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3:1-6

1 내 아들아, 내 가르침을 잊지 말고, 내 명령들을 네 마음에 소중히 간직하여라.
2 그렇게 하면, 너는 오래 살고, 성공하게 될 것이다.
3 너는 성실과 사랑을 절대 버리지 말고, 그것을 네 목에 걸고, 네 마음판에 잘 새겨라.
4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칭찬을 받을 것이다.
5 네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절대로 네 슬기를 의지하지 마라.
6 너는 네 모든 길에서 그분을 인정하여라. 그러면 그분이 너의 길을 형통하게 만들어 주실 것이다.

1 My child①, never forget the things I have taught you. Store my commands in your heart. / ①Hebrew My son; also in 3.11, 21
2 If you do this, you will live many years, and your life will be satisfying.
3 Never let loyalty and kindness leave you! Tie them around your neck as a reminder. Write them deep within your heart.
4 Then you will find favor with both God and people, and you will earn a good reputation.
5 Trust in the Lord with all your heart; do not depend on your own understanding.
6 Seek his will in all you do, and he will show you which path to take.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불안을 ‘실존적 불안 (existential anxiety)"이라고 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인간은 자기에게 주어지는 자유와 책임 때문에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그 불안은 이런 것입니다. “지금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인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대로 살아가면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인가?” “지금 나의 결정은 최선의 결정인가?” “나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있는가?” 어떻게 보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불안은 이율배반적인 것입니다. 내가 내 마음대로 내 인생의 문제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 같은데, 오히려 그 자유가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입니다. 결정의 결과에 대해서 내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철학자들의 주장에 동감(同感) 하시나요?

지금은 거의 모든 차에 내비게이션이 있어서 모르는 길을 가도 불안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물론이고, 캐나다까지 모두 카버하기 때문에, 모르는 곳을 갈 때도 불안하지 않습니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더 안심이 됩니다. ‘Go Home’ 버튼만 누르면 집으로 가는 길을 모두 알려 줍니다.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도 걱정할 것 없습니다. 내비게이션이 길을 수정해 줍니다. 내비게이션도 지금은 많이 성능이 좋아졌는데, 예전에는 에러가 많았습니다. 이에 따른 에피소드도 많았습니다. 한번은 뉴욕에 있는 작은 TV 방송국을 찾아 가는데, 처음 가는 길이라 조금 불안했습니다. 전 그 때 긴 다리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내비게이션으로 보면 거의 목적지에 다 온 것 같은데, 방송국 같은 건물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직 다리 위였으니까요. “어? 뭔가 이상한데?” 했는데, 목적지에 나 왔다는 “You have reached your destination” 하는 거예요. 그 때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릅니다. 미국에 오래 살았는데도 보스턴에 오래 살다 보니까 뉴욕에 간다고 긴장되는 울렁증이 있는데, 그 때 제가 다리 위에서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또, 이 지역에 사시는 목사님 한 분은 밤 중에 내비게이션만 믿고 길을 나섰는데, 사방이 깜깜한 데다 눈이 많이 온 때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내비게이션이 가라는 대로 가고 있었는데, 점점 인가가 없는 산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급기야 눈으로 꽉 막힌 막다른 길을 만나게 되어서 그 밤중에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되었는데, 일찍 떠나신 목사님이 오지 않아서 모두들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 목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 쪽 지리를 잘 아는 목사님이 잘 못 갔으니까 다시 돌아오라고 해도 차가 눈 속에 빠져서 꼼짝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가서 눈 속에 빠진 차를 꺼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간신히 목적지에 올 수가 있었습니다.

불행한 것은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인생의 길이 목적지를 향해 잘 가고 있는지, 잘못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헬리콥터 뷰 (Helicopter View)’라는 말이 있습니다. 헬리콥터를 타고 높이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한 눈에 다 보입니다. ‘헬리콥터 뷰’와 비슷한 말로 ‘버즈 아이 뷰 (Bird’s Eye View)’라는 말이 있습니다. 역시 새는 높이 날아 올라갈 수가 있으니까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면 아래서 움직이는 것들이 모두 보입니다. 이런 생각 들지 않습니까? “지금 내가 살아가는 것을 누가 좀 높은 곳에서 봐줬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 읽은 잠언 말씀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잠언’이라는 말은 한자인데, ‘잠(箴)’ 자는 ‘바늘’ ‘꽂다’라는 뜻입니다. ‘언(言)’ 자는 ‘말씀’이라는 뜻이니까, ‘콕 집어서 해 주는 말’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말로 ‘훈계(訓戒)’ ‘교훈(敎訓)’이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Proverbs’라고 하는데요. ‘속담’ ‘격언’이라는 뜻입니다. 속담은 오래 전부터 전해 오는 짧은 말인데, 누가 말했는지 잘 모르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 인생을 사는 지혜와 교훈이 들어 있습니다.

성경에 ‘잠언’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 속에 수많은 잠언이 들어 있습니다. 그 많은 잠언들을 주로 솔로몬이라는 이스라엘의 왕이 남긴 것입니다. 오늘 읽은 잠언 3장에 나오는 잠언들도 솔로몬 왕이 남긴 것들입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3대 왕이었는데요. 여러가지 점에서 전무후무한 왕 이었습니다. 우선 그가 모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성경에 열왕기상, 하 두 책은 역대 이스라엘의 왕들에 대한 역사가(歷史家)들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 책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큰 지혜와 슬기로운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헤아릴 수 없는 넓은 마음을 주셨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동방의 그 어떤 사람의 지혜보다 컸으며, 이집트의 모든 백성의 지혜를 합한 것보다도 더 컸습니다. 솔로몬은 이 땅의 어느 누구보다도 지혜로워 솔로몬의 명성은 모든 나라에 널리 퍼졌습니다. 솔로몬 왕은 평생 동안, 지혜로운 가르침을 삼천 가지나 말했으며, 천 다섯 편이나 되는 노래를 지었습니다. 그는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돌담에서 자라는 우슬초에 이르기까지 온갖 식물과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해서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모든 민족들이 솔로몬 왕의 지혜를 들으려고 몰려왔습니다.” (열왕기상 4:29-34)

솔로몬은 이렇게 많은 지혜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가 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원없이 해 봤던 사람으로도 유명합니다. 사치와 향락에도 빠져 봤고, 온갖 부귀영화도 누려 봤습니다. 날마다 귀족들을 궁으로 불러 화려한 파티도 열어봤습니다. 그가 원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권력도 손에 쥐었습니다. 이런 솔로몬이 ‘고백록’처럼 자신의 인생에 대한 기록을 남긴 것이 성경 ‘전도서’입니다. 그가 남긴 잠언도 그의 인생 후기에 남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젊었을 때 무슨 잠언이 나오겠어요? 인생을 살만큼 살고, 온갖 경험을 다 해보고, 인생에 대해 ‘Helicopter View’를 갖게 되고, ‘Bird’s Eye View’를 갖게 된 사람이 잠언을 남기지 않았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그가 남긴 잠언들을 단순히 속담처럼 유익한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가 그 속에 들어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솔로몬의 ‘잠언’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먼저 우리가 주목해서 봐야 하는 것은 그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하나님의 말씀과의 관계에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런 말씀을 들어도 별로 놀라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논하는 관점(觀點)이 비단 ‘잠언’의 말씀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세요. “내 가르침을 잊지 말고, 내 명령들을 네 마음에 소중히 간직하여라. 그렇게 하면, 너는 오래 살고, 성공하게 될 것이다.” (잠언 3:1-2) 이 말씀과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장에서 하신 말씀을 한번 비교해 보세요.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이루어질 것이다.” (7절)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마음에 간직하고, 그 말씀을 자신의 삶 속에서 실천하며 사는 사람은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Store my commands in your heart. If you do this, your life will be satisfying.” (New Living Translation) NIV 성경에는 “They will bring you prosperity”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they’는 마음 속에 간직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마음 속에 store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성공과 번영을 가져 온다는 것입니다. 제가 오후에 ‘안녕하세요’에서도 말씀 드리겠습니다만, 사람을 사람답게 키워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금수저’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 잘 만나서 좋은 환경 물려 받는 사람이고, ‘흙수저’는 그렇지 않은 사람을 말합니다. “나는 흙수저 물고 태어났으니까.....” 하는 패배주의가 청년들 사이에 퍼져 있습니다. 우리 크리스천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와서는 안 됩니다.

둘째로, “너는 성실과 사랑을 절대 버리지 말고, 그것을 네 목에 걸고, 네 마음 판에 잘 새겨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칭찬을 받을 것이다.” (3-4절) 저는 이 말씀 읽으면서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기록한 성경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다.” (누가복음 2:52) 문제는 솔로몬이 말하는 ‘성실’과 ‘사랑’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New Living Translation에는 이것을 ‘loyalty and kindness’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NIV 성경에는 이 말이 ‘love and faithfulness’라고 나와 있습니다. NASB에는 ‘kindness and truth’라고 나와있고요. 하나 더, NKJV에는 ‘mercy and truth’라고 나와 있습니다. 왜 이렇게 조금씩 다른 다양한 번역을 했을까요? 구약성경이 원래 히브리말로 씌어졌습니다. 신약성경은 코이네 그릭 (Koine Greek), 고대 그리스 말로 기록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 언어가 사멸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사용된 ‘성실과 사랑’이라는 말은 히브리말로 ‘헤세드’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다양한 번역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헤세드’라는 말에는 아주 풍부한 뜻이 들어 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하나님의 속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 있다면 바로 이 ‘헤세드’라는 말일 것입니다.

좀 설명이 길어졌습니다만, 지금 솔로몬이 말하고 있는 것은 ‘헤세드’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네 인생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favor를 받는 축복된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느냐, ‘흙수저’를 물고 태어났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이 하나님의 ‘헤세드’를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이 ‘헤세드’를 알기를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솔로몬이 ‘Bird’s Eye view’를 가지고 충고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씀이 5절과 6절에 나와 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절대로 네 자신을 의지하지 마라. 너는 네 모든 길에서 그분을 인정하여라. 그리하면, 그분이 너의 길을 형통하게 만들어 주실 것이다.” 솔로몬은 많은 지혜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런 사람은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을 의지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똑똑하고,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니까 자연히 자기 자신을 의지하게 됩니다. 솔로몬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많은 실수를 하게 되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됩니다. 쓸데 없는 건축과 토목 공사를 하게 되고, 공사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백성들에게 많은 세금을 거두게 됩니다. 이 모두가 자기 자신을 믿은 결과였습니다.

솔로몬이 하는 말입니다. “네 자신을 의지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훨씬 낫다!” 더 나가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인정하라!” 지금 우리는 정말 세상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엄청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생각대로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인생에 대한 ‘Helicopter View’를 가진 솔로몬이 하는 말입니다. “아니, 네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세요. 그게 백 번 낫습니다.” “Trust in the Lord with all your heart; do not depend on your own understanding”이라고 합니다.

솔로몬이 말한 다른 잠언들을 볼까요? “사람이 제비를 뽑지만, 그 결정은 여호와께서 하신다.” (잠언 16:33) 제비를 뽑는다니까 자기 손으로 뽑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뽑는 일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신다는 것입니다. 주사위 (dice)를 던집니다. 떼굴떼굴 구르다가 멈춥니다. 몇 번이 나왔는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됩니다. “We may throw the dice, but the Lord determines how they fall.”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간단 하잖아요? 그 주사위가 어떻게 몇 번을 굴러서 어떻게 뒤집어질지 그것을 결정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하잖아요?

요즘 성경 말씀을 읽는데, 자꾸 눈에 들어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말씀입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이 앞 길을 인도했고, 밤에는 불기둥이 인도했습니다. 광야에서는 방향을 알 수 없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의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말씀이 출애굽기에도 나와 있고, 민수기에도 나와 있고, 신명기에도 나와 있습니다. 이 말씀이 주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방향을 결정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방향을 결정했다는 것 아닙니까? 그들이 그렇게 해야 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그 곳이 ‘광야 (wilderness)’였기 때문입니다. 아마 광야가 아니었더라면 자기들이 방향을 결정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40년 동안 “너희들의 방향은 내가 결정한다.” 이 교훈을 주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 몰라요. “지금은 광야가 아닙니다!” 맞습니다. 지금 우리는 광야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명의 이기가 이렇게 발달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인간이 축적한 정보의 양은 엄청나게 많고, 인간의 지식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는 21세기의 광야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방향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도 앞길이 전혀 볼 수가 없습니다. 지금 청년들의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 자리가 없습니다.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무력감이 빠져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광야에서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많이 배운 사람도, 기술이 있는 사람도, 날고 기는 사람도, 광야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수 밖에, 다른 옵션이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광야를 걷고 있습니다. 광야를 걷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다른 옵션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다시 오늘 잠언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개역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