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2024 | 대림절 둘째 주일
동역의 기쁨, 사랑의 힘 (Joy of Partnership, Power of Love)
유민용 목사
빌 1:3-11
3 ○ 나는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4 또 여러분 모두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항상 큰 기쁨으로 간구합니다. 5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처음 듣던 그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분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나의 좋은 동반자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6 여러분 가운데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일을 온전히 이루어 주실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7 내가 여러분 모두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갖는 것은, 내가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여러분을 품고 있기에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내가 갇혀 있을 때나, 복음을 변호하고 증언할 때나, 여러분은 나와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8 내가 그리스도 예수의 심정으로 얼마나 여러분을 그리워하고 사모하는지는, 하나님께서 내 증인이십니다. 9 지금 내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모든 지식과 깊은 통찰력 속에서 더욱더 풍성해져서, 10 여러분 모두가 무엇이 최선의 것인지를 스스로 잘 분별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까지 한 점 흠 없이 순결하게 지냄으로써, 11 여러분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각양 의의 열매로 가득 채워져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쉬운말 성경)
3 Every time I think of you, I give thanks to my God. 4 Whenever I pray, I make my requests for all of you with joy, 5 for you have been my partners in spreading the Good News about Christ from the time you first heard it until now. 6 And I am certain that God, who began the good work within you, will continue his work until it is finally finished on the day when Christ Jesus returns. 7 So it is right that I should feel as I do about all of you, for you have a special place in my heart. You share with me the special favor of God, both in my imprisonment and in defending and confirming the truth of the Good News. 8 God knows how much I love you and long for you with the tender compassion of Christ Jesus. 9 I pray that your love will overflow more and more, and that you will keep on growing in knowledge and understanding. 10 For I want you to understand what really matters, so that you may live pure and blameless lives until the day of Christ’s return. 11 May you always be filled with the fruit of your salvation—the righteous character produced in your life by Jesus Christ[b]—for this will bring much glory and praise to God.(New Living Translation)
오늘은 대림절 둘째주일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 마음 가운데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어릴 적, 거실에 걸려 있던 액자 속 말씀을 종종 읽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빌립보서의 구절이었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 그중에서도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라는 문구가 제 마음 깊이 와닿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가족과 형제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기쁨과 감사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함께 지내며 울고 웃고, 때로는 부족한 모습도 공유하며 사랑을 나누었던 소중한 관계들이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빌립보 교우들은 서로가 참 특별한 관계 속에 있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1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아시아를 떠나 유럽에 세운 최초의 교회입니다.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골로새 교회를 세우때에도 사랑이 담긴 물질을 후원하며 그의 사역을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심지어 로마 감옥에 있을 때에는 후원금을 전달하기 위해 에바브로디도를 로마 감옥까지 파송하는 헌신을 보였습니다. 이런 교우들을 향해서 바울은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고 편지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기쁨이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었던 것입니다.
첫째, 동역의 기쁨입니다.
바울의 선교 사역에 빌립보 교우들은 동역자(同役者, fellow worker) '였습니다. 동역자의 뜻은 기독교 선교의 일을 함께 수행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동역(同役)을 잘하려면, 서로가 연대하며 하나님의 일을 함께 수행한다는 인식을 해야 합니다. 동역자는 우월하거나 열등한 관계가 아니라, 모두가 종과 같은 위치에서 교회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종의 형체를 입고 자신을 낮추심으로 교회를 세우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누군가의 곁에 있을 때 성령께서 그 자리에 함께 하십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울은 환상 중에 한 사람이 나타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요청을 받게 됩니다(행 16:9). 이에 바울은 마게도냐로 가게 되었습니다. 선교 여행 중 바울은 안식일마다 유대교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거나 기도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 지역에는 유대인의 회당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처를 찾아 강가로 나갔고, 그곳에서 루디아라는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성령님은 주의 일에 꼭 필요한 동역자를 만나게 하셔서 그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루디아는 옷감 장수로, 오늘날로 보면 성공한 사업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두아디라는 옷감 기술로 이미 유명한 지역이었기에, 루디아가 빌립보에 온 이유는 자신의 사업을 확장하기 위함이었다고 학자들은 추측합니다. 또한 그녀는 이미 유대교 회당에서 유대교의 가르침을 받았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루디아가 바울의 설교를 듣는데 성령께서는 그녀의 마음을 열어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셨습니다. 이후 그녀의 온 가족은 함께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었고, 루디아의 집에서 드린 예배는 빌립보 교회의 시작이자 동역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당시 초대 교회의 모범인 환대를 즉시 실천하며, 말씀을 전하는 자들과 자신을 물질을 나누는 데 민첩하게 움직였습니다. 그 결과, 유럽에서의 복음 사역이 점차 확장되어 가는 데 있어 루디아는 바울의 든든한 동역자로 큰 역할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빌립보서는 감옥에서 쓴 편지임에도 불구하고 1장부터 4장까지 곳곳에 바울의 기쁨이 담겨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우들을 떠올리며 편지를 쓸 때마다 마음에 기쁨이 넘쳤던 것입니다. 바울의 기쁨은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이면서도, 주님의 일을 수행하는 목적이 분명한데서 얻게 된 기쁨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는 마음을 온전히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간절히 그리웠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빌립보 교우들은 바울에게 그런 위로와 사랑을 전해주는 소중한 존재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주님께서 바울을 자신의 동역자로 부르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한때 기독교를 핍박하고 스데반 집사를 죽였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바울을 찾아 가셔서 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지 않았을까요? "사울아, 내가 너를 위해 죽었다. 이제는 내 눈물과 피를 너가 알아 주어야 하지 않겠니?" 그의 이름을 부르신 하나님은 창세로부터 이방인을 향한 선교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에 바울을 초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주님의 부르심을 외면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초대는 지금도 여전히 주어지고 있으며,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유산을 상속받을 자들임을 성경이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25장의 말씀을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복 받을 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알아보는 눈이 없었습니다.
34 그리고 나는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아, 천지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해 준비해 둔 나라에 들어가라. 35 너희는 내가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너희 집으로 따뜻하게 맞아들였다. 36 내가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갇혔을 때 나를 찾아와 주었다.’ 37 그러면, 내 아버지께 복 받은 의로운 자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이 배고프신 것을 보고 음식을 드렸으며, 주님이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저희가 언제 주님이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주님을 도와 드렸으며, 주님이 헐벗으신 것을 보고 주님께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39 또 저희가 언제 주님이 병드셨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주님을 찾아 뵈었습니까?’ 40 그러면, 왕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내 형제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곧 내게 해준 것이다.’
주님은 자신과 고난 받는 형제들을 동일시하며, 주의 제자들을 환대하는 자는 곧 예수님 자신을 영접하는 것과 다름 없다고 하셨습니다. 반대로, 주님께서는 사울에게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책망하시며 핍박 받는 자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주 안에서 사랑을 경험한 일이 있다면, 곧 주님의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누군가를 도왔다면, 그 섬김은 우리가 주님께 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빌립보 교우들은 바울이 고난 속에서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며 주님을 발견했을 것이고, 바울 역시 고난 가운데 신앙을 지키는 빌립보 성도들을 보며 주님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믿음의 눈이 열렸기에 주 안에서의 진정한 동역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둘째, 사랑의 힘입니다.
누군가로부터 넘치는 사랑을 받으면 그 사랑은 우리의 삶에 깊은 영향을 줍니다. 성경은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쫒는다고 말씀합니다. 온전한 사랑은 우리가 느끼게 되는 두려움을 평안한 마음으로 바꾸는 힘입니다.
1:8 "내가 그리스도 예수의 심정으로 얼마나 여러분을 그리워하고 사모하는지는, 하나님께서 내 증인이십니다." 1:9 "지금 내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모든 지식과 깊은 통찰력 속에서 더욱더 풍성해져서"
사랑은 깊은 통찰력을 가질 때 더욱더 풍성해집니다. 사람의 행동 속에 숨겨진 진심을 헤아리고 분별할 수 있다면, 우리 마음은 더 깊고 넓어질 것입니다. 8절의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빌립보 교회를 사랑한 바울의 시선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교회와 지체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일터와 학업의 현장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바울의 이 사랑은 아픔과 고난을 나누며 그 과정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진정한 사랑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3:7에서 기록된 사랑의 특성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변함없이 항상 믿어 주며, 언제 어디서나 소망을 품고, 모든 것을 견딥니다. 이 사랑은 단순한 감정적 사랑과 반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 실천하게 되는 사랑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우들에게 이 사랑이 더욱 더 풍성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이 통찰력은 단지 학문적 깊이로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나의 심장이 주님의 심장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통찰력은 우리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잘 분별할 수 있게 해줍니다. 우리는 상대방을 이해하기 시작할때에 사랑이 깊어집니다. 반면에 이해하지 못할 때에는 오히려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게 됩니다. 사랑을 더욱 더 풍성하게 하라는 바울의 말씀은 대부분의 문제들이 사랑의 부족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을 암시합니다. 바울의 복음은 단순히 율법을 지키는 차원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인 사랑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율법적 신앙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율법을 복음의 본질로 삼지 않았습니다.
AW 토저 목사님의 'GOD'이라는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전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가 이것을 하지 말라 저것도 하지 말라고 금하는 종교라고 믿는다. 언젠가 어떤 사람이 스펄전을 찾아와 '나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담배도 피우지 않습니다. 욕을 하지도 않습니다. 극장에 가지도 않습니다.'라고 말했답니다. 그러자 스펄전 목사가 나는 형제님이 무엇가를 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기독교는 단순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금지하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적극적인 가치를 행하며 한걸음 더 나아가는 삶을 요구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지식으로 아는 것을 넘어 우리의 삶에서 더욱 그 사랑을 친밀하게 경험하고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과 사랑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 받았으며, 이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도록 부름받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기 전에는 '죄인'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면, 이제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갑니다.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을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 사도행전 11장에 나옵니다. "거기서 바나바는 사울을 만나, 그를 데리고 함께 안디옥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일 년 내내 그곳 안디옥 교회에 머물면서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이곳 안디옥에서, 사람들은 처음으로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행 11:26) 1년 동안 교회에 머물며 사람들을 가르친 바나바는 어떻게 설명되고 있습니까?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었고, 또한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으므로 많은 이들이 바나바를 통해 주님께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바나바는 새신자들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격려했으며, 거기에 멈추지 않고 믿음 안에 더 굳게 서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는 또한 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는데, 성령의 열매 가운데 '친절'이 더 눈에 띄게 들어왔습니다. 성령의 열매로 주시는 친절함은 사람을 세우고 살리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바나바는 친절함으로 사람들을 세워주고 믿음으로 기다려 주며 그들과 함께 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안디옥에 있던 사람들은 처음으로 그들을 '그리스도인' 이라 불렀습니다.
“가슴으로 듣는 하나님의 음성, 심장이 뛴다"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정수영 심장 전문의입니다. 그는 세계 누가선교회와 코스타, 미국 자마 등에서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분으로, 저는 코스타에서 그분을 처음 만나 그의 책을 받았습니다. 그의 고백의 글 가운데 보면,
“병원에서 의사라는 직분을 가지고 직장 동료들을 섬기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어디까지 참아야 하고, 어디까지 양보해야 하는지 헷갈릴 때, 직장 내에서만큼은 주님의 제자가 되는 일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한 번은 함께 일하는 4명의 외과 조수 중 유일하게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의 성격이 좋지 않아서 간호사나 직원들로부터 불평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느 날 당직을 서던 그가 자신에게 와서 친절하게 대하려고 애썼는데도 오히려 자신 때문에 힘들었다고 따지며, 지난 일을 하나 하나 들춰내며 조목조목 따졌다고 합니다. 급기야 ‘나는 네게 월급을 주는 사람이고, 내가 원하면 너를 여기서 쫓아낼 수 있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그렇게 말해도 주님의 제자일 수 있겠느냐?’는 음성이 들렸다고 합니다. 불과 몇 초 사이에 내뱉은 한 마디의 대가를 치르는데,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 사람의 마음을 다시 얻기까지 걸린 시간이었습니다.”
직장과 일터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친절을 실천할 때에 우리의 힘으로 안되는 도전에 직면할 때가 많을 겁니다. 관계속에서 상처를 받기도 하고 마음의 불편함이 생기면 제자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수영이라는 그리스도인은 그가 일하는 현장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주님의 음성은 끊임없이 그를 제자의 삶으로 인도했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의 행동을 결정짓는 기준이 되었고, 상대방이 친절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지가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사명감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사랑의 수고를 다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함께 일하는 사람이 비로소 그를 '그리스도인'이라 여긴 것입니다. 그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보는데 걸린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일을 온전히 이루어 주실 것을 확신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까지 한 점 흠 없이 순결하게 지냄으로써, 여러분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각양 의의 열매로 가득 채워져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자신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제 우리는 한해의 끝에 다다랐습니다. 지난 시간에 마음이 머물지 않고,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삶 속에서 분명히 드러나도록 살아가야 합니다. 서로에게 맡겨 주신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인도하시고, 그 사랑의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며 낙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슴에 품고, 주님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순결하게 지내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의의 열매로 가득 채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성탄을 기다리는 이 절기에,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