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3:1-8

1 (가까이에서 힘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다윗의 시. 유다 광야에 있을 때) 오 하나님, 주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주를 간절하게 찾습니다. 물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곳, 메마르고 거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목마르게 찾습니다. 온몸으로 주를 애타게 찾아 헤맵니다.
2 내가 주를 성전에서 뵈었습니다. 그 곳에서 주의 능력과 영광을 보았습니다.
3 주의 사랑이 내 목숨보다도 좋기에 내가 주를 찬양할 것입니다.
4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주를 찬양할 것입니다. 내가 손을 들고 기도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겠습니다.
5 가장 좋은 음식을 먹은 것처럼 내가 만족할 것입니다. 크게 기뻐하며 내가 주를 찬송하겠습니다.
6 내가 침대에 누워서 주를 떠올립니다. 긴 밤이 지나도록 주를 생각합니다.
7 주는 나를 도우시는 분이시기에 내가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노래합니다.
8 내가 주께 가까이 다가가니, 주께서 오른손으로 나를 붙들어 주십니다. (쉬운성경)

지금 우리는 사순절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헨리 나우엔 (Henri Nouwen)이 말한 것처럼 ‘특별한 방식’으로 주님과 함께 있는 시간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이요, 성경을 읽는 시간이요, 나 자신을 반성하는 시간이요, 회개하는 시간입니다. 사순절에 무슨 말씀을 나누면 좋을까 하다가 시편 63편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이 시편은 다윗이 쓴 시편입니다. NLT 성경 처음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A psalm of David, regarding a time when David was in the wilderness of Judah.] 다윗이 유대 광야에 있을 때 경험했던 일들을 시로 쓴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성경의 인물 중에 훌륭한 사람들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다윗도 그 중 한 사람입니다. 성경을 조금이라고 읽은 사람들은 다윗이란 사람에 대해서 대충 압니다. “아, 다윗? 골리앗과 싸워서 이긴 사람!” 이 정도는 다 압니다. 그리고, 성경을 좀 많이 읽은 사람들은 다윗이란 사람을 알아가면 갈수록 다윗이란 사람에게 빠지게 됩니다. 그만큼 다윗은 매력 있는 사람입니다. 우선 성경에서 다윗에 대해 평가하는 것을 보면 굉장합니다. 열왕기상 15:5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다윗은 언제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했습니다. 다윗은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그의 평생에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다. 그가 내 뜻을 다 이룰 것이다 (I have found David son of Jesse, a man after my own heart. He will do everything I want him to do).” (사도행전 13:22)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구약성경 사무엘상 13:14에 나오는 말씀이죠? 사무엘이라는 선지자가 사울을 찾아가서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이렇게 전달합니다. “Now your kingdom must end, for the LORD has sought out a man after his own heart. The LORD has already appointed him to be the leader of his people, because you have not kept the LORD's command (당신의 나라는 이제 망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마음에 든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를 이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아닌 다윗을 하나님께서 백성의 지도자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여러분, 여기서부터 말씀을 잘 들어 보세요. 이렇게 하나님께서 기뻐 했던 사람이라면 그의 삶이 순탄하고, 행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습니다. 그의 인생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습니다. 그의 삶에 많은 고난이 있었던 이유는 대부분 사울이라는 사람과의 악연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없이는 다윗도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다윗의 생애에서 사울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사울이 있었기에 다윗은 더 빛이 났습니다.

오늘 시편 63편이 그렇습니다. 그를 죽이려고 하는 사울을 피해서 다윗은 유대 광야로 도망갔습니다. 유대 광야는 요단강 계곡을 따라서 길이 100km, 폭 20km의 남북으로 형성된 거대한 황무지입니다. 이 황무지를 ‘엔게디 황무지 (the wilderness of En-gedi, 사무엘상 24:1)’라고 합니다.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을 피해서 유대 광야에 숨습니다. 여기서 다윗이 얼마 동안이나 숨어 지냈는지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어떤 학자들은 5-6년 정도라고 하고, 어떤 학자는 12년 정도라고 말합니다. 다윗에게는 정말 악몽과 같은 도피 생활이었습니다. 이곳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풀도 자라지 않고, 나무도 없는, 모래와 높고 낮은 석회암 언덕이 끝없이 펼쳐지는 곳입니다. 여기서 다윗은 오랜 세월을 혼자 지내야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전혀 그렇게 의도하지 않았고,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일들이 생깁니다. 그 때, 무엇이 여러분을 지켜 줍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을 지켜 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And we know that God causes everything to work together① for the good of those who love God and are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for them).”/①Some manuscripts read And we know that everything works together 로마서 8:28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도 우리의 시선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이 말씀에 가 있어야 합니다.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에 가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일’은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런 그가 왜 그가 그런 혹독한 광야에서 도피생활을 해야 했습니까? 정말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했다면, 로마서 말씀대로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었습니까? 예, 그랬습니다. 다윗의 생애 중에 광야생활은 하나님의 선물이었고,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만일 그가 광야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지 못할 뻔 했습니다.

다윗이 유대 광야에서 5-6년, 혹은 12년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도피생활을 한 것은 악몽과도 같은 기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악몽 같은 기간이었지만, 하나님의 시각에서 이 기간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이 기간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의 시간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다윗은 광야생활을 통해서 주옥 같은 시편들을 썼습니다. 누가 분석해 보았더니 광야생활을 주제로 한 시편이 무려 30편 정도 된다고 합니다. 이 시편들은 모두 다윗이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시기에 쏟아져 나온 것들입니다. 반대로, 만약 다윗에게 이런 고난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더라면, 이런 시편들이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유대 광야 엔게디 황무지에서 다윗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밖에 없었습니다. 이 하나님을 향해 다윗은 부르짖다가 울기를 반복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다가 그 원망이 어느 새 기도로 바뀌기를 반복했습니다. 이 광야에서 힘들었던 경험들이 다윗의 입에서 회개와 기도와 시와 찬양과 기도가 되었습니다.

가장 위대한 창조물은 우리가 편안하고 아무 문제가 없을 때 나오지 않습니다. 어둡고 긴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위대한 창조물들이 나옵니다. 진주조개 양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에서 읽었습니다. 진주 조개 속에 들어 있는 진주는 처음부터 진주를 만들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물질이 들어와서 조개의 연한 살에 상처를 냅니다. 조개는 아픔을 잊으려고 끊임 없이 분비물을 뱉어서 이물질을 감쌉니다. 이렇게 하기를 수천 번, 수 만 번을 반복합니다. 그래서 마침내 영롱한 진주가 만들어집니다. 진주 조개를 양식하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 억지로 조개의 입을 벌리고 이물질을 넣어준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악성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1801년부터 청각장애로 고생했습니다. 친구들에게 청각에 문제가 생겨 고통스럽다고 자신의 문제를 얘기했다고 합니다. 1814년에는 거의 아무 것도 들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쓴 교향곡들이 대부분 이 시기에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과 15번 ‘전원’이 1801년에,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엘리제를 위하여’는 1810년에 작곡했습니다. 교향곡 5번 ‘운명’은 1808년에, ‘합창’이라고 불리우는 교향곡 9번은 1824년에, 그가 완전히 청각을 잃어버린 후에 쓴 작품입니다. 이 곡은 4악장에 나오는 ‘환희의 송가 (Ode to the Joy)”로 유명합니다. 전문가들은 이 작품이 베토벤의 작품들은 물론 서양음악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말합니다. 현재 이 곡은 유네스코의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위대한 창작물들은 이렇게 고난과 고통을 통해서 세상에 나옵니다. 다윗의 시편도 그렇습니다.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길고 힘들었던 시기에 불후의 시편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둘째로, 유대광야 엔게디 황무지에서의 악몽 같은 삶은,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만 의지하게 했습니다. 오직 그가 의지하고 희망을 둘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었습니다. 다윗에게 하나님은 피난처 (refuge)였고, 산성 (stronghold)이었고, 피할 바위 (rock)였고, 방패 (shield)였고, 위태할 때 찾는 도움 (help)이었습니다 (시편 18:2).

오늘 읽은 시편 63편 말씀에서 우리는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모하며 갈망했는지,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오 하나님, 주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주를 간절하게 찾습니다. 물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곳, 메마르고 거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목마르게 찾습니다. 온몸으로 주를 애타게 찾아 헤맵니다.” (1절) 여러분, 목마른 사람의 고통을 아십니까? 우리는 그 고통을 모릅니다. 목이 말라 본 적이 없으니까요. 지금 다윗은 유대 광야, 엔게디 황무지에 있습니다. 메마르고 거친 땅입니다. 물 한방울 찾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장이라도 물을 주시지 않으면 목이 타서 죽습니다. 그의 부르짖음을 들어 보세요. “I earnestly search for you. My soul thirsts for you. My hole body longs for you in this parched and weary land where there is no water.”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는 다윗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이런 막다른 곳으로 데리고 온 것입니다. 왜요? 그에게 하나님을 찾고 만나는 경험을 주기 위해서요.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다가가야 합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만나 주시기를 원합니다. 뭐,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그런 식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다가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붙잡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가까이하실 것입니다 (Draw near to God and He will draw near to you., NASB).” (야고보서 4:8) 그런데,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고 해도 이게 잘 안 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려고 해도 잘 안 됩니다. 그런데, 고난 중에 있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기가 쉽습니다. 성경을 이런 시각으로 읽어 보세요.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가졌던 사람들은 거의 예외가 없이 고난 중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도, 저도, 그렇고 예외가 아닙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축복입니다. 그 고난을 통해서, 고통과 아픔을 통해서, 눈물을 통해서, 절망을 통해서, 좌절을 통해서,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을 보세요. “내가 주를 성전에서 뵈었습니다. 그 곳에서 주의 능력과 영광을 보았습니다 (I have seen you in your sanctuary and gazed upon your power and glory).” (2절) 여러분, 1절 말씀하고, 2절 말씀하고 연결이 됩니까? NLT 성경으로 읽어 봐도 두 말씀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NKJV으로 읽어 보았더니, ‘so’라는 말이 앞에 붙어 있습니다. “So I have looked for You in the sanctuary”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NASB에 보니까 “Thus I have beheld Thee in the sanctuary”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thus’라는 말에는 ‘결과적으로 (accordingly, consequently)’ 이런 뜻이 있습니다. ‘so’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되면, 1절과 2절이 잘 연결이 됩니다. 1절에서 그렇게 목마르게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의 영혼이, 그의 온 몸이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랬더니 결과적으로) 다윗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보았습니다. 정확한 정황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다윗이 환상을 보았는지 모릅니다. 환상 속에서 성전에 계신 하나님을 만났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경험은 이런 것입니다. “주의 사랑이 내 목숨보다도 좋기에 내가 주를 찬양할 것입니다.” (3절) 개역성경에 이 말씀이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인자’라는 말은 단순히 사랑이라고 번역하기에는 그 뜻이 너무 깊습니다. 그래서 NLT 성경에는 ‘unfailing love’라고, ‘멈추지 않는 사랑’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다윗의 고백은 5절에서도 이렇게 계속됩니다. “가장 좋은 음식을 먹은 것처럼 내가 만족할 것입니다. 크게 기뻐하며 내가 주를 찬송하겠습니다.” 쉽게 말하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를 알고 나니까.......

중요한 것은 다윗이 부르는 노래 가사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기도의 말이 바뀌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배고픔, 목마름, 추위, 불안과 공포 이런 것이 주제였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나니까 그렇게 고통스럽고 힘들던 광야, 엔게디 황무지가 그의 입에서 찬송이 되어, 노래가 되어 나옵니다. “주는 나를 도우시는 분이시기에 내가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노래합니다 (Because you are my helper, I sing for joy in the shadow of your wings).” (7절) 로마서에 있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시라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이 말씀은 시편 118:6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자기 도움으로 삼는 사람은 이렇게 담대하게 인생을 살아갑니다.

사순절은 특별한 방식으로 주님과 함께 있는 기간입니다. 회개하고, 자신을 돌아 보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 기간입니다. 저는 앞으로 남은 사순절 기간에 여러분이 하나님께 다가가는 기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문제를 가지고, 여러분의 절망을 가지고, 여러분의 염려와 걱정과 불안을 가지고,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기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는 기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만난 경험을 가지고 엔게디 황무지의 고통을 한번에 날려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그의 삶을 단번에 바꾸어 놓았습니다. 다윗의 마지막 고백을 들어 보시겠습니까? “내가 주께 가까이 다가가니, 주께서 오른손으로 나를 붙들어 주십니다 (I draw near to you; your strong right hand holds me securely).” (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