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2019 | 사순절 새벽기도 8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

마가복음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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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2019 | 사순절 새벽기도 7

우리의 약함을 짊어지신 예수님

마가복음 1:2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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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2019 | 사순절 새벽기도 6

퍼지는 소문

마가복음 1: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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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2019 | 사순절 새벽기도 설교 1

복음을 준비하는 사람들

마가복음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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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2019 | 새해에는 이렇게 믿저 10

경건생활에 힘쓰자 3 Train Ourselves To Be Godly

디모데후서 2:14-22

“경건생활에 힘쓰자”라는 제목으로 세 번째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하나님을 닮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닮는 삶이 경건생활입니다. 성경을 읽고 공부하면서, 예배를 드리고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발견하고 그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 경건생활입니다.

십계명 중에 제 3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말은 하나님의 이름을 ‘in vain (헛되게)’ 부르지 말라는 뜻입니다. 또는 하나님의 이름을 ‘잘못 사용하지 마라 (do not misuse)’는 뜻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고 있습니까?

성경에 호세아 (Hosea)라는 예언자가 있습니다. 호세아는 기원전 730년경에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활약했던 예언자입니다. 북왕국이 기원전 722년에 멸망했으니까 호세아가 예언자로 활약했던 때는 나라의 운명이 기울어가던 때였습니다. 제가 호세아서를 읽다가 깜짝 놀란 말씀이 있습니다. 호세아 6:1-3에 나오는 말씀인데요.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치셨으나 다시 낫게 해 주실 것이요, 우리에게 상처를 내셨지만 다시 아물게 해 주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틀 뒤에 우리를 다시 살려주시고, 사흘 째에 우리를 다시 일으켜 주실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주 앞에서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날마다 새벽이 오듯이 주님도 틀림없이 우리를 찾아오실 것이다. 소나기처럼,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주님께서 오실 것이다.” 얼마나 멋진 말씀입니까? 이 말씀을 가지고 설교를 하는 목사님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잘 읽어보면 그게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에브라임아,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유다야,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너희들의 진심(眞心)은 아침 안개처럼 흩어지고, 이른 아침의 이슬처럼 쉬 사라지고 있구나.” 너희들이 말은 그럴듯하게 하면서도 그 말 속에 진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하나님을 알자. 하나님을 힘써 알자!” 말은 이렇게 하는데, 그 말 속에 진심이 들어가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예배,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과 기도, 성경공부, 이런 것 열심히 쫓아다니면서 하다가 보면 아는 것도 많아지고, 말도 청산유수(靑山流水)같이 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듣기에 “야, 저 사람 진짜 아는 것이 많구나! 야, 저 사람 믿음이 좋구나!” 이렇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말이 진실하지 않다면 그런 말들이 모두 하나님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절대로 하나님을 닮는 경건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는 뻔뻔한 위선자 (hypocrites)가 될 뿐입니다.

경건생활은 지금까지의 이런 잘못된 모습들을 벗어 버리고, 진실하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라틴어로 ‘Coram Deo (in the presence of God)’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 앞에 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대면(對面)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모습을 감추거나 꾸미지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서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고쳐 나가자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 디모데후서 본문 말씀을 보겠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도록 힘쓰라 (15절)”고 합니다.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Work hard so you can present yourself to God and receive his approval.”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내 보일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하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본심을 숨길 때가 있습니다. 일하기 싫어도 좋아하는 것처럼 행동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원래 게으른 사람이라도 부지런한 사람처럼 행동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사람의 눈치를 살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방식이 아닙니다.

사무엘상 2:30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나를 존중하는 사람을 나도 존중하고 나를 멸시하는 사람을 나도 멸시하리라.” “But I will honor those who honor me, and I will despise those who think lightly of me.” 하나님께서 엘리 제사장에게 한 말씀입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똑똑한 사람은 금방 알아챕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십니다. 솔로몬은 다음 세대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남깁니다.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잠언 3:6) 왜냐하면, 그래야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원리가 똑 같습니다. ‘황금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The Golden Rule’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7:12이 ‘황금률’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황금률’은 인간 관계에서만 적용되는 법칙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도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정해 주시기를 원하면, 우리도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습니다만, 미가 6:8 말씀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잘 나와 있습니다. “The Lord has told you what is good, and this is what he requires of you. to do what is right, to love mercy, and to walk humbly with your God.”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옳은 일을 하는 것, 자비를 사랑하는 것, 그리고 ‘to walk humbly with your God’ 하나님과 함께 겸손하게 행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23장은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꾸짖는 말씀으로 유명합니다.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For you are careful to tithe even the tiniest income from your herb gardens, but you ignore the more important aspects of the law-justice, mercy, and faithfulness (너희들은 허브 정원에서 나오는 작은 것의 십일조를 바치는 데 열심이지만, 너희들은 더욱 중요한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있다. 그것은 정의와 자비와 성실이다).” (마태복음 23:23)

제가 이 말씀을 강조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 때 예수님의 머리 속에 미가 6:8 말씀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생각에도 미가 6:8 말씀은 매우 중요한 말씀이었습니다. 정의를 따르고, 자비를 실천하고, 겸손하게, 혹은 성실하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따라는 사는 것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이고, 동시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곧 경건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경건생활이라는 것이 단순히 기도 많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건생활이라는 것이 단순히 성경 많이 읽는 것이 아닙니다. 경건생활은 하나님을 닮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그 하나님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삶이 경건생활입니다. 우리 믿음생활이 좀 솔직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좀 더 읽어 내려가면 3장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체하나 실제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람들을 멀리하기 바랍니다 (They will act religious, but they will reject the power that could make them godly. Stay away from people like that!)” (디모데후서 3:5)

경건생활에 대한 커리큘럼을 짠다면 ‘성결한 삶’에 대한 과목이 꼭 들어갑니다. ‘성결의 영’이신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성결한 삶’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결한 삶’이란 ‘정결한 삶’ ‘깨끗한 삶’ 혹은 ‘거룩한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제자 디모데에게 이렇게 충고합니다. “큰 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이 있고, 나무그릇과 흙으로 빚은 그릇도 있다. 이 중에 특별히 귀하게 쓰이는 그릇도 있지만 평범하게 쓰이는 그릇도 있을 것이다. 네가 악을 멀리하고 자신을 깨끗하게 한다면, 주님이 쓰기에 귀하고 거룩한 그릇이 될 것이다.” (20-21절)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읽으면서 오해합니다. 이 말씀에서 강조하는 것은 ‘금 그릇’ ‘은 그릇’ ‘나무로 만든 그릇’ ‘질그릇’이 아닙니다.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누구든지 악을 멀리하고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If you keep yourself pure)’ 이 구절입니다. 우리가 가진 역량 (abilities)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abilities’가 많은 사람이 있고, ‘abilities’가 적은 사람이 있습니다. 역량이 많은 사람은 비유적인 의미에서 ‘금 그릇’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량이 적은 사람은 ‘나무 그릇’이나 ‘질그릇’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 그건 공평하지 않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릇마다 사용하는 용도가 있거든요. ‘금 그릇’에 담으면 알맞은 음식이 있고, ‘질그릇’에 담으면 알맞은 음식이 있습니다. 된장찌개는 ‘금 그릇’에 담으면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질그릇’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된장찌개는 생각만 해도 입에 군침이 돕니다. 샐러드 같은 음식은 ‘나무 그릇’에 담으면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문제는 내가 무슨 그릇이냐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이 쓰실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청년의 시기는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 시기의 중요성을 모르고 자신을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하는 일에 게으른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젊은 청년들이 빠지기 쉬운 욕망이 있다고 합니다. New Living Translation에는 이런 욕망을 ‘youthful lusts’라고 했습니다. 사전에는 ‘lusts’라는 말이 ‘very strong sexual desire (매우 강한 성적인 욕망)’라고 나와 있습니다. 청년의 시기에 충분히 이런 욕망에 빠질 수 있습니다. 또 마약이나 도박이나 이런 것에 빠져 중독될 수도 있고, 잘못된 이단 종교에도 빠질 수 있습니다. 보스턴에 신천지 교리를 전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청년의 시기에 자신을 깨끗하게 할 수 있을까요?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합니까? 잘못된 길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보세요.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들과 함께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며, 믿음과 사랑과 평안을 추구하기 바랍니다.” (22절) “Instead, pursue righteous living, faithfulness, love, and peace. Enjoy the companionship of those who call on the Lord with pure hearts.” ‘pursue’라는 말은 ‘추구한다’는 뜻입니다. ‘seek’라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righteous living, faithfulness, love, and peace’이런 것들을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들입니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소중한 가치임을 알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혼자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친구들과 같이 이런 것들을 추구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청년의 시기에 ‘youthful lusts’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공동체 안에서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companionship’을 갖는 것입니다.

“Enjoy the companionship!” 함께 찬양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예배 드리는 친구들이 우리에게 그렇게 소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친구들과 함께 우리는 청년의 시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치들을 추구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청년의 시기에 빠지기 쉬운 ‘youthful lusts’를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올바른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내 삶에서 실천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평화, shalom이 넘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이것이 청년의 시기에 나누는 대화의 내용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경건생활입니다.