제사를 드렸습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삶속에서 부지중에 지은 죄를 위해서는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이 제사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거나, 하지 말하야 할 것을 한 경우, 고의적으로든, 무지로 지은 죄든 그 죄를 제물에 전가해서 1년에 한번 속죄일에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속건제를 드렸습니다. 이웃끼리 다투거나 범하는 모든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속건제물을 드리며 사함을 얻어야 했습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매일 서서 섬기며 희생제물을 드렸지만, 그 제사만으로는 결코 모든 죄를 없앨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영원하고 큰 대제사장인 예수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단번의,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오른쪽에 앉으셔서, 이후로는 자신의 원수들이 자신의 발등상이 될 때까지 기다리시는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10:11-13)

 

그러므로 믿음은 우리가 얻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현실속에서 평화를 누리기 보다는 좌절감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는 것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자녀가 되었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조차 느끼지 못하고 편안한 삶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구원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평화를 거부하는 세상의 힘은 우리를 유혹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를 억압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의 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성경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므로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5:1 <의롭다 함을 얻은 결과>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으므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함께하는 평강을 누리고 있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또 믿음으로 우리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며 즐거워합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우리가 벌이던 전쟁이 그치고 고요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반항하던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함으로 잠잠해 지는 것이지요.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께 저항하던 우리의 혈과 육은 완전히 패했으며, 마음속 깊은 곳에 끓고 있는 용암과도 같은 혈기, 욕심으로 물든 죄가 십자가의 보혈로 잔잔해 지는 것입니다.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 살아갈 때는 모든 것이 문제로 보였는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는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던 일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보니까 그것까지도 주의 십자가를 깊이 알게 되는 길이 될 뿐입니다. 십가가에 달린 주님을 생각하면 할수록 그 사랑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게 하십니다.

 

사순절기는 우리가 주님의 품을 떠나지 않도록 머무르는 훈련의 시간입니다. 주님의 고난에 애써 동참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복음 안에 머무르며 주가 주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것을 확신하라는 것이지요. 우리 안에 선한 것이 없지만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월요일 교우들의 참여로 새벽기도 줌이 100명이 넘었다는 것을 새벽 예배를 드리고 나서야 사람들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제가 사용하는 줌 어카운트가 제한 인원이 100명으로 되어 있어서, 지난 월요일 새벽기도회에  100번째 이후로 들어 온 분들은 새벽예배에 접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들어 오지 못한 교우가 하나님을 만날 절호의 기회였다고 생각해 보게 되니까 책임에 대한 무거움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그릇을 넓히라고 하셨습니다. 너의 그릇에 영혼들을 담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고 순전한 그룻으로 영혼들을 담아내라하시는 마음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사순절 절기 동안 줌플랜을 바꿨습니다. 이번에 잠시 바꾼 플랜은 500명 제한입니다. 금요 예배를 드리고 차 운행을 하는데 한 청년이 새벽기도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함께하니까 너무 든든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고 하는데, 제 마음도 뜨거워 졌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의 뒷모습으로도 힘을 얻고 위로를 얻는 지체들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순절 영적 순례길에 더 많은 교우들이 동행하며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순례길을 걷다 보면 우리의 믿음도 조금씩 성장해 갑니다. 성장통과 함께 키가 자라는 아이들처럼 매일 십자가를 붙들며 살아가다 보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되는 영적근육이 길러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매일 주님과 동행함으로 그리스도가 주시는 평화를 믿음으로 누리는 것이지요.

 

째로 의의 열매는 연단된 인품과 소망을 낳습니다.

3 이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을 당하더라도 즐거워합니다. 그것은 환난이 인내를 낳고, 4 또 인내는 연단된 인품을 낳고, 연단된 인품은 소망을 낳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환란을 당해도 즐거워 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사랑이라면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할까? 환란을 어떻게 자랑할 수 있지? 십자가가 어떻게 자랑거리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십자가의 능력은 알지만 십자가가 내 삶에 오는 것을 피합니다. 버티고 머무르다가 십작가가 정작 삶에 해로운 것이라 느껴지면 떠나갑니다.

 

그런나 우리는 환란을 즐거워하고 자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고난과 절망, 생존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아래서 우리는 스스로 지혜롭다는 생각을 멈추게 되고, 스스로 슬기롭다는 죄의 본성,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일에 저항하게 됩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눈물을 보게 되며, ‘하나님께 지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지는 것 같아 보이지만 순종을 통해 영원한 승리를 얻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시며 눈물로 세상과 사람들을 끌어 안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죄의 세력이 예수의 발 아래에 짓 밟혀서 굴복되게 하셨습니다성도들은 환란이 인내를 낳고, 그 인내의 결과는 그리스도의 인품과 하늘의 소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베토벤은 최소한 하나의 곡을 만들기 위해 열두번 이상을 다시 썼다고 합니다. 천지 창조를 만든 하이든은 끊임없이 기도하며 오랜 시간에 걸쳐 작곡을 했다고 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의 걸작 최후의 만찬을 8년동안 무려 2천번이나 스케치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즐겨 먹는 꿀 한 숟가락은 꿀벌이 42백번이나 꽃을 왕복하며 얻는 것이라고 합니다. 영어사전을 집필한 웹스터는 36년 동안 밤낮으로 일하여 사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모든 나라의 국가대표 선수들은 고된 훈련을 즐거워 합니다. 고된 훈련이 자랑이 되는 것은 영광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고된 훈련을 하지 않고 영광를 얻게 되는 선수들은 없습니다. 인내를 통해서 얻게 되는 소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입니까? 영광이라는 단어는 영원하신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그 영광을 조금 흉내 낼 뿐이지요. 세상의 영광은 하늘의 영광을 조금 맛보는 것 일뿐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하더라도 고통은 따라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실존입니다.

인간은 기쁨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고 살아가고 있으며, 확신과 불신의 자리에 서 있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은 희망의 끈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환란이 없다하지 않으시고 환란을 당하더라고 소망을 붙들면 기대를 져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16:33)

하나님의 영광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을까요? 모든 것들이 풀처럼 지나가지요. 그러나 환란 중에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니까, 내게 필요한 시간이라고 기뻐하게 되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심을 받아 들이며 믿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의의 열매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5 이 소망은 절대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조셉 조렌티니라고 하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뉴욕에 있는 플라자 호텔에서 도어맨으로 53년 동안 근속한 사람이었습니다그는 53년 동안 3일만 결근했다고 합니다. 글로 보는데도 성실함과 꾸준함이 얼마나 힘든일인지 느껴집니다그가 78세로 은퇴를 하게 되자 기자들이 찾아와 물었습니다. “당신은 그런 단순한 일을 어떻게 53년 동안이나 계속할 수 있었습니까?” 하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나는 사람을 좋아하지요. 호텔 도어맨은 날마다 새 사람을 만나는데, 이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서 손님을 맞이할 때 예수님을 맞이하 듯 합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예수님이야기를 합니다그러므로 이 호텔 현관은 53년 동안 제게는 천국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날마다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속에 부어 주십니다. 그 사랑으로 하나님과 교제하게 합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입니다.

 

찬송가 304장에 보면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두루마리에 먹으로 해서 글을 썼잖아요. 넓은 하늘이 화선지이고, 깊은 바다가 전부 먹물이라면,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끝까지 사랑하신다이 문장을 몇 번이나 쓸 수 있을까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 만큼 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부터 사랑하셨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사랑하셨다는 증거가 2천년 전 예수가 지신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분명하게 표현된 것입니다.(6)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아들을 내어주신 사랑입니다. 우리의 사랑에는 제한이 있고 한계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해도 우리는 가장 소중한 자녀들을 내어 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가장 소중한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8) 사순절기는 그 사랑을 채워가는 시간입니다.

우리 곁에 있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 보시고, 만나는 사람들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음을 발견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우리 손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그 사랑의 능력을 흉내 낼 수도 없을 것입니다. 말씀이 실제가 되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담아내야 합니다. 우리가 모인 자리에서 먼저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이 나의 삶이 되도록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할 때에도 나의 열심인지 하나님의 열심인지 분별하십시오. 비판은 우리의 눈을 멀게 하고 사랑은 눈을 뜨게 합니다

어느날 저녁에 교회에 기도하러 왔는데, 그날따라 성가대의 한자리 한자리부터 오케스트라를 지나 회중석 2층까지 손을 대고 기도했습니다. 의자는 빈자리였지만 체온이 느껴지는 듯 했습니다. 다함께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그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에 깊고 뜨겁게 전해 질 수 있도록 함께 지어져 가는 믿음의 여정을 걷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로만 전하는 신앙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우리의 교회와 지체를 마음 다해 사랑하는 교우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