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6:5-10

5 주여, 주의 인자하심은 하늘까지 닿았고, 주의 신실하심은 구름까지 닿았습니다. 6 주의 의로우심은 웅장한 산줄기 같고, 주의 공평하심은 깊은 바다와도 같습니다. 오 주여, 정녕 주께서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한결같이 잘 보살펴 주십니다. 7 오 주여, 한결같은 주의 사랑이 어찌 그리 소중한지요! 귀한 자나 천한 자나 모두가 주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하여 숨습니다. 8 그들은 주의 집에서 배불리 마음껏 먹고, 주께서 베푸시는 어진 은총의 시냇가에서 기쁨의 물을 한없이 마실 것입니다. 9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샘물이 주께 있으니, 우리가 주의 환한 빛 가운데서 광명을 봅니다. 10 오 주여, 주께서는 주를 섬기는 이들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어 주소서. 마음이 올바른 이들에게 주의 변함없는 의를 베풀어 주소서. (쉬운말 성경)

Your unfailing love, O Lord, is as vast as the heavens;
    your faithfulness reaches beyond the clouds.
Your righteousness is like the mighty mountains,
    your justice like the ocean depths.
You care for people and animals alike, O Lord.
    How precious is your unfailing love, O God!
All humanity finds shelter
    in the shadow of your wings.
You feed them from the abundance of your own house,
    letting them drink from your river of delights.
For you are the fountain of life,
    the light by which we see.

10 Pour out your unfailing love on those who love you;
    give justice to those with honest hearts. (New Living Translation)

이번 미서부 지역의 산불 피해는 우리 모두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많은 이들이 깊은 상실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산불이었다고 합니다. 마을 전체가 사라진 곳도 있고, 평소에 장을 보던 마트도,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도, 평생을 살아온 자택도,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사라지고 재만 남았습니다. 뉴스를 듣는데 66세 한 사람이 56년 동안 살던 집을 지키려고 하다가 생명을 잃게 된 것 같다고 추측합니다. 56년 동안 살았던 그 집은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때로는 평안한 잠을 잘 수 있는 안식처였고, 고된 일을 마친 후 돌아오면 쉼을 주는 장소였을 것입니다. 어릴 때는 그 집에서 성장하며 꿈을 키웠을 것이고, 가족들과 함께하며 안정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5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 집은 기쁨과 슬픔을 포함한 모든 감정이 켜켜이 쌓인 소중한 장소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산불로 그 집이 불타는 순간, 그가 느꼈을 감정은 죽음과도 같은 절망감이었겠지요. 현재 수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상실감에 휩싸여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을 바라보며, 피해 입은 이들을 돕기 위한 특별 헌금을 하려고 합니다. 모아진 헌금은 도움이 필요한 곳에 잘 쓰여질 수 있도록 전달하겠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동참해 주시기를 권면합니다.

 

오늘 시편 36편은 다윗의 찬양시입니다. 다윗은 절망과 고통의 현장에 처해 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시는 분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본문 8절을 보면, 다윗은 그들은 주의 집에서 배불리 마음껏 먹고, 주께서 베푸시는 어진 은총의 시냇가에서 기쁨의 물을 한없이 마실 것입니다.라고 찬송합니다.

 

여기서 주의 집은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결해 주시는 장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의 집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켰고, 성전이 건축되기 전에는 언약궤를 안치한 성막이었습니다. 성막 안에 있던 언약궤는 하나님의 은혜와 속죄를 상징합니다. 또한 이스라엘 신앙에서 언약궤는 전쟁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묻고 뜻을 깨닫게 되는 계시의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언약궤를 빼앗겼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언약궤를 전쟁을 이기기 위한  마법상자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처참하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죄는 하나님이 정하신 뜻에 따라 사용해야 할 것들인 돈이나 사람들, 우상들을 섬기고, 섬겨야 할 하나님을 우리의 수단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용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종종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죄를 정확히 드러내십니다. 어리석은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이기심만을 발견하게 됩니다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죄가 감추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언약궤 안에 담긴 세가지 성물이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 돌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면서도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드러냅니다. 십계명이 기록된 돌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언약의 백성으로 삼으시며 주신 율법을 나타내지만 또한 그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긴 죄를 지적합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면서도, 당시 고라 자손의 반역 사건 후에 하나님께서 아론을 선택하신 표적이기도 합니다.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고기가 없음을 불평할 때 그들에게 베푸신 하늘의 양식을 기억하게 합니다. 이처럼 언약궤 안에 담긴 성물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동시에 나타내고 있습니다.

 

주의 집은 오늘날 교회이기도 합니다. 교회된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와 공의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인간의 죄를 드러내시며, 동시에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바로 그 구속의 계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로 이어집니다.

 

히브리서 4 16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4:16 그러므로 우리는 확신을 갖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하게 나아가, 하나님의 자비를 입고, 또 때를 따라 도우시는 그분의 은혜를 받도록 합시다.”

 

구약시대의 속죄소가 신약에서는은혜의 보좌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보좌는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비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여는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은총은 모든 믿는 자에게 열려 있으며, 우리는 그 은혜의 보좌 앞에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가 하나님의 자비를 입게 됩니다. 7절을 보시겠습니다.

 

 “7 오 주여, 한결같은 주의 사랑이 어찌 그리 소중한지요! 귀한 자나 천한 자나 모두가 주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하여 숨습니다.”

 

학자들은 7절의 주의 날개를 언약궤의 속죄소를 덮은 그룹의 날개에 비유한 표현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언약궤의 뚜껑에는 양 옆에 서로 마주보고 날개를 펼치고 있는 그룹이라고 불리는 두 천사가 마주보고 날개를 펴고 있습니다이는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보호하시는 은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우리는 보호받고 안전하게 숨을 수 있으며 그 은혜는 성도들의 삶을 온전히 감싸고 있습니다.

 

다윗의 바라본 주님의 은혜는 시편 36편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1절에서 4절에서는 악한 자들의 마음이 드러나고, 그들의 죄악이 하나님 앞에서 숨길 수 없음을 경고합니다. 그러나 5절에서 8절에 이르러, 다윗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어떻게 감싸고 보호하는지 고백합니다. 이 두 대조적인 부분을 교차하여 살펴보면, 다윗이 처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1 악한 자의 마음속에는 온통 죄의 속삭임뿐이어서, 그의 눈에는 하나님 두려워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구나. 5 주여, 주의 인자하심은 하늘까지 닿았고, 주의 신실하심은 구름까지 닿았습니다.

2 저들은 자만심에 가득 차서, 자기 죄를 찾아내어 버릴 생각일랑 전혀 하지 못하는구나.
3
저들은 입만 열었다 하면 모조리 사기와 속임수뿐이니, 지혜롭고 선하게 행동하기는 애당초 틀려버렸구나.

6 주의 의로우심은 웅장한 산줄기 같고, 주의 공평하심은 깊은 바다와도 같습니다. 오 주여, 정녕 주께서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한결같이 잘 보살펴 주십니다.

 

4 저들은 잠자리에 누워서까지도 악한 궁리를 꾸며내고, 스스로 죄의 길에 들어서며, 악한 짓 행하기를 마다하지 않는구나.

7 오 주여, 한결같은 주의 사랑이 어찌 그리 소중한지요! 귀한 자나 천한 자나 모두가 주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하여 숨습니다. 8 그들은 주의 집에서 배불리 마음껏 먹고, 주께서 베푸시는 어진 은총의 시냇가에서 기쁨의 물을 한없이 마실 것입니다.

 

찬송가 예수님은 누구신가는 고난 가운데 있는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소망을 주시는 예수님을 고백하는 찬송입니다. “1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는 자의 위로와 없는 자의 풍성이며 천한 자의 높음과 잡힌 자의 놓임되고 우리 기쁨 되시네 3 예수님은 누구신가 추한 자의 정함과 죽을 자의 생명이며 죄인들의 중보와 멸망자의 구원되고 우리 평화 되시네”  

 

이 찬송가의 유래를 살펴보니까, 프레드릭 밀러(Miller, Frederick S.:1886-1937) 선교사가 찬송가를 작사하고 한글로 번역했습니다. 한국이름은 민노아 선교사입니다. 그가 지은 5곡의 찬송시가 찬송가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1892년 조선에 도착합니다. 1898 11월 첫 아들을 낳았으나 8개월만에 세상을 떠났고, 1902 3월 태어난 둘째 아들도 하루만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1년 뒤에는 사랑하는 아내도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에게 사람들은 "예수가 누구이기에 가족마저 잃으며 힘들게 사는가"라는 질문을 하자 민노아 선교사는 응답 대신 찬송가를 지었는데, 그 찬양이 바로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96예수님은 누구신가입니다. 충청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인생의 아픔속에서도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노래했던 것입니다. 양화진에 안장된 그의 아내 안나 밀러의 묘지에는 ‘In Jesus’라고 쓰여져 있다고 합니다.

 

이토록 절망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평안으로 노래할 수 있었던 복음의 힘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의 삶과 생각을 변화시킵니다. 복음은 두려움과 절망이 힘을 잃고, 오히려 그 흔적을 지닌채 누군가를 위한 삶을 살아가게 했던 것입니다.

 

77세의 일기로 고인이 된 영성학자 달라스 윌라드(Dallas Albert Willard, 1935 - 2013)"잊혀진 제자도: The Great Omission"라는 그의 책에서 천국 열쇠가 있다는 것은 천국 접근을 통제하는 의미가 아니라 천국에 출입할 수 있는 것이며 즐거이 드나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달라스 윌라드는 천국 열쇠를 두고 교회는 오랜 논쟁을 벌여 왔으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면,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믿는다면 천국의 부를 실제로 가져다 쓸수 있기에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의 기쁨과 평안 가운데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신 이유는 그가 예수님을 그리스도, 즉 구원자로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이 고백을 통해, 믿음으로 천국의 소망을 가진 자가 되며, 하나님 나라의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교회는 이 믿음 위에서 희망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하신 선한 일을 주목하며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은 인생을 살면서 예상치 못한 길에서도 꽃을 피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인자와 성실, 즉 자비로우심과 공의는 동전의 양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거짓됨이 전혀 없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입니다. 인간의 의는 제한적이지만 하나님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통해 다른 이들을 살리고, 절망 속에 있는 이들에게 희망의 빛을 비추기를 원하십니다.

 

주의 집에서 배불리 마음껏 먹고, 주께서 베푸시는 어진 은총의 시냇가에서 기쁨의 물을 한없이 마시는 것은 허황된 꿈이 아닙니다. 9 10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9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샘물이 주께 있으니, 우리가 주의 환한 빛 가운데서 광명을 봅니다. 10 오 주여, 주께서는 주를 섬기는 이들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어 주소서. 마음이 올바른 이들에게 주의 변함없는 의를 베풀어 주소서.”

 

하나님은 자신의 일에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죽은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옥중에서도 빌립보 교우들의 사랑과 헌금으로 한 개인을 넘어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받는 사랑과 복을 다시 빌립보 교우들에게 흘려 보냅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4: 19)

 

하나님의 구원의 빛 가운데서만 성도는 참된 삶 , 생명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빛은 어둠을 몰아 냅니다. 주께 속죄함을 받는 빛의 자녀들은 어둠속에 있는 이들에게 빛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이 빛은 우리가 먼저 받은 하나님의 구체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직접 이 땅에 와서 행하신 일들을 보면, 하나님은 참사랑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셨습니다.

 

시편에서 다윗은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그는 실패가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을 바라 보며 우리를 희망찬 빛 가운데로 인도합니다. 주여, 주의 인자하심은 하늘까지 닿았고, 주의 신실하심은 구름까지 닿았습니다. 주의 의로우심은 웅장한 산줄기 같고, 주의 공평하심은 깊은 바다와도 같습니다. 오 주여, 정녕 주께서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한결같이 잘 보살펴 주십니다.”

 

인생은 아픔과 기쁨이 고스란히 쌓여가는 과정입니다. 나무의 나이테는 나무가 자라온 환경과 시간을 보여줍니다. 비가 많이 오고 햇빛이 잘 드는 때에는 나무가 빠르게 성장하여 나이테 간격이 넓어지고, 가뭄이나 햇빛 부족으로 성장이 느려지면 나이테 간격이 좁아집니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도 어려운 시간들을 마주할 용기가 없을 때도, 그 시간들이 쌓여 결국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되고, 뿌리가 깊은 나무가 됩니다. 빛의 자녀는 절망하는 이들에게 새 힘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주님의 뜻을 구하며 살아가는 생명의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의 삶을 나누며 그 은혜가 구체적인 삶의 실천으로 이어질때에 성도의 삶속에 귀하고 아름다운 일들이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