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3-17

13 형제 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 번 여러분에게 갈 계획을 세웠으나 뜻대로 되지 못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다른 이방인들 사이에서 믿는 자들을 얻은 것처럼, 여러분 중에서도 어떤 열매를 얻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14 나는 그리스인이든지 미개인이든지 지식인이든지 문맹인이든지 가리지 않고 어느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할 책임이 있습니다.
15 그래서 로마에 있는 여러분에게도 복음을 전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16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 복음이 유대인으로부터 시작해서 이방인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17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가 복음에 계시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의인은 믿음으로 인하여 살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13 I want you to know, dear brothers and sisters, that I planned many times to visit you, but I was prevented until now. I want to work among you and see spiritual fruit, just as I have seen among other Gentiles.
14 For I have a great sense of obligation to people in both the civilized world and the rest of the world, to the educated and uneducated alike.
15 So I am eager to come to you in Rome, too, to preach the Good News.
16 For I am not ashamed of this Good News about Christ. It is the power of God at work, saving everyone who believes-the Jew first and also the Gentile.
17 This Good News tells us how God makes us right in his sight. This is accomplished from start to finish by faith. As the Scriptures say, "It is through faith that a righteous person has life."① / ①Or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Hab 2.4

마틴 루터 (Martin Luther, 1483-1546, 독일)가 95개 조항 (theses)을 제시하면서 당시 카톨릭 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토론을 제의했던 것이 1517년입니다. 올해로 꼭 50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교회는 얼마나 바뀌었는가 하고 질문해 보면 교회는 다시 한번 개혁의 필요성을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역사를 돌아 보면, 엄청난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기원전 586년에는 바빌로니아 군대가 쳐들어 와서 예루살렘의 성전을 파괴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갑니다. 그리고, 서기 70년에 다시 한번 성전이 파괴됩니다. 이번에는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에 쳐들어와 성전을 파괴합니다. 신기하게도 두 번 모두 미리 예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원전 586년의 성전 파괴는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예언이 되었고, 서기 70년의 성전 파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언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신다는 하나님의 복음은 유대나라를 떠나 전 세계에 전파되었습니다. 사도들을 통하여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는 나라들이 늘어가고, 유럽이 기독교화 되고, 교황은 엄청난 권력을 손에 쥐게 됩니다. 교황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카톨릭의 수도사였던 루터의 눈에 가장 “이건 말도 안 돼!” 이렇게 보였던 95개 조항의 토의 제목 중에 ‘면죄부 (indulgence)’에 대한 조항이 있습니다. 돈 많은 귀족들이 자신의 죄를 면제 받을 수 있는 증서를 돈을 주고 사는 것입니다. 면죄부에도 종류 별로 싼 것이 있고, 비싼 것이 있었습니다. 교회가 이렇게까지 타락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돈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교황들이 자기의 이름을 걸고 경쟁적으로 교회를 건축했기 때문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습니다.

지난 주에 한국의 어느 일간 신문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버터와 종교개혁’이라는 매우 흥미 있는 기사였습니다. 15세기와 16세기의 유럽인들은 버터 맛에 흠뻑 빠졌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몰랐던 버터의 부드럽과 풍성한 맛은, 당시 유럽인들의 입 맛을 사로 잡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카톨릭 교회에서는 버터를 먹는 것을 제한했다고 합니다. 버터는 동물성 지방에서 뺀 것기 때문에, 동물성 기름이 인간의 성욕을 부추긴다는 것이 이유였다고 합니다. 지금도 카톨릭 교회에서는 사순절 때 육식을 피하고 생선 종류만 먹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짧은 기간동안 특정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라면 참을 수도 있겠지만, 그 기간이 너무 길었습니다. 사순절을 비롯해 매주 금요일은 고기를 먹을 수 없었고, 각종 성인축일에도 고기를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시 카톨릭교회 교인들은 동물성 지방을 섭취할 수 없는 날이 일년의 절반 가까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행하게도 남부의 유럽 사람들은 평소 버터 대신 올리브 오일이나 생선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버터를 먹지 말라는 제재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남유럽에는 버터가 나병을 발병시킨다는 속설이 돌고 있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프랑스나 루터가 살던 독일 등 버터를 많이 먹던 지역이었습니다. 금식 기간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버터에 길들여져 있던 부자들이나 귀족들은 특혜를 누렸습니다. 돈을 주고 버터를 먹을 수 있는 권리를 산 것입니다. 돈 많은 귀족들은 막대한 돈을 교회에 기부하고 대신 ‘버터섭취권’을 얻얼 수 있었습니다.

부자들은 돈을 주고 버터를 먹을 권리를 살 수 있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이 때를 틈 타 악덕상인들 중에는 남유럽에서 저질 식물성 오일을 수입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비싸게 파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16세기초 루터가 독일 지역의 귀족들에게 쓴 공개 편지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고 합니다. “로마 가톨릭은 엉터리 금식을 하면서 우리들에게는 싸구려 기름을 먹이고 있다. 그들이 저지르는 신성모독이나 거짓말보다 더 큰 죄는 바로 버터를 먹는 것에 대한 면죄부를 판매하는 것이다.”

정말 우연이라고만 볼 수 없는 것은, 16세기에 버터를 많이 먹던 국가들은 대부분 로마 가톨릭 교회로부터 이탈해 해서 프로테스탄트 국가들이 되었다고 합니다. 버터와 종교개혁이 얼마나 연관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올리브 기름을 많이 먹었던 이탈리아나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남부유럽은 가톨릭 교세가 강하고,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등 버터를 많이 먹는 지역은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강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당시 로마 카톨릭교회가 타락했을 때, 하나님은 마틴 루터를 통해서 교회를 개혁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또 한번의 개혁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두 번의 성전 파괴, 그리고 루터의 종교개혁을 통해서 하나님은 새로운 판을 짜셨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지금이 또 한번 하나님께서 새로운 판을 계획하고 계시는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과 상황이 그런 예측을 하게 합니다. 인구의 감소, 교회의 사회에 대한 영향력 축소, 기독교 인구의 급감, 청년들의 교회에 대한 무관심 등 현재의 상황을 주시해 보면 하나님은 지금의 교회가 아니라 전혀 다른 형태의 교회를 계획하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예측을 해 보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우리교회의 청년들이 정말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청년들은 이사야가 생각했던 ‘거룩한 씨앗들 (Holy Seeds, 이사야 6:13)’이고 ‘남은 자들 (The Remnants, 이사야 1:9, 열왕기상 19:18, 로마서 9:27-29, 11:4-5)’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프로젝트에 동원될 사람들입니다. 그 때까지 우리교회의 사명은 이들을 잘 양육하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의 정신은 ‘Three Solas’라는 말로 잘 표현됩니다. ‘Sola Fide (Faith Alone 오직 믿음으로)’ ‘Sola Gratia (Grace Alone, 오직 은혜로)’ 'Sola Scriptura (Scripture Alone, 오직 성경으로)', 이 세가지가 종교개혁의 정신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이 세 가지를 종교개혁의 정신이라고 말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루터 자신이 이 세 가지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믿음생활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루터는 이 세 가지 관점을 가지고 그 당시의 카톨릭 교회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잘못된 것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95 Theses (95개 조항)’에 담았던 것입니다.

언젠가 제가 그런 이야기를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세계적인 위조 지폐 (counterfeit) 감별사가 우리나라에 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심지어 기계가 놓치는 것도 잡아 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말이 재미 있습니다. 위조 지폐를 감별하기 위해서 자신은 진짜 지폐에 대한 소리와 느낌, 감각을 집중적으로 훈련한다고 합니다. 진짜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면 위조 지폐를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정말 그 사람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Sola Fide’ ‘Sola Gratia’ ‘Sola Scriptura’ 이 세 가지에 집중하는 것은, 비유적인 의미에서 진짜 지폐가 어떻개 생겼는지 배우는 훈련과 같습니다. 이 세 가지를 잘 알면, 이 사람은 바른 믿음생활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믿음생활에서 오는 유혹들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세 가지가 루터가 생각했고, 루터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이미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루터가 성경에서 발견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말입니다.

그러면, 루터가 제시한 이 세 가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첫째로, ‘Sola Fide’ ‘오직 믿음으로’ 라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고 인정 받을 수 있는 길이 어떤 길인지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로마서 1:17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가 복음에 계시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의인은 믿음으로 인하여 살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This Good News tells us how God makes us right in his sight. This is accomplished from start to finish by faith. As the Scriptures say, "It is through faith that a righteous person has life."① / ①Or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Hab 2.4 복음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개념인데, 우리 말 성경에서 잘 설명되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의 (righteousness)’라는 개념입니다. 이 말이 일반적으로 쓰는 개념과 성경에서 쓰는 개념이 아주 다릅니다. 성경에서는 ‘의’라는 개념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라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의로운 사람’이라고 하면 그 사람은 단순히 착한 사람, 올바르게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말씀을 해석해야 합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올바르게 만드셨는지 보여 줍니다. 이것은 처음 시작부터 마칠 때까지 믿음을 통하여 되는 일입니다. 구약 하박국 2:4에도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사람은 믿음으로 살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우리가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 받는 길은 하나님을 믿고, 또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는 길 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루터가 살던 당시 카톨릭 교회는 이 길이 아니라, 다른 길을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루터의 눈에 보였습니다. 이것이 루터의 다음 주장 ‘Sola Gratia’가 나오게 된 이유입니다.

‘오직 은혜로’ 이 말은 우리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구원은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루터가 볼 때, 당시의 카톨릭 교회 가장 잘못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카톨릭 교회가 ‘선행 (good works)’을 강조하면서 선행을 해야 구원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루터는 이런 카톨릭의 주장이, 하나님의 은혜를 약화 시킨다고 보았습니다. 루터가 볼 때 ‘선행’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헌금을 많이 거두고, ‘면죄부 (Indulgence)’를 많이 팔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믿음과 선행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우리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많이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도 교회에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지 선행을 함으로써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다” 이런 말을 많이 듣다 보니까 ‘선행’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제가 마틴 루터가 쓴 로마서 주석 (Luther’s Commentary on Romans)을 읽어 보았습니다. 서문 (preface)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Faith is a work of God in us, which changes us and brings us to birth anew from God (cf. John 1). It kills the old Adam, makes us completely different people in heart, mind, senses, and all our powers, and brings the Holy Spirit with it. What a living, creative, active powerful thing is faith! It is impossible that faith ever stop doing good. Faith doesn’t ask whether good works are to be done, but, before it is asked, it has done them. It is always active. Whoever doesn’t do such works is without faith; he gropes and searches about him for faith and good works but doesn’t know what faith or good works are (믿음이란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이다. 곧 우리를 변화 시키고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하나님의 일이다. 믿음은 옛 아담을 죽이고 마음과 생각과 감각과 능력에 있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게 한다. 그리고 믿음과 함께 성령이 온다. 믿음이란 얼마나 생동감 있고, 창의적이고, 활동적이고 강력한 일인가? 믿음이 선행을 중단 시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선행을 해야 하느냐고 묻지 않는다. 오히려 선행을 하라는 말을 듣기 전에 이미 선행을 실천한다. 믿음은 항상 활동적인 것이다. 선행을 하지 않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믿음과 선행을 위해 하나님을 찾겠지만 정말 믿음이 무엇이고 선행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루터에게 있어서 믿음은 ‘active’한 것이었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뭔가 창의적인 일을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나, 선행이 믿음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지, 선행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행’의 중요성이 감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나가서 선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렇게 살 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16). 루터의 글에서 보았듯이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선한 삶’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Sola Scriptura’ ‘오직 성경으로’입니다. 이 말은 우리 믿음생활의 최종 권위가 어디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The Bible alone is the ultimate authority and standard (성경만이 우리의 최종 권위와 기준이 된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고 성경보다 더 권위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 믿음생활의 기준이 됩니다.

루터는 교황의 ‘무오설 (inerrancy)’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95 Theses에 포함 시켰습니다. 그 때는 그 누구도 교황의 말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교황이 정치까지 관여했습니다. 국왕도 교황의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교황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습니다. 루터가 국회에 소환되었을 때도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교황도 잘못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성경은 여전히 우리의 삶의 ‘기준 (standard)’가 되고 있습니까?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500년 전과 지금의 세상을 비교해 보면, 세상은 엄청나게 변화되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성경은 우리의 삶의 ‘기준’이 될 수 있습니까? 성경에서 다루고 있지 않은 많은 이슈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이슈들에 대하여 교회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매우 혼동스러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새로운 이슈들이 등장을 해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은 한가지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삶에 유일단 기준이다!” 그러나, 이렇게 믿고 주장만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닙니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성경을 새롭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 일에 교회들이 힘을 모으고, 지혜를 모아서, 공동으로 대처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