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4:9-13

9 마지막으로 마귀는 예수를 데리고 성전 꼭대기로 올라가서 말했다.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서 한번 뛰어내려 보아라. 10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를 ‘하나님께서 너를 위해 천사들에게 명하여 너를 보호하실 것이니, 11 천사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쳐,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지 않느냐?
12
예수께서 마귀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다.
13
이처럼 마귀는 모든 시험을 끝마치고, 적절한 시기가 올 때까지 다음 기회를 노리면서 당분간 예수를 떠나갔다. (쉬운말 성경)

9 Then the devil took him to Jerusalem, to the highest point of the Temple, and said, “If you are the Son of God, jump off! 10 For the Scriptures say,‘He will order his angels to protect and guard you.
11 And they will hold you up with their hands so you won’t even hurt your foot on a stone.” 12 Jesus responded, “The Scriptures also say, ‘You must not test the Lord your God.’13 When the devil had finished tempting Jesus, he left him until the next opportunity came.(New Living Translation)

사순절 세번째 주일입니다. '말씀으로 이기신 시험'이란 제목으로 3주에 걸쳐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요. 예수님은 광야에서 육체적 욕망과 높은 곳에서는 세상의 권력에 대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끈질긴 마귀는 이번에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로 예수를 데리고 갑니다. 성전은 유대교 신앙의 중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생하게 임재하심을 나타내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유대 백성들은 성전에서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 주신다고 믿고 예배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들은 이 성전을 찾았습니다. 마귀는 그 성전의 꼭대기에서 '하나님께서 너를 보호하실 것이니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서 한번 뛰어내려 보라'고 제안을 합니다. 정말 그럴듯 한 유혹입니다.

 

마귀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神性: divinity), 사람의 아들(人子, the son of man )로 성육신 하셔서 교회의 머리가 될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에 마귀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만 있으면 좋을텐데, 죄가 없는 사람의 아들로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하니까 십자가의 사건을 죽도록 훼방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세상에 이뤄지면하나님의 나라는 예수가 이땅에서 살아낸 나라가 될 것이고 성도들도 이 믿음으로 시험을 이기고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성(神性: divinity)을 증거합니다. 그 증거는 성경에 너무 방대해서 다 열거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는 하나님만이 소유할수 있는 신적인 권세를 소유하고 계셨습니다.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고, 말씀으로 바다를 잠잠케 하시고, 적은 떡과 물고기로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생각을 아셨고 자신을 팔자가 누군지도 아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을 찾아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기록한 성경을 믿게 될때 말씀이 우리의 영혼을 변화시켜 나가십니다.

 

또한 성경은 그리스도의 나심에 대해서 성령의 역사로 인해 어머니 마리아에게서 잉태되었다고 분명하게 증거합니다. 마태복음 118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예수의 동정녀 탄생은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인간의 몸을 입지 않은 상태로 세상에 보냈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어떻게 인간이 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늘에서 인간의 몸으로 만들어 낸 기적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인간인 어머니로 부터 우리와 같은 방법으로 탄생하셔서 '완전한 인간'이 되게 하셨습니다. 동시에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에게 잉태되게 하심으로 '완전한 하나님'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창세기는 여자의 후손으로 부터 온 자가 마귀를 멸망시킬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3:15) 즉 구원은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어야 함을 분명히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한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분 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사도요한은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 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요한은 당시 성육신의 진리를 부인하는 이단의 가르침이 심각한 문제였기에 그리스도의 신성만 강조하는 영지주의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참 인성을 부인하는 것은 기독교의 핵심을 부인하는 것이라 말씀합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님을 가리켜 인자(人子, the son of man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는 단어가 86번이나 언급되고 있습니다.

 

완전한 인간이면서 완전한 하나님이신 분만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되실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실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신성(神性: divinity)와 인성(人性)에 대한 신학적 교리는 여러분의 논리로 이해할 수 없어도 성경 그대로 믿는 것이 겸손이며,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지적 교만일 것입니다.

 

첫째,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서 한번 뛰어내려 보아라.

 

이단(異端)  '끝이 다르다'는 의미로, 처음은 같은데 끝에 가서는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이단은 교주를 신격화시킵니다. 명품은 제품을 흡사하게 모방하는 유사품이 있는 것처럼 기독교 안에는 수많은 이단들이 많은데요. 이단과 관련된 잊지 못할 뼈아픈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단과 사이비를 묵숨걸고 연구하고 파헤쳐 밝혀내던 현대종교 발행인 () 탁명환 소장은 1994219일 이단 단체의 피습으로 그의 생애를 마감하게 됩니다. 이후에 그의 3명의 아들들이 뒤를 이어 이단에 대한 전문지를 발행하며 이단대책 사역을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때 그의 아들 탁지일 교수를 초청해서 학교에서 세미나를 열었는데, 당시에도 해당 이단들의 속한 사람들이 찾아와 학교에서 열리는 세미나를 열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는 관계로 결국 행사를 치르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실제로 대부분 이단에는 교주들이 있어서 자신을 예수의 신성과 동일시합니다. 통일교의 문선명, 구원파의 박옥수,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 신천지의 이만희, JMS의 정명석, 예수중심교회의 이초석 등 이단들은 일일이 다 열거 할수도 없을 정도로 수많은 이단 단체 안에는 자신을 신격화하는 교주들이 있습니다.

 

현대종교 연구소장 탁지일 교수에 의하면 요즘은 이단들이 사회 사업을 통해서 문화적 배경을 넓히고 있고, 경제적 뒷받침으로 기존의 교회까지도 통째로 접수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문제는 교회의 잘못된 점을 고쳐야 한다는 미명아래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유혹하기도 하고, 교회 안에 당을 짓게 하기도 하고, 교회보다는 자신의 개인에만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지요. 이단은 성경의 진리를 무시하고 새로운 책을 만들기도 합니다. 은혜의 교리나, 삼위일체의 교리, 그리스도의 위격(신성과 인성)의 교리를 부인합니다. 지나치게 신비주의적이기도 하고, 돈을 밝히기도 합니다. 주의 이름이나 성경적이라는 단어를 지나치게 남용하기도 합니다. 이단들은 유투브나 미디어를 통해서 포교활동을 매우 적극적으로 합니다. 선교지에도 많은 이단들이 침투해서 신학교를 세우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속인 눈먼 돈으로 이단의 가르침을 주입합니다. 향후 이단 사상을 담고 있는 인공지능 챗GPT 프로그램도 개발할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는 깨어 기도하며 바른 성경의 지식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건전한 신앙서적이나 간단한 신학교리를 설명한 책들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성경의 대한 권위를 인정하는 것과 이단들의 말을 맹신하는 것은 다른 것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는 이제껏 일어났던 이단의 가르침을 다 합쳐도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유혹으로 부터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미혹하는 영을 경계하라는 것이 주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마귀의 3번째 시험을 자세히 살펴보면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성전 꼭대기 위에서 한번 뛰어 내려 보아라.' 이 제안은 한편으로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실테니까 사람의 아들로써 어려운 길을 가지 말고, 십자가를 지기 위한 뜻을 하나님의 아들인 신성(神性: divinity)으로 쉽게 이루라는 유혹일 것입니다. 이 시험은 예수가 태어나 유아시절부터 서른살 청년이 되기까지 고난 가운데 순종을 배우고, 성숙해져 가는 여정의 절정인 것입니다. 33년의 생애 동안 그리스도께서는 아담이 실패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하고 여전히 우리가 실패한 것을 완성하기 위해서 걸어 가신 좁은 길, 십자가의 길, 부활의 길입니다. 주님은 기쁨을 바라보며 고통을 참으며 가시려고 하는데, 마귀는 십자가에 달려 구속의 은혜를 주려고 하니 다시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유혹을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길에서 이 유혹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우리는 더 넓은길, 편안한 길, 고난이 없는 길로만 가고 싶어 합니다. 매주일 섬김의 자리와 헌신의 자리에서 봉사하고 희생하는 일은 피하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듣지 않는 성도가 세상속에서 유혹을 이기고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또한 삶의 현장에서 주님과 동행하지 않는 성도들이 주일날만 설교를 듣는다고 해서 온전한 예배자로 설수도 없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길을 어떻게 순종하고 걸어 가셨는지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있는 마귀는 그 길을 걷지 말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면 너는 분명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천사들이 너를 보호할꺼야 그러니까 천상의 자리로 돌아가라고 유혹합니다. 이 유혹 앞에서 주님께서는 사람의 아들로 하나님의 뜻에 끝까지 순종하심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가(1:22) 되셨습니다. 이 십자가 사랑으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몸을 이뤄가게 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아갈 때에 주님께서 빚어 가시는 삶을 통하여, 형제를 위하여 깨어지는 삶을 통하여 서로를 살리는 삶을 이뤄가게 됩니다.

둘째, 마귀는 말씀을 변질시킵니다.

10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를 ‘하나님께서 너를 위해 천사들에게 명하여 너를 보호하실 것이니, 11 천사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쳐,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지 않느냐?

마귀는 지금 시편의 말씀을 인용해서 예수께 제안을 합니다. 시편 9111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12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문제는 한번 뛰어내려 보라는 말이 성경에는 없습니다. 마귀는 그럴듯 하게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며 뛰어 내리라는 것입니다. 이 유혹은 신앙적으로도 대단히 개혁적이고 진취적인 말씀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진정한 개혁이란 비난과 조롱하는 것을 멈추고, 교회를 다시 세워나가기 위해 성육신의 진리를 삶의 이야기로 써나가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우리의 마음과 몸을 내어 드리는 일은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기도의 능력으로 지속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단들은 성경을 가르치지만 성경의 교리에서 벗어나 부분적인 말씀 구절에 집요한 관심을 보입니다. '성경적'이란 단어만큼 애매한 것도 없습니다. '영적'이라는 단어도 내 믿음의 방식을 포장하기 위해 붙이는 수식어가 아닙니다. 원조 맛집이라고 홍보하듯, 마치 기업과 회사를 홍보하듯 '영적, 성경적'이라는 단어를 가볍게 붙이고 사용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교회의 영광을 회복하고 그리스도의 마음에 연합되어지는 일은 평생을 통해 지속하는 일입니다. 한순간 초월적 경험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 매일 점진적인 성화의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예수께서 걸어가신 행렬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맺은 사랑의 언약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세상의 일들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언약 안에서 끝까지 신뢰하고 하나님께 삶을 맡기는 겸손함을 지녀야 합니다.

미혹의 뿌리는 대부분 두려움에 사로잡혀 유혹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려움은 우리의 삶을 송두리채 망치기도 하고, 하나님 앞에서 홀로 의인인양 살아가는 자리에 서 있도록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의 무덤이 비어 있는 이유는 보여지는 것 자체를 숭배하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놓치지 말라는 뜻이 아닐까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만 지나치게 문자주의적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복음적이지 않습니다. 성경은 기록될 당시의 배경을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문자에 국한된 해석이 아니라 성경과 전통, 이성과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십니다. 이성은 우리를 잘못된 해석에서 보호해 줍니다. 신앙적 경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역사하는 성경을 최종적인 권위로 인정하도록 성령께서 함께함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신중하게 연구하고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온전한 복음, 온 민족을 향한 신학, 온세상을 향한 구원을 열린 마음으로 수용함으로 구원의 깊은 신비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2천년 교회의 전통속에서 내려온 신앙의 유산을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음악과 예술의 세계를 공부하는 이들이 이론을 넘어 심층적인 세계가 더 깊어 지듯이  믿음생활을 통하여 주님과의 관계 안에서 누리는 성육신의 신비가 더 풍성해 지기를 바랍니다. 사순절기에 십자가를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기록되어 있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대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실패나 두려움 가운데서도 우리를 일으켜 주십니다. 마귀는 우리의 연약함을 공격하지만 주님은 네가 이미 용서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깊어지기 위해서 실패하지 않는 연습은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연습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다듬어지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종이라 여기지 않으시고 친구라 부르시는데 그 안에 구원의 신비가 있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번 하나님의 자녀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하루 동안 10분만 투자해도 매년 66권의 말씀을 한번은 완독할 수 있게 되는데, 이 말씀이 우리를 새롭게 빚어 가십니다.

 

셋째, 마음의 확증이 있어야 시험도 끝이 납니다.

 

13 이처럼 마귀는 모든 시험을 끝마치고, 적절한 시기가 올 때까지 다음 기회를 노리면서 당분간 예수를 떠나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맛사'라는 지역에 장막을 쳤습니다. 도착한 지역에 물이 없어서 백성들이 마음에 혼란과 불평의 마음이 찾아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계시는가 안계시는가 하면서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잊은 것입니다. 출애굽기 177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에서 주님께 대들었다고 해서, 사람들은 그 곳의 이름을 므리바라고도 하고, 또 거기에서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 하면서 주님을 시험하였다고 해서, 그 곳의 이름을 '맛사'라고도 한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시험은 주께서 마음안에 계심을 확증할때 끝이 납니다. 어린아이는 울다가도 엄마가 오면 금새 울음을 그칩니다. 부모가 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마음에 평안이 찾아 오는 것이지요. 주님이 내 곁에 계심을 마음으로 확증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요즘은 부모들이 자녀의 주체성을 길러주고 인격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신앙도 스스로 선택하라도 하는데, 신앙교육은 자녀들이 어려서 부터 바른 믿음을 형성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맺도록 학습시켜야 합니다. 마음 안에 주님이 계심을 영접하게 되면 인생의 힘과 지혜를 얻게 됩니다. 실패의 순간에도 일어설 수 있는 내면의 힘을 지니는 것이고, 부모의 손길이 미치는 않는 장소에서도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기에 죄의 유혹을 이길수 있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자녀들의 신앙 교육을 위해 예배하는 습관과 기도생활에 본이 되시기 바랍니다. 매일 기도로 시작하고 잠자리에 들게 할때는 자녀의 이마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주안에서 누리는 신앙체험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죄로 인해 깨닫지 못하고 살다가 말씀을 통해 마음의 확증이 생겨나면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게 됩니다. 찬송가 545장을 지은 쿠싱목사는 아내를 잃고 8년이 지난 어느날 오직 주님만을 따르며 주의 영광만을 위해 살기고 결심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결단을 마음에 담아 가사를 써 내려갑니다.

 

"1 눈에 아무증거 아니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걸으며 이 귀에 아무소리 아니들려도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서리라 2  눈이 보기에는 어떠하든지 이미 얻은 증거대로  믿으며 이 맘에 의심없이 살아갈때에 우리소원 주안에서 이루리 3 주님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한 주 하나님 아버지는  미쁘다 그 귀한 모든 약속 믿는자에게 능치못할 무슨일이 있을까 "

 

믿음은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판단을 최종적인 결론삼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이 달라지니까 주님이 내 안에 계시는 믿음이 형성되고, 믿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믿음의 기도는 의심을 사라지게 하고, 시험을 이겨내는 방패가 됩니다. 3주에 걸쳐 전한 인간의 탐욕의 시험, 세상의 명예와 권세에 대한 유혹, 성전의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라는 믿음의 유혹들이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열매를 거두는 증거들이 되길 바랍니다. 하루 하루의 삶의 시작과 끝이 되시는 주의 사랑을 확증하게 된다면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빚어 가시는 주님께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