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2025 | 사순절 첫번째 주일
놀라운 은혜 (Amazing Grace )
유병용 감독(기독교대한 감리회 서울남연회)
요한복음 5:2-9절
2 예루살렘에 있는 ‘양의 문’ 곁에는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 불리는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 주위에는 다섯 채의 행각이 있었다. 3 이 행각 안에는 절름발이, 맹인, 중풍병자 등 수많은 병자들이 즐비하게 누워 있었다. (그들은 모두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4 그 이유는, 주의 천사가 그 연못에 가끔 내려와 물을 휘저어 놓는데, 그렇게 물이 움직일 때 가장 먼저 연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에 걸렸든지 다 나았기 때문이었다. 5 그곳의 병자들 가운데 38년 동안 병을 앓아 온 사람이 있었다. 6 예수께서는 그가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그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병을 앓아 온 것을 아시고는 그에게 물으셨다. “당신은 낫기를 원하시오?” 7 그 병자가 대답했다. “물이 움직일 때 저 연못에 들어가야 하는데, 제가 연못에 들어갈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제가 들어가려고 애쓰고 있으면, 늘 다른 사람이 앞질러 들어가 버립니다.” 8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시오! 일어나서, 당신의 자리를 챙겨들고, 걸어가시오!” 9 바로 그 순간, 그의 병이 말끔히 나았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자리를 챙겨들고 걸어갔다. 그런데 이 일이 일어난 때는 마침 안식일이었다. (쉬운말 성경)
2 Inside the city, near the Sheep Gate, was the pool of Bethesda,[a] with five covered porches. 3 Crowds of sick people—blind, lame, or paralyzed—lay on the porches.[b] 5 One of the men lying there had been sick for thirty-eight years. 6 When Jesus saw him and knew he had been ill for a long time, he asked him, “Would you like to get well?”7 “I can’t, sir,” the sick man said, “for I have no one to put me into the pool when the water bubbles up. Someone else always gets there ahead of me.”8 Jesus told him, “Stand up, pick up your mat, and walk!”9 Instantly, the man was healed! He rolled up his sleeping mat and began walking! But this miracle happened on the Sabbath, (New Living Translation)
놀라운 은혜를 시작하면서 의문을 표현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게 뭔가 하면, 왜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왜, 영어로 Why라고 하는 단어도 사용하지요. 무슨 까닭으로, 또 어째서 어떤 사실에 대해서 확인을 요구할 때, 왜, Why 그런 말을 씁니다. 이 의미를 표현하면서 주어진 글이 있다면, “인생의 짐”이라고 하는 글입니다. 짐이라고 하는 말은 맡겨진 책임과 의무입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자기가 가지고 가야 할 짐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이라고 하는 글입니다.
"내 등에 내가 가지고 갈 짐이 없었다면, 나는 세상을 바로 살지 못했을 겁니다. 그것은 내 등의 짐 때문에 늘 조심하면서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를 바르게 살도록 한 귀한 선물임을 알았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사랑을 몰랐을 겁니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로 남의 고통도 알게 되어졌고, 이를 통해 사랑과 용서라고 하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인생에 등의 짐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 열매가 완전히 익지 못한 사람처럼 미숙하게 살고 있었을 겁니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가 내 삶의 무게 중심이 되어 모든 일을 감당하게 했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에게 기쁨을 전해진 귀한 선물임을 알게 됐습니다. 내 인생에 등의 짐이 없었다면 나는 겸손과 소박함의 기쁨을 몰랐을 겁니다. 내 등의 짐 때문에 나는 늘 나를 낮추고 소박하고 겸손하게 살았습니다. 이제 보니 내 인생의 짐은 나에게 기쁨을 전해진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이 글은 자신의 인생에서 져야 되었던 짐에 소중함을 깨닫게 되어진 글입니다. 마치 물살이 거센 냇물을 건널 때면 등에 짐이 있어야만 그 무게 때문에 물살에 사람이 휩쓸려 내려가지 않습니다. 만약에 짐이 없다면 그 사람은 가벼워서 물살에 떠내려 갑니다. 화물차도 언덕을 오를 때면 화물칸에 짐이 잔뜩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만 바퀴가 헛돌지 않습니다. 그 짐 때문에 그 험난한 고개도 넘을 수가 있다라고 하는 겁니다. 내 인생의 짐은 그 짐 때문에 바르게 살게 했고, 안일에 빠지지 않게 했고, 불의라고 하는 물결에 휩쓸리지 아니하도록 나를 붙잡아 주었고, 내 인생의 짐은, 내 인생의 수많은 인생의 고개, 고개를 넘을 때마다 헛바퀴 돌지 아니하고,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는 짐이 되어졌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져야 할 짐은 무거운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내게 준 유익이 되어졌다고 하는 거지요.
오늘도 우리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내가 져야 할 짐이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짐도 있고, 직장이라는 짐도 있습니다. 교회의 짐도 있습니다. 내 몸이 아픈 짐도 있습니다. 슬픔의 짐들도 있고, 내가 평생 져야 될 자녀의 짐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짐은 내가 삶을 살아가게 감당하게 된 짐이 아니라, 오히려 힘이 되어서 오늘도 최선을 다하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되어진다는 겁니다. 성경에 나온 위대한 사도 바울도 자신에게 짐이 있었습니다. 육체의 질병 때문에 너무너무 힘들었습니다. 자신은 다른 사람을 기도해 주면 병이 났는데, 자기는 자기 자신의 질병에서 세 번씩 기도해도 하나님은 그 질병을 고쳐주지 않았습니다. 후에 바울이 깨달았습니다.
"이 짐은 오히려 나로 하여금 교만하지 않게 하려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다"란 말을 씁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12장 7절에 이르기를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합니다. 바울도 자신이 져야 되는 몸의 질병이 오히려 자신을 교만하지 않게 한 인생의 짐과 같았는데, 지나고 나니 은혜의 힘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에게도 인생의 짐이 있습니다. 짐으로 여기지 마시고 은혜의 힘으로 여기십시오. 하나님이 새로운 길을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도 인생에 큰 짐을 지고 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자비의 집 또는 긍휼의 집이라고 하는 이름을 가진 베데스다 연못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여러 개 문이 있습니다. 주로 제사 드리기 위해 양이 들어가는 양의 문 옆에 연못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행각 다섯이 있었습니다. 거기는 수많은 병자들이 행각 주변으로 사람이 다 몰려 있습니다. 이유는 천사들이 가끔 연못에 내려와서 물을 움직일 때가 있습니다. 그럼 물이 움직일 때 제일 먼저 연못에 뛰어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에 걸려도 낫는다고 하는 예전부터 내려오는 그 연못 속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연못 주변에, 행각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거예요. 요한복음 5장 4절은 기록하죠.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라."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많은 병자들이 지금 주변에 몰려온 겁니다. 여기에 38년 된 병자가 있습니다. 38년 동안 환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이 사람은 이름도, 하던 일도, 병명도 모르지만 스스로 움직이지 못해서 오랫동안 고생하며 지내온 사람임은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왔습니다. 물이 움직이면 가장 먼저 뛰어들어가는 사람이 낫는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자기는 넣어 줄 사람이 없는 겁니다. 친구도 없습니다, 가족도 없습니다. 어쩌면 있더라도 38년 동안 병자의 삶을 살아서 다 떠났을 겁니다. 정말 어찌할 수 없는 완전한 포기의 삶을 살아갈 수 없는 가련한 인생이지요. 이런 38년 된 병자가 이 연못에 왔지만, 이 사람은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도 이 연못을 떠나기에는 미련이 남아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누워 있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때에 예수님이 그 연못에 찾아오신 겁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유독 이 38년 된 병자 앞에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 병자를 보시고 주님이 묻습니다. "네가 낫고 싶으냐?"고 묻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5장 5절, 6절에 기록하죠. "거기 38에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내가 낫고자 하느냐?" 예수님께서 이 연못에 찾아온 겁니다. 그 수많은 사람 가운데 유독 38년 된 이 병자에게 예수님이 직접 찾아오신 겁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예수님의 질문에 이 사람이 대답을 합니다. "네, 저도 낫고 싶습니다. 그런데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연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서 나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나을 수 없다." 그렇게 말합니다.
요한복음 5장 7절에 기록하죠.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낫고는 쉽지만 자신의 안타까운 심정을 예수님에게 이야기한 겁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환자에게 강하게 말씀합니다. "그러냐,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5장 8절에 말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내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38년 동안 환자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다른 말하지 않습니다. "내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정말 믿겨지지 않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그다음 9절을 보면 간단합니다.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시간도 오래 되지 않죠. “곧 나아서” 성경의 기록은 굉장히 단어로 짧습니다. 이 사람은 38년 동안 엄청난 인생의 짐을 가져 살아왔습니다. 38년의 고통, 절망, 좌절, 그런데 한마디 "내 자리 들고 걸어가라." 이 한마디에 38년의 고통이 다 사라졌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이 누군지도 모릅니다.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게 말씀하시는 저 분의 말대로 해보고 싶은 거예요. 38년 동안 누웠고 여기 와도 누구 하나 연 줄 사람이 절망이지만 지금 내게 말씀하는 이분이 정확히 누군지 모르지만 해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그분 말대로 자리를 들고 일어섰는데 38년의 질병이 떠나간 줄로. 믿습니다. 그 베데스다 연못가에 수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놀라운 은혜는 38년 된 이 사람에게만 나타났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그 베데스다 연못가에 수많은 사람, 수많은 병자 있었지만, 유독 이 38년 된 이 병자에게 놀라운 은혜를 주었을 거라 하는 겁니다. 이 환자는 어떤 모습이었기에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던 기적 같은 일을 예수님은 주었을까? 우리는 2025년을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크리스천이라고 말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예배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기도합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모인 사람으로 그치지 마시고, 38년 된 병자에 찾아오셔서 기적을 주신 놀라운 은혜가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에게 이 안에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면 38년 병자에게 베푸신 주님의 은혜는 왜 그 사람에게만 베푸셨습니까? 첫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포기란 말이 뭐예요? 하던 일을 도중에 자꾸 그만두어 버리는 겁니다. 여러분, 사람은 포기하는 순간 희망이 사라집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 당시 많은 질병들을 소개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5장 3절에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 누워서 물에 움직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 다 치료 받으려고, 일반 병원에서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이제는 구전으로 내려온 베데스다 연못가에 와서 천사가 물이 움직일 때 가장 먼저 뛰어 들어가려고 왔습니다. 다양한 환자들이 있었지만, 많은 병자가 있었지만 특징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병명만 썼어요.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이 사람은 병명은 없는데 38년이라는 기록을 씁니다. 얼마나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그래서 그 수많은 환자들 가운데 예수님 오셔 가지고 벌써 그 사람 모습만 딱 봐도, 아, 이 사람이 얼마나 오래됐다는 걸 주님이 벌써 알아볼 정도입니다. 그래서 오늘 요한복음 5장 5절에 기록하죠. "거기 38해 된 병자가 있더라."고 말합니다.
6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 누운 곳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 벌써 예수님 첫눈에도 이 사람은 너무너무 병이 오래됐다는 사실을, 38년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잠깐 눈으로 보아도 38년 동안 질병을 앓아왔다는 얘기는 당시 의학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뭔들 안 해봤겠어요. 결국 이 사람은 죽음이란 단어가 그렇게 멀지 않았습니다. 절망이란 단어가 그렇게 멀지 않았습니다. 포기할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도 이 38년 된 병자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넣어 줄 사람도 없지만 여기까지 온 거예요.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베데스다 연못까지 온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사람 가운데 너무너무 질병으로 38년 된 사람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순간, 이 사람 속에 포기하지 않는 걸 보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사람의 마음을 체크한 겁니다. “네 병이 너무 오래된 건 내가 안다. 그러나 마음속에 아직도 내가 낫고 싶으냐?, 내 마음속에 아직도 희망 있느냐?, 내가 지금 포기하지 않고 있느냐?”, 왜 이 사람이 현실을 보면 포기할 수밖에 없어요. 왜, 누구 하나 자기를 도와서 연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주님은 그 사람의 마음을 보시고 뭐라 말합니까? 네가 희망을 가지고 있느냐?, 네가 포기하지 않고 있느냐?, 네가 낫고 싶으냐?. 요한복음 5장 6절에,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주님 벌써 오래된 줄 알았어요. 그런데도 말합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때 환자의 대답은 포기하는 대답이 아닙니다. "네, 주님, 정말 낫고 싶습니다. 그런데 나를 연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38년 된 인생의 짐을 지고 살아온 이 사람에게 가족도 친구도 다 떠났어요. 그래서 요한복음 5장 7절은 기록하죠,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님의 질문에 포기된 대답이 아니에요. 그 마음속에 지금도 낫고 싶은 희망을 말하고 있어요. 포기할 수밖에 없는, 절망할 수밖에 없는 마음 깊은 곳에 희망으로 대답하는 그 사람의 대답을 주님은 보셨단 사실입니다. 여러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붙잡아 줍니다.
마가복음 10장에 보면 한 사람이 나오는데, 이 사람은 바디메오라는 사람이에요. 이 사람은 날 때부터 소경입니다. 앞을 못 봅니다. 스스로 노동을 할 수 없어요. 이 사람이 결국 생존을 위해서 선택한 거 뭐냐, 구걸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 앉아 가지고 나를 좀 도와달라는 거예요. 앞은 보이지 않지만 시각 장애인이 발전되게 청각이 발달돼서 지나가는 사람의 소리를 듣고서, 이 사람은 특별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사람 귀에 사람들이 많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습니다. "왜 우리 마을에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올까? 왜 그럴까?" 그런데 움직이는 소리가 점점 자기 앞으로 다가옵니다. 어느 순간에 많은 사람들의 움직임이 자기 앞에 왔는데, 보니까 예수님이 자기 앞을 지나고 있는 거예요. 이때 당시 정통 유대인들은 구약의 메시아, 그리스도, 구원자를 이야기하지만, 예수님이 메시아, 구원자라는 사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바디메오는 자기 앞을 지나가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0장 47절에, "나사렛 예수시라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나는 당신이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구원자로 오심을 믿습니다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꾸짖습니다. "조용히 좀 해라, 네가 이 구걸하는 사람이 왜 이렇게 소리를 지르느냐?" 성경에 보면, 많은 사람이 꾸짖었습니다.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부르짖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0장 48절에 이어서 기록하지요.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꾸짖지만 더 큰 소리로, 더 큰 소리로 부르짖는다는 말은 "나는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습니다." 분명한 확신이 가지고 있는 거예요. 주님께서 수많은 사람 가운데 이 바디메오에게 다가왔습니다. "네가 나를 불렀느냐?" "예“ ”왜 불렀느냐?" "주님, 저는 보시다시피 시각 장애인입니다. 나는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습니다. 당신이 말씀만 하시면 나는 눈이 떠질 줄로 믿습니다."
이 사건이 2025년 전입니다. 현대 의학이 발달된 지금도 시각 장애, 이 선천적 시각 장애, 눈이 떠진다, 불가능합니다. 2천 년 전에 이 사람은 고백합니다. "나는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습니다. 보기를 원하나이다." 주께서 말합니다. "네 입술로 고백한 대로 되리라." 그래서 마가복음 10장 52절에 말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바로 그 시간이 사람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일생 동안 어둠을 가지고 살았어요. 포기할 수밖에 없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가진 이 사람에게 주님은 기적을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2025년을 살아가는 여러분, 우리 모두 다 인생의 짐이 있습니다. 그 짐이 힘들다 할지라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희망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이 그 짐을 힘이 되게 할 줄로 믿습니다. 사람은 너무 힘들다 보면, 짐이 무겁다 보면 자꾸 내려놓고 싶잖아요. 끝까지 붙드십시오.
2) 열정이 있었다.
두 번째는 열정이 있음을 봅니다. 이 38년 된 병자, 포기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지만,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있는 열정을 봅니다.
사람이 그 속에 희망 있으면 그 사람은 열정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합니다.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 그래서 요한복음 5장 8절에 말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베데스다 연못에 수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아니하고 마지막까지 희망을 붙들던 자에게 말합니다.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수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주님의 기적은 열정을 가진 이 사람에게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는 누가 도와주어야만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는데, 여기 예수님께서 말씀은 "네가 스스로 일어나라."라는 겁니다.
예수님 말이 이해가 안 돼요. "어떻게 내가 일어나요?" 그런데 그 속에 포기하지 아니하고 희망을 가지고 열정 있는 자는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아멘, 그래서 9절에 “곧 그 사람이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38년 된 병자가 깨끗하게 고쳐진 사건을 말합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어떤 논리력으로 분석도 하지 않았습니다. 계산하지도 않았습니다.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나를 향하여서 말씀하는 이분이 보통 분이 아니구나, 열정을 품고 그분의 말에 일어나 봤어요. 놀랍게도 38년의 질병이 떠나가고 자기가 누웠던 침상을 들고 걸어가는 기적을 보게 된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5장 9절은 말합니다.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오늘도 하나님은 열정을 가진 자와 일하실 줄 믿습니다.
열정은 “어떤 일에 대해서 열렬한 애정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일에 대해서 한결같은 마음을 갖는 거를 열정이라고 말합니다. 당시 베데스다 연못 주변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어요. 그 사람들은 전해 듣고 왔습니다.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한번 움직일 때 가장 먼저 뛰어가 들어가면서 낫는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거기 온 사람들, 어떤 사람이에요? 포기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음 기회에 들어가면 되겠지, 구경하는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그냥 남들 따라서 따라온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주님은 그런 자에게 주시지 않습니다. 그의 눈빛 속에 포기하지 아니하고 그 마음속에 열정 있는 자, 주님은 기적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2025년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다양한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의 기도를 드립니다. 왜 기도를 드려도, 왜 예배를 드려도 변화가 없을까요? 열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기록된 성경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똑같이 예배를 드려도 그 말씀을 들을 때 역사가 나타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희망을 품고 열정을 가진 자입니다. 열정을 가진 자는 말씀을 붙들 수가 있습니다.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이해가 안 돼요. 계산상으로 안 맞아요. 그래도 할 수 있었던 게 뭐예요?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우리의 계산으로 되는 게 아니에요. 우리의 머리로 되는 거 아니에요. 하나님의 역사, 다른 거 아닙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기대하십시오. 이 사람은 38년 동안 뭘 안 해봤겠어요? 별별 방법을 다 동원해 봤을 거예요. 그런데 내게 주신 말씀, 예수님의 말씀을 열정이 있고 나니까, 포기하지 않고 나니까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거예요. 하나님의 방법은요, 사람의 계산을 뛰어넘습니다. 사람의 방법을 뛰어넘습니다. 여러분이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하시면 됩니다." 38년의 질병이 바로 그때에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역사를 경험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겁니다.
2025년 하나님의 방법을 기대해 봅시다. 포기하지 마세요. 누구나. 인생의 짐은 다 갖고 있어요. 포기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함께하는 열정을 품으십시오. 놀라운 기적은 여러분에게 주실 줄로 믿습니다. 목마른 사람들이라는 글이 하나 있습니다. 이 글은 바다에서 풍랑이 와 가지고 표류하는 배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작은 어선이 바다에서 고기를 잡다가 풍랑을 만납니다. 그래서 그 풍랑에 휩쓸리다가 겨우 풍랑이 멈춰지지만, 엔진도 다 고장나고, 나침판도 다 고장나고, 통신 시설도 다 고장나고, 이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 표류할 수밖에 없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식량도 다 떨어졌어요. 배고픔도 왔어요. 더 중요한 건 배고픔보다 더 무서운 게 타는 목마름이 있어요. 그래서 너무 목마르니까 바닷물을 떠 가지고 마셔 보지만, 혓바닥은 갈라지면 더 탑니다. 이들은 배고픔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게 목마름이었어요. “내게 물을 주세요. 물을 주세요. 물 마시고 싶다. 물 마시고 싶다.” 그러나 물은 없습니다. 그 망망대해 뜨거운 해는 내려칩니다. 혀가 갈라집니다. 모두가 목말라 물을 마시고 싶습니다. 그런데 저쪽에서 배 한 척이 오는 겁니다. 사람들이 소리칩니다. 혀가 갈라지면서, "물 좀 주세요. 물 좀 주세요." 목마름으로 물을 달라고 소리를 칩니다. 그런데 저쪽에서 소리가 들려옵니다. "물동이를 아래로 내리세요." 그러는 거예요. 물을 달라고 하는데 저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물동이를 아래로 내리라”는 거에요. 이해가 안 돼요. 양쪽에서 말합니다. “물 주세요.”, “물동이를 아래로 내리세요." 어느덧 이 배가 표류되고 바다를 벗어나서 강까지 온 겁니다. 이제 물 바가지만 내리면 물을 마실 수 있어요. 그들은 그걸 모르고 "참, 목마르다. 물 달라."고 한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도 우리 목마름이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은 우리 곁에 어떻게 계십니까? 은혜의 물을 떠 마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멀리 있는 분이 아니에요. 우리 곁에 계십니다.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우리 생에 수많은 내가 져야 될 짐이 있다 할지라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절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열정을 품으십시오. 주님은 "네가 낫고자 싶으냐?" 우리의 믿음을 점검한 다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기적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2025년을 살아가시면서 가정의 짐, 자녀들의 짐, 경제적인 짐, 질병의 짐, 짐 없는 사람 없어요. 다 있어요. 그 짐을 무겁다고 하지 마시고 포기하지 않고 가지고 지면서 가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함을 믿으시면서 가십시오.
기적은 하나님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내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인생의 목마름, 내가 해결하려 하지 마시고 내게도 찾아오신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생수를 마시고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하시면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던 38년의 절망이 한 순간에 사라진 것처럼 2025년 하나님의 방법 앞에 놀라운 기적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의 고백은 하나입니다. 하나님,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다시금 주님 붙들고 열정으로 나가겠습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우리는 완전하지 못합니다. 주님이 도우셔서 승리하는 한 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