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5:18-20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했다는 것을 명심하여라.19 만일 너희가 세상에 속해 있다면, 세상이 너희를 자기 것으로 여겨, 너희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다.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가려 택하였으므로, 세상이 그토록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그의 주인보다 높지 못하다.라고 한 말을 기억하여라. 그러므로 나를 핍박한 사람이라면 너희도 역시 핍박할 것이고, 내 가르침을 따른 사람이라면 너희 가르침도 역시 따를 것이다. (쉬운말 성경)

 

18 “If the world hates you, remember that it hated me first. 19 The world would love you as one of its own if you belonged to it, but you are no longer part of the world. I chose you to come out of the world, so it hates you. 20 Do you remember what I told you? A slave is not greater than the master. Since they persecuted me, naturally they will persecute you. And if they had listened to me, they would listen to you.(New Living Translation)

우리교회는 전통적으로 매년 어버이 주일과 졸업예배를 함께 드리고 있습니다. 졸업은 새로운 삶의 문을 열고 새로운 환경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올해도 졸업하게 되는 학생들은 총 44명입니다. 그 동안의 노력으로 결실을 맺는 이들의 삶을 축하하고 축복합니다. 학업의 현장에서 꿈을 위해 걸어가며 그 모든 과정을 마치기까지 기도해 주신 부모님의 마음을 잊지 마시고 이곳에서 함께 한 믿음의 여정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어머니의 기도'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네 어머니의 기도는 자녀를 살게 하네 어머니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 받으리 어머니의 기도는 기적을 일으키네 눈물로 뿌린 기도의 씨앗 기쁨의 열매로 거두리 눈물로 뿌린 기도의 씨앗 하나님 기억하시리 자녀의 삶에 열매 맺으리 시들지 않는 꽃 피우리 환경을 넘어 역사하리라 하나님 열매 주시리" 어머니라는 이름은 불러만 보아도 생각만 해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수 있게 해 줍니다. 특별히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며 부모의 사랑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진실한 믿음의 자녀가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전하는 고별설교의 일부분입니다. 주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이 세상으로 나아갈때에 세상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첫째,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15: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했다는 것을 명심하여라. 

오늘 본문은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이란 조건문으로 시작합니다. 당시 세상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정반대였습니다. 세상은 빛으로 오신 예수를 미워하였습니다. 로마가 지배하던 세상은 로마 황제가 숭배의 대상이 된 세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영적생명을 지닌 성도들은 로마 권력에 박해를 받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 보다 나를 먼저 미워했음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박해는 예수께서 유대인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됨으로 명확해 졌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적대 감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본질적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로 거룩과 정직함을 추구한다면, 세상의 가치를 따라가는 사람들에게 미움과 불편함을 겪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소비주의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는 쇼핑에 중독되는 것이 아니라 검소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돈이 우상이 되어 숭배의 대상의 자리에 있습니다. 돈은 지배구조적 사회속에서 힘이 됩니다. 자신의 방법을 추구하며 힘을 강화하는 사회속에서 죄는 관계 안에서 파괴력을 지닙니다. 이 죄는 도덕적 윤리적인 차원의 죄가 아닙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것과 예수님과 연합되지 않는 것을 죄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반도덕적이고 반윤리적인 죄의 열매를 보며 죄라고 여기지만 성경은 근원적인 죄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듣고도 거부한 자의 죄는 핑계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의 죄를 드러내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말할수 없는 복이지만 믿지 않는 자들은 오히려 마음의 이기심으로 인해 예수를 미워했습니다.

21 세상 사람들은, 너희가 내 이름을 믿는다는 이유로, 너희를 그런 식으로 핍박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나를 이 땅에 보내신 분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22 만일 내가 이 땅에 와서 그들에게 사실을 일러 주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죄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내가 와서 일러 주었으므로, 그들은 자기들의 죄에 대해서 변명할 수 없게 되었다.

세상을 구성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모른다면 그 속에서 생명을 지닌 성도들을 대적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지나온 교회 역사를 보면 고난은 필연적이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뜻이 있음을 믿었기에 하나님의 뜻을 지키며 거룩한 공동체로 역할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은 제자들만이 아니라 후대에 거룩한 공동체에게도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바울의 일생을 보아도 복음전파하는 사역 가운데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알게 되면 이전의 삶의 가치와 지향하는 길이 완전히 변합니다. 이전에는 세속적 가치로 살아도 갈등이 없이 자연스러웠는데 예수님을 따르게 되니까 어둠의 영역을 벗어나게 되어 불편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믿음의 뿌리가 달라지면 믿음의 열매가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전에는 세상에 속해 있으니 죄의 열매를 맺으며 자기의 것을 사랑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19 만일 너희가 세상에 속해 있다면, 세상이 너희를 자기 것으로 여겨, 너희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다.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가려 택하였으므로, 세상이 그토록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20세기 중반에 큰 영향을 미친 두 형제가 있습니다. 라인홀드 리버와 리차드 리버입니다. 동생 리차드 리버가 쓴 책 가운데 '그리스도와 문화'라는 고전은 기독교의 종교의 차원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문화 사이의 관계를 대립, 소속, 상위, 변혁, 역설 등의 표현으로 다섯가지 유형을 제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성도들이 복음의 내용을 삶에 적용하기 위해 한번쯤 생각해 보게 하는 고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오늘날 인본주의 문화와 세상속에서 어떤 유형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점점 더 인간의 삶과 인간의 성을 상품화 하는 문화속에서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은 세상의 불의와 악에 동조하지 않고 세상의 문화에 지배 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문화에 대해서  여러가지 유형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 시대에 직면한 현실적 문제들 과 미국 문화 속해서 그리스도는 어떠한 관계 가운데 있습니까? 이러한 차원에서 오늘날 세상은 초대교회의 상황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이제 졸업을 하고 우리교회를 떠나는 이들이 기억해야 할 몇가지 단어들이 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현대사회를 불신의 시대라고 합니다. 이러한 시대에 그리스도께 속한 믿음은 신앙인들의 중요한 가치라 생각됩니다. 이 믿음을 나누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인간 안에는 나의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고 싶은 내가 바라보고 원하는 육신의 정욕을 따라 가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또한 나를 드러내고 자랑하고 싶은 욕구도 있습니다. 성경은 이것이 아버지께로 부터 온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요한 일서 2 16,17절을 보시겠습니다.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믿음은 내가 이루고 싶고 잘 되기를 구하는 간절한 소망이 아닙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삶으로 반응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입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들의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그 방식은 누군가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 함께 하는 가족들과의 방향. 여러가지로 정해지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가는 것은 죄에 대해서 죽고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인생의 기준임을 믿고 행하면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이 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모든 삶에 근심이 사리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삶속에 곤고한 마음이 찾아오지만 성도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쓰러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날 힘을 하나님 안에서 찾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자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는 방법은 초월적인 방법이나 능력이 아닙니다. 환란 가운데 인내를, 인내를 통한 연단을, 연단 가운데 거룩한 소망을 이뤄 가십니다. 인생의 길을 걸으며 어둠의 골짜기를 지나갈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언제나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고 더 나아가 인생을 살며 핍박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깊은 신앙의 차원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바울 당시에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인해 숱한 괴로움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가난과 궁핍함, 슬픔과 핍박이 성도들의 믿음을 압박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필요한 존재로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새로운 지역으로 떠나며 마음안에 설레임과 두려운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선한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를 원합니다. 인생은 하나님이 자유의지를 주셨기에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것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여러분은 무한한 가능성의 영역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비전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소망은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애쓰고 구한다고 여긴다면 불안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얻게 되는 상처나 실망, 이유없이 받게 되는 고난에도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두려워 하지 말라고 약속한 성령이 너희와 함께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살아가야 할 원리를 제시해 주셨습니다.

 

둘째, 주님보다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15: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그의 주인보다 높지 못하다.라고 한 말을 기억하여라.

복음은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이 되었고, 그 은혜는 낮은 곳에 임하게 됩니다. 오늘날 문제가 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낮은 곳에 임하는 은혜를 망각하고 지나친 욕심과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세상의 화려한 것을 찾고 무한한 욕망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면 이제 기도의 방향을 바꿔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해 주신 것을 삶의 태도 삼으시기 바랍니다.

반 고흐는 동시대 사람들로부터 충분한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한 비극적인 화가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린 그림에는 소외된 사람들과의 연결을 갈망하는 마음이 엿보입니다. '예배 드리는 회중'(Church Pew with Worshippers)이라는 그의 그림을 보면 턱을 괴고 자고 있는 여인, 피곤함에 지친 여인, 고개를 떨구는 회중들의 모습속에서 노동자, 소외된 이들의 고단한 삶이 느껴집니다이러한 그림이 당시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했지만, 현대사회 불안과 절망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울림을 주는 듯 합니다. 자신의 시대에 인정받지 못했던 고흐가 남긴 그림과 편지들이 후대에 와서 그의 삶을 다시 재조명하게 되는 것은 한 사람이 그의 소명을 따라 산 예술의 힘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삶의 낮은 길로 가기를 소망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한없는 영광의 자리에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시고 진리의 영을 보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그의 주인보다 높지 못하다.라고 한 말을 기억하여라. 그러므로 나를 핍박한 사람이라면 너희도 역시 핍박할 것이고, 내 가르침을 따른 사람이라면 너희 가르침도 역시 따를 것이다.

세상은 자신의 강함을 드러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약함을 숨기기도 하고 자신의 능력을 포장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십자가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약하고 어리석어 보이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능력이 됩니다. 겸손한 사람은 십자가 사랑 앞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고 그 말씀을 따르며 감사의 삶을 살아갑니다.

제자들은 예수의 선택을 믿고 세상과 다른 목적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제자들을 배척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국적이나 소속이 바뀌는 결정을 앞두고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권을 얻으면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가며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고난을 이겨 내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우리를 영광의 자리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의를 위해 핍박 받는 이들에게 천국을 소유할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삶의 흔적으로 여기며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의 자리로 그리스도를 앉히셨듯 우리를 성령을 통해 인도해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26 그러나 돕는 분 곧 내 아버지께로부터 나오는 진리의 영을 내가 너희에게 보내면, 그분이 와서 나를 위해 증언해 줄 것이다. 27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의 증인들이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로 부터 나온 성령을 내가 너희에게 보낼 것이라 말씀합니다. 그런데 1416절에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할 것이고, 아버지께서는 다른 돕는 분을 너희에게  보내셔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각 위격이 하는 일에 대해 서로 동의하에 하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삼위일체의 신비입니다. 성령께서는 증인의 삶을 도우십니다. 그리스도의 증인들은 오직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성령께서 도우심으로 제자들은 예수의 담대한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주기철 목사님(1897-1944)의 생애를 다룬 영화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1938년 조선 일제 강점기 신사 참배를 강요하던 시절에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가혹한 고문을 받지만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다가 옥고를 치르고 순교하십니다. 당시 주기철 목사님의 나이를 계산해 보니까 47세였습니다. 너무도 짧은 인생을 주를 위해 사시다가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던 것입니다. 그가 남긴 신앙의 유산인 일사각오라는 그분의 설교 제목이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은 우리의 힘과 우리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성령의 깨우침과 함께하심을 통해 주시는 증거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