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9:1-7

1 고통의 땅에 그늘이 걷힐 것이다. 옛날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셨다. 하지만 앞으로는 지중해로 나가는 길과 요단 강 건너편, 그리고 북쪽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외국인이 살고 있는 갈릴리까지, 이 모든 지역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2 어둠 속에 살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짙은 그늘의 땅에 살던 백성에게 환한 빛이 비췰 것이다.
3 “하나님, 주께서 그 민족을 크게 하시고, 그 백성을 행복하게 하십니다. 추수할 때에 사람들이 기뻐하듯이, 그들이 주님 앞에서 즐거워합니다. 전쟁에서 빼앗은 물건을 나누는 백성처럼 기뻐합니다.”
4 주께서 미디안을 물리치시던 때처럼 그들이 진 무거운 멍에를 내려 주시고,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막대기를 벗겨 주시며, 주의 백성을 치던 몽둥이를 없애 주실 것이다.
5 군인들이 요란스런 소리를 내며 신고 다니던 군화와 피로 얼룩진 군복이 모두 땔감이 되어 불에 사라질 것이다.
6 왜냐하면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들을 주실 것이다. 그의 어깨 위에 왕권이 주어질 것이다. 그의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히 살아 계신 아버지, 평화의 왕이시다.
7 그의 왕권은 점점 커지겠고, 평화가 그의 나라에서 영원히 이어진다. 그가 다윗의 보좌와 다윗의 나라에서 다스릴 것이다. 그가 정의와 공평으로, 이제부터 영원토록 그 나라를 견고하게 세울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일을 이루실 것이다. 왜냐하면 주께서 자기 백성을 뜨겁게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1 ①Nevertheless, that time of darkness and despair will not go on forever. The land of Zebulun and Naphtali will be humbled, but there will be a time in the future when Galilee of the Gentiles, which lies along the road that runs between the Jordan and the sea, will be filled with glory. / ①Verse 9.1 is numbered 8.23 in Hebrew text
사9:2 ① The people who walk in darkness will see a great light. For those who live in a land of deep darkness②, a light will shine. / ①Verses 21 are numbered 9.1-20 in Hebrew text, ②Greek version reads a land where death casts its shadow. Compare Matt 4.16
3 You will enlarge the nation of Israel, and its people will rejoice. They will rejoice before you as people rejoice at the harvest and like warriors dividing the plunder.
4 For you will break the yoke of their slavery and lift the heavy burden from their shoulders. You will break the oppressor’s rod, just as you did when you destroyed the army of Midian.
5 The boots of the warrior and the uniforms bloodstained by war will all be burned. They will be fuel for the fire.
6 For a child is born to us, a son is given to us. The government will rest on his shoulders. And he will be called. Wonderful Counselor①, Mighty God, Everlasting Father, Prince of Peace. / ①Or Wonderful, Counselor
7 His government and its peace will never end. He will rule with fairness and justice from the throne of his ancestor David for all eternity. The passionate commitment of the Lord of Heaven’s Armies will make this happen!

우리가 불렀던 찬송가 550장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2절 가사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매였던 종들이 돌아오네. 오래 전 선지자 꿈꾸던 복을 만민이 다 같이 누리겠네.” 이 찬송가 가사를 쓴 사람은 T. Hastings (1784-1872)라는 사람입니다. 아마도 Hastings 는 시편 60편에 나오는 “예루살렘아, 일어나 빛을 비추어라. 네 빛이 이르렀다.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밤처럼 짙은 어둠이 온 땅의 백성들을 덮을 것이나,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떠오르시며, 주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날 것이다. 민족들이 네 빛을 향해 나아오고, 왕들이 떠오르는 밝은 해와 같은 너를 보고 찾아올 것이다. 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아라. 사람들이 모여 너에게로 오고 있다. 멀리서부터 네 아들과 딸들이 함께 올 것이다 (1-4절)” 이 말씀에서 영감(靈感)을 받아서 가사를 썼을 것입니다.

제가 이 찬송을 부를 때마다 특히 마음에 와 닿는 가사가 있습니다. “오래 전 선지자 꿈꾸던 복을 만민이 다 같이 누리겠네.” 이 구절입니다. 많은 선지자들이 메시아 시대에 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가난과 고난과 전쟁, 포로 생활 속에서도 “메시아 시대가 곧 온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마치 초대교회 크리스천들 이 박해를 받을 때 “주 예수여, 어서 오십시오 (요한계시록 22:20)”라고 고백하면서 예수님께서 어서 오셔서 자기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바랐던 것과 같습니다. 또 이것은 우리나라가 주권을 빼앗기고 36년 동안 일본의 지배 있을 때 주님이 어서 오기를 소원했던 성도들의 기도와도 같습니다.

36년 동안 일본이 저지른 만행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3.1 운동이 일어나고 한 달 반 정도가 지났을 때, 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에 일본군 장교가 군인들을 끌고 왔습니다. 3.1 운동 때 화성시 주민들을 너무 과격하게 진압한 것을 사과하러 왔다고 하면서, 15살 이상 남자들은 모두 제암리교회로 모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기독교와 천도교를 믿는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일본군 장교가 인사를 하고 교회 문을 나가자 마자 밖에 있던 일본군들이 창문을 열고 사격을 했습니다. 교회에 모였던 29명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일본군들은 자기들의 만행을 감추려고 교회에 불을 질렀습니다. 하지만, 이런 만행이 언제까지 감춰져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세브란스 의학 전문학교에 교수로 와 있던 캐나다 선교사 스코필드 (Frank W. Schofield, 석호필) 교수가 우연히 이 소식을 듣고 이 끔찍한 현장을 사진으로 찍어 본국으로 보냄으로써 세상 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지금 제암리교회에 가면 손에 사진기를 든 스코필드의 동상이 서 있다고 합니다. 스코필드는 3.1 운동을 주도한 33인과 함께 34번 째 민족대표로 인정 되어, 국립 현충원에 안장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의 만행으로 신음하던 한국교회에서 가장 많이 읽었던 성경이 요한계시록이었습니다. 평양 장대현 교회 길선주 목사님 같은 분은 일생을 통해 구약을 30회, 창세기와 에스더와 이사야서는 540회, 신약 전권은 100회, 요한서신은 500회, 요한계시록은 10,000 번을 읽었다고 합니다. 교회가 박해를 받고, 크리스천들이 핍박을 받던 때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악을 이기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신다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많은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이 “주 예수님, 어서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22:20)” 이런 말씀으로 끝이 나지요?

오늘 읽은 이사야 9장 말씀으로 돌아가 볼까요? 이사야는 유다의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활약했던 예언자입니다. 그 때가 약 기원전 700년경 입니다. 그는 므낫세 왕 때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웃시야 왕은 16살에 왕이 되어 52년 간 왕으로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잘했습니다. 하지만,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나라의 힘이 커지자 그는 교만해 졌습니다. 그가 왕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웃시야는 스가랴가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께 복종했습니다. 스가랴는 웃시야에게 하나님 을 두려워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웃시야가 하나님을 섬기는 동안 하나님께서 웃시야의 하는 일을 잘 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웃시야는 강해지면서 교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망하게 되었습니다.” (역대하 26:5, 역대하 26:16) 그는 결국 하나님께 버림 받아 몹쓸 병에 걸려서 왕 위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는 성전에도 들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격리된 삶을 살다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그의 아들 요담이 왕이 되었습니다. 요담은 아버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기 하게도 그는 선한 사람이었지만, 그가 다스리는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악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역대하 27:2).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Jotham did what was pleasing in the LORD's sight, but the people continued in their corrupt ways.” 요담은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는 일을 했지만, 그의 백성들은 타락한 생활을 계속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아들 아하스는 어떨까요? 그는 아버지와는 달리 악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성경은 그가 ‘다윗의 길’을 따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가 통치할 동안 온 나라가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나라의 힘이 약해 지니까 근처에 있는 나라들이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런 중에도 아하스는 계속해서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역대하 28:19).

아하스가 죽고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히스기야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그의 조상 다윗처럼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했습니다.” (역대하 29:2) 그는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일을 했고, 하나님께 복종했습니다. 하나님의 가르침과 명령을 지켰고,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위해 일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하는 일들을 축복했습니다. 그가 왕으로 있을 때에 앗시리아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지만, 그 때도 히스기야는 현명하게 잘 대처했습니다. 말년에, 히스기야는 죽을 병을 앓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이사야를 통하여 15년을 더 살게 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그 약속을 믿지 못하고 해시계를 15도 뒤로 물려 주면 믿겠다고 합니다 (열왕기하 20:10).

이 일이 근처에 있는 나라들에게 소문이 났는지 바빌로니아에서 사신들이 와서 이 일에 대하여 묻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가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를 모두 알고 싶어하셨습니다.” (역대하 32:31) “God withdrew from Hezekiah in order to test him and to see what was really in his heart.”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 히스기야를 그냥 내버려 두셨습니다. 바빌로니아의 사신들이 자기를 찾아 온 것에 우쭐한 히스기야는 바빌로니아 사신들에게 나라의 보물 창고를 열어서 모두 보여 줍니다. 그리고, 결국 이 일이 바빌로니아가 유다를 탐내는 계기가 되었고, 유다는 바빌로니아에게 멸망합니다.

예언자 이사야가 살던 시대적인 배경이 이렇습니다. 그가 예언자로 있을 때 비교적 선한 왕도 있었고, 악한 왕도 있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순교했던 때는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왕으로 있을 때 였습니다. 므낫세는 과거 어느 왕보다도 악한 왕이었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므낫세는 이스라엘을 잘못된 길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멸망시키신 다른 나라들보다 더 악한 일을 하게 했습니다.” (열왕기하 21:9, 역대하 33:2)

이사야가 예언자로 있을 동안에 국제 정세는 요동을 쳤습니다. 앗시리아는 여전히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가지고 있었고, 신흥 제국 바빌로니아는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작은 나라였던 유다는 이런 국제 정세를 알지 못하고, 우상 숭배에 빠져 있었습니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 있었지만, 이스라엘과 유다는 민족의 불행이 자기들 눈 앞에 다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결국 동족 이스라엘이 722 BC에 앗시리아에게 멸망하고, 유다마저 586 BC에 바빌로니아에게 멸망하고 맙니다.

이 때에 하나님의 예언자 이사야는 메시아 시대에 대한 희망을 선포합니다. 나라가 멸망하는 고난과 절망 속에서도 이 희망을 붙들고 살아 남도록 메시야 시대에 대한 희망을 선포합니다. 메시아 시대가 되면, 지금까지 어둠 속에 갇혀 살던 사람들이 큰 빛을 보게 되고, 그늘진 땅에 살던 사람들에게 빛이 비췰 것이라고 합니다 (이사야 9:2). 여러분, 이 사실을 아시나요? 이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님의 사역과 연결이 된다는 사실을요.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 출신으로, 갈릴리에 있는 가버나움을 사역의 본부로 정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고, 병든 사람들을 낫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마태는 예수님의 사역을 목격하면서 그의 복음서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역의 갈릴리 호숫가에 있는 가버나움으로 옮기시고, 거기서 사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곳 어둠에 사는 백성들이 큰 빛을 보았고, 죽음의 그늘과 같은 땅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취었다는 예언자 이사야의 말이 이루어졌습니다.” (마태복음 4:13-16)

그리고, 메시아가 통치하는 시대에는 더 이상 전쟁이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전쟁이 없는 나라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샬롬 (평화)를 누리게 된다고 합니다. 성경 말씀을 보세요. “사람들은 무거운 멍에를 벗게 되고, 강대한 민족이 약한 민족들을 학대하는 일도 없게 되고, 군인들이 신고 다니던 군화와 피로 얼룩진 군복은 모두 땔감이 되어 불에 사라질 것이다.” (이사야 9:4-5) 우리 민족도 전쟁을 겪었습니다만, 전쟁처럼 야만적인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다른 민족과 전쟁을 한 것도 아니었고 같은 동족끼리 총을 쏘는 야만적인 전쟁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문화와 문명이 발달한 시대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전쟁의 위협을 느끼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선포한 메시아 시대에 대한 꿈은 단순히 유대 민족들의 꿈이 아니라, 지금까지 인류가 꿈꾸어 왔던 것입니다.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수많은 지도자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한 국가 운영 시스템이 등장했습니다. 공산 주의가 등장하고, 자본주의가 등장했습니다. 전제주의 (despotism, 專制主義)가 등장하고, 민주주의 가 등장했습니다. 인류는 지금도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실험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제 한가지 남은 궁금증은 과연 이사야가 말하는 메시아가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날 것입니다. 그 아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의 어깨 위에 왕권이 주어질 것이다. 그는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히 살아 계신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고 불릴 것입니다. 그의 왕권은 점점 커지겠고, 평화가 그의 나라에서 영원히 이어질 것입니다. 그는 정의와 공평으로, 이제부터 영원토록 그 나라를 견고하게 세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주께서 자기 백성을 뜨겁게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9:6-7) 또 이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이름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인 임마누엘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이사야 7:14)

우리의 눈은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날 것입니다 (For a child is born to us, a son is given to us)” 이 한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한 아기 (a child)’라는 말과 메시아라는 말은 잘 연결이 안 됩니다. ‘힘 센 용사(warrior, 勇士)라면 모를까 ‘한 아기’가 어떻게 메시아 시대를 열 수 있겠습니까? ‘한 아기’가 어떻게 어둠 의 그늘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한 아기’가 어떻게 하나님의 샬롬을 가져 올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궁금증은 풀리지 않습니다.

이사야는 메시야 시대를 예언하고 자기 생을 마칩니다. 므낫세 왕 때 체포되어 순교합니다. 그리고, 700년이 지납니다. 그동안 유다 나라는 멸망하고, 바빌로니아에 70년 간 포로로 잡혀갔다가 극적으로 조국으로 돌아 옵니다. 무너진 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한 노력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다 민족은 다시 400년이라는 긴 암흑의 시간을 경험합니다. 신학적으로는 이 때를 ‘신구약 중간시대 (the inter-testamental period)’라고 합니다. 이 시대를 암흑의 시대라고 하는 이유는, 이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소통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두려워 마라. 보아라. 모든 백성을 위한 큰 기쁨의 소식을 가지고 왔다. 오늘 다윗의 마을에 너희를 위하여 구세주께서 태어나셨다. 그는 곧 그리스도 (메시아) 주님이시다.” (누가복음 2:11)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메시아 시대는 예수님께서 탄생하심으로 열리게 되었습니다. 무려 700년 동안 꿈꾸어 왔던 선지자 이사야의 꿈이 실현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그가 꾸었던 꿈은 단순히 유대인들을 위한 꿈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온 인류를 위한 꿈이 되었습니다.

이제 오늘 저의 설교의 결론입니다. 메시야 시대를 받치는 두 기둥이 있습니다. ‘fairness (공평)’ 와 ‘justice (정의)’입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정의와 공평으로 그 나라를 견고하게 세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9:7). 이 말씀 속에 한 가지 확실한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unfairness (불공평)’와 ‘injustice (불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메시아, 그리스도의 통치하심을 인정하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이런 말을 들어 보셨나요? “Service, not Success!”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란 뜻입니다. Elisabeth J. Shepping (서서평, 1880-1934)의 좌우명입니다. 서서평은 독일에서 이민 온 미국의 간호 선교사로, 흰 저고리와 검정 치마를 입고, 흰 고무신을 신고, 가장 한국인처럼 살았던 선교사였습니다. 그는 조선의 여성들을 계몽하는 일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라는 말이 주는 감동에 가슴이 떨리지 않습니까? 서서평의 인생 좌우명은 사실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힌트를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의 목적이 섬김이었습니다 (마가복음 10:45) 여러분이 세상에 나가서 ‘공평’과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크리스천들의 섬김의 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