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5:14-18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확신합니다.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15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자신들을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사신 분을 위해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그 어떤 사람도 세상의 관점으로 알지 않겠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세상의 관점으로 알았으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17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창조입니다. 이전 것들은 지나갔고, 보십시오, 새 것들이 와 있습니다.
18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자신과 화목시키시고 또한 우리에게 화목의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14 Either way, Christ’s love controls us①. Since we believe that Christ died for all, we also believe that we have all died to our old life.② / ①Or urges us on ②Greek Since one died for all, then all died
15 He died for everyone so that those who receive his new life will no longer live for themselves. Instead, they will live for Christ, who died and was raised for them.
16 So we have stopped evaluating others from a human point of view. At one time we thought of Christ merely from a human point of view. How differently we know him now!
17 This means that anyone who belongs to Christ has become a new person. The old life is gone; a new life has begun!
18 And all of this is a gift from God, who brought us back to himself through Christ. And God has given us this task of reconciling people to him.

‘우리 때문에’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영어로 된 찬양 제목은 ‘We Are The Reason (https://youtu.be/YPbzvCuMl90)’입니다.

잊을 수 없네 하나님의 사랑 날 살리시려고 주신 생명
내 십자가지고 오르신 갈보리 언덕 날 향한 사랑 때문에

우리 때문에 생명 주셨고 우리 때문에 고통 당하셨네
우리 때문에 갈보리 오르셨네 무지한 우리 때문에

나는 보았네 피 묻은 십자가 날 구하시려고 흘린 사랑
나를 바라보시며 흘리신 용서의 눈물 날 향한 사랑 때문에
우리 때문에 생명 주셨고 우리 때문에 고통 당하셨네
우리 때문에 갈보리 오르셨네 무지한 우리 때문에

내가 살아야 할 이유 찾았네 나의 삶을 모두 주께 드리는 것
그가 날 위해 모든 것 주셨듯이 나의 삶을 주께 드리리
I've finally found the reason for living
It's in giving every part of my heart to Him
In all that I do, every word that I say
I'll be giving my all just for Him, for Him

우리 때문에 생명 주셨고 우리 때문에 고통 당하셨네
우리 때문에 갈보리 오르셨네 무지한 우리 때문에
바로 우리 때문에 십자가 지셨고 우리 때문에 죽음 당하셨네
우리 때문에 물과 피 쏟으셨네 무지한 우리 때문에

오늘 말씀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확신합니다.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14절)”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Christ’s love controls us①. Since we believe that Christ died for all, we also believe that we have all died to our old life.”② / ①Or urges us on ②Greek Since one died for all, then all died 이 말씀 한 절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와 부활의 의미가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 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우리 믿음 생활의 모든 것이 달려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아니, 십자가를 믿지 않는데, 부활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15장을 ‘부활 장’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전파하는데, 여러분 중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어찌된 일입니까?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다시 살아나지 못 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우리가 전파한 복음도 헛되며 여러분 의 믿음도 헛될 것입니다......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믿음은 공허한 것이 될 뿐더러 여러분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역시 그리스도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 도 멸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12-20)

그러므로, 우리 믿음생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 말씀을 믿으시나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실 때, 같이 죽은 것입니다. 신학자들은 이것을 ‘대표성의 원리’라고 합니다. 경기에 앞서 선수 대표가 정정 당당하게 스포츠맨십을 지켜 공정한 경기를 하겠다고 선서를 합니다. 그 선수는 경기에 참가한 모든 선수를 대표해서 선서를 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은 모든 선수들이 정정당당한 경기를 하겠다고 선서를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잘 들으세요.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예수님과 함께 죽은 사람들도 부활을 약속 받은 것입니다. 성경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the firstfruits)’가 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20)”라고 했습니다. 순서상 '첫 열매'는 그리스도이시고, 우리는 부활의 ‘나중 열매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오늘 읽은 말씀 15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자신들을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사신 분을 위해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He died for everyone so that those who receive his new life will no longer live for themselves. Instead, they will live for Christ, who died and was raised for them.” (New Living Trans-lation)

우리는 이 말씀에 나오는 ‘New Life (새 생명)’란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로운 생명’이 내 속에 들어 오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번 사순절 기간을 통해서 내가 전에 느껴보지 않았던 ‘생명의 의미’ ‘삶의 의미’를 발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새 생명’은 전에 내가 살았던 ‘옛 생명 (old life)’과 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old life’의 특징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살기 전에는 누구나 다 자기를 사랑하는 이기적인 삶을 삽니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참 안타까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아요. 이 사람의 말도 달라지고, 행동에도 변화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한 단계를 넘지 못합니다. 오늘 말씀에 그렇게 나와 있지 않습니까?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no longer live for himself or her-self)......” 나에게 ‘새 생명’을 주신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셔서 나에게 ‘새 생명’을 주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미워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는 것이 ‘새 생명’ 가진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하는데, 이게 안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이 쉽지 삶의 방식를 바꾼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죄 성’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이 ‘죄 성’은 우리를 이기적인 사람으로 만듭니다.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인간은 절대로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로마서 5:8)’ 우리의 인간성을 완전히 바꾸시기 위해서 자기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셨고, 그 아들로 하여금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 에 못박혀 죽게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의 '죄 성'도 십자가게 못 박힌 것입니다. 이 진리를 믿는 사람에게 변화의 가능성이 주어집니다. 그 사람 안에 새로운 생명이 자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생명이 부활의 주님이 주시는  ‘부활생명’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조금 더 보충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이 세상에 온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나는 나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다.” (마가복음 10:45) “For even I came not to be served but to serve others and to give my life as a ransom for many."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은 ‘대속물’이라는 말입니다. 영어로는 ‘ransom’이라는 말입니다. 쉬운 말로 하면 ‘몸값’이라는 뜻입니다. 예전에는 노예 시장이 있었습니다. 노예마다 몸값이 매겨져 있습니다. 노예를 사는 사람이 그 값을 치르면 그 노예는 그 사람 것이 됩니다. 마가는 그의 복음서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쓰면서 ‘ransom’ ‘몸값’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의미상 우리는 모두 죄의 노예로 살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을 우리의 ‘몸값’으로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비싼 값을 치르시고 여러분을 사셨습니다.” (고린도전서 6:20, 7:23) 이 말씀이 The Amplified Bible에 보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You were actually purchased with the precious blood of Jesus and made His own. So then, honor and glorify God with your life.”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다른 말로 하면, 어떻게 살아야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자신들을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사신 분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어떻게 살아야 우리가 자신을 사랑 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을 미워하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를 받은 사람들은 어떤 삶의 방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까?

오늘 말씀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자신과 화목 시키시고 또한 우리에게 화목의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18절) “God, who reconciled us to himself through Christ, gave us the ministry of reconciliation.” (New Living Translation) 우리에게 맡기신 ‘화목의 직분 (the ministry of reconciliation)’을 잘 감당하는 삶을 살면 됩니다. ‘reconcile’이란 말은 라틴어 ‘reconcilare’에서 온 말입니다. re-(again)+concilare (make friendly)라는 뜻 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은 서로 적대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친구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적대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해하게 만들고, 서로 적대적인 인간관계 속에 있는 사람들을 친구가 되게 하는 일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이유는 간단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ransom’이 되셔서 죽으셨기 때문에, 그 덕분에 우리는 하나님 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와 똑 같이 하나님의 소유가 된 사람들과 우리는 형제가 되고 자매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되었으니,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친해지도록, 사람과 사람끼리 서로 친구가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때문에 생명 주셨고, 우리 때문에 고통 당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때문에 갈보리에 오르셨고, 무지한 우리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압니다. 조금만 십자가 위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사람 이라면, “이제 나는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는데,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이제 내 안에 '새생명'이 자라고 있는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하고 질문합니다.

"We Are The Reason" 찬양 가사가 잘 말해 줍니다. “내가 살아야 할 이유 찾았네. 나의 삶을 모두 주께 드리는 것! 그가 날 위해 모든 것 주셨듯이 나의 삶을 주께 드리는 것!” "I've finally found the reason for living. It's in giving every part of my heart to Him. In all that I do, every word that I say, I'll be giving my all just for Him, for Him.” 오늘 말씀에도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자신들을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사신 분을 위해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15절) 나를 위해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그분을 위해 하는 삶, 이것이 곧 ‘화해의 사역 (the ministry of reconciliation)’입니다. 이 성경 말씀이 이번 부활절에 여러분이 드리는 신앙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