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1:6-12

6 그러므로 기뻐하십시오. 눈앞에 있는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인하여 지금 당장은 힘들고 괴롭겠지만,
7 이 시험들은 여러분의 믿음이 얼마나 강하고 순수한지 알아보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순수한 믿음은 금보다도 훨씬 귀합니다. 금은 불에 의해 단련되기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닳아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순수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 날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8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본 일은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께 사랑을 고백합니다. 지금 이 순간, 그분의 모습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고 있고, 여러분의 마음은 설명할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9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에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 바로 여러분의 영혼이 구원을 받는다는 기쁨이 이미 여러분에게는 주어졌습니다.
10 예언자들은 이 구원에 관해 열심히 연구하고 찾았습니다. 여러분이 받고 있는 은혜에 관해서도 예언하였습니다.
11 그리스도의 영이 그 예언자들과 함께하셨던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에게 있을 고난과 그 뒤에 올 영광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언자들은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도대체 그 일이 언제 있게 될지, 그리고 그 때에 이 세상은 어떻게 될지 그들은 깊이 연구하였습니다.
12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연구와 노력이 그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후대의 여러분을 위한 것임을 그들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들의 수고로 진리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복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이 이 기쁜 소식을 여러분에게 전해 준 것입니다. 이 놀라운 진리의 말씀은 천사들까지도 알기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6 So be truly glad①. There is wonderful joy ahead, even though you have to endure many trials for a little while. / ①Or So you are truly glad
7 These trials will show that your faith is genuine. It is being tested as fire tests and purifies gold - though your faith is far more precious than mere gold. So when your faith remains strong through many trials, it will bring you much praise and glory and honor on the day when Jesus Christ is revealed to the whole world.
8 You love him even though you have never seen him. Though you do not see him now, you trust him; and you rejoice with a glorious, inexpressible joy.
9 The reward for trusting him will be the salvation of your souls.
10 This salvation was something even the prophets wanted to know more about when they prophesied about this gracious salvation prepared for you.
11 They wondered what time or situation the Spirit of Christ within them was talking about when he told them in advance about Christ's suffering and his great glory afterward.
12 They were told that their messages were not for themselves, but for you. And now this Good News has been announced to you by those who preached in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sent from heaven. It is all so wonderful that even the angels are eagerly watching these things happen.

 

지난 주부터 베드로전서 강해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첫 번 설교부터 반응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1세기에 살았던 ‘디아스포라 크리스천들 (Diaspora Christians)’의 고난의 삶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서 오늘 우리가 느끼고 있는 고난의 삶이 오버랩 되면서 오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는가 생각합니다. 1세기 크리스천들이 자기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고향을 떠나 낯선 나라에 피난 가서 온갖 박해를 견디어 내야 했다면, 오늘 우리들은 또 다른 의미에서 크리스천의 삶에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고난을 겪게 될 것입니다 (Yes, and everyone who wants to live a godly life in Christ Jesus will suffer persecution).” (디모데후서 3:12) ‘persecution’이란 단어를 아무 때나 사용하는 것이 아니 잖아요? 자기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살다가 받을 때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입니다. 1세기에 살았던 크리스천들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들도 자기 믿음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고난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고난’이라는 단어는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평생 풀어야 할 숙제와 같은 것입니다. 고난을 떠나서는 크리스천의 삶을 말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삶 속에 주어지는 고난을 풀지 않으면 크리스천의 삶의 의미를 해석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고난 속에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와 계획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고난을 주시는지 우리가 겪는 고난 속에 하나님의 생각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에서 무려 400년 동안 포로가 되어 살다가 모세의 인도를 따라서 이집트를 탈출하게 됩니다. 물론 처음에는 이집트에서의 생활이 아주 좋았습니다. ‘고센’이라는 비옥한 땅에서 양을 치면서 풍요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 때가 요셉의 때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죽으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고난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모세 때에 이집트를 탈출하게 됩니다. 이것을 ‘출애굽 (Exodus)’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한 역사를 기록한 성경이 ‘출애굽기’입니다. 그 성경에 40년 간의 광야 생활의 애환이 모두 나와 있습니다. 출애굽기를 읽으면서 발견한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들의 길을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지도자 모세는 하나님의 대리인에 불과했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이 나타납니다. 그러면 그 구름기둥을 따라 갑니다. 밤에는 불기둥이 나타납니다. 그러면 그 불기둥을 따라 갑니다. 자기들이 길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길을 결정하셨습니다. 이것이 출애굽기가 보여 주는 가장 큰 교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일 중의 하나가 자기 인생을 자기가 결정하는 줄로 아는 것입니다. 그나마 우리 크리스천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한다고 배우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참 드뭅니다. 오늘 우리 예배에 김낙형 선교사님과 오정녀 선교사님이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오정녀 선교사님은 제가 교회 전도사로 있을 때 함께 성장했던 청년이었습니다. 그 때 얼굴이 생각납니다. 예쁘장하고 해맑은 얼굴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그 교회를 따나 개척교회를 하게 되어 그 뒤 소식을 잘 몰랐다가 최근에 케냐에 선교사로 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게 웬 일입니까? 그 청년 시절이 가졌던 자신의 꿈은 다 어디 가고 케냐에 선교사로 가 있다니요? 어제 저 하고 같이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잘랐습니다. 아마 미용사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손질을 전혀 안 한 머리니까요. 머리를 자르고, 기름을 바르고 하니까 예전 얼굴이 살아납니다. 그 남편도 김낙형 선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때 잘 나가던 성악가였습니다. 저에게 본인의 CD 한 장을 주셨습니다. 찬양 CD였는데요. 아름답고 힘이 있는 테너 (tenor) 목소리시더라고요. 그 때 한 교회에서 같이 지휘자로 있던 오정녀 선교사를 만나서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잘 나가던 사람이 갑상선에 이상이 생겨 목소리를 잃어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두 사람은 아프리카 케냐에서 9년 째 음악선교사로 헌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앞길을, 우리의 미래를 인도하시는 따로 분이 있습니다. 잠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제비를 뽑지만, 그 결정은 여호와께서 하신다 (We may throw the dice①, but the Lord determines how they fall.” (잠언 16:33)/ ①Hebrew We may cast lots 주사위에 면이 여섯 개입니다. 주사위를 던지면 떼굴떼굴 굴러갑니다. 몇 번을 굴러가다가 언제, 어디서 설지, 또 굴러가다가 어디에 부딪쳐 방향이 바뀌면서 어떻게 뒤집힐지 아무도 모릅니다. 성경은 그 결정을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했습니다. “..... but the Lord determines how they fall.” 맞습니까? 여러분도 그렇게 동의하십니까?

출애굽기 14:1-3 말씀을 읽어 보세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뒤로 돌아서 비하히롯 앞에서 진을 치라고 말하여라. 그 곳은 믹돌과 홍해 사이이며, 바알스본 맞은편의 바닷가이다. 이집트의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이 길을 잃었다. 그들은 광야에 갇혔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Order the Israelites to turn back and camp by Pi-hahiroth between Migdol and the sea. Camp there along the shore, across from Baal-zephon).” 잘 가던 길을 ‘돌아서서 (turn back)’ 이스라엘 민족을 홍해 바다 앞으로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왜 잘 가던 길을 바꿔서 앞이 가로 막힌 홍해 바다 앞에 진을 치게 했을까요? “너희들의 길을 결정하는 자가 나 여호와다! 너희 스스로 너희 길을 결정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 교훈을 주시려고 했던 것입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들 중에 “아, 그렇구나!” 이렇게 깨닫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어쩌다가 집을 떠나, 엄마 아빠를 떠나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가? 이게 모두 내가 원해서 된 일이었나? 아니야. 내 길을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야!”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길을 인도하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식으로 나에게 구름기둥을 보여 주시는지, 불기둥을 보여 주시는지 놓치지 않으려고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엘리야 같은 예언자는 ‘세미한 소리 (the sound of a gentle whisper)’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열왕기상 19:12) 그러므로,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뻐하십시오. 눈앞에 있는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인하여 지금 당장은 힘들고 괴롭겠지만, 이 시험들은 여러분의 믿음이 얼마나 강하고 순수한지 알아보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순수한 믿음은 금보다도 훨씬 귀합니다. 금은 불에 의해 단련되기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닳아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순수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 날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6-7)

1세기의 ‘디아스포라 크리스천들’은 어디를 가든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의 동족(同族)인 유대인들로부터 이단(異端)으로 취급되어 핍박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크리스천들을 ‘나사렛 이단 (the Nazarene sect)’이라고 부르면서 핍박했습니다 (사도행전 24:5). 설상가상으로 이제는 로마 정부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놓여 있는 ‘디아스포라 크리스천들’에게 베드로가 쓰고 있는 편지를 보십시오. “눈앞에 있는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인하여 지금 당장은 힘들고 괴롭겠지만.....” 무슨 말입니까? 지금의 이 어려움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곧 이 어려움이 기쁨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시험들은 여러분의 믿음이 얼마나 강하고 순순하지 알아 보기 위해 주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These trials will show that your faith is genuine.”

‘trials’라는 말은 법적인 용어입니다. 우리 말로 ‘공판’이라는 것입니다. 공판은 이 사람이 죄가 있나 없나 알아 보는 과정입니다. 확정 판결을 하기 전에 증인들의 말을 들어 보면서 조사하는 과정입니다. 또, ‘trials’라는 말은 ‘시련’ ‘어려움’ ‘고난’ ‘핍박’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지금 자기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고향을 떠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겪고 있는 이 일들을 ‘trials’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의 믿음이 얼마나 진실한지 판결을 받기 위해 법정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베드로를 통하여 오늘 우리들의 삶 속에 주어지는 많은 문제들, 시험, 시련, 고난을 어떤 시각으로 해석해야 하는지를 배우고 있습니다. 이 일들은 결국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진실한지를 밝혀 줄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It is being tested as fire tests and purifies gold (불이 금을 테스트하고 깨끗하게 정제(精製)하는 것처럼 지금 우리의 믿음이 테스트를 받고 있습니다).” (7절) 같은 뜻으로 잠언 17:3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한다. 하지만,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신다 (Fire tests the purity of silver and gold, but the Lord tests the heart).”

이런 생각을 해 보셨습니까? “왜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연단 하실까?” “왜 하나님은 우리를 테스트하실까?” 하나님은 우리가 ‘정금(pure gold)’ 같이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의 마음에 불순물이 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욥 (Job)이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욥은 자기가 받는 고난 속에 자기를 깨끗하게 purify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욥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 23:10)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중에 ‘번제 (burnt offering)’라는 것이 있습니다.  번제를 드리는 법에 대해서는 구약성경 레위기에 잘 나와 있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번제로 쓸 제물 (동물)의 머리에 손을 얹습니다. 이것은 자신과 제물을 동일시하면서 자의 허물과 죄가 이 제물에게 모두 전가(轉嫁, transplanted)된 것을 의미하는 의식입니다. 그 다음에, 제사를 드리는 본인이 직접 제물을 죽여 피를 받아 제사장에게 줍니다. 제사장은 그 피를 번제단 사방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제사 드리는 사람이 동물의 다리를 자르고 깨끗하게 씻어서 제사장에게 줍니다. 제사장은 그것을 받아서 번제 제단에 올려 놓고 완전히 불태웠습니다. 제사장은 제물이 완전히 불에 탈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제물이 불타는 것을 지켜 보았습니다. 제물이 완전히 타서 재가 되면 비로소 번제가 끝이 납니다. 이 모든 과정들 (의식들)이 중요한 이유는, 이 번제를 드리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불순물이 불에 타서 깨끗하게 purify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베드로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Your faith is far more precious than mere gold. Because when your faith remains strong through many trials, it will bring you much praise and glory and honor on the day when Jesus Christ is revealed to the whole world (여러분의 믿음은 금보다 더 귀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겪고 있는 이 시험들 속에서 여러분의 믿음이 진실하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주님 다시 오시는 날에 이 믿음이 여러분에게 찬양과 영광과 존귀를 가져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크리스천들이 당하는 시험 (trial)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시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진실한지 밝혀 주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시험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은 진실하다는 것이 증명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증명된 믿음은 우리에게 찬양과 영광과 존귀를 가져 올 것입니다. 똑 같은 말씀이 로마서 5:3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환난을 당하더라도 즐거워합니다. 그것은 환난이 인내를 낳고, 또 인내는 연단된 인품을 낳고, 연단된 인품은 소망을 낳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에서 중심 되는 단어들을 뽑아 보십시오. 환난 (trials), 인내 (endurance), 연단 된 인품 (strength of character), 소망 (hope)입니다. 이 네 단어들이 크리스천의 삶의 전 과정을 보여 줍니다. 환난은 우리에게 인내와 연단 된 인품과 소망으로 이어지는 크리스천의 삶의 시작입니다. 환난이 없이는 인내가 없고, 인내가 없이는 연단 된 인품이 없고, 연단 된 인품이 없이는 소망이 없습니다. 크리스천의 삶의 과정은 환난, trials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지금 당장에는 눈앞에 있는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인하여 힘들겠지만, 기뻐하라고 합니다 (6절). 크리스천의 삶에 시험 (trials)이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적어도 성경을 통해서 크리스천의 삶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배운 사람들에게는 시험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이 진실한 믿음인지, 아닌지를 증명하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내가 너희를 단련시켰으나, 은을 정련하듯 하지 않고 너희를 고난의 용광로 속에서 단련시켰다.” 이사야 48:10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지금 자신이 시험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지금 하나님께서 나를 고난의 용광로 속에 넣고 단련시키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지금 하나님께서 시험을 통하여 나의 믿음이 과연 진실한지 테스트하고 계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있습니까? 지금까지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나의 삶을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이, 비록 여기가 시험을 받는 자리라고 할지라도, 여기까지 나를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