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2/2024 | 성탄 주일
건강한 교회 시리즈 42 어둠을 밝히는 빛 (The Light that Shines in the Darkness)
유민용 목사
이사야 9:2-7
9:2 그리하여 절망과 어둠 속에서 헤매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죽음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운 지역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 위로 그 영광의 빛이 비쳤도다.
9:3 “주님, 진실로 주님께서는 이 나라를 번성하게 하셨고, 이 백성에게 기쁨을 주셨습니다. 농부들이 추수할 때 기뻐하듯이, 군인들이 전쟁에서 이긴 후 전리품들을 나누어가질 때 즐거워하듯이, 지금 이 백성이 주님 앞에서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9:4 옛적 기드온 때에 주님께서 미디안 군대를 여지없이 쳐부수신 것처럼, 이제 또다시 주님께서 이 백성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멍에를 부숴 버리시고, 이 백성의 등짝을 후려치던 압제자의 채찍과 몽둥이를 부러뜨리셨기 때문입니다.
9:5 이 땅을 쿵쿵 짓밟았던 침략자들의 군화와 이 땅 백성들을 마구 죽였던 그들의 피 묻은 군복이 모두 땔감이 되어, 모조리 불살라졌기 때문입니다.”
9:6 ○ 보라,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하여 태어났도다.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한 아들을 주셨도다. 그 아기가 장차 우리의 통치자가 되어 우리를 다스리실 것이니, 그분의 이름은 ‘기묘하신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아버지’ 그리고 ‘평화의 왕’으로 불릴 것이다.
9:7 그분께서 다스리실 때, 그분의 왕권은 날로 더욱 더 커지고, 그분의 나라는 언제까지나 평화로울 것이다. 그분께서는 자기 조상 다윗의 보좌에 앉아서, 이제부터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분의 나라를 견고하게 세우실 것이다. 정녕 전능하신 만군의 주님께서 열심을 내셔서 이 일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쉬운말 성경)
2The people who walk in darkness will see a great light. For those who live in a land of deep darkness, a light will shine. 3 You will enlarge the nation of Israel, and its people will rejoice. They will rejoice before you as people rejoice at the harvest and like warriors dividing the plunder. 4 For you will break the yoke of their slavery and lift the heavy burden from their shoulders. You will break the oppressor’s rod, just as you did when you destroyed the army of Midian. 5 The boots of the warrior and the uniforms bloodstained by war will all be burned. They will be fuel for the fire. 6 For a child is born to us, a son is given to us. The government will rest on his shoulders. And he will be called Wonderful Counselor, Mighty God, Everlasting Father, Prince of Peace. 7 His government and its peace will never end. He will rule with fairness and justice from the throne of his ancestor David for all eternity. The passionate commitment of the Lord of Heaven’s Armies will make this happen! (New Living Translation)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찬송시는 26세의 요제프 모르(Joseph Mohr)라는 오스트리아의 사제가 1816년, 세인트 니콜라스 교회에서 쓴 시입니다. 당시 교회 오르간이 고장 났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마음속에 떠오른 멜로디를 바탕으로 시를 써 내려갔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성탄절에 부르는 평화롭고 따뜻한 찬양으로 탄생하게 됩니다.
이 찬양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중 벨기에의 이프르 지역에서 평화의 메세지가 되어 주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루한 전쟁과 참호전의 일상에 병사들은 자연스레 지쳐갔고, 어느덧 1914년의 크리스마스가 찾아왔습니다. 참호에서 대치 중이던 영국군과 독일군 병사들은 어둠속에 묻혀 있던 각자의 참호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렀는데, 상대방 참호에서도 캐럴이 들려오자 누군가가 참호 위에 촛불과 전등으로 장식된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들을 올려놓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양측의 수많은 병사들이 너도나도 참호 위로 올라왔고, 서로 포옹하고 담소를 나누며, 크리스마스 선물을 교환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다가 양측 참호 사이 버려져 있던 양군 시신들을 수습했고, 뒤이어 축구장을 급조해서 팀을 나눠 축구까지 했습니다. 밤이 되자 이들은 같이 캐럴을 부르고 전쟁이 끝나기를 기도한 다음, 다시 각자의 참호로 돌아갔습니다. 이 기적을 이끌었던 노래가 바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이라고 합니다.
찬양이 전해주는 힘은 이렇듯 음악이라는 경계를 넘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메세지가 됩니다. 두려움과 혼돈의 시간속에서 성탄의 기적은 서로의 마음에 평화와 어두운 곳을 밝히 비추는 사랑의 힘을 전해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어둔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며 기쁨의 빛으로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의 한밤중에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뜻과 일치할 때 기쁨으로 노래하지만, 그 뜻이 어긋날 때에는 실망하게 되고, 하나님을 내 뜻과 내 믿음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많은 예술 작품들이 고통의 밤을 지나며 후대에 걸쳐 위대한 작품으로 남게 됩니다. 예를 들어, 우울증에 시달리던 반 고흐의 작품들, 귀가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창조된 베토벤의 명곡들은 모두 짙은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한 예술의 승화입니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 4악장은 ‘환희의 송가’로 불리며, 듣는 사람들에게 글자 그대로 환희와 감동을 줍니다. 그 가사 중 일부는 성탄의 기쁨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백만인이여, 엎드려 빌겠는가? 세계여, 창조주가 느껴지는가? 별이 빛나는 하늘 저편에서 아버지를 찾으라! 별의 저편에 주님께서 반드시 계실 것이다. 환희여, 아름다운 하나님의 광채여, 낙원의 딸들이여, 우리 모두 정열에 취해 빛이 가득한 성소로 들어가리라!" 예술의 진정한 가치는 현시대가 아닌 후대에 더 드러나게 되는 법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당시에도 마리아와 요셉은 호적 등록을 위해 베들레헴에 도착했으나, 출산이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빈방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그 밤은 어둠에 묻힌 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의 오심을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절망과 어둠 속에서 헤매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죽음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운 지역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 위로 그 영광의 빛이 비쳤도다. 농부들이 추수할 때 기뻐하듯이, 전쟁에서 승리한 군인들이 전리품을 나누듯이, 백성들이 주님 앞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다.” 이 예언은 구원의 빛이 백성들에게 비춰질 날이 올 것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6절은 더욱 자세히 말합니다. "보라,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하여 태어났도다.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한 아들을 주셨도다." 여러분, 여기서 ‘태어난 아기’와 ‘우리를 위해 주어진 한 아들’이라는 두 표현에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루터는 1531년 12월 24일, 종교개혁의 중심지인 비텐베르크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어'라는 제목으로 설교합니다. 한날 2번의 걸친 설교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탄생이 '우리를 위한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한 아이의 탄생이 단지 역사적인 사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태어났다는 확신을 갖고 루터는 설교를 전했습니다. 그의 설교문을 보면 “이 아기는 내게 주어진 10굴덴 금화처럼, 나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말하며, 이 아기가 바로 우리의 구세주임을 확신하는 믿음을 표현했습니다. 당시 10굴덴는 독일에서 사용되던 금화로, 그만큼 확고하고 깊은 믿음을 나타내는 상징이었습니다. 16세기 초 독일에서 노동자는 대개 한 달에 1에서 3 굴덴 정도를 벌었으므로, 10 굴덴은 한 사람의 수개월 또는 1년 치 급여에 해당할 수 있는 액수였습니다. 그림을 한번 보시지요. 하지만 주님은 밭에 감추인 보화의 수준이 아니라 그 보화를 온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를 위해 태어나셨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이들에게는 특별한 은혜의 선물로 주어집니다. 이사야는 이 메시아의 탄생을 예언하며 그에게 4가지 이름을 부여합니다.
그 아기가 장차 우리의 통치자가 되어 우리를 다스리실 것이니, 그분의 이름은 ‘기묘하신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아버지’ 그리고 ‘평화의 왕’으로 불릴 것이다.
‘기묘하신 모사(Wonderful Counselor)는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모든 생각을 초월하시는 신성의 표현입니다. 예수는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계획 안에서 주어진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운 삶의 순간에도 우리의 상담자가 되어 주시고, 우리가 확신한다고 여겼던 것들이 흔들릴 때에도 신뢰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십니다. 우리가 연약함을 절실히 느낄수록, 주님은 더 가까이 다가오셔서 우리와 동행하시며, 평안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이사야는 예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과 '영원하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아기는 본래 연약한 존재로 부모의 보호가 필요한데,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아버지'라는 칭호는 한 아기로 오신 것과는 다소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성탄의 신비 가운데 참사람이자 참하나님이신 그분의 완전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주님 안에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조화를 이루며, 하나님의 친밀함과 훈계가 우리를 성숙한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곁에 직접 찾아 오신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어둠 속에서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며 빛을 창조하셨고,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측할 수 없고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함께 동행하신다는 이 사실은 성탄에 담긴 가장 분명한 은혜입니다. 우리를 위해 오심이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셨고, 이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어깨 위에 세상의 죄와 고통을 모두 짊어지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어깨 위에 놓인 자들이 되었다는 것은, 그분이 우리를 대신해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죽음을 치르셨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일은 모두가 '우리를 위해'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분의 의의 옷에 비하면, 세상의 모든 화려한 것들은 아무리 아름다워도 결국 빛을 잃고, 잠시의 치장에 불과합니다.
기드온이 살던 사사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어두운 암흑기였고, 고통과 고난이 가득한 시기였습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은 기드온을 통해 미디안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미디안 군대에 비하면, 전쟁을 위해 선발된 300명의 이스라엘 군사들은 지극히 초라한 숫자였습니다. 13만 5천명의 미디안 군대를 상대하려면 한 명의 군사라도 더 있어야 할 텐데, 하나님은 불필요한 자들을 다 돌려보내고, 오직 믿음으로 남은 300명만을 선발하셨습니다. 이 숫자는 세상의 방법과 승리의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숫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따르는 자만이 남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직 그분만이 하실 수 있는 일들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순종의 길을 걸어가시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갈수록 우리는 주님을 더욱 필요로 하게 됩니다. 주님과의 교제가 깊어질수록 우리의 단단한 마음도 부드럽게 변화됩니다. 인생이 평생을 짊어지는 고통과 수고라면, 주 안에서 우리는 그 짐을 내려놓고 주님의 마음을 깨달을 때 진정한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며,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요구하고 판단하기보다는 내어주고 용납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따라서 참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은 바로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회복의 과정입니다.
오늘 성탄예배를 맞이하여, 5명의 아기들이 유아세례를 받게 됩니다. 유아세례는 부모와 교회가 함께 하나님 앞에서 이 아이를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할 것을 결단하며 책임을 지겠다는 기도의 시간입니다.
부모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이를 위한 준비를 하듯, 세례를 통해 이 아이가 하나님의 나라의 자녀로 자라도록 인도할 것을 다짐하게됩니다. 부모는 태어난 아이의 표정과 몸짓을 통해 아이의 상태를 살피고, 아이와 마주하는 순간 순간을 소중히 다루며 사랑을 전합니다. 아이가 아플 때에는 내 살이 아픈 듯 느끼고, 아이가 성장하여 마주할 세상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부모들을 신뢰하기 때문에 아이를 맡기신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겨 주신 선물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불려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빛을 따라 살아가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에 그 빛을 비추는 책임을 다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성탄절은 단지 우리만의 기쁨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해져야 할 기쁜 소식이자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셨고, 그 빛은 지금도 우리의 삶에 비추고 있습니다. 이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며 어둠에 묻힌 밤에 있는 사람들 곁으로 다가가십시요. 평화를 애쓰는 그곳에서 성탄의 주님을 더 깊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