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전서 15:1-11,20

15:1 <그리스도의 부활> 성도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전파한 복음에 대해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받아 그 안에 굳게 선 복음 말입니다.

2 내가 여러분에게 전파한 말씀을 굳게 붙들고 헛되이 믿지 않으면,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3 내가 받은 가장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것과4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과5 그리고는 베드로에게 나타나시고, 그후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시고,

6 그후에 한번에 오백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도 나타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람들 중에는 이미 죽은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7 그후에 야고보에게, 그 다음에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시고,8 맨 마지막으로 조산아와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9 나는 모든 사도들 중에서 가장 작은 사람입니다. 나는 과거에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사도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10 그러나 지금의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므로 내게 베푸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않습니다. 나는 다른 사도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한 것이었습니다.11 내가 되었든지 아니면 그 사람들이 되었든지 간에 우리가 전파한 복음은 이런 내용이고, 여러분은 이것을 믿었습니다…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어느 조류학 저널에 게재된 연구인데요. 연구팀이 까마귓과 새인 멕시코 어치에게 까보지 않고도 땅콩 속이 비워 있는지, 차 있는지 구별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연구진은 무게가 같은 땅콩 안에 진흙을 넣어 무게를 1g정도 늘린 땅콩을 함께 놓아 두었습니다. 그러나 새들은 더 무거운 땅콩을 선택합니다. 새들은 여러 실험을 거친 일련의 과정속에서 적절한 무게와 소리를 통해 판단하고 선택을 한다는 결과였습니다. 겉으로 보이지 않아도 속이 꽉 차 있는 땅콩을 선택 한 것이지요.

 

기독교 진리에 있어서 부활은 껍데기가 아니라 복음의 진수 (眞髓)입니다. 부활신앙은 기독교인들에게 생명이지요. 생명이 없는 형태만 붙들고 있으면 꽃을 피울 수가 없습니다. 죽은 나무 붙들고 열매가 맺어지기를 바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새가 단단한 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일은 생명에게 주어진 운명입니다. 부활 신앙은 생각의 틀을 깨는 것이며, 세상의 유혹과 욕망의 껍데기를 벗고 복음의 신비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복음에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의 케리그마는 ‘공허한’(고전 15:14) 것이  되어 버립니다.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고 기록된 말씀 그대로 믿는 것은 죽음을 뛰어넘는 것이지요. 씨앗이 겨울 내내 땅속에 있다가 생명을 통해 꽃으로 변화되는 것과 같습니다. 창조의 신비는 상처 난 부위에 새살이 돋아나는 것이고, 희망이 없던 이들이 갈 길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부활은 오직 창조하신 하나님에게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부활을 사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얼굴을 드러내십니다. 부활을 살아가는 것은 온 생애를 다시 얻는 것이며, ‘현재의 삶을 리셋하여 새롭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선교 메시지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신앙고백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 15:2-4) 우리의 죄로 인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그의 무덤, 그의 부활입니다. 이것은 베드로와 열두 사도들, 500여명의 사람들에 의해서 증언된 내용입니다.

 

첫째로 예수의 부활은 실제로 증인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5 그리고는 베드로에게 나타나시고, 그후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시고,

6 그후에 한번에 오백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도 나타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람들 중에는 이미 죽은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7 그후에 야고보에게, 그 다음에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시고,8 맨 마지막으로 조산아와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바울은 부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열거하며 설명합니다. 복음의 핵심을 요약한 다음에 부활의 주님을 본 더 많은 증인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는 ‘오백여명의 형제들’에게 나타나셨으며, 그들 중에 대부분은 바울이 글을 쓸 당시에도 살아 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또한 야고보와 ‘모든 사도’의 무리들에게 나타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끝으로 바울 자신에게도 나타나셨다고 기록합니다.

 

예수의 부활을 허위로 증거한 것이라면, 2천년 후인 오늘까지 존재할수 없을 것입니다. 거짓된 증거라면 순교자들의 심리적 동기를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상황에서 나타나신 예수 부활의 진실성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11절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내가 전하든지 다른 사도들이 전하든지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하고 있으며 여러분은 그것을 믿었습니다."

 

바울은 이 부활의 경험을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말씀을 깨닫는 지혜가 임하면 어린아이의 삶에도 변화는 찾아 옵니다. 그러나 저명한 교수라도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아무리 성경을 통달하고 꿰뜷고 있어도 삶의 변화가 없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우리의 몸도 성경대로 부활의 몸이 될 것을 믿으십니까? 하늘의 시민권을 부여 받게 되면 세상의 시작과 끝을 알게 되기에 현재의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에게 뜨거운 믿음이 있어도 이 부활의 십자가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가 가진 힘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DL 무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 1명은 성경을 읽지만, 99명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통해서 예수를 믿게 된다는 것이지요.’ 성도의 삶의 선한 모습은 연약한 지체들을 일으켜 세워줍니다. 성도들의 격려의 말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매우 지성적이고 교육을 많이 받는 사람이었고, 유대교에 대한 열심도 대단해서 예수가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사람들을 박해했습니다. 그런 그가 갑자기 변화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의 사건입니다. 이 믿음은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고 보존하는 힘이 됩니다. 개인의 삶도 새롭게 살아가는 전환점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땅에서 잠자던 씨앗이 때가 되어 싹이 나고 꽃을 피우듯이 말입니다. “씨앗을 손에 들고 새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라는 시구가 있습니다. 씨앗이 심겨지면 싹이 날 것이고 자라서 나무가 되면 새들이 와서 새소리를 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마지막 때에 일어날 새로운 창조를 예수의 부활을 통해서 경험했습니다. 이후 제자들은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심을 통해 죄를 용서 받게 되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모든 피조물들이 갱신되듯 자신들의 몸도 부활할 것임을 믿게 된 것입니다. 이 믿음은 제자들을 박해 가운데서도 구원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예수님처럼 죽는다는 것입니다이 사실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그러나 믿는 이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무덤에 계시다가 다시 ‘살아있는 자’로 경험되는 것이며, 이 믿음은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매주일 사도신경을 통해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이 이상하고 낯선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종말의 때를 하나님의 시간 안에 감춰 두셨습니다. 그래서 언제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거듭난 사람들은 하나님께로 부터 와서 하나님께로 가는 존재이기에 분명한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경주자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가 지신 십자가는 삶의 뿌리이고, 예수의 부활은 새로운 삶의 꽃입니다.

 

뿌리는 꽃을 피우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깊이 뿌리 내리게 되면 우리는 부활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 삶은 슬픔이 변하여 기쁨을 얻는 경험이며, 깊은 수렁에서 끌어내어 올리는 힘입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이 불어 흔들려도 뽑히지 않습니다. 삶에 뿌리를 깊이 내린 십자가는 실제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쩌다 한번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 반복하며 행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입니다.

 

17세기 화가 램브란트(Rembrandt, 1606-1669)는 성경속 이야기의 많은 작품을 그리며 자신을 구경꾼으로 그렸습니다. 그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것은 내가 그 자리에 있어요라는 고백입니다. 가장 깊이 뿌리 내린 삶은 바로 십자가 아래바로 그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땅속에 숨겨진 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이 뿌리 내리게 됩니다. 육안으로 보기에 큰나무 일수록 땅속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린 것이지요. 뿌리는 지지역할을 하고 양분을 저장하고 흡수하는 역할을 합니다. 십자가 뿌리는 흔들리는 신앙을 지지해 주고, 죄를 정결케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거룩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쏟으신 그 땅에서 부활의 꽃을 피우셨습니다.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마주하게 되는 고난은 찬란한 부활의 꽃을 피우는 밭이 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발칸 반도의 장미 향수는 반드시 한밤 중에 장미를 딴다고 합니다. 그들은 밤 12시에서 새벽 2시까지 발칸산맥에 가서 그 장미꽃을 따서 향수를 만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한밤중에 가장 향기로운 향을 발산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태양이 비취는 낮에는 장미향기의 40% 가량이 감소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일의 삶에 억압 당하고 살아갑니다. 하루 하루  늙어가는 시간도 생명이 억압받는 일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 염려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나쁜 일이 일어날까 염려도 하지만, 혹시 인생의 봄날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마음이 자리를 잡지 못하기도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을 우리가 참되게 믿는다고 해서, 삶에서 완전한 해방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봄이 오면 죽은 듯이 보였던 나무에 꽃이 피고 잎이 피듯이 생명의 힘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칠흙 같은 어둠속에 정금 같은 믿음의 향기를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을 겸손하게 바라보시며 찬란한 부활의 꽃을 피우는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현재 땅속 깊이 뿌리 내리는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급한 마음을 내려 놓고, 부활의 힘을 축적하다 보면, 부활의 주님께서는 생명이 되셔서 인생의 봄날이 올때에 꽃을 피우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죽은 자로부터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첫열매라는 헬라어 단어는 아파르케: παρχή’입니다. πό (아포, ∼부터)ρχή(아르케, 시작)의 결합어인데, 말 그대로 '시작부터'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아르케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영어 성경은 firstfruits라고 표기합니다첫 열매라는 말은 그에게서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열매는 행실을 의미하는데요. 부활절기를 보내며 선한 행실을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습니다.”(5:9)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 카운티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도시 중심에는 큰 공원이 있는데, 그 공원 안에 세 사람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첫번째 동산은 흑인들의 인권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마틴 루터킹(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동상입니다. 루터킹은 나에게 꿈 (첫열매)이 있습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의 꿈은 흑인들의 인권을 위한 첫 열매가 되었습니다.

두번째 동상은 인도 독립의 영웅 간디입니다. 간디는 미국인은 아니지만 그의 생애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세번째 동상은 도산 안창호 선생입니다. 루터와 간디와 달리 안창호 선생이 한 일은 그저 리버사이드 카운티의 오렌지 농장에서 일한것뿐입니다. 그러나 안창호 선생이 오고 그곳의 모든 한국인의 말과 행동이 바뀌었답니다. 그 지도력을 인정해 지역의 유지인 오렌지 농장의 주인이 적극적으로 추천하여 안창호 선생의 동상을 세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렌지 농장의 인부였던 안창호 선생의 삶이 지역 사람들의 삶의 변화에 첫 열매가 된 것입니다.

 

 

이번주 주보 앞면에 소개하려는 그림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교우님의 작품인데, Way maker 라는 그림입니다. 저는 이 그림을 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곳에 하나님과 연결되는 길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 길이 어느 길이어도 말입니다. 부활의 기쁨과 십자가의 놀라운 사랑이 우리의 삶에 새로운 힘이 되어 줄 수 있도록 십자가를 붙들고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림 속에 사람들의 표정은 나와 있지는 않지만 그림에 담긴 메세지가 따뜻해서인지 모두의 표정이 행복하게 미소짓고 있는 듯 느껴집니다.

 

여러분은 공동체 안에서 어떤 표정으로 서 계십니까? 세상에서 누려야 할 것도 많고,해야할 말도, 하고 싶은 일도 많습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들의 현재의 삶에 중요한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 시간을 살아 내는 것입니다. 때론 더딘것 같아도 서로가 다를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새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서로가 하나님께로 향하는 길이 되어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함께 동행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묵상하다 보면 이름도 없는 모세를 살린 히브리 산파들, 나아만 장군을 살린 작은 소녀와 종들은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하나님의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500여명의 제자들도 기독교 역사의 축을 세우는 일에 주님의 손과 발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고 섬기는 당신에게 주님의 빛이 비추고 있음을 기억하시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 하십시오.

 

부활의 믿음을 가슴에 품고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소유가 됨을 잊지 마십시요. 부활의 기쁨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영원토록 함께 해 주십니다.

 

성경을 묵상하다 보면 이름도 없는 모세를 살린 히브리 산파들, 나아만 장군을 살린 작은 소녀와 종들은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하나님의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500여명의 제자들도 기독교 역사의 축을 세우는 일에 주님의 손과 발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고 섬기는 당신에게 주님의 빛이 비추고 있음을 기억하시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가야합니다.

부활의 믿음을 가슴에 품고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소유가 됨을 잊지 마시고 부활의 기쁨을 포기하지 마십시요. 주님은 영원토록 함께 해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