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8:1-6

1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2 여호와는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나의 하나님은 피할 바위이십니다. 주님은 나의 방패, 구원하시는 뿔, 나의 산성이십니다.
3 내가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가 나를 수많은 원수들로부터 구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4 죽음의 줄이 나를 묶고, 멸망의 물살이 나를 덮쳤습니다.
5 무덤의 줄이 나를 묶고, 죽음의 덫이 나를 덮었습니다.
6 고통 중에 내가 여호와를 불렀고, 나의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저가 성전에서 내 목소리를 들으셨으며, 울부짖는 내 외침이 그의 귀에 들렸습니다.

1 [For the choir director: A psalm of David, the servant of the LORD. He sang this song to the LORD on the day the LORD rescued him from all his enemies and from Saul. He sang.] I love you, LORD; you are my strength.
2 The LORD is my rock, my fortress, and my savior; my God is my rock, in whom I find protection. He is my shield, the power that saves me, and my place of safety.
3 I called on the LORD, who is worthy of praise, and he saved me from my enemies.
4 The ropes of death entangled me; floods of destruction swept over me.
5 The grave① wrapped its ropes around me; death laid a trap in my path. / ①Hebrew Sheol
6 But in my distress I cried out to the LORD; yes, I prayed to my God for help. He heard me from his sanctuary; my cry to him reached his ears.

구약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가장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이 있다면, 다윗 (David)이 아닌가 합니다. 하나님은 유일하게 그를 가리켜 “그 사람은 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다. 그를 통해 나의 뜻을 이룰 것이다 (a man after my own heart. He will do everything I want him to do., 사도행전 13:22)”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꼭 그렇게 한 사람을 지적해서 그 사람은 내 마음에 든다고 한 사람은 다윗이 유일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들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가들도 다윗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다윗은 언제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했습니다. 다윗은 헷 사람 우리아 (Uriah the Hittite)의 일 외에는 그의 평생에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적이 없었습니다.” (열왕기상 15:5)

재미 있는 것은, 이 다윗이 예수님과 많은 공통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고향이 베들레헴으로 같습니다. 그래서 흔히들 예수님은 다윗 가문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다윗은 사람에 대한 미움이 없습니다. 사람이 자기에게 잘 해 주는 사람에게 호감이 가고, 자기에게 잘 못해 주는 사람은 미워하기 마련인데, 다윗도 그렇고, 예수님도 그렇고 사람에 대한 미움이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33년을 사셨습니다. 다윗이 왕 위에 앉아 통일 이스라엘을 통치한 기간도 33년입니다 (왕상 2:11, 역대상 29:27). 예수님에게는 12명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다윗에게도 30명의 충성스러운 부하들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다윗의 생애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다윗을 그렇게 미워하고, 죽이려고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사울이라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습니다. 사울은 언제부터인지 자기의 부하 다윗을 경계하기 시작합니다. 다윗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사울은 다윗이 자기의 왕위를 빼앗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싸이기 시작하면서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한번은 자기를 위해서 수금 (harp)을 연주하는 다윗을 향하여 창을 던졌습니다. 그 창이 다윗을 스치면서 벽에 박힙니다 (사무엘상 19:10). 다윗은 간신히 목숨을 구합니다. 그런가 하면, 사울은 그의 군대를 풀어서 다윗을 잡으려고 산을 겹겹이 포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윗의 마음에는 사울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다윗은 사울에 대한 미움이 들 때마다 “저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어 세우신 이스라엘의 왕이다 (사무엘상 24:6)” 이런 생각을 하면서 미움을 이겨냈습니다. 그런 생명의 위기 속에서 다윗이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 기도를 꼼꼼하게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편입니다. 구약의 시편들은 거의 다윗이 쓴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 시편들은 다윗의 생애 중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시기에 쏟아져 나왔습니다.

여러분, 로마서 5:3-5에 이런 말씀이 있는 것을 아십니까? “우리는 환난을 당하더라도 즐거워합니다. 그것은 환난이 인내를 낳고, 또 인내는 연단된 인품을 낳고, 연단된 인품은 소망을 낳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은 절대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중요한 단어들을 뽑아 보세요. ‘problems and trials (환난)’이 ‘endurance (인내)’를 만들어냅니다. 그러면, ‘endurance’가 또 ‘strength of character (강인한 품성)’를 만들어냅니다. ‘strength of character’가 또 ‘hope of salvation (구원의 희망)’을 만들어냅니다. 이 희망을 가진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실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크리스천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듣고 있습니다. 크리스천의 삶에 있어서 환난은 결코 그 자체로 끝나지 않습니다. 환난을 통해서 인내를 배우고, 인내를 통해서 크리스천의 강인한 성품이 길러지고, 이런 성품을 가진 사람에게 구원의 희망이 주어집니다. 이런 시각으로 본다면, 환난은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구원의 희망을 주시기 위한 선물입니다. 환난이 없으면 구원의 희망도 없습니다.

오늘 저는 시편 18편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은 새 학기가 되어서 보스턴에 꿈을 안고 찾아 오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제가 1983년 12월에 캘리포니아 부엔나 팍 (Buena Park)에 제 아내와 함께 도착했습니다. 그 때 저는 정말 어리 버리 했습니다. 미국 생활에 조금 적응하면서 토플 시험을 준비해서 Claremont 신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미국은 신학교가 대학원 과정입니다. 거기서 한 2년을 공부하고, 1986년에 보스턴 신학교로 transfer를 해서 왔습니다. Los Ange-les에서 대륙 횡단을 하여 보스턴으로 들어오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0년이 흘렀습니다. 지도를 보면서 90번 Mass Pike를 타고 들어왔습니다. 보스턴에 거의 다 들어 왔는데, 왜 그렇게 마음이 무거운지, 오른 쪽으로 맥도날드 사인이 크게 보였습니다. 그곳에 들어가서 별로 마시고 싶지도 않은 커피를 마시면서 불안한 마음을 달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마도 보스턴에 새로 온 학생들에게 30년 전에 제가 가지고 있었던 그 불안한 마음이 아직 있을 것입니다. “과연 내가 이곳에서 survive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학교 공부는 제대로 따라 갈 수 있을까?” “adviser 교수님은 어떤 분일까? 좋은 분일까?” “무사히 학위 과정을 마칠 수 있을까?” “보스턴의 겨울을 춥고 눈이 많이 온다는데, 잘 지낼 수 있을까?” “보스턴은 생활비도 많이 든다는데?” “여기 교회는 또 어떤 교회일까?” “여기서도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까?” 이런 불안감들이 여러분에게 있을 줄 압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 오늘 읽은 시편 18편 말씀입니다.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A psalm of David, the servant of the LORD. He sang this song to the LORD on the day the LORD rescued him from all his enemies and from Saul (주님의 종 다윗이 쓴 시편. 그는 주께서 그를 그의 적들과 사울로부터 구해 주셨을 때 이 노래를 주님께 불렀다).”

이 시편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다윗이 놓여 있었던 상황을 한번 보시지요. “죽음의 줄이 나를 묶고, 멸망의 물살이 나를 덮쳤습니다. 무덤의 줄이 나를 묶고, 죽음의 덫이 나를 덮었습니다.” (4-5절) 이 구절 속에 나오는 단어들을 보세요. ‘죽음’ ‘멸망 (destruction)’ ‘무덤 (grave)’  ‘덫 (trap)’ 이런 극단적인 단어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있습니다. 죽음과 멸망과 무덤들이 마치 살아 있는 것 처럼 나를 밧줄 (rope)로 꽁꽁 묶어서 꼼짝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가는 길에는 ‘덫’이 놓여 있습니다. 한 발짝만 잘못 디디면 ‘덫’이 내 발목을 칠 것입니다.

이정재와 리암 니슨 (Liam John Neeson)이 출연한 인천 상륙 작전 영화를 보셨나요? 맥아더 장군은 성공 확률 1/5000이라는 인천 월미도로 상륙작전 (Operation Chromite)을 감행합니다. 그런데, 그곳을 이미 점령하고 있던 북한군은 연합군이 상륙할 것을 예상하고 그곳에 기뢰 (機雷, naval mine)를 설치해 놓았습니다. 멋 모르고 상륙 했다가는 연합군은 전멸하고 말 것입니다. 맥아더가 이 정보를 입수하고 특공대를 먼저 들여 보냅니다. 어디에다 기뢰를 설치해 놓았는지 지도를 찾아 오라고 특명을 내립니다. 그 지도를 손에 넣기 전에는 연합군은 상륙을 할 수가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뢰가 촘촘히 깔려 있는 어두운 바다를, 어떻게 뚫고 상륙을 합니까? 특공대가 들어가서 기뢰가 모두 제거 되었다는 신호를 보내오기 전에는, 맥아더 장군이라도 꼼꼼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기도의 능력을 믿습니까? 크리스천들은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당황합니다. 기도의 능력을 믿는다고 대답하면 “그러면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하고 질문을 받을 것이 뻔하고, 그렇다고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없어서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당황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니, 그 시간에 뭔가 도움을 구하고 방법을 찾아 봐야지 기도만 한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느냐고 말합니다. 심지어는 크리스천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야말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소통(疏通)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말씀 드릴 수가 있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수가 있습니다. 신약성경 빌립보서 4:6-7에 기도에 대한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 말씀을 New Living Translation으로 한번 읽어 보시겠습니까? “Don't worry about anything; instead, pray about everything. Tell God what you need, and thank him for all he has done. Then you will experience God's peace, which exceeds anything we can understand. His peace will guard your hearts and minds as you live in Christ Jesus.”

저는 이 말씀이 기도의 응답에 대한 최선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급하게 무슨 기도를 하면 “옛다 여기 있다” 하고 문제에 대한 대답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소통입니다. 그 소통의 창구를 통해서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모든 일들에 대하여 감사 드리고, 하나님께 필요한 것을 말씀 드리면, 이 세상 무엇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평화가 내 마음을 채웁니다. 그리고, 그 평화가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 줍니다. 지금까지 나를 그렇게 꼼짝 못하게 얽어 매고 있던 불안한 마음이 어느 새 물러가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평화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 평화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다 믿음에서 오는 평화입니다. 나는 지금 혼자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와 같이 계신다는 믿음에서 오는 평화입니다.

‘죽음’ ‘멸망 (destruction)’ ‘무덤 (grave)’ ‘덫 (trap)’에 걸려 꼼짝 할 수 없었던 다윗이, 그런 상황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6절 말씀을 읽어 보십시오. “고통 중에 내가 여호와를 불렀고, 나의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내 목소리를 들으셨고, 울부짖는 내 외침이 그의 귀에 들렸습니다.” “But in my distress I cried out to the LORD; yes, I prayed to my God for help. He heard me from his sanctuary; my cry to him reached his ears.”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구나!” 이란 절망감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부르짖는다’는 말은 ‘기도한다’는 말입니다. 기도는 어디서든지 할 수 있습니다. 손발이 다 묶여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삼엄한 감시 속에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세상 그 누구도 기도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의 앞 길에 환난이 많을 것입니다. 절망할 일들이 많을 것입니다. 보스턴에 와 보면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널려 있습니다. 나보다 더 실력 있고, 나보다 더 연주 잘 하는 사람들이 사방에 널려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질 수도 있고, 자기 자신에게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야말로 내가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해야 하는 때인 것을 잊지 마십시오.

기도하면 하나님의 평화가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 줍니다. 기도하면 불안한 마음이 물러가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평화가 들어 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고백이니까 바울 version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다윗의 version으로 한번 들어 보실까요? “여호와는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나의 하나님은 피할 바위이십니다. 주님은 나의 방패, 구원하시는 뿔, 나의 산성이십니다.” (2절) 하나님을 자기 인생의 ‘반석 (rock) ‘요새 (fortress)’ ‘구원자 (savior)’ ‘방패 (shield)' ‘뿔 (power)' ‘산성 (place of safety)’이라고 고백합니다. 기도하면, 이 하나님께서 나의 도움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인생의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보스턴에 공부하러 온 사람들은 학교에서 세계 최고의 학문을 배우고,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축복을 받으라고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이라야 하나님께서 쓰시는 도구 (instrument)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음생활을 하는 목적입니다. 학위를 받아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성공을 위한 도구가 될 뿐입니다. 학위 받아서 잘 먹고 잘 살자는 것 밖에 다른 목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반석, 요새, 구원자, 방패, 뿔, 산성이라고요?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의 평화가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신다고요? 이 사실을 아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 때 비로소 하나님은 나의 반석이 되시고, 요새가 되시고, 나의 구원자가 되시고, 나의 힘이 되시고, 나의 산성이 되십니다. 오늘 말씀이 보스턴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큰 힘과 용기를 주는 말씀이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