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4/2024 | 추수감사주일
건강한 교회 시리즈 38 하나님 나라 감사의 길을 걷다 (Walking the Path of Gratitude in God's Kingdom)
유민용 목사
요한복음 18:33-37
33 총독 빌라도는 자신의 관저 안으로 돌아가, 예수를 자기 앞에 불러다 세워놓고 물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34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되물으셨다. “지금 그 말은 당신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두고 당신에게 한 말이오?” 35 빌라도가 말했다. “너는 내가 유대인인 줄 아느냐? 너의 동족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긴 것이다. 너는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질렀느냐?” 36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소. 만약 그랬다면, 내 종들이 싸워서 내가 유대인들에게 체포되지 않도록 능히 막았을 것이오. 하지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고, 다른 곳에 있소.” 37 빌라도가 또 물었다. “그러면, 네가 왕이란 말이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소. 당신의 말대로, 나는 왕이오. 사실, 나는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태어났고, 그 일을 하려고 이 세상에 왔소. 그러므로 누구든지 진리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내 말을 듣소.” (쉬운말 성경)
33 Then Pilate went back into his headquarters and called for Jesus to be brought to him. “Are you the king of the Jews?” he asked him. 34 Jesus replied, “Is this your own question, or did others tell you about me?” 35 “Am I a Jew?” Pilate retorted. “Your own people and their leading priests brought you to me for trial. Why? What have you done?” 36 Jesus answered, “My Kingdom is not an earthly kingdom. If it were, my followers would fight to keep me from being handed over to the Jewish leaders. But my Kingdom is not of this world.” 37 Pilate said, “So you are a king?” Jesus responded, “You say I am a king. Actually, I was born and came into the world to testify to the truth. All who love the truth recognize that what I say is true.”(New Living Translation)
오늘은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매주 우리는 교회력의 성서일과에 따른 본문으로 말씀을 나누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향해 가는 길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외적인 감사를 찾기 보다 믿음의 성도들에게 주시는 깊은 감사를 찾아 가시기를 바랍니다.
어려운 현실속에서도 예수님은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걸으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단순한 고난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사랑의 길이었고, 구원의 은혜를 허락하신 감사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도 감사를 고백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습니다. 막막한 광야의 순간을 만날 때가 있고 낙심과 고난의 길이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곳은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는 장소가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빌라도가 예수님께 세가지 질문을 합니다.
1.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2. “너는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질렀느냐?" 3. "그러면, 네가 왕이란 말이냐? 입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의 답변은1.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소", 2. "그렇소, 당신의 말대로 나는 왕이오" 3. "나는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태어났고, 그 일을 하려고, 이 세상에 왔소, 그러므로 누구든지 진리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내 말을 듣소"
이 질문과 답변에 대해서 빌라도는 예수님의 답변을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본문과 이어지는 38절에서 빌라도는 "그러면 도대체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질문을 하는데 빌라도는 주님께서 자신 앞에 계셨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온전하게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첫번째 답변을 보면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NLT 성경은 이를 “My Kingdom is not an earthly kingdom.”이라고 번역했는데, “나는 이 세상의 왕이 아니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나는 이 세상의 왕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말대로 왕이다.”라고 답변하신 것입니다. 빌라도는 이 예수님의 답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내 나라가 칼과 창으로 싸워서 이기는 세속적인 왕권과 권세를 추구하지 않는 다른 나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겪는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가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감사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세상과 다른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권세는 통제가 아니라 마음의 변화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고발한 죄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지만 누가복음 23장 2절에 다음과 같은 고발 내용이 나옵니다. "2 그리고 그들은 예수를 고발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우리 백성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로마 정부에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선동하고, 또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주장합니다.”
예수를 고발한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이 사람은 우리 백성을 어지럽힌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로마 정부에 세금을 바치지 않는다"라는 로마법을 위반한 죄명입니다. 셋째는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한다"는 죄명입니다. 이는 당시 로마 황제를 섬기는 유대 사회에서 정치적 반역으로 간주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예수가 로마 제국을 칼과 방패로 위협할 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결국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고발한 죄목으로 정치적 반란죄를 찾지 못했습니다. 이후 죄가 없다고 선언하지만 산헤드린과 군중들의 압박을 고려하여 유대 사람들의 요청을 무시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후 빌라도는 예수가 로마법을 위반했다는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했지만, 심문 후 유대 군중들에게 타협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유월절에 죄수 한 명을 사면하는 관례를 이용해 예수를 석방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군중들은 예수를 석방하는 대신 바라바를 풀어줄 것을 요구했고, 결국 로마 체제에 저항했던 바라바가 석방되었으며, 예수는 십자가형에 처해지고 세상의 역사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영원한 생명과 진리임을 온전히 드러내셨습니다.
첫째, 누가 당신의 왕입니까?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인간의 마음 속에 누가 왕이 되는지, 그리고 주님의 참된 권세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빌라도 총독은 권세와 총독의 자리, 그리고 유대인들의 민심에 얽매여 있었습니다. 결국 빌라도는 잘못된 판결을 내린 사람이 되었고, 2천 년 기독교 역사 속에서 우리는 매주일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라는 신앙의 고백을 통해 빌라도의 선택과 그 결과를 깊이 되새기게 됩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의미심장한 답변을 하십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소. 만약 그랬다면, 내 종들이 싸워서 내가 유대인들에게 체포되지 않도록 능히 막았을 것이오." 예수님의 이 대답은 빌라도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종교 권력자들에게는 그토록 위협적인 존재였을까요? 예수님은 자신을 종이라 부르며, 가난한 사람들을 학대하는 자들을 비판하고, 명예를 탐하는 이들에게는 섬김과 겸손을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가르침은 권력을 유지하려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큰 도전이 되었고, 결국 그들의 적대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입니다.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갈망하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통치가 드러납니다. 그 나라는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평안과 절대 감사로 채워 주십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고백하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주님을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추수감사 주일을 맞이하여, 청교도들이 종교적 탄압과 억압을 피해 신대륙으로 이주한 여정을 돌아봅니다. 이는 복음이 증거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신실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길은 생명을 걸어야 하는 좁은 길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새로운 땅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청교도들을 통해 이땅에 복음을 전파하시고, 미국의 법과 정치에 기독교 정신의 기초를 세우셨습니다. 그들의 신앙과 정신은 여전히 오늘날 신앙의 세대들에게 계승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각계 분야에서 기독교 신앙을 따르며 살아갑니다.
더불어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시며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돌봄은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불평은 어려운 상황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잊는데서 시작됩니다.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가 발표한 My way라는 노래를 잘 아실 겁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부르기도 했는데요. 이 노래는 1969년, 프랭크가 54세였을 때 사업 실패와 이혼으로 개인적인 어려움을 겪던 그의 인생에 전성기를 가져다주었다고 합니다. 이 곡은 "내가 나의 길을 가겠다"는 인생관이 담겨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노래입니다.
가사의 일부분을 보면 "자, 이제 끝이 가까워졌어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고 있지/ 친구여, 분명히 말할게 내가 확신하는 나의 이야기를 말이야.... / 모든 시련에 맞서서 당당하게 섰어 / 내 방식대로 사랑을 했고, 웃고 울기도 했지 실패도 실컷 해봤어" (And now end is near So I face final curtain / My friend, I’ll say it clear I’ll state my case of which I’m certain.../ I faced it all And I stood tall And did it my way)
그런데 그의 딸이 한 인터뷰에서 정작 자신의 아빠는 이 곡이 너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노래라고 생각해서 싫어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내 뜻대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안에서 살아갈때에 우리는 참된 삶의 길을 찾을수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각자의 길을 살아가며 겪는 모든 일들이 삶의 끝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죽음 이후에도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진리를 발견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어떤 형편에도 만족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의 길은 우리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현대 사회는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에 너무도 바쁜 세상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만이 진리를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진리가 누구입니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주님을 왕으로 믿고 따르는 삶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주님은 성도의 정체성에 대해서 끊임없이 묻고 계십니다. "나에게 주님은 누구인가? 내 삶의 주인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평생 우리 마음 속에 남아 있어야 할 중요한 물음입니다.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일은 주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넘어지고 실수할 때마다 다시 일으켜 주시고, 그 과정속에서 더 깊은 깨달음과 성장을 경험하게 하시며 참된 기쁨을 누리게 하십니다.
둘째, 하나님 나라는 그분을 믿는 사람들 삶 속에 존재합니다.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위기에 처하자 예수님을 부인하며 자신을 보호하려 했지만, 결국 연약한 자신을 깨닫고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주님은 다시 찾아가셔서 그를 회복의 길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가까이 계시고,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누가복음 17장 21절에 보면 “또한 ‘보라. 여기에 있다’, ‘보라. 저기에 있다’ 하고 말할 수도 없다.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 하나님 나라는 믿는 자들의 마음과 삶속에서 이뤄지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천성의 나라가 지금 여기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칼로 세우는 나라와 하나님 나라가 다르듯이 세상의 감사와 진리 안에서의 감사는 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하나님의 돌보심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백성들은 감사보다 불평과 원망을 선택 했습니다. 우리도 세상의 조건으로 감사의 이유를 찾을때가 있습니다.
어느날 장미꽃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에게 원망했다고 합니다. “신이시여, 왜 가시를 주셔서 저를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너에게 가시를 준 적이 없다. 오히려 가시나무였던 너에게 장미를 주었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시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온전하게 하시려는 사랑의 계획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항상 기뻐하려면, 세상의 사람들과 같은 기쁨을 추구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기쁨이 세상과 다른 이유는, 세상의 나라는 때로 잘 되기도 하고 쇠퇴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압제로 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며, 절망 가운데에서도 감사와 소망으로 인도하는 나라입니다. 영적 고단함 속에서도 우리가 바라보는 하나님 나라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의 마음과 생각까지도 다스리십니다.
만약 우리의 생각이 주님과 막히게 되면 우리 안에 기쁨과 감사는 사라질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너무도 중요합니다. 바울은 "여러분은 이미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아들였으니 흔들림 없이 계속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도록 하십시오." (골 2:6) 라고 권면합니다.
주님은 인생의 광야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필요한 은혜와 힘을 주십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에 대한 반응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 그들은 만나를 먹기 시작하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돌보심과 신실하심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추수감사헌금을 통해 지역교회의 목회자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전달하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 나라를 전하시며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복이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입니다. 모든 것을 소유하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감사의 폭을 넓혀서 더 많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의 가치는 크기나 분량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감사의 뿌리를 주께 두며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의 절반이 감사의 언어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감사는 단순히 외적인 조건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적인 믿음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대강절을 준비하며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돌보시며 언제나 다함없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한주도 우리를 굳게 세워 주시는 주안에서 감사의 길을 걸어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